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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온 山들

'古瓦 불교미술'이 있는 금강산'乾鳳寺' 동면에서 깨어나다.

'古瓦 불교미술'이 있는 금강산 '乾鳳寺' 동면에서 깨어나다.


사람들은 10월의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가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하며 마음 한구석이 허전함을 느끼며

가는 세월을 안타깝게 여기며 곧 타 오를 단풍을 기대하고 있다.

붉게타는 그 단풍을 바라보며 지나간 생을 반추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도 또한 지금인데

나는 같은 공간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서 있으면서도 이 계절을 보내는 가을의 기운이 아니라 새롬의 기운이 돋는 봄을 느끼고 있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가는 실바람이 가을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부드러웠고 폐허위로 돋아나는 때 늦은 풀잎들이 내가 서 있는 시간을 증명이라도 해 주는듯

이슬을 뒤집어 쓰거나 매단채 갈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 들이고 있었다.

주변에는 나무하나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이 폐허 곁에는 몇 안되는 절간이 까만 기와를 머리에 인 채 그 또한 갈 햇살에 파스텔 분을 날리고 있었다.

나는 나를 감싸고 있는 따듯하고 상서로운 기운들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불이문'과 '능파교'가 전부였고 막 푸른옷을 벗어 버리려는 고목들의 잎새들 뿐이었다.    


  www.tsori.net(내가 꿈꾸는 그곳)에서 '제작지원'하고 있는 'BloggerMedi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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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절터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미 불타서 흔적조차 희미해진 폐허위에는 오래전에 절간을 떠 받치고 서 있었던 초석들이 납짝 엎드려 있었고
그들의 보이지 않는 형상들이 갈 햇살을 받으며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푸른색의 풀잎들이 갈색옷을 갈아 입고 있는 황량한 페허에 내리죄는 볕들...
그 볕을 생명줄로 단단히 붙들라는 음성을 들었는지 몇 안되는 포공영이 꽃을 피우지도 못할 잎을 펼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인가 자신의 형상을 만들고 있는 육신의 옷을 벗을 날이 도래하는 것을 알지만
결코 그 옷을 벗고 싶지않는 것 또한 사실이나, 세월은 매몰차서 그 옷들을 다 걷어가고
그 자리에 나(我)를 버려두는데 그 올 곧고 부드러운 보이지 않는 생명의 형상들이 이 폐허에 가득하고
그들의 발원이 때를 만나 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인데 세상은 10월이었고 장소는 금강산 가는 길에 엎드려 있는 건봉사라는 곳이다.
그들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지만 육신이 소멸되었고 그들은 또한 그들의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 들였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되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부활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치면 너무도 짧은 시간인지 모른다.
'부도전'을 돌아보며 시간을 앞서 간 그들의 공덕을 기리다가 인연되어 발길을 돌린 이 폐허위에 서 있는 나는
 이곳에 왜 왔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속 깊은 곳까지 온기를 전해주는 이 땅이 마냥 좋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옷처럼 많은 숲들이 조성되어 있는 곳도 아니며 나의 몸둥이를 숨길만한 거처가 온전한 곳도 아닌데
나를 편하게 하는 기운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를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동서울터미널에 작은 가방 하나씩 메고 도착한 시간은 지난 토요일의 일이었다.
우리일행이 목적하고 있는 장소는 강원도에 있는 한 사찰이었고 그 사찰은 한때 우리나라의 4대사찰로 불리우던 '건봉사'라는 곳인데
건봉사라는 이름앞에 '금강산'이라는 이름이 더하여 '금강산 건봉사'로 알려지고 있다.(상세 안내는 글 끄트머리에)
그래서 필자는 건봉사를 가기 위해서는 속초에서 뱃길을 따라서 '월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금강산은 우리 남한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블로거가 큰 외침으로 이 곳의 위치가 북한이 아니라 남한땅 비무장지대에 가까운 동해 어느곳이라고 설명을 해 주지 않아도
조그만 관심이 있었다면 홈피를 방문하여 '거진읍 냉천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진부령과 간성읍 사이에 있다.'라는 사실을 금방이라도 알 수 있지만,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보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그 사이 이 오래된 절터에는 이끼가 끼고 사람들로 부터 잊혀져 가고 있었는데
나는 그 짧지않은 시간들이 동면의 시간이라 여기며 '적멸보궁'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부처님의 '불사리와 치아사리'를 사명대사가 다시 이곳으로 옮겨오기 까지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들에게
불사리와 치아사리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물리적이고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여지는 그 흔적들에 대해서 과연 불자들만이 '소중하게'여겨야 되는것인지에 대한 생각들도 또한 함께 했다.
예전에는 '휴거'에 대한 일반의 인식들이 '신비'한 현상들로 여겼을 수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그 가치가 소멸되어 '우주인'만도 못한 가치로 전락(?)했다.
'공중부양'의 현상에 못지않게 '영혼의 천도'에 관한 이야기를 리얼하게 묘사할 근거가 마땅치 않았던 제법 오래전의 예전에는
한 인간의 죄의 무게로 인하여 '고통'의 현상이 천도를 가로막았다면 그 고통으로 부터 해방된 자가 '자유'할 수 있는 길이 곧 '휴거'에 관한 이야기 일 수 있으며
나는 그 이야기를 믿는다고 나불거렸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하지만 나는 그렇게 번복하는 의문을 두고 또 다시 그런 사실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지천명에 이르렀고 내가 뿌린 씨앗을 그대로 거두고 있다.
 
