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 나와 우리덜

박근혜,불통 딜레마 탈출법


Daum 블로거뉴스
 

불통시대 마감 이렇게
-박근혜,불통 딜레마 탈출법-



인과응보의 과정...


김재규의 머리 속에서는 박정희의 눈을 어둡게 만드는 차지철은 물론, 차지철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김재규 자기를 무시하며, 사태파악을 하지 못하는 박정희를 당장이라도 권총으로 쏴 죽여버리고 싶었던 심정이었던 것인 지. 10.26 거사는 차지철의 깐죽거림과 박정희의 판단력이 오락가락하는 등이 (절묘하게)어우러지며 죽음의 시간을 서서히 앞당기고 있었다. 이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절로 돋게 만드는 발언이 박근혜의 애비 박정희와 경호실장 차지철로부터 나왔다. 김재규의 증언이었다.  

"이 말은 밖에 안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각하(박근혜의 애비 박정희) 말씀은 "이제부터 사태가 더 악화되면 내가 직접 쏘라고 명령하겠다."하니까.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이라고 하는 것도 희생을 시켰는 데 우리 대한민국은 100,200만명 희생한다고 문제될 거 있느냐"고 이러한 얘기가 나옵니다. 들으면 소름이 끼칠 그런 이야깁니다."

위 글은 필자의 포스트<
10.26의거, 한국판 킬링필드 막은 김재규의 거사>에 쓰여진 글의 일부이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시버스리갈을 놓고 술을 마시던 박정희와 차지철,김재규 등으로부터 발생한 이른바 <10.26사태>의 주인공 김재규의 증언. 유신독재자 박정희는 부마사태가 확산일로에 다다르자 '발포명령을 하겠다'고 했고, 차지철은 '시민 100만~200만이 희생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의 판단을 꼬드겼다.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에게 총을 겨눈 결정적 이유는 불통
이었다. 총성이 울렸다. 예스맨 차지철과 '남들은 다 Yes라 해도 No를 외친 김재규'의 엇갈린 판단이 낳은 인과응보의 결과. 박정희는 시바스리갈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18년의 유신독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당시 박근혜 나이 27살이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10.26사태 혹은 10.26의거의 모습은 주로 이랬다. 박정희가 김재규와 별 무리없는 소통을 했다면 유신독재는 더 길게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




차지철과 김재규의 불협화음 배경
 

그러나 이같은 사태 배경에는 또다른 인과응보가 도사리고 있었다. 10.26사태는 유신독재에 항거한 부마사태가 촉발된 게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불행을 잉태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유신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에 (큰영애)박근혜가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는 배경이있었다. 그게 요즘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식'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박근혜와 최태민 사이의 혼외자식'설 등에 관련된 내용이다.

"(중략)...지난 2005년 10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0·26 당시 현장에 있던 김계원(89)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김 전 실장은 1979년 10월 26일 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숨져가는 박 전 대통령을 병원으로 옮겼던 인물이다. 인터뷰에서 김 전 실장은 "10·26은 박근혜를 둘러싼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간의 심각한 알력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김 전 실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박 후보는 10·26의 '원인제공자'가 되는 셈이다. 김 전 실장은 인터뷰에서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앙숙관계가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게 이제.... 차지철하고 김재규가 최태민(1994년 사망, 전 육영재단 고문) 때문에 많이 싸웠습니다. 최태민 아시죠? 다른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두 사람(차지철 실장과 김재규 부장)이 싸운 것을 나중에 보면 최태민 때문이다. 차지철이 최태민을 앞세우고 박근혜양을 너무 업고 다니니까. 그러면 김재규가 '그러지 마라. 그러면 안된다' 그러거든? 근혜양은 어머니는 없고 외로운 그런 때인데... 근혜양은 자기가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해야 하는데 주위 사람들이 왜 자꾸 나서서 그러느냐, 이런 소리가 나오니까 이 소리가 최태민을 통해 많이 들어가거든요. 최태민이 근혜양 앞에서 자꾸 알랑거리면서. 그러니까 근혜양을 어렵게 만든 놈이 다 최태민이야! 그래서 저놈을 때려 잡아라, 그래 가지고 박 대통령이 최태민을 데려다 야단친 일이 있죠."  

그의 증언에 따르면 박근혜씨가 최태민 목사와 밀착하면서 이러 저러한 문제가 발생하자 김재규 부장이 박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하고 박 대통령은 최 목사를 불러다 야단을 쳐서 박근혜씨 주변에서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조처를 취했다는 것. 이후 최 목사의 청와대 출입이 금지됐다고 한다. 일단락된 듯했던 최 목사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박근혜씨가 여전히 그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하략)"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95310&CMPT_CD=P0001>



 

 박근혜와 최태민 내사보고서 '10.26 사태' 불지르다

박근혜가 최태민의 혼외자식 때문에 관계를 유지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또 김계원의 증언에 따르면 박근혜와 최태민 때문에 차지철과 김재규의 사이가 매우 나빠진 것일뿐 사실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보다 구체적인 자료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10.26 사태 원인은 '부마항쟁과 박정희의 사생활 타락'이란 제하의 기사 중에서, 1977년 봄 중앙정보부가 내사해 작성한 "큰 영애와 최태민에 관한 종합보고서"가 돋보였다. 이랬다.

