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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민속촌 돌쇠 멍석 깔자 왜 뭉기적 거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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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촌 돌쇠 멍석 깔자 왜 뭉기적 거렸나? 
-민속촌의 추억,새끼줄 이렇게 꼰다-


늦가을의 민속촌은 참 아름다웠다. 곱게 물든 단풍과 함께 오래된 한옥과 초가집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려 놓은듯 했다. 용인의 민속촌은 약 150년전 우리 선조님들이 살던 모습을 재연해 놓고 있는 장소였는데 당시에도 귀족과 평민이 존재하며 이른바 '양극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잘 사는 사람과 그러하지 못하는 사람과 권력이 있는 자와 또 그러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오늘날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1. 한국민속촌 탐구생활


당시 선조님들의 성깔도 만만찮아서 귀족과 평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양반과 상놈이라는 명칭이 그것이다. 양반과 상놈은 얼마나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당시에는 민주화라는 말이 무색하여 양반과 상놈은 이름에서 부터 차이가 났다. 이를 테면 양반집 도련님 이름이 이몽룡이고 그의 파트너가 성춘향이었다면 그들의 몸종은 방자며 향단이었다. 그래도 향단이라는 이름은 꽤 괜찮아 보이지만 방자가 뭔가. 이름에서 부터 방자한 냄새가 폴폴 풍긴다. 


그러나 방자나 향단이라는 이름은 들어줄만 하다. 상놈의 신분인 노비들은 아예 이름조차 쇠비름을 닮아 돌쇠 아니면 떡쇠 등으로 쇠붙이를 달고 다녔다. 열심히 부려 먹으려면 쇠처럼 야물고 질겨야 했던 것일까. 늦가을 아름다운 민속촌에는 돌쇠가 느긋하게 마실을 다니며 뭉기적 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전 같았으면 주인으로 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받아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어느덧 민주사회가 된 오늘날은 돌쇠에게도 인권을 부여하며 그를 구속하는 낡은 제도와 관습으로 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게 만들었다. 


한국민속촌은 우리 선조님들의 문화를 재연해 놓은 곳이고 그곳에는 민속촌 직원이 150년 전의 모습으로 분장하여 실제로 이곳에서 살고있는 것 처럼 연출해 둔 장소다. 따라서 한옥과 초가집 등지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데 처음 민속촌을 찾은 관람객들은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잊기도 한다. 민속촌에서는 실제로 이곳에서 지은 농산물 등을 이용하여 초가지붕을 수리하기도 하고, 농산물을 예전의 방식에 따라 말리거나 예전의 놀이 등을 재연하고 있는데 마치 실제 상황같아서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과거 속으로 여행을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겉으로는 과거 모습이 잘 재연된 민속촌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양반과 상놈의 계급이 사라진 민주화(?)된 민속촌 때문인데 평민 이하의 삶을 살았던 돌쇠(그렇게 부르기로 한다)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한다. ^^    


#2. 민속촌 속으로

민속촌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민속촌은 우리나라 전역의 옛 모습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으므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손 쉽게 한국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어서 외국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 중 하나다. 민속촌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외국인들이 줄을 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일본과 중국에서 온 학생들의 단체 관광객들이 민속촌을 왁자지껄하게 만들고 있었다. 같은 문화권에 살고 있었지만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서로 독특하고 개성적인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주지하다시피 사람들의 생김새는 비슷한 모습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지어 민속촌을 방문하면 그들은 주로 어떤 곳을 좋아할까.


현장학습을 나온 우리나라 초등학생들과 중국과 일본에서 온 학생들이 주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을 알아봤더니 서로 관심사가 조금씩 달랐다. 물론 공통점도 있었는데 민속촌에서 공연되는 마상무예 놀이나 우리 민속놀이는 다 좋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이 도자기 만들기 체험 등에 관심을 보이는 동안 외국 학생들은 민속촌의 관아 등 우리 선조님들의 복식과 음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일본에서수학여행을 온 여학생들은 먹거리 장터에서 우리나라 음식이나 과자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민속촌은 만추의 모습으로 달리고 있었고, 우리나라 옛 도공들의 숨결이 엿보이는 도자기 굽는(체험) 장소로 이동하면서 부터 왠지 썰렁한 느낌을 받았다.


내 앞에 나타난 황톳빛 도자기들은 초가집 처마 밑에 줄지어 있었는데 그 모습들은 어릴 때 많이 봐 왔던 친숙한 질그릇들이며 항아리였다. 


그릇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지며 편안해 짐을 느끼는 귀한 모습이 민속촌에 널려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 민주사회의 돌쇠 모습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돌쇠는 뭘하고 있었던 것일까. 


#3. 돌쇠 만나다

황토로 빚은 질그릇이 풍기는 묘한 일체감은 민속촌 방문을 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내 가슴 속에는 여전히 생전의 부모님의 모습이 투박해 보이는듯 단아한 질그릇을 통하여 오버랩되고 있었는데 그 시각 나는 양반이 되어 있었던 것일까. 양반의 눈에 비친 상놈의 일거수 일투족이 삐딱해 보였다.