내가 화재로 소실된 빈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과학이라는 '돋보기'가 간과한 현상을 온 몸으로 느끼는 것인데 그 세계를 갈 수 있는 사람은 그 세계를 가 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곳이고
안타깝게도 그 세계를 아는 사람들은 너무도 제한적이고 손가락 전부를 펴서 셀 수 있는 사람들 뿐이건만
오늘도 그 세계를 인도하는 손길은 너무도 많다.
소나무 아래에서 직사광선을 피해서 솔잎을 뒤집어 쓰고 고개를 쳐 드는 송이도 그를 인도하는 기운에 힘입어 새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며 생명을 보지하듯이
이 황량한 절터에도 마침내 봄이 오고 있는 것일까?...
 
우리들은 절마당에서 줄타기를 하는 곡예를 보며 함게 즐거워 했고 대웅전앞에서 펼쳐지는 '비보이'의 춤을 보며 손뼉을 쳐 댓다.
고요한 산사를 깨우는 '의식'과 '살풀이'가 진행되는 동안 그 깨움의 움직임들이 새롬을 돋게하는 힘이라 여기니
자연의 힘은 참으로 오묘하고 또 신비로왔는데 기실 나도 그 작은 힘 가운데 한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천년전에 이런 모습이 경내에서 증폭된 음악과 '지랄맞은(?)-오해없길-' 몸짓으로 '굿'을 안다고 하면
아마도 불경스러워도 한참동안 불경스러웠을 것이고 환도를 메고 있던 사천왕의 무리들이 눈을 부릅뜨고 이들을 단칼에 무찔렀을 것이나
'연화세상'에 태어난 나는 그저 이 신기한 패러다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꿀 요량으로 하늘에서 불을 내려 태워버린 사찰이라고 생각하니 전회위복도 이만한 '이벤트'가 또 없었다.
 
세상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해서 이런 반전을 기대한 사람들이 또 누구며
한 젊은 총무스님이 힘을 발휘하게 된 까닭 뒤에는 또 그를 향한 기도줄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고
이 모든 것을 주제 하시는 분이 또 '부처님'이라는 싯달타 일 터인데
그 공력이 개개처처에 미칠 수 있게 되기 까지 기다린 시간이 또 천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그 축제에 발을 디디며 온 몸에  소름이 돋는 신비감에 젖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이 녹아 내릴듯 포근한 기운에 쌓여 있는 것이다.
마치 자궁을 탈출한 아이가 엄마 품에서 젖을 흡족하게 빨고 곧 잠에 들것 같은 그런 기운 말이다.
 
내 어리적을 뒤돌아 보면 '산신각'에서 손을 비벼대던 할머니가 왠지 대웅전 앞에서 탑돌이를 할 때 부자연 스러웠지만
세월이 흐르고 우리들의 소원을 적고 등불을 매단 할머니와 어머니의 등잔이 다 꺼진 후라도 그 불이 내 어린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 꺼지지 않는 것처럼
부지불식간에 행해진 일이라도 그 행위나 행실이 모두 내 마음속 '메모리칩'에 다 기억되고
또 기억으로 인하여 나의 행실이 대대손손 전해 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오늘날과 같은 범죄가 양산될까 하는 생각을 또 해 보며 도덕의 구심점에 서 있었던 '종교'의 역할을 새삼스럽게 돌아보는 것이다.
부도전을 돌아보며 고승들의 행적을 잠시 떠 올리는 순간 나는 왜 그들이 세속의 삶을 포기(?)했는지 조금은 느끼며
그 고귀한 행실이 모이고 또 모여서 연화세상속에 버려지고 굳어진 마음들을 녹이는 봄바람으로 이곳에 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봄바람 속에 내 던져진 古瓦에 그들의 형상들이 잘도 묘사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부드럽고 고귀한 형상들을 바라보며 '귀족'이 과연 저런 모습이구나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또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나를 향하여 또한 부드럽고 고운 시선과 알수도 없는 향기를 풍기며 나를 '유혹'했지만
그 유혹들은 세상의 유혹들과 같은 肉만을 위한것이 아니었으며 그 유혹에 빠져 있으면 천년의 세월이 너무도 짧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 또한 그와 닮았다고 여기니 단지 '테크닉'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쉬 놓치고 쉬 잃어버리기 쉬운 '허브'와 같은 감성이 덕지덕지 뿌리채 건져 올려진 그 작품 앞에서
나는 빈터에 서 있는 찬란한 모습들을 그리고 있었다.
이제 봄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건봉사에는 능파교 아래에서 목을 축인 한마리의 봉이 하늘을 승천하는 날만 남았고
'건봉'은 그 승천을 위해서 또 천년을 기다려 왔다.
봉황이 하늘을 나는 '발사대'에서 나는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며 봉황과 함께 영원한 하늘을 비행하는 그런 꿈을 꾸고 있다.
건봉사에 봄이 오고 있었다.  
   
