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능행차에 새겨진 오방색
정조대왕능행차 행렬이 장안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방색 가운데 황색의 의미를 떠올려 본 것이다. 오방색은 몽골로이드가 생활 가운데 주로 사용해 온 색(色)이지만, 몽골로이드의 선조로 알려진 아프리카의 종족들이 널리 애용한 색이며 세계인들이 이 색깔로 벗어날 수 없는 '태양의 정체성(빛)'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독함이 어디서 비롯됐는 지 알 수만 있다면 치유가 가능할 텐데, 우리는 그 방법을 몰라 고아처럼 방황하고 있었던 것. 생떽쥐베리가 힌트를 준 것이다. 별을 아름답게 보지 못하거나 볼 수 없게 만든 커튼 하나가 '마음의 창'을 가리고 있었던 것. 그 지긋지긋한 어둠의 커튼을 걷어낸 건 수원화성 서장대에 걸린 황금빛 깃발이었다. 효심 지극한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에 납시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능행차 행렬이 지나는 연도에 쪼구려 앉아 학수고대 하고 있는 건, 해마다 때 맞추어 행하는 즐거운 이벤트가 아니었다. 설령 그분들이 '열심히 준비한 이벤트를 즐기러 나왔다'고 말한다고 해도,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기꺼이 짬을 내어 손뼉을 치며 열광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들 마음 속에 언제부터인가 사라진 구심점을 되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정조대왕능행차 행렬의 '선두군사(보병)'가
장안문을 나서 행궁으로 나설 때쯤,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역사적인 장면 앞에서 숨죽이며 셔터를 눌러댓다.
대왕의 행차에 따라나선 정예군사들이
화성행궁에 입장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차에 합세한 병사들 때문에 열광한 건 아니었다.
(물론 능행차 연시에 참여한 분들의 수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취재진을 제외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장안문 안에서도
출입이 허가된 카메라맨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선두 행렬이 지나가면 곧 정조대왕이 용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왕의 모습을 직접 알현하고 싶은 것이다.
왕은 금방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관련 포스트(수원화성문화제,왕을 기다리는 사람들)에서 언급한 바
왕은 선두에 위치해 있지만 장안문 앞에서 하마 한 후
수원유수(염태영 수원시장) 등의 영접으로 행차가 지체되고 있는 것.
선두행렬이 장안문을 나설 때쯤
장안문 앞에서 조선조 22대 정조대왕을 알현할 수 있다.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내 앞을 지나가고 있는 능행차 행렬은 서기 2014년 10월 9일에 행해진 능행차 연시이며,
출연자들은 대부분 시민들과 학생들로 구성됐지만,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 느린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는 다시금 생떽쥐베리가 말한 '아름다운 별'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조대왕 납시오...!
누구나 하나쯤 가슴 속에 품고 있을 별 하나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단백질의 근원'이 아니라,
자기를 지탱해 주는 구심점이었다.
작게는 형제이며, 가족이며,
좀 더 나아가면 부모이며,
연인이며,
동지이며,
조직이며,
사회이며,
특정 국가에 속한 내가...
이들로부터 소외 되거나 멀어지면, 본래의 자리를 되찾거나 돌아가고 싶은 것.
마치 지구별에 사는 인간이 손에 잡힐 듯 허공에 둥실 매달린 달을 그리워 하는 것 같은 이치랄까.
내 앞에 납신 왕은 폭정을 일삼는 폭군이 아니었다.
조삼모사를 통해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 위선자가 아니었다.
(우리가 말하는 '닭대가리'처럼)
방금 전에 한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자기가 한 말 조차 기억해 내지 못하는 일은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자기를 태어나게 해 준 부모의 고향이 노략질의 땅 아메리카 대륙이나,
시도 때도 없이 화산과 지진이 창궐하는 섬나라로 착각하는 등
'짝퉁 정체성'을 가진 정치 협잡꾼들은 비교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조선조를 통털어 가장 반듯한 정조(正朝)대왕이었다.
당신께서 친히 수원화성에 납신 것이다.
대왕께옵서 친히 보잘 것 없는 한 백성 앞에서 포즈를 취해준 곳은 장안문 앞이었다.
장안문 앞에서 이 모습 지켜보고 있는 백성들... 한 카메라맨이 황급히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 포착된 이곳은,
정조대왕이 생전에 능행차를 통해13차례나 드나들던 유서깊은 곳이다.
조선조 500여 년을 통해 단 13차례 왕과 백성들이 행복을 만끽했던 '소통의 문'이랄까.
권력 본래의 모습
화성행궁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은 동족상잔이 빚어진 6.25전쟁 당시 반파된 이후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해 왔다. 아울러 수원화성문화제가 51회를 맞이할 때까지 12번 째 정조대왕 역(役)을 배출해 오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오고 있었던 것. 나는 이 축제를 참관하면서부터 줄곧 권력의 본래 모습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아이를 둔 하수의 부모는 자기의 안위만을 위해 아이를 통제하며 '하지말 것'을 강요한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그렇지만 고수의 할아버지께선 아이와 가문 등의 비젼을 위해 '하라'고 내버려 둔다.
수원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를 통해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 한 게 무엇인지 단박에 오버랩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가슴 속에서 늘 빛나던 별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건 아닐까?..."
* 제51회 수원화성문화제관련 포스트 ➲ 수원화성문화제,왕을 기다리는 사람들 / 정조대왕능행차의 그리운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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