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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스님

세월호,짜장스님 떡국 3천 그릇 이렇게 공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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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했던 2박 3일간의 진도 여행
-짜장스님,떡국 3천 그릇 이렇게 공양했다-




"기적의 현장을 목격하신 적 있으신가요...?"

그릇에 담긴 떡국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맛있는 풍경은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릇에 '스님짜장'이라고 새겨진 것만 봐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스님짜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나면 고개를 끄덕일 것. 남원의 천년고찰 선원사 주지의 법명은 운천스님이지만, 세상에 알려진 당신의 별명은 '짜장스님'이다. 이웃들에게 '밥을 퍼 주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스님은, 여태껏 퍼 나른 짜장면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주로 교도소 재소자와 불우이웃 등을 찾아나서 짜장면을 봉사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세월호 유가족.실종자 가족 및 시민참가자들의 19박 20일의 도보행진 마지막 이틀의 공양을 맡았는데 네 끼니는 밥과 주먹밥 그리고 떡국 차림이었다. 세월호 도보행진단이 안산 분향소를 떠나 18일만에 진도 군청에 도착할 당시 저녁으로 배추시래기를 곁들인 된장국과 밥을 공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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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했던 2박 3일간의 진도 여행 12편

-짜장스님 떡국 3천 그릇 이렇게 공양했다-



다음날 (19박 20일)아침은 미역국으로 속을 풀게하며 아침 공양을 대접했다. 그 현장을 지켜보고 있자니 기적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점심 공양은 주먹밥이었는데 도보행진단의 수와 거의 맞아떨어지는 것. 대략 1200명에 달하는 수의 주먹밥 공양이 있었다. 그리고 부랴부랴 도보행진단을 앞서 도착한 진도 팽목항에서는 힘겨운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보행진단과 행사 참가자들의 수가 대략 2,000명 정도에 이를 것이라 판단했지만, 전국에서 모여든 행사 참가자들 때문에 그 수는 대략 3,000명에 이르렀다. 팽목항 문화제 주최측은 5,000명으로 추산하고 있었지만, 짜장스님의 공양 수를 참조하면 3,000명을 조금 웃도는 인원이었다. 연대병력에 해당하는 도보행진단과 행사 참여자들은 대략 오후 4시 30분부터 공양이 시작됐다. 그리고 대략 1시간 30분만에 떡국 3,000 그릇이 공양된 것. 그 기적의 현장을 영상과 사진에 담았다.

#1 이동 공양간이 차려졌다



이날 서진도농협하나로마트 앞에서 점심 공양을 끝마친 짜장스님 일행은 도보행진단에 앞서 진도 팽목항 세월호 분향소 곁에 이동 공양간을 완성하고 곧 저녁 공양 준비에 돌입했다. 저녁 공양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는 부산의 혜일암에서 오신 분들과 파주에서 오신 무명(?)의 자원봉사자가 공양간을 책임졌다.




혜일암에서 오신 자원봉사자들은 매주 600명의 어르신을 공양해 온 베테랑들. 이날 서진도농협하나로마트 앞에서 다듬은 진도 봄동배추를 겉절이로 버무르고 있다. 한 점 집어 주시길래 맛을 봤더니 봄동 배추의 달짝지근한 맛과 젓갈맛이 어우러져 기막힌 진도향기를 풍긴다.




커다란 고무통에 담긴 떡국떡은 2000명 분의 일부분이다.



녀석들은 고무통에서 적당히 불린 다음 가마솥으로 들어가 말랑말랑 쫄깃쪼올깃 하게 익혀질 것.



짜장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자원봉사자 분들...이날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 봉사를 하신 분들이다. 우측에서 두 번째 분은 목수가 직업으로 대목장(
大木匠)이었다. 이 분들이 떡국 3천 그릇 공양을 감당해낸 주역 중 몇 사람이다.









그리고 혜일암에서 오신 보살님 두 분은 떡국의 육수를 책임지셨는데 떡국떡이 바닥 날때까지 땀을 뻘뻘 흘리시며 공양간을 책임지셨다. 얼마나 고마운지...!




부산의 혜일암 주지스님(우신스님)과 보살님들은 부식 공양을 담당하셨다.




세월호 도보행진단의 맛깔난 떡국에 빠질 수 없는 계란...




무슨 이야기 꽃을 피우는 지 자원봉사자 두 분의 표정이 너무 밝다. 앞치마에 매달린 노란 리본이 눈에 띈다.



#2 세월호 도보행진단이 진도 팽목항으로 다가온다.




짜장스님 일행이 떡국 공양을 열심히 준비하는 가운데 저만치서 도보행진단이 진도 팽목항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도보행진단은 팽목향 분향소에 도착하는 즉시 저녁 공양을 받아들고 팽목항 문화제에 참여할 것.




이날 하루 (필자는) 광속으로 움직인 하루였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샘솟았는 지...!)




아마도 그 힘은 도보행진단에 참여한 시민들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19박 20일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치지 않게 도와준 분들이 도보행진에 참여한 위대한 시민들이었다.




난...그 분들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여러 집회 시위 현장을 다녀봤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 본 것. 19박 20일동안 450km나 되는 그 먼길을 동행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




세월호 도보행진단에 참가한 시민 한 분은 필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여태까지 흘린 눈물 보다 도보행진 중에 흘린 눈물이 더 많았습니다."




