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의 엘도라도?...
감 잡히시는가?..."
바구니에 담긴 황금빛 과일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양만 봐도 정체가 무엇인지 다 안다. 감이다. 그냥 감이나 땡감이 아니라 껍질을 쓱싹 닦고 얇게 깍아 한 입 베어물면, 단물이 줄줄 흐르고 뒷맛이 꿀맛같이 당기는 기막힌 단감이다. 사과나 귤이나 배나 복숭아 등 흔한 과일만 익히 들어온 사람들은 도대체 그 맛을 모른다. 그러나 창원단감을 한 번이라도 맛 본 사람들이라면 해마다 10월이 기다려진다. 입에 넣으면 아삭아삭 달짝지근한 식감에 홀릭한 사람들.
필자도 처음엔 긴가민가 했다. 감이면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지난해 창원단감 농장을 방문한 이후부터 단감에 대한 인식이 확 달라졌다. 황금빛 단감을 입에 무는 순간부터 우리땅에서 나는 최고의 과일에 대한 찬사가 절로 쏟아지는 것.16세기경 에스파냐 사람들이 남미의 아마존 강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상상했던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El Dorado)는 그저 상상의 나라였다. 그러나 과일의 엘도라도는 현존하는 땅이었다. <필자주>
창원단감의 현주소 보여준 칠레 산티아고 중앙시장
지난 주말(26일) 창원시 북면 월계리의 김종문(56세) 씨의 단감 과수원(문의 010-3566-8313)을 방문 취재하면서부터, 단감 산지가 황금빛 엘도라도로 다가왔다. 김 씨의 과수원에서 경남단감의 감춰진 이야기 등을 다시 듣게 되면서, 경남 혹은 창원지역이 단감의 엘도라도라는 생각을 굳힌 것. 그곳은 지구별 최고의 단감 산지였다.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늘어놓은 창원단감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먼저 위 사진을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 한 여성이 자전거를 이끌고 과일가게를 둘러보고 있는 이곳은, 국토의 길이가 남북으로 4,200km에 달하는 길쭉한 나라이자, 세계 최고의 청정지역 '파타고니아'를 품고 있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중앙시장(Vega Central)이다. 시장의 풍경은 어느나라든 비슷하지만 내가 만나본 산티아고의 베가 시장은 특별했다.
없는 게 없는 산티아고 중앙시장
베가시장 가득 넘쳐나는 과일과 채소와 향신료 등은 원색으로 빛나고 당도가 뛰어난 한편, 같은 종의 과일이나 채소라 할지라도 생김새와 크기가 유별났다. 칠레의 과일과 채소는 맛과 향이 강하며 어떤 채소는 우리 것과 비교해 보면 너무 커 이상할 정도였다. 가격은 상대적으로 매우 착했던 곳. 우리 내외는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투어를 끝마치고, 산티아고에 머물면서 베가 중앙시장을 거의 매일같이 들락거리게 됐다.
그곳에서 신선한 과일과 치즈와 채소는 물론 육류 등을 구입해 요리를 해 먹으며 긴 여행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곤 한 것이다. 한마디로 베가시장은 이방인의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 '마법의 시장' 같은 곳이었다. 서울의 가락시장에 비하면 규모는 보잘 것(?) 없으나, 베가시장에 출하된 각종 과일과 채소와 향신료 등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진열해 놓은 듯한 풍성한 풍경들. 산티아고 중앙시장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시장'이었다. 그런데 이 마법의 시장에서 볼 수 없는 '없는 게 없는'게 발견된 것이다.
눈을 씻어야 발견되는 홍시
우리나라와 FTA를 맺고 있는 칠레는 포도를 비롯해 온갖 농산물이 년중 철철 넘치는 곳. 그러나 이곳에서 '눈을 씻어야' 겨우 볼 수 있는 과일이 단감이었다. 어느날 이 시장에서 동양인(주로 한국인과 중국,일본인 이주민)들을 겨냥한 상품이 과일 진열대 한쪽 구석에서 발견된 것이다. 반가웠다. 감을 발견하는 순간 고국에 대한 향수가 느껴질 만큼 감은 '고향의 상징'같은 존재였다.
오래전 고향집 뒷켠에는 감나무 한 두 그루에 빠알간 홍시(紅柹)가 대롱대롱 매달려 가을의 정취를 더해 주던 풍경들. 감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이 단박에 오버랩 되는 것. 감은 고향의 또다른 대명사 같은 존재였다. 그런 감이 지구반대편 남반구의 어느 시장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러나 베가 시장에서 발견된 단감은 작은상자 몇 개에 담겨져 있는 홍시였고,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 품종이었다. 베가 중앙시장에 출하된 소량의 홍시 등 단감은 이곳에서 결코 흔치않은 과일이자 생산지로 부적절 했던 것일까.