조금전 이 대문으로 상투를 튼 돌쇠가 들어갔다. 돌쇠는 이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따라 들어가 봤다.


비록 초가지붕을 하고 있었지만 사랑채와 곡간이 잘 갖추어진 이 집에는 가을걷이를 통해 씨옥수수(종자 옥수수)와 수수와 조 등을 처마밑에 말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꽤 부잣집이었다. 그리고 처마 밑에는 이들 곡식을 타작할 때 사용한 멍석이 돌돌 말려있는 모습이다. 참 정겨운 모습이다. 그런데 이 멍석하고 돌쇠하고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


돌쇠와 마주쳤다. 돌쇠는 앞집 뒷집을 천천히 오가고 있었는데 돌쇠는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구역예배라도 다녀온 것일까. 돌쇠는 정오가 훨씬 넘은 시각에 민속촌의 초가집을 소개하고 있는 안내판을 들고 나타나 정위치에 놓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미 민속촌에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는데 돌쇠는 뭘 하고 있었는지 오후 시간에 나타나 관람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습이 실제 상황이었드라면 돌쇠의 등뒤에서 호통소리가 들릴 듯 하다. (이런 상놈...뭐 하고 자빠졌다가...궁시렁궁시렁...) ㅋ내가 양반이 되어보니 그런 설정이 가능해 졌다. ^^*


돌쇠는 다시 앞집으로 사라졌다. 돌쇠가 잠시 사라진 후 초가집을 둘러보니 툇마루에는 토란대와 애호박을 싸릿대로 엮은 소쿠리에 말리고 있는 모습이다. 명절 등에 생선을 말리거나 지짐이를 부쳐 널어놓기도 한 추억속의 소품이었다. 명절만 되면 이 소쿠리에 담겨진 음식을 훔쳐(?) 달아나던 추억이 절로 떠 올랐다. 종가였던 우리집의 예법 상 차례나 제사를 지내기 전에 음식을 먼저 손에 대는 것은 금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런 걸 알까.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고 배탈이 나서 설사를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또 툇마루에서 올려다 보면 메주나 옥수수 등이 매달려 있는 풍경이었고 제비들이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지지배배 우짖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리하여 이 장면을 다시 추억하고 싶어서 셔터를 누르고 필름을 돌리고 있었는데 늦게 출근(?)한 돌쇠는 여전히 천천히 이곳 저곳을 배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앞 뒷집을 오가며 뭘 챙기는지 오락가락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은 뜸 했다.

민속촌에서는 내 생각과 달리 유난히도 인기가 없는 곳(?)이 돌쇠의 영역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고참 근무자로 보이는 돌쇠가 구역예배를 다녀와도 될만한 곳이기도 했다. 아니면 PC방에 가서 다음뷰 연예 카테고리를 열어 보던지 떡쇠 등과 어울려 고스톱을 치다가 놓친 드라마 재방을 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150년 전이라면 어떻게 됐을까.(이런 상놈...뭐 하고 자빠졌다가...궁시렁궁시렁...) ㅋ내가 양반이 되어보니 그런 설정이 가능해 졌다. 두번째다. ^^*


#4. 돌쇠에게 말을 걸다

어쩌면 돌쇠는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MBC 수목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에 등장한 김갑수의 운명을 떠올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갑수는 극중에서 죽는 연기로 유명하다. 연출자들이 그를 얼마나 빨리 죽였으면 김갑수는 '제발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무릎팍 도사에서 털어놓고 웃었을까. 돌쇠가 늦게 출근한 이유 속에는 즐거운 나의집에 쏙 빠져 있다가 회상 씬을 통해 자꾸 등장하는 김갑수가 여전히 살아있지 않나 싶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듯 딴생각에 몰두한 돌쇠 모습이었다. 어슬렁 거리는 돌쇠는 마치 회상 씬에 나타난 김갑수 처럼 금방 앞집에서 뒷집으로 오가며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였다. 초가집의 정겨운 풍경 속에 빠져있던 나는 마침내 돌쇠를 불러 세웠다.

"이리 오너라~돌쇠야...어흠..."

휙 돌아보는 돌쇠 그러나 멀뚱멀뚱 쳐다 본다.

"...뭐 하느냐...냉큼 이리오지 않고..."

"...왜 그러시는 뎁쇼.(깐죽 깐죽)..."


물론 민주사회에서 돌쇠님에게 이렇게 했다간 미친넘 소리 듣기 딱 좋다.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관광객이니 말이다. 그래서 돌쇠에게는 이렇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돌쇠는 슬로우 모션으로 고개를 내게 돌렸다. 그리고 무슨 용무가 있는지 그윽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저...이거...아저씨가 만드신 겁니까?..."

"...그런데요..."

