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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스님

세월호,짓무른 발바닥의 가슴 찡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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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했던 2박 3일간의 진도 여행
-짓무른 발바닥의 가슴 찡한 이야기-




"당신의 고통을 이기게 해 준 힘은 무엇일까...!"


지난 14일, 오후, 19박 20일간의 긴여정으로 이어진 세월호 도보행진 마지막 날 '서진도농협하나로마트' 앞에서 한 여성이 신발을 벗고 발을 말리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보행진단의 사정을 크게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19박 20일을 걷고 또 걷는 힘이 대단하게만 여겼지, 발바닥이 짓물렀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그런데 남원의 선원사 주지 짜장스님(운천스님)으로부터 점심 공양을 받은 직후 잠시 쉬는 동안, 한 시민 참가자의 양말에 배어난 짓무른 발바닥을 보는 순간 가슴 한편이 찡해져 오는 것이다. 







그녀는 천호선 정의당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필자('나'라고 한다)의 생각과 달리 활짝 웃으며 카메라 앞에 발을 들어 보였다. 나 뿐만 아니라 등산을 좋아하거나 트래킹 등 걷기를 즐겨하는 분들은 잘 아시는 일이지만,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짓무르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벗겨진 두꺼운 피부 아래로 드러난 생살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쓰라린 고통을 안겨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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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했던 2박 3일간의 진도 여행 10편

-짓무른 발바닥의 가슴 찡한 이야기-



19박 20일동안 안산에서 진도까지 450km 달하는 먼 길을 걸어왔지만 아직 진도 팽목항까지는 수 십 킬로미터를 더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웬만하면 중도에 포기를 할만도 했지만,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도보행진단은 팽목항까지 걷고 또 걸었다. 도보행진단이 팽목항에 들어서는 그 감동의 물결을  잠시 남겨놓고 도보행진단에 깃든 가슴 찡했던 비하인드 스토리 일부를 챙겨보고 있는 것이다. 




* 도보행진단에 참가한 또 다른 여성 한 분이 짜장스님의 점심 공양 직후 발바닥의 물집을 제거하고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 이 분은 "도보행진 하룻만에 물집이 잡혔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누군가 '고통은 나누면 적어지고 행복은 나누면 배가된다'고 했던가. 주지하다시피 '세월호 인양촉구를 위한' 도보행진단의 구성은 세월호 실종자.유가족 및 생존자 가족과 시민 참가자로 구성돼 있었다. 시민참가자들은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참가하신 분들로 세월호 유가족 등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분들은 고통을 분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살아오면서 이웃의 고통이나 슬픔을 나누는 분들을 수 없이 목격해 왔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이런 분들 때문에 세월호 유가족 등 도보행진단이 19박 20일을 견디게 해 준 힘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분들은 19박 20일동안 걷고 또 걸으며, (세월호 참사 이후)여태까지 흘렸던 눈물보다 더 많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평범한 시민들이 서로 돕고 격려하며 한 길을 걸으면서 동질감을 회복하며 당신의 처지를 200% 이해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안산에서부터 진도까지 19박 20일을 걷는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의 무릎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도 팽목항까지 거침없이 걸었던 힘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오렌지혁명 떠올린 도보행진단의 투혼 


위대한 국가에는 위대한 민중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면서 '오렌지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무엇인지 외신이 전한 영상을 보면서 깨닫게 됐다. 영상속에서 시민들은 나무 방패에 의지한 채 중화기로 무장한 정부군에 저항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나 될법한가. 칼이나 창도 아닌 총알 앞에서 나무로 만든 방패를 들고 진격을 하다니...! 


무모하기 이를 데 없고 어리석기 짝이없었다. 시민들은 총알받이로 나선 것.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던 정부군 혹은 공권력이 시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 인터넷을 통해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른다. 자유와 민주를 향한 위대한 민중들의 희생으로 국민을 봉으로 알고있던 위정자를 혼쭐내 준 것.





"오렌지 혁명은 2004년 11월-12월에 발생한 우크라이나에서 빅토르 유셴코의 지지자들에 의한 일종의 정치적 시민저항이다. 이 혁명은 빅토르 유센코의 지지자들이 조직하고 추진했으며,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정치적 반대자들이 합세했다. 오렌지 혁명은 중앙선거 관리 위원회가 예비 결과에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승리한 것으로 발표하면서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최고 재판소는 유권자들의 투표와 예비 집계 과정 중에 이러한 위반사실을 확인하고 중앙선거 관리 위원회의 선거 결과에 대한 발표를 취소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차(결선)투표를 다시 거행하도록 명령했다. 이 명령으로 시위대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최고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도록 저지했으며, 최고 재판소의 결정을 근거로 대통령 선거 결선 재투표 진행을 성사시켰다. 


재투표 결과 승리한 것은 빅토르 유센코이다. 이 저항은 서부와 중부 지역을 기반으로 했으며, 당시 집권 여당의 후보자(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의 동부와 남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서방 각국의 여론은 우크라이나 야당(빅토르 유센코)의 편이였다. 일련의 유럽 국가의 국가정치지도자들이 대립하고 있는 양측의 협상 중재자로 나섰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C%98%A4%EB%A0%8C%EC%A7%80_%ED%98%81%EB%AA%85>





도보행진단 최연소 참가자, 왜 그랬을까


세월호 도보행진단을 오렌지혁명에 비교할 바는 못 된다. 다만, 세월호 참극 이후 지난해부터 금년까지 이어진 정부와 정치판의 모습을 보면, 19박 20일간의 도보행진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 단박에 알게 된다. 정부는 물론 여당과 야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며 해를 넘긴 것. 세월호 참극의 원인과 진실은 여전히 진도 앞 바다에 수장돼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도보행진단이 진도에서 팽목항으로 떠나던 날 두고두고 잊지못할 장면과 조우했다. 





아직 앳된 표정의 귀여운 녀석은 아빠가 이끄는 수레 속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진도군청 앞 철마광장을 나서고 있었던 것. 사람들은 별의별 교육을 통해 인간의 삶을 기준과 질 등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문학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 단편들은 역사를 더하면 더할수록 인간의 위상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 그런데 우리 사회 한편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시민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도보행진단의 최연소 참가자로부터 발현된 것. 19박 20일의 도보행진은 (나의 판단에 따르면) 살아 숨 쉬는 산 교육장이었다.




이러한 인식들이 세월호 도보행진단의 행렬을 무한 늘리게 된 것이랄까. 경기도 양평에서는 뜻 있는 가족들이 세월호 참극을 잊지않기 위해 모임(Remember 0416)을 만들고 도보행진단에 참가했다. 전혀 얼굴을 모르던 분들이 세월호 참극을 통해 이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는 지...이 땅에는 이웃을 삶의 방편 혹은 권력(정치)의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이웃이 진정한 삶의 동반자 내지 반려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는 흐뭇한 풍경을 목격한 것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19박 20일간 이어진 세월호 도보행진단의 가슴 찡했던 이야기는 계속 된다.



내가 꿈꾸는 그곳의Photo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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