*안데스(산맥) 자락의 대저택들이 자리잡은 골짜기의 풍경. 이곳에서 감나무를 발견했다.
농산물의 천국에서 재배 못하는 단감
주지하다시피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안데스 산맥을 넘으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아르헨티나의 멘도사 지역 주변은, 눈에 띄는 게 포도 과수원이자 와이너리 풍경이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멘도사 지역은, 한 때 전쟁 중에 띠에르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를 내 줄 정도로 침탈자들이 탐을 낸 포도의 명산지였다. 안데스 산맥에서 년중 넘쳐 흐르는 빙하수와 일교차가 20도를 육박하는 곳. 양질의 포도생산에 적합했던 그야말로 황금의 땅.
이른 아침이면 한겨울 같은 날씨지만 낮이면 한여름같이 따가운 햇볕이 내리 쬐는 곳. 그곳에서 익어가는 포도는 최고의 당도를 자랑하며 (유럽에서 가져온 포도 품종은)질좋은 와인을 생산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기후는 포도 뿐만 아니라 모든 농작물에도 예외없이 적용돼, 산티아고 근교의 농장에서는 질 좋은 농산물이 년중 철철 넘치고 있었던 것.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쉽게 맛 볼 수 없는 과일이 단감이었던 것. 그렇다면 농산물의 천국에서 조차 재배가 불가능 하거나, 재배를 해도 제 맛이 나지않는 '단감의 엘도라도'는 어떤 기후 조건을 갖춘 곳일까.
*안데스(산맥) 자락의 대저택 입구에서 발견된 감나무는 향수를 부추긴 관상수였다.
단감의 원산지는 중국 북부지방
단감의 원산지는 중국 북부지방이며 한국과 중국.일본 등지에서 재배되는 과일이다. 단감은 비교적 내한성(耐寒性,추위를 견뎌 내는 성질)이 약하므로 단감의 수확시기인 9~10월 평균기온이 21~23도 정도가 생육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단감 재배는 이같은 여건을 고루 갖추어야 하는 등 재배가 다소 까다로웠다. 농산물의 천국 칠레에서 조차 기후 조건이나 토양 등에 따라서 양질의 단감 재배는 부적합 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
지구반대편 남반구의 날씨는 극동아시아의 한.중.일과 달리, 사계가 뚜렷하지 않고 우기와 건기로 나뉜 날씨가 양질의 단감 재배 토양에 부적절 했던 것일까. 농협중앙회 경남산지육성팀과 단감경남협의회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단감의 80%를 생산하는 경남지역, 특히 창원지역의 단감은 품질이 매우 뛰어나 동남아는 물론 북미대륙으로 수출을 하고 있는 효자 상품이었다. 그렇다면 이 지역의 생태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단감의 엘도라도가 갖추어야 하는 지형적 조건
안개로 자욱한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듯한 이곳은 창원의 동판저수지로, 김종문 씨 농가를 방문한 날 아침나절의 풍경이다. 단감과수원 주변에는 동판저수지와 주남저수지 등 낙동강 수계의 습지가 펼쳐진 곳. 창원단감을 세계적인 품종으로 만들어 준 천혜의 자연환경은 그런 곳이었다. 이날 아침 동판저수지를 둘러볼동안 옷깃을 여미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썰렁한 온도였다.
*필자가 취재한 단감 과수원은 창원시 북면 월계리 소재였다. 주변은 온통 낙동강 수계의 습지로 둘러싸인 곳.
그러나 김 씨의 단감 과수원을 방문할 때쯤에는, 늦가을 임에도 불구하고 한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더운 날씨. 습지가 기한제 역할을 하며 온도를 조정하며, 일교차를 큰 폭으로 벌리거나 단감 생육에 적당한 온도를 유지시켜 준 때문일까. 주변의 나지막한 산과 벌판은 쏟아지는 볕 전부를 고루 쬘 수 있는 듯, 이곳의 산 전체는 황금빛 단감이 익어가는 풍경으로 가득했다.