나는 돌쇠가 들락 거렸던 앞집 처마 밑에 걸려있는 작품들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볏짚을 이용하여 만든 물건(짚 공예품)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이 작품 모두는 돌쇠가 직접 만든 작품들이었다. 대단했다. 아마도 민속촌이 돌쇠를 고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는듯 했다. 그런데 민속촌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유독 돌쇠네를 일부러 피하고 있는 듯 한적했다. 나는 돌쇠의 솜씨가 보고 싶었고 그 모습을 영상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돌쇠에게 넌지시 말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5. 멍석 깔자 뭉기적 거린 돌쇠

그때 젊은 부부 한쌍이 딸래미와 함께 돌쇠 앞에 나타났다. 돌쇠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아저씨...새끼(줄) 꼴 줄 아세요..."

"흠...아다마다요..."

돌쇠는 으쓱 했다.

"...그거 카메라에 담고 싶은데 보여주실 수 있죠?..."

"흠...보여 드리지요..."


그런데 돌쇠는 딴청을 피우며 새끼줄 꼬는 일을 태만하게 하고 있었다. 거의 슬로우모션 이었다. 얼마나 그 동작이 느렸는지 볏집 몇개를 쏙 빼고 새끼줄에 넣어 비비는 동작 한번 하고 손녀 같은 딸래미 하고 말 한마디 하고,...볏집 몇개를 쏙 빼고 새끼줄에 넣어 비비는 동작 한번 하고 손녀 같은 딸래미 하고 말 한마디 하고 ,...있었다. (이런 상놈...시방 뭐 하고 자빠졌나...궁시렁궁시렁...) ㅋ내가 양반이 되어보니 그런 설정이 가능해 졌다. 어느새 세번째다. ^^* 

돌쇠가 얼마나 뭉기적 거렸는지 약 10분간에 걸쳐 새끼 꼬는 장면을 서너번이나 연출 했을까. 돌쇠는 멍석을 깔고 앉아 곁에 있는 손녀뻘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기 보이는 게 멍석이야..."






아흑...새끼(줄)나 꼬시지...나는 돌쇠가 여전히 뭉기적 거리는 장면을 뒤로하고 돌쇠 곁을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궁시렁 거렸다.

(...흠...요즘 돌쇠는 양반 알기를 멍석쳐다 보듯 하나 부아~ 멍석 깔아줘도 뭉기적 거리는 주제에...ㅜ)

나는 괜히 새끼줄 꼬는 장면을 카메라에 많이 담지 못해 투덜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돌쇠가 새끼 꼬는 장면은 느려 터졌는데 나는 여전히 민속촌의 시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새끼줄 꼬아서 장에 내다 팔 것도 아니고 돌쇠 복장으로 자리만 지켜도 될 법한 직장에서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등 생산성을 높힐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150년 전 우리 선조님이 살던 때를 돌이켜 보면 시간에 쫒겨 후다닥 거리며 살았던 게 아니라, 가을걷이를 끝내고 돌쇠 처럼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여유가 있었던 것 아닌가. 돌쇠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흠 그러고 보니 괜히 시간에 쫒겨 촐랑거린 내가 상놈이 아닌가...(ㅜ 이런 제길!)...(흑...나 양반 안 할래...ㅜㅜ) 

오해없기 바란다. 괜히 양반 상놈 놀이 설정해 놓고 당시를 회상하니  요즘은 사라진 '상놈'이라는 용어 하나가 등장했다. 따지고 보면 느긋한 동작을 보이는 게 양반이며 하악하악 거리며 촐랑거리는던 게 상놈이 아니던가. 나는 돌쇠에 비해 느긋하지 못했다. ^^    


민속촌의 가을은 참 아름다웠다. 오후의 햇살이 초가지붕에서 미끌어져 담벼락에 걸친 다음 마당으로 굴러 떨어진 것일까. 시멘트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150년 전 우리 선조님들이 살던 '친환경 흙빛 동네' 저만치서 금방이라도 엄니께서 나를 찾아 동네를 나서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어쩌면 150년 전 돌쇠는 볏짚으로 덮힌 담장 너머 럭셔리한 기와집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흠...폼이 아니시라고요?...^^*)


그 담장 밑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국화가 활짝 피었다.


세월은 가고 또 오는 것...


150년 전 우리 선조님들이 살던 풍경들이 갈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설정해 본 우리 선조님들의 성깔이 아무렴 그러했을까. 선조님들의 성품을 그대로 빼 닮은 민속촌의 나지막한 담장과 친환경 건축소재를 보면 참 욕심없이 살다가신 분들이라는 걸 금방 느끼게 되는데 우리는 무엇이 그리 바빠 본래 모습의 돌쇠 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민속촌에서 유달리 사람들이 찾지않는 이 동네를 돌아보니, 우리의 삶은 마치 민속촌을 후다닥 둘러보고 가는 관광객 처럼 대한민국에 관광온 이방인들 같다는 생각도 든다.


노오란 은행잎이 흐드러진 초가지붕 한 쪽에서 까치가 날아들었다.


녀석도 느리게 느리게 은행 씨앗 하나를 물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곳, 그곳이 우리 선조님들이 살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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