            베스트블로거기자Boramirang 드림   
 
 

乾鳳寺에 들어서며... 




 건봉사 입구에 들어서면 잘 생긴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를듯 건강하게 서 있습니다.






불이문이라 불리우는 이곳이 유일하게 불에 타지 않았다 합니다.

다른곳과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언제인가 우리도 이 문을 통과해야 겠지요.

천도의 길은 하나밖에 없다는 뜻일까요?...






버려진 물두멍에 나의 얼굴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능파교를 건너면 대웅전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가을을 알리는 들꽃이 너무 소담스럽습니다.






 금강산 건봉사의 대웅전 입구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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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瓦에 새긴 불교미술


 아래 작품들은 素雲 김선옥님의 생활불교 작품입니다.

'달마'의 살아있는 표정이 압권 입니다.





























 素雲 김선옥님이 고기와에 그려 넣은 이 작품들은 기왓장 한장에 그려 넣어진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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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창건을 위해서 불자들께서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적멸보궁에서 총무스님이 서기를 받으며 대웅전으로 나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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寂滅寶宮으로 가는 길에서...




 '범종각'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서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여러분들도 한번쯤 기회를 만들어서 가 보시길 바랍니다. 진짜인지? ^^






'방생장계'라 씌여진 이곳에서 불법이 흐르는듯 합니다.

아침햇살을 받은 이곳은 일기에보를 비껴가게 한 서기가 어린곳이었습니다.

이틀간 행사가 끝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아침이슬을 머금은 산신각 앞 빈터의 풀들입니다.






 황량할것만 같앗던 이곳이 의외로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더군요.






 건봉을 알리는 부도 입니다.

적멸보궁 뒤편에 있었습니다.






 적멸보궁을 둘러싸고 있는 담벼락이지만 바람들은 무시로 이곳을 넘마들고 있었습니다.






 적멸보궁과 대웅전을 나서면 건봉사입구의 불이문을 만납니다.






능파교 아래 개울에 피어나고 있는 가을꽃입니다.

이곳의 공기와 물은  너무도 맑아서 호흡을 짧게 해도 가슴 깊이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능파교 아래에서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언제인가 다시 이곳으로 흐르게 되겠지요?






 아무도 없는 황량한 빈 절터지만 공덕이 가득한 이곳에 서면 마음이 따뜻해져 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건봉사 입구, 그러니까 절 밖에 모셔진 부도탑들입니다. 이 부도전을 다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이 탑을 가지고 가는 이유는 다름아니지요. 복을 받겠다는 것인데...쩝!~

조경용으로 모셔다 놓은(?) 집들을 방문하여 이 탑들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 짐을 느낌니다.





 건봉사 입구에 도착하면 아름다운 소나무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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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乾鳳寺의 '가을축제'를 돌아보며



 건봉사 입구입니다.






 건봉사입구 언덕윙세서 본 건봉사 전경입니다. 저 뒤편의 절이 대웅전이 있는 곳이구요.






 절 뒤편 낮은 언덕에 한 야생화가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마치 우리들의 모습같은데 그렇게 이름도 소문도 없이 저렇게 피었다가 겨울을 맞이하고 또 봄을 맞이하지요.






 축제에 참가한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건봉사는 청소년들에게 '교육과 수련의 장'을 마련하여 널리 개방한다고 합니다.






 대웅전 마당에 앰프가 서 있습니다.

발꿈치를 들고 다녓던 고요한 산사에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음악들이 쿵쾅 거립니다.

격세지감을 느기는 저는 이미 구닥다립니다. ^^






 이 땅을 지켜온 어머님들의 불심이 축제동안에도 이어졌습니다.






 주지스님이 설법을 하는 동안 불자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법문들이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게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앞 마당이 장터처럼 술렁이고 있는데 이곳에서 고전무용과 현대무용이 펼쳐졋습니다.

