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잃은 어미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지난 13일 오후 2시 40분경, 세월호 안산 분향소에서 출발한 후 진도 팽목항에 도착해 방파제 오르자, 맨 먼저 눈에 띈 풍경이 '천 개의 타일로 만든 기억의 벽'이었다. 천 개의 타일은 어린이 문학인들,한국작가회의,세월호가족대표가 주관해 2014년 11월 15일부터 2015년 4월 16일까지 목표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천 개의 타일은 하나씩 방파제에 부착되는 공정을 거치고 있었는 데, 길게 늘어뜨린 타일 속에서 어미의 애끊는 심정을 담은 "아이들아 아이들아 미안해 미안해요."라는 슬픈 문구 하나가 목격됐다.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천 개의 타일에 새겨진 그림과 글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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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했던 2박 3일간의 진도 여행 9편
-천 개의 타일로 만든 기억의 벽-
참 희한한 일이었다. 서울에서 세월호 안산 분향소까지 갈 때까지만 해도 세월호 도보행진단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얼마나 될까 싶었다. 이미 해를 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산 분향소에 들르는 순간부터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하면서 도보행진단 취재 끝까지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바쁘게 살면서 잠시 잊고 살아온 세월호 참극이 다시금 되살아 난 것.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2박 3일동안 겉으로 혹은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 지 모른다.
필자('나'라고 한다)가 평생 이렇게 슬퍼한 적도 몇 번 안 된다. 천하를 다 줘도 못 바꿀 것 같은 친구의 죽음 이후 부모님과 조모님이 돌아가실 때 식음을 전폐하고 펑펑 운 기억은 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옵서 서거하실 때 봉하마을에서 몇날 몇일을 울었다. 사내로 태어나 울었던 기억이 대략 이러하다. 그리고 전혀 뜻밖의 사건 하나 때문에 2박 3일이 어떻게 지나갔는 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들. 그 가운데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들이었다.
지난 13일 오후 2시 40분경, 내 앞에는 천 개의 타일에 깃든 어미의 한(恨)과 시민들의 마음이 풍경소리와 바람에 씻겨나가고 있었다. 가만히 쪼구리고 앉아 타일을 수 놓은 글과 그림을 보고 있자니 괜히 울컥해진다. 착한 사람들이 오롯이 내려놓은 마음을 헤아리고 있자니 가슴 한켠이 저려오는 것.
"416...
그리고 엄마는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헤엄칠 줄도 모릅니다.
지느러미도 없습니다.
다만 귓속에서 가슴에서
끊임없이 물살이 입니다."
진도 팽목항 방파제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 기억의 벽을 만들고 있는 기억의 다수는 '세월호 참극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모습들. 그렇다면 지난 2014년 4월 16일에 우리를 아프게 한 기억들은 어떠했는 지 시간을 돌려봤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세월호는 좌현으로 서서히, 그러다가 급격히 기운다. 아직 상황을 잘 모르는 학생들은 기울어지는 배에서 웃고 장난을 친다. 배가 점점 기울고 학생들은 당황한다. 구조를 기다리며 친구,부모님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자기들의 상황을 영상으로 찍기도 한다.
"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나는 꿈이 있는데,나는 살고 싶은 데. 나 울 거 같은데. 나 무섭다고...욕도 나오는데 어른들한테 보여줄거라 욕도 못하고 진짜 무섭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데..."
-故김동철 학생이 동영상에 남긴 마지막 말
그후...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 등 세월호에 승선한 승객들은 하늘로 수학여행을 떠나거나 불귀의 객이 됐다. 그 시각 대한민국은 동시에 실종된 모습이었다. 300여 명의 자국민이 수장 직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않았다. 이랬다.
지난해 4월 16일 오전 10시 17분, 세월호에서 학생의 마지막 문자가 발송된다. "기다리래"
10시 25분, 세월호는 선수만 남기고 완전히 침몰한다.
최초 신고로부터 90분 동안, 해경은 배 안의 사람을 한 사람도 구하지 못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MBC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11시 1분에 보낸 [속보]에서 MBC는 이렇게 말했다.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또 정부는 어떻고...오후 5시 박근혜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구조가 힘듭니까"
팽목항 방파제 위를 넘나드는 바람은 풍경소리를 통해 아이들의 편지를 보내왔다. 진도 앞 바다에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어김없이 울리는 풍경소리...그 소리를 듣는 어미는 가슴이 미어진다. 어미의 마음은 이랬지...!
"2014.4.16
이날의 하루 전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희들을 꼭안고
절대로 아무데도
보내지 않을거야
정말 미안해..."
-엄마의 노란손수건
어떤 문학인의 거울에 비친 엄마의 마음은 물고기가 됐다. 나라와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방관으로 일관한 그 시각, 엄마는 물 속으로 잠수해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아이들만 바라보고 산 엄마는 헤엄도 칠 줄 몰랐고, 지느러미도 없었다. 그러나 자고나면 엄마의 귓속에서 가슴에서 끊임없이 물살이 인다고 한다. 해를 바꾸었지만 여전한 엄마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들이 천 개의 타일로 만든 기억의 벽으로 팽목항 방파제를 수 놓고 있었던 것.
진도 팽목항 방파제 한켠을 수 놓고 있는 '기억의 벽'은, 조국 광복이후 70년동안 우리 이웃과 민족의 슬픔이 그대로 박재된 현장이었다.
"아이들아 아이들아 미안해 미안해요."
다음 날, 세월호 도보행진단은 19박 20일의 도보행진 마지막 날 하늘에 제를 올리며 이렇게 서원했다.
"(상략)지난 1월 26일, 안산에서 출발한 가족행진단이, 마침내 오늘, 이곳 철마광장에 모여, 팽목항으로 가는 마지막 행진을 시작하려 합니다. 하늘이시여, 실로 가슴 아픔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꿈을 안고 세월호를 탓던 일가족, 수학여행이란 설렘을 안고 배에 올랐던 꿈 많은 학생들, 그 학생들을 인솔했던 선생님들, 화물을 싣고 떠났던 노동자들, 배에서 일했던 선원들, 일반 시민들...295명이나 되는 귀한 사람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날, 천 개의 타일로 '기억의 벽'을 만들던 한 진도 군민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얼척없지. 다른 말 하것어..!"
얼척없다는 말은 '어이없다'는 뜻. 2014년 4월 16일 기억의 벽속엔 어이없는 일로 가득 채워져 "아이들아 아이들아 미안해 미안해요."라며 어미의 애간장을 다 녹이고 있었다. 진도 팽목항으로 여행을 떠나시거들랑 꼭 한 번 당신의 기억력을 되짚어 보시기 바란다. 어미가 아니라도 인간의 내면 깊숙히 흐르는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삶의 절호의 기회가 될 것.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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