경남지역 단감의 품질이 월등한 이유는 일교차가 큰 기후 조건(당도 결정)과 고른 일조량(상품 생산)을 들었으며, 재배기술 등을 손꼽았다. 위 지도에 표기된 창원지역의 단감 산지를 보면 낙동강 수계의 습지로 둘러싸인 곳. 산은 나지막하고 들판은 자연적인 퇴적물을 실어 나른 곳. 흔히 볼 수 없는 지리적 조건을 갖춘 단감 산지는 이런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양질의 단감을 생산하기 위한 조건으로 토양과 기후조건만 좋으면 되는 것일까.
단감의 맛을 결정하는 건 단감 수종의 나이
창원시 북면 월계리 소재 김종문 씨의 단감 과수원을 취재차 방문하면서 눈에 띈 감나무 하나가 발견됐다. 우리가 흔히 봐 왔던 고향집 뒷뜰에 심겨진 감나무는 주로 이런 형태로, 늦가을이면 기다란 장대로 까치밥만 남기고 수확을 했던 것. 그러나 이곳에서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풍경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갱상도 표현으로 '단감이 천지 빼까리'인 단감 과수원에서 홍시는 푸대접을 받고 있는 곳.
지구반대편 칠레의 베가시장에서 만난 단감이나 안데스 자락 혹은 산티아고 시내에서 관상수로 심겨진 감나무가 향수를 불러일으킬 망정 상품 가치는 없었던 것 처럼, 단감의 맛을 결정하는 건 단감 수종의 나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전역에 심겨진 감나무의 나이는 사람으로치면 갱년기에 접어들었다고나 할까. 단감경남협의회(회장 김순재)에 따르면 단감나무는 다른 유실수에 비해 수확시기가 늦었다.
*필자가 방문한 창원시 북면 월계리의 한 단감과수원 풍경. 구름 한 점 없는 10월 말 쾌청한 날씨에, 나지막한 동산 빼곡히 황금빛 단감이 주저리주저리 여물어 가는 곳.
경남 창원단감의 젊음이 다산의 비결
예컨데 사과나무가 5년만에 수확이 시작된다면 단감나무의 본격적인 수확시기는 15년이 경과해야 한다는 것. 경남 창원지역의 단감나무는 일찌감치 세대교체에 성공했던 것이다. 따라서 풍부한 일조량 및 큰 일교차와 비옥한 토양과 젊은 단감나무가 하모니를 이루며 세계적 단감산지로 거듭나게 된 것. 타 지역과 차별화된 이 지역만의 자랑거리가 풍성한 수확을 하게 만든 건 젊은 단감나무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창원단감은 생산량 대비 점유비율이 타 지역 보다 월등했다. 2013년 현재 경남지역 단감생산량은 전국 대비 64%였다. 아울러 2014년 현재는 (태풍피해가 없어)작황호조로 전년 보다 7% 증가된 172천톤이 생산될 것으로 예상해, 전국 생산량 대비 6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가 몰랐던 경남 단감의 감추어진 이야기는 이 밖에도 수두룩 했다.
*단감 수확에 한창인 월계리 김종문 씨 단감 과수원. 사진은 김종문 씨의 누님이 일손을 거들고 있는 모습이다.
수도권과 단감 원산지를 장악하기 시작한 창원단감
수도권에 공급되는 단감의 80%가 경남단감이 차지하는 한편, 동남아로 수출되는 전체 물량의 52%를 점유하고 있고, 싱가포르에서는 13%를 점유하고 있다는 것. 단감이 열대과일 천국의 동남아에서 선호되는 건 단감의 아삭한 식감 때문. 열대과일 특유의 물컹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 특수층이 경남산 단감을 선호하는 데 주로 작은사이즈(small size)를 찾는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대략 3등품에 속하는 작은 단감이 동남아로 진출하면 최상품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게 이채롭다.
뿐만 아니었다. 김순재 회장에 따르면 1억명이 살고 있는 중국의 상해지역의 100만 명의 백만장자들까지, 경남지역 단감 맛에 홀라당 반해 수출길이 열릴 예정이라니, 경남 창원지역의 단감은 원산지 중국을 제치고 명실공히 단감의 엘도라도를 꽤 차고 있었던 것. 그 현장에서 이 지역 대표적 단감 농가로 자리잡은 김종문 씨의 단감과수원을 찾아 단감 엘도라도의 속살을 파헤쳐 봤다. 경남 창원단감 <과일의 엘도라도를 찾아가다> 2부에서는 리얼토크와 함께 단감 엘도라도에 얽힌 달콤한 맛을 찾아가 본다. (coming soon...!) 기대해도 좋은 귀하고 참 알뜰한 웰빙 생활정보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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