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 나와 우리덜

독재자의 딸과 게티즈버그의 연설


Daum 블로거뉴스
 

독재자의 딸과 게티즈버그의 연설
-명연설 뒤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

 


노예(제도)로부터 벗어나는 단 하나의 비결...


최근 한국사회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국정원의 댓글사건 등 국가기관이 개입한 부정선거 후유증은, 향후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심각하다. 부정선거 윤곽의 실체가 서서히 본 모습을 드러내면서 나라를 어지럽히고 힘들게 한 당사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세력인지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들이자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될 사람들. 그러니까 국민들은 시방 이들의 노예나 다름없는 신분으로 전락한 채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

하지만 노예계급과 다름없는 당사자들은 자기가 처한 현재의 좌표나 신분 조차 알려고 하지않는다. 먹고 살기 바쁘고 정치판이 보여준 혐오감 이상의 괴리감이 이들로부터 적당한 스탠스를 벌여놓고 있는 것. 그렇다고 사정이 달라질까. 선거 때만 되면 또다시 종북 좌빨 논쟁과 등식 등을 통해 정적을 물리치고자 할 것.

그럼에도 이같이 해묵은 낡은 수법이 계속해 먹혀들지 않았다는 게 지난 년말에 치루어진 대선 결과이자, 우리 사회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부정선거 후유증. 이들 부정선거 당사자들은 스스로 위기를 느껴 국가기관을 선거에 이용할 카드를 만지작 거렸을 것.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포함된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자행된 4대강 사업은 무려 22조원의 국고를 강바닥에 쏟아부은 초유의 사기극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간 돈이자, 국민들이 열심히 뼈빠지게 피땀흘려 일해 뼛속까지 친일.친미주의자들의 잇속을 챙겨준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들이 노예같은 호구가 돼 준 덕분에(?) 이 돈들은 재벌과 특정 세력들의 배만 불려준 것이다. 그 결과 대국민 사기극을 숨겨보기 위한 조치가 국가기관이 개입한 부정선거였다면, 관련 당사자들은 '아니다'라며 손사레를 칠까.

최근 언론 등지에서 보도되고 있는 이들의 커넥션을 살펴보면 경찰-감사원-검찰-국정원-국방부-법무부-청와대 등으로 나라 전체를 통째로 말아먹고 있는 게 권력기관들인 것이다. 이를 테면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이 되어야 할 국가기관이 갑이 되어 을로 변한 국민을 착취하는 현대판 노예제도라고나 할까. 헌법이 무색하게 권력은 '댓글로부터 나온다'는 차마 웃지못할 사기극이 백주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사정이 이러한 가운데 이틀 전 노예제도가 무엇인지 되새겨 줄 뉴스 한 줄이 떳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링컨으로부터 행해진 '게티즈버그의 연설'이 이루어진 '게티즈버그 150주년 기념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남북전쟁 중 게티즈버그의 전투는 남군과 북군을 통털어 수 많은 전사자를 낸 곳이다.
1863년 8월까지 남북전쟁 사망자는 27만 명에 달했다.

1863년 5월 1일에서 3일까지 17만 여 명의 미합중국 병사가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부딪혔다. 이 전투는 당시 인구가 2,400명 가량 밖에 안되었던 게티스버그 마을 자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장에는 포토맥군과 남부 병사, 북버지니아군를 합해 7,500명 이상의 병사와 5,000마리 가량의 말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으며, 5월의 여름철 들판에 나뒹구는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였다고 전한다.




누구인가 이들 시체를 처리해야 할 텐데 장례절차 등을 논의하는 가운데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게티즈버그 장례식에서 게티즈버그 연설이 행해진 것이며, 훗날 그 연설은 명연설로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링컨을 향해 노예(제도)를 해방시킨 위대한 인물로 기억해 내고 있는 것. 그러나 
명연설 뒤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을 알고나면 얼마나 허탈해 할까. 사가들의 분분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300 단어가 채 안되는 연설문 내용은 이랬다.
 

  게티즈버그 연설문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We are met on a great battle-field of that war. We have com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that nation might live.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But, in a larger sense, we can not dedicate, we can not consecrate, we can not hallow this ground.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여든 하고도 일곱해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속에 잉태된 나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에 바쳐진 새 나라를 이 대륙에 낳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나라, 혹은 그같이 태어나고 그같은 믿음을 가진 나라들이 오래도록 버틸수가 있는가 시험받는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쟁의 거대한 격전지가 되었던 싸움터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그 땅의 일부를, 그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이 곳에서 생명을 바친 이들에게 마지막 안식처로서 바치고자 모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해 줘야 마땅하고 옳은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이 땅을 헌정하거나… 봉헌 하거나… 신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싸운 죽은, 혹은 살아남은 용사들이 이미 이 땅을 신성하게 하였으며, 우리의 미약한 힘으로는 더 이상 보탤 수도, 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세상은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용사들이 이곳에서 한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살아남은 이에게 남겨진 일은 오히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오래도록 고결하게 추진해온, 끝나지 않은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신의 가호 아래, 이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그리고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죽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번역 위키백과>