그는 안산 분향소에서 출발한 이후 도보행진단을 응원해 준 분들을 일일이 기억해 내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남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어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주었던 것. 짜장스님의 저녁 공양 기적도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무질서란 찾아보기 힘든 것. 누가 도와 달라는 말도 하지않았지만 힘껏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신 고마운 분들...그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3 짜장스님,떡국 3천그릇 이렇게 공양했다



길게 이어졌던 도보행진단의 저녁 공양이 시작됐다. 저녁 공양이 끝나는대로 팽목항 문화제가 열리고 도보행진단과 전국에서 모여든 시민들이 문화제에 참여할 것. 이동 공양간 앞으로 엉청난 수의 사람들이 줄지어섰다.




떡국 공양은 마치 콘베어시스템처럼 줄지어 쉴새없이 이어졌다.




이날 짜장스님 보다 연약해 보이는 우신 스님께 어리석은 질문 하나 던졌다가 민망하기도...ㅜ


"스님, 팔 아프지 않으세요?"

"No problem!!...^^"


우신 스님은 부산의 혜일암에서 매주 600분의 어르신을 대접해 온 분이었다. 




떡국을 받아든 시민 참가자들 중에는 아이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가족들이 빙둘러 앉거나 서서 떡국을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좋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들에겐 고통일런지도 모르겠다. 새삼스럽게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떡국을 받아들면 바로 곁에서 김치(선원사에서 직접 농사지어 만든 김장김치)와 봄동 겉절이(진도 현지 조달)를 얹어준다.




공양간의 손길은 무지 바빳다. 빈 그릇을 가져오면 방금 데워낸 쫄깃한 떡국떡을 분량에 맞게 그릇에 담는 것. 그 위에 잘 끓여낸 육수를 끼얹어 떡국을 완성 시키는 것이다.




또 한쪽에서는 떡국떡을 큰가마솥에 넣어 적당하게 삶아내는 공정이 이어지고 있었다. 연습 한 번 없어도 실수하는 법 없이 공양은 끊이지 않는 것. 곁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괜히 신났다.




떡국을 퍼내고 또 퍼담아도 도보행진단과 행사 참여자의 줄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설걷이도 만만치 않았다. 그 많은 빈그릇들은 바닷가로 옮겨져(배수 시설이 없었다) 세 분의 자원봉사자들이 땀을 흘리며 설걷이를 하고 있었다.




공양을 끝마친 분들은 진도 팽목항에 특설된 무대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공양은 아무데서나 공간만 생기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진돗개 백구가 참견을 하기도 했다.




ㅋ 녀석은 도보행진단의 피로를 풀어주는 귀염둥이...^^



이동 공양간의 모습이다. 설걷이가 끝난 빈그릇은 크 바구니에 담겨 옮겨지고 떡국떡은 쉴새없이 퍼날라진다.



이른 아침부터(새벽 5시) 자원봉사에 나선 분들인데 표정은 여전히 밝다.


#4 비상걸린 공양간



공양이 이어지는동안 문제가 생겼다. 당초 저녁 공양자 수는 대략 2000명분이었지만, 줄이 줄어들지 않는 것. 이날 짜장스님의 예측은 자칫 빗나가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2000명분을 준비하면 남을 것이라던 예측이 아슬아슬해져 오는 것. 




떡국떡이 바닥을 보이고 육수 조차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줄을 선 사람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큰가마솥 4개와 공양간은 갑자기 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육수를 더 끓이고 예비용 떡국떡까지 윙바디에서 가져와야 할 상황. 공양을 받아든 사람들은 공양간 사정을 모를 것. 자칫 이대로 공양이 끝나게 되면 줄지어 선 사람들과 서로에게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남은 공양자 수를 헤아리고 예비용 떡국떡과 비교해 짜장스님께 보고해 드렸다.



#5 기적의 떡국 3천그릇 공양




정말 아슬아슬했다. 조금 남거나 조금 모자랄 상황...!




공양간의 겉모습은 넉넉해 보이지만 고무통 속의 파란 바구니의 떡국떡이 전부였다.




초읽기에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 놓인 떡국떡이 전부다.




그런데 세월호 도보행진단을 위한 저녁 공양이 끝나갈 무렵의 여유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해냈다는 자부심일까.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짜장스님이 예비로 가져온 떡국떡까지 모두 공양한 결과 떡국떡은 모두 공양되었는데 대략 3천그릇에 해당하는 놀라운 분량이었다. 만약 예비식재료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팽목항에는 구멍가게 하나만 있었을 뿐, 그 많은 분들의 저녁을 책임질만한 곳이 없었다. 짜장스님과 공양간의 자원봉사자들은 점심 공양 때 남은 밥에 국물을 박박 긁어 늦은 저녁 공양을 마쳤다. 참 신기한 일이다.




좋은 일에는 좋은 징조가 따르는 법일까...?




세월호 도보행진단이 19박 20일 동안 안산에서부터 진도 팽목항까지 450km를 걸어오면서 낙오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전한다. 도보행진이 이어지는 곳마다 시민들의 성원이 있었고, 무엇보다 끝까지 함께해준 시민 참가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 곁에서 자원봉사로 수고한 참 고마운 손길들. 하늘의 기적은 이런 데서 일어나는 게 아닐까.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실종자와 세월호의 진실 또한 하늘의 도움이 있기를 천지신명께 기도드린다.




세월호 도보행진단과 행사참가자 3,000명을 공양한 후 남은 떡국떡이 가마솥 바닥에 달라붙어 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기적의 떡국떡이다. 



내가 꿈꾸는 그곳의Photo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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