'내설악'의 가을 비경 -7부작-
제1편 상처 아문 '44번' 국도를 넘으며!...
제작년, 나는 44번 국도로 불리우는 한계령을 넘으며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속이 상할 정도가 아니라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수마가 핥키고 간 자리에는 귀중한 우리 이웃의 생명까지 앗아간 것도 모자라 그리 곱던 산하가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보고 얼마나 하늘을 원망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피붙이가 상처를 입은들 그 정도였을까? 나는 속이 상하여 44번 국도를 보수하고 있는 건설사나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들 까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며 미워했다. 내 생전에 그렇게 사랑했던 산하를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44번 국도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얼마전 다시찾은 44번 국도는 아직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44번 국도를 넘어 가면서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거울을 들여다 보며 상처가 나기전 모습을 상기하듯 나는 자꾸만 한계령 곁 거울같이 맑고 비단결 처럼 고운 개울과 개울옆 풀숲과 수려한 산과 맑은 드 높은 하늘을 떠올리며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그건 순전히 나의 욕심이었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상처를 입기 마련이고 어떤 상처는 목숨까지 위협하며 다시금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들기도 하는데 누구도 돌보지 않는 자연이란, 저 정도의 상처쯤이야 수천 수만년동안 이어져 온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하니 작은 위안이 되면서 속상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터 였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정말 속상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속이 너무도 상한 나머지 화풀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나랏님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해 본들 경제사정은 당장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멀쩡한 사람에게 손가락질 하다간 뺨 맞기 십상이고 보면, 44번 국도의 생채기 처럼 다소 시간이 흐른다음에 라야 전후좌우 사정을 알 텐데 그러기엔 당장 코 앞에 닥친 사는 일이 녹록치 않다.
44번 국도에서 바라 본 설악산 서부능선...그 아래로 한계령이 뻗어있다.
지난 토요일 오후, 나는 44번 국도를 달리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 열병 앓듯 앓고난 후 거울에 비친 얼굴은 많이도 쇠잔해 있을 것 같지만 열병에 대한 내성으로 말미암아 어지간한 열병 쯤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정치가 그렇고 경제나 사회전반에 걸친 삶의 이야기가 그럴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수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한계령 입구...드 넓어진 천이 안정돼 보인다.
44번국도의 상처는 말끔히 아물어 있었고 새살이 돋아 난 한계령은 서서히 단풍이 내려 앉기 시작했다. 한계령에 들어서기 전 인제에서 본 설악산 서부능선에는 단풍물결이 바람에 날리었고 개울은 하늘을 닮아 푸르게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속상해 했던 시간들이 부질없게 느껴졌고 코피 터진 아이처럼 안절부절했던 모습이 처음으로 후회되기 시작했다.
44번국도의 상처를 꽤맨 자국이 그림자 처럼 한두군데 눈에 띄었지만 새로 돋아난 투명한 속살 위로 노오랗고 빠알간 단풍이 든 모습은 이틀후면 꽃가마를 탈 누이의 볼을 닮은듯 수줍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나는 어느덧 설악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한계령에서 만날 수 있는 흘림골의 고운 단풍...이 계곡에서 집채만한 바위들이 산사태로 도로를 유실케 했다.(맨아래 그림)
한계령이 제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안절부절 호들갑을 떨며 보낸 시간들이 다시금 생각해 봐도 우스운 꼴이었다. 한계령 골짜기를 메꾸었던 바위덩어리들은 지난 여름에 제각기 자리를 찾아서 앉았는가 하면 장수대에 늘어선 관광버스며 오색에 줄지어 선 등산객과 행락객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한계령을 지나치면서 올려다 본 흘림골과 주전골과 설악산 서부능선의 단풍들은 서서히 옛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한계령 휴게소에는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한계령 곳곳이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다시는 한계령으로 사람들이 찾을 것 같지 않았는데 수마가 핥키고 간 후 2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재작년 수해때 흘림골 뒤편 한계령 곁으로 떠 내려온 집채만한 바위들이 정리된 모습이다.
'내설악'의 가을 비경 -7부작-
제1편 상처 아문 '44번' 국도를 넘으며!...
나는 내설악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당초 인제에서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이동한 다음 1박을 하고, 일요일 아침 일찍 속초에서 다시 용대리로 이동하여 가을의 내설악 비경을 담고 싶어서 백담사가 있는 수렴동 계곡과 구담계곡을 이어서 봉정암과 소청으로 그리고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단풍이 깃들었던 44번국도가 너무도 궁금하여 한계령을 넘었던 것인데 한계령은 뜻밖의 기쁨을 내게 안겨 주었던 것이다.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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