우리가 기억해 내고 있는 게티즈버그의 연설문은 대체로 굵은 줄로 표시해 둔 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링컨의 명연설문 속을 잘 살펴보면 경악할만한 '왜곡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연설문 내용 한 줄 속에 링컨은 물론 북미대륙 등지에서 노예를 함부로 다룬 이들과 선조들의 사악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

'
여든 하고도 일곱해 전(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부터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대부분을 살상하고 그들의 땅을 침탈하며 오직 권력만을 위해 강제징집을 통한 남북전쟁까지 불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설문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속에 잉태된 나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에 바쳐진 새 나라를 이 대륙에 낳았습니다.'라며 자기들의 주홍글씨를 연설문 속에서 묻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150년 후 게티즈버거 기념식이 열리고 있는 미국의 현재 정치상황은
'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죽지 않도록 하는 것'과 얼마나 멀어져 있을까. 그 해답은 먼 곳에 있지않았다. 며칠 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의 시정연설에서 버르장머리 하나 못 바꾼채 재연되고 있었던 것. 이랬지.


"새 정부 출범을 전후로 북한은 무력 도발 위협과 개성공단 폐쇄로 긴장을 고조시켰습니다.  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열었지만, 공단정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통행, 통신, 통관의 3통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공단의 실질적인 정상화, 나아가 개성공단의 국제화도 아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정부는 확고한 원칙과 인내심을 바탕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남북 간에 신뢰를 쌓고 올바른 관계개선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북핵문제를 포함해 남북한간에 신뢰가 진전되어 가면, 보다 다양한 경제협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고, 대화와 협력으로 나오길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제안한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해서 부산을 출발해 북한,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관통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평화통일의 길도 열어갈 수 있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주지하다시피 박근혜는 이명박과 함께 한나라당에서 한 몸을 이룬 파트너였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척 삐그덕 거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국가기관이 개입한 부정선거를 참조하면 샴쌍둥이 같은 존재들. 박근혜는 프롬프트를 통해 28분간 연설문을 읽어가는 동안 자기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없는 다양한 커닝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미국에 헌납한 주권(전작권) 때문이었다.

자기들의 음모와 술수에 반대 하거나 목격한 당사자를 내란음모 내지 좌빨 종북 등으로 매도한 결과, 신뢰 프로세스의 당사자인 북한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정치적 이익을 챙겨온 것. 북한이 재래식 무기가 월등하다 해도 자체적으로 무력도발 할 수 없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족인 북한을 이용해 대결구도를 만든 주체는 누구일까...

신뢰는 우격다짐으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이른바 신뢰프로세스는 상대가 신뢰할 만한 제스쳐를 끊임없이 보내야 가능 한 것. 이런 정도는 남태평양에 서식하는 '바우어새(Bowerbird)' 조차 다 아는 사실이다. 바우어새는 장식품을 만들어 암컷을 유혹하는 신비로운 조류다. 다큐를 통해서 본 바우어새의 몸짓은 암컷에게 다가가는 신뢰프로세스에 올인한 감동적인 조류였다.

그러나 같은 조류라 할지라도 닭대가리는 다르다. 바우어새처럼 신뢰를 쌓을 만한 노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 북한을 향한 이중잣대만 봐도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 아니라, 주권을 팔아 혈맹이라는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초라함을 보이고 있는 것. 따라서 박근혜의 시정연설은 사람들로부터 시정잡배들이 할 수 있는 '시장연설'로 평가받는 것이다.

주홍글씨를 덮어두고 행한 게티즈버그 연설은 2분 만에 세상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였지만, 국회에서 28분동안 진행된 시장연설이 뒷담화가 무성한 것이다. 국민을 노예로 여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후폭풍이 아닌가 싶다. 우리 국민들이 비록 생업에 바빠 정치권의 속사정에 대해 관심을 안 두겠지만, 세상에 드러나 있는 부정선거의 확증과 정황 하나 만으로 댓글정부의 앞날은 어두울 전망이다. 섬겨야 할 국민들을 노예로 만든 사악한 정치인들.

그들은 늘 '침탈의 역사'를 탐한다.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죽지 않도록 하는 것...그건 한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허황되고 계산된 말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국가기관을 위한,국가기관에 의한,국가기관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날까지 댓글질을 계속할 것'이라는 게 사악한 사람들의 정부. 이런 사실 등을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않는다면, 노예처럼 열심히 뼈빠지게 피땀흘려 모은 돈과 삶 전부를 국가기관에 내다 바칠 것이란 주장인 것. 세상의 노예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 지기도 하지만, 스스로 노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잘 새겨들으시기 바란다. 나라의 앞날이 깜깜해 보인다. 국가기관이 세워둔 허수아비 같은 독재자의 딸 때문이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Flash] http://tsori.net/attachment/fk050000000005.swf

내가 꿈꾸는 그곳의 Photo 이야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