현대무용이라고 붙인 이름이 이상도 하지만 '비보이'들의 공연을 일컬어 봣습니다.

몸을 비틀고 괴성을 지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대웅전을 흘깃 거렸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뻐하고 저도 신났습니다.

'신성불가침의 마당'에 아이들이 마냥 신나하는 그런 마당이었습니다.






 이곳은 숙명적으로(?) 군인들과 인연의 끈이 질긴 곳이더군요.

전쟁의 상처로 소실된 곳을 전쟁의 대리인들이었던 우리 국군장병들이 이곳을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떡매치기행사 전에 미리 가 보는 그림이었습니다.






 설겆이를 하며 싱글벙글 즐거워 하는 이들 국군 장병들은 우리의 늠름한 아들들인데

뒷일까지도 시원스럽게 처리해 주고 있습니다. 대민지원이 보기 좋습니다.






 인절미는 모자랄듯 대단한 인기였습니다만 행사에 참여하신 모든분들이 나눠 먹고도 남았습니다.






 인절미...맛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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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맘 서종훈님의  '막사발 물레질하기'

 체험행사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관심이 집중된 인기있는 곳이었습니다.

서종훈님은 여주에 전통가마를 가지고 계신분이시자 3대째 도공의 맥을 이어가시는 분입니다.

그의 활동중에 임진란때 일본에 끌려가 죽음을 맞이한 도공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수장제를 지내는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시는 행위예술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손에 잡힌 흙은 곧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그가 물레질을 하자 막사발이 탄생합니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며 자연과 교감을 나눕니다.






 고사리 손에 묻은 저 흙은 우리들의 살과 같아서 물을 만나고 또 불을 만나면

하나의 '용기'라는 생명체로 거듭납니다.





흙을 닮은 손길...그리고 자연...

우리들의 손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이 여러분들을 당길 때 굳이 '앙탈'을 부리시지 말길...^^






 건봉사 대웅전 앞마당에 펼쳐진 놀이판





 


 살풀이 춤과 고전무용이 사람들의 넋을 빼앗는 가운데...  











 몰입하고 있는 행사 참여자들...







 비보이들의 공연은 최고의 갈채를 받았다.

고요한 산사를 흔들어 놓는...





 









이 아름다운 행사에 초대하고 또 환대해 주신 건봉사 주지스님이하 총무스님과 행사를 도와주신 여러분들과

이 행사를 주관하신 블로거 온누리님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乾鳳寺건봉사

 진부령과 거진읍 중간에 위치한 고찰이다. 인적이 뜸해 한적한 고찰이지만 여름이
           면 숲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다. 야트막한 기와담으로 둘러친 건봉사에는 50여
           기에 달하는 부도와 탑비가 있다.  원래 건봉사에는 2백개가 넘는 부도와 탑비가 흩어져 있
           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많이 분실되었고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 현위치에 부도전을 조
           성하였다.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우고 있
           다.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사찰이었던 건봉사는 법
           흥왕 7년(520년)에 신라의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사실 법흥왕  7년이
           면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이고 아도화상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승려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시켰는데, 그들이 공양할 쌀을 씻은  물은  개천을
           따라 10리를 넘게 흘러갔다고 한다. 1878년 건봉산에 큰불이 나면서 당시 건봉사의 건물 중
           3천칸이 소실되었다. 그 뒤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전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단지 절 입구의
           불이문만 남아 있다. 건봉사 불이문은 독특하게도 기둥이 4개다. 1920년에 세워졌으며 해강
           김규진 선생이 글씨를 썼다.
          
           불이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솟대 모양의 돌기둥을 만나게 되는데 높이가  3m로 규모가 꽤 크
           며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들어졌지만 꼭대기에 오리가 앉아 있어 솟대라 할 수도 있겠다.  돌
           기둥이 서있는   부분은 널직한 공터로 되어있는데, 과거 건봉사의 번창했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이곳 절터와 대웅전 사이 좁은 계곡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가 놓여 있다. 능파교라 하는
           이 돌다리는 건봉사의 수많은 건물터 중 그나마  형상이 제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주위 풍경
           과 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대웅전 앞에도 또한 돌기둥이 서 있는데, 이 돌기둥에는 십바라밀을 형상화한 상징기호가 5
           개씩 10개가 새겨져 있다. 십바라밀은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
           한 10단계 수행을 말한다. 
           팔상전은 최근에 새로 지은 것으로 그 앞에는 석종형 부도 2기와 팔각원당형 사리탑과 부도
           각비가 하나씩 서 있다.
           건봉사 진신사리탑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불사리와 치아사리를 약탈해간 것을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되찾아온 뒤 세운 것으로 이로부터 석가의 치아사리를 모신 적
           멸보궁을 만들게 되었다.<자료:www.goseong.org 고성군청 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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