"(중략)그러나 김재규가 박정희의 역린을 건드린 것은 그런 정치문제보다도 1977년 봄 중앙정보부가 내사해서 작성한 "큰 영애와 최태민에 관한 종합보고서" 때문이었다. 김재규는 군사법정에서 이 내사 결과를 보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건의하자 박정희가 "정보부가 이런 것까지 내사하나?"라며 언짢은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래도 박정희는 당사자인 큰 영애 박근혜 씨와 최태민, 그리고 중앙정보부의 김재규와 수사국장인 백 모씨를 한 자리에 불러 놓고 이른바 '친국
'을 벌였다. 박근혜 씨와 최태민은 세간에 떠도는 풍문과 중앙정보부의 내사가 음해라면서 강력히 항변했다. 지금 같으면 특검에 맡겨 수사해서 규명해야 할지도 모르는 대통령의 자녀관련 문제였지만, 박정희의 친국으로 그 근거가 밝혀지지 못한 채 유야무야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중정의 능력을 고려할 때 내사까지 해서 박정희에게 직보할 정도였으니 이는 그렇게 만만한 내용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사보고서는 중정의 문서이니 만큼 당연히 중정의 기밀자료 존안실에 보관돼 있다. 박근혜 후보가 유력한 대선 주자이기 때문에 법률에 의한 정보청구를 통해 검증해야 할 것이다.(하략)"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1026132515&section=03>


**자료 사진 중 원내는 최태민


뒷조사가 일상화된 권력의 뒷마당

박정희의 친국(친국이란 '임금이 죄인을 직접 신문하는 것'인데 지나친 표현인 것 같다)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박정희와 박근혜 두 사람 모두로부터 신임을 받지못했다. 김재규가 신임을 받지못한 이유에 대해 박근혜는 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그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 적 있다. 

"중정부장이 아버지에게 보고해 다 불러서 직접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횡령했고 사기를 쳤나 보고를 하고 아버지가 묻자 답이 확실하고 그런 게 없었다. 실체가 없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또 며칠 전 죽은
최필립 씨(당시 박근혜 담당 비서관 )의 증언에 따르면, "최태민 목사는 박근혜에게 세간의 민심을 수집해 전달했다. 그중에는 정부 요인들, 특히 정권의 2인자였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비위 사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딸이 넘겨준 정보를 가지고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부장을 추궁했다. 당황한 김재규 부장은 최태민 목사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했다. '최태민이 큰 영애를 등에 업고 온갖 비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의 두터운 보고서가 작성됐다. 박정희는 박근혜에게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모함이라고 반발했다"는 것.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03407.html>  

그게 유신독재의 막을 내리는 10.26 사태를 잉태하게 되었을 줄 누가 알았으랴. 박정희 일가의 불행을 뒤돌아 보며 챙겨본 몇 가지 자료 속에서 무슨 일이든 인과응보가 따르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세간에 떠돌아 다니는 루머와 야사 등은 상당 부분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게 눈에 도드라진다. 그 중 추석 연휴기간 중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채동욱 혼외자식과 국정원의 댓글사건은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저절로 떠오르게 만든 악재가 아닌가 싶다. 




박근혜,불통 딜레마 탈출법

유전자검사 과정을 남겨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채동욱의 혼외자식을 입에 담는 순간 당사자들은 나락에 떨어지는 기분이 들 것. 이런 일련의 불협화음들이 모두 불통의 권력으로부터 비롯됨으로 새삼스럽게 권불십년의 허망함이 오버랩된다. 불통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마감돼야 나라와 국민은 물론 당사자들 한테도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 결자해지(結者解之)란 이런 때를 위해 만들어지 사자성어가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34년 전, 박근혜는 최태민 등의 내사로부터 시작해 애비를 잃는 슬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불행을 잉태하고 나선 모습. 

이런 게 원치않았던 잉태였다면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조치가 필요하다. 타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음흉한 '뒷조사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시바스리갈' 뒤에 감춰진 애비의 사생활은 물론 당신의 사생활 조차 다시금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차지철 같은 '예스맨' 보다 김재규 같은 '노맨'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작금의 사정이 '지지율 이탈'로 나타나는 위험한 형국이다. 
어떻게 당신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빨갱이며 종북세력이며 친북세력인가. 국정원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며, 그 과정에 야당과 국민들의 협조를 구하시기 바란다. 그러하지 못하면 34년 전 당신과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운명을 다시 겪게 될 지도 모른다.

국정원은 특정 정권을 옹호하는 부서가 아니라 나라의 근간을 유지시키는 보이지 않는 (또는 보이지 않아야 할)국가기관이다. 국정원이 본래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제자리로 돌려놓고, 임무를 망각하고 부정한 짓에 가담한 사람들은 검찰 조사 등을 통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당신들을 회상할 때 마다 18년산 시바스리갈과 유신독재 18년이 묘하게 오버랩 되는 건 왜일까. 18년!!...유신독재의 인과응보 과정을 눈여겨 살피면 남의 가슴에 대못질 하는 혼외자식 이슈 내지 국정원 댓글사건 등 불통 딜레머 탈출법이 보이는 것. 직언자를 반드시 곁에 두라. 나라와 국민은 물론 눈물까지 다 말라버린 당신이 행복해진다. 

**이 글은 정치포털 진실의 길(
http://www.poweroftruth.net/)에 기고된 글입니다.

[Flash] http://tsori.net/attachment/fk050000000005.swf


내가 꿈꾸는 그곳의 PhotОтправить сообщение для Марта с помощью ICQ 이야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