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뒷골목 '피맛골' 헐리는 거 아세요?
얼른 상상이 되지 않지만 조선시대 종로의 모습을 생각하면 '양반과 상놈'이 뒤엉켜 산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양반만 득세하는 곳이 서울이었고
평민들은 그저 그들의 뒷 치닥거리나 한 것이라고 할까?
어제 오후 인사동에서 볼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예전에 가끔씩 들리던 '피맛골'의 모습을 보고 싶어 들렀는데
복날이어서 그런지 피맛골에는 사람 한 둘이 우산을 받쳐들고 지나갈 뿐,
서민들의 애환이 서렸던 이 뒷골목의 식당과 술집에는 사람하나 얼씬 거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문을 닫은 집도 적지 않았다.
태풍 갈매기가 북상하며 남기고 간 '서울 경기지역 호우주의보' 소식은
장마로 눅눅해진 집안은 물론 마음까지 눅눅하여 비가 오시는 날 피맛골에서 마시던 대포가 생각나게 한다.
조선시대 때 부터 600년간 서민들의 쉼터로 자리매김 하면서
서민들이 잘 찾던 파전이며 해장국이며 곱창같은 음식들은 요기는 물론 술안주로 각광을 받았지만
서울이 현대화 되던 언젠가 부터 이 골목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것 같다.
그래서 그럴까? 지난주 소식에 의하면 이곳이 재개발 되어 오피스타운이 들어선다는 말이 들린다.
70년전통의 '청진옥'도 35년간 생선을 구어 온 '삼성집'도 금년안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종로통(종각) 대로 바로 뒤켠에 자리잡은 이 일대는 '청진구역'으로 불리우는데
올해안으로 재개발이 추진되어 2010년 이곳의 모습은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는 아쉬움이다.
피맛(말을 피하다는 뜻)골은
알려진대로 조선시대에 이 근처를 양반들의 교자나 가마가 자주 지나가던 곳으로 큰길이었고
당시에는 아랫사람, 그러니까 평민들이 이 거리를 지나다가
벼슬아치의 양반들을 만나면 모두 길가에 엎드려 예의를 표했다고 하는데,
그런일이 자주 되풀이 되면 번거로울 것 같아서
아예 큰길 양쪽 뒤편에 말한마리가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길을 만들어 놓고 그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피맛골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 상놈이 되거나 평민이 되어 벼슬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걸까?
그들이 이 좁은 골목가에 늘어선 선술집에서 장국밥도 먹고 생선도 구어먹었던 것인데
꽤 유래가 깊은 이 골목이 막상 헐린다고 하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난 상놈이었나 보다...ㅜ ^^)
세월이 많이도 흐르고 세상도 많이 달라져서
그 평민들이 나랏님 물러가라며 촛불을 들고 거리행진을 벌였던 종로통 바로 뒷편에 이 피맛골이 있는데
나랏님은 오히려 숨어서 얼굴조차 볼 수 없고 벼슬아치 양반들이 다니던 길에 촛불시민이 가득하다.
빈대떡 냄새와 생선굽는 냄새가 진동하던 이 골목을 사랑(?)하는사람들은 상놈들이 아니라
이제 재개발로 돈을 벌어보자는 양반들이 득세를 부리는 곳이 되고 말았다.
피맛골을 돌아보면서
우리것이란, 그 모양새가 상놈스럽던(?) 양반스럽던 그 모양 그대로 지키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 갈매기가 동반한 장맛비가 기분 눅눅하게 하면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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