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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나와 우리덜

박근혜와 워터게이트 같거나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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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게이트와 워터게이트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지 않는다.

 


우리 속담이다. 굴뚝에 연기가 나려면 부엌에서 누군가 군불을 때야 한다. 요즘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연기가 그런 셈이다. NLL,4대강 담합비리,전두환 압수수색 등 굵직한 맞불을 터뜨려도 좀처럼 사그라 들지 않는 게 정치판에 피어오른 수상한 연기. 그 출처를 따라가 보면 지난해 대선 정국이다. 국정원이 부정선거에 개입하고 경찰 등이 증거를 덮어 버리거나 인멸한 사상 초유의 부정선거라는 게 외신의 반응.

그러나 당사자는 물론 대한민국은 조용하다. 오히려 
조중동은 물론 방송 대부분이 이런 사실 등에 대해 눈을 감고 헛발질을 해 온 결과, 독재자의 딸로 불리우던 박근혜의 지지율이 60%를 넘고 있단다. 참 희한한 일이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백주에 일어나고 있다. 또 언론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이른바 '박근혜(국정원)게이트'를 덮어 버리고 있는 것인지. 반대의 목소리 내지 진실 규명의 목소리는 언론에서 아예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서울시청 앞에 가 보면 사정이 전혀 달랐다. 그곳에선 박근혜게이트에 대한 진실규명 목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하다. 또 국정원에 의해 저질러진 부정선거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가 파다하다. 국정원장을 즉각 해임하고 국정조사를 즉각 실시하라는 국민들의 요구. 하지만 박근혜정부가 출범한지 7개월이 지나도록 깜깜 무소식. 굴뚝에서 연기만 피어 오르고 불 땐 흔적은 없단다. 그래서 작금의 박근혜게이트와 같거나 다른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면 비교해 보며 글을 맺는다.

 워터게이트 사건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2년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각종 일련의 사건들을 지칭하는 말로서, 미국의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권력 남용으로 말미암은 정치 스캔들이었다. 사건의 이름은 당시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 본부(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Headquaters)가 있었던 워싱턴 D. 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유래한다. 

처음 닉슨과 백악관 측은 '침입사건과 정권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1974년 8월, "스모킹 건
"이라 불리는 테이프가 공개됨에 따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측근들도 그를 떠나게 되었다.  닉슨은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지 4일 뒤인 1974년 8월 9일, 대통령직을 사퇴하였다. 이로써 그는 미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 되었다.

워터게이트가 한창일 때 박근혜의 애비 독재자 박정희의 권력은 확고부동해 보였다.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총살되기 5년 전 닉슨이 대통령직을 사임한 사건이 워터게이트이다. 이른바 스모킹건
(Smoking gun)으로 불리는 '결정적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 닉슨과 백악관측은 국민들을 속여가며 거짓말을 해 왔던 것이다. 도청장치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위키백과에 등재된 내용에 따르면 도청사건의 전말을 이랬다.




도청사건의 전말 


1972년 6월 17일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프랭크 윌즈(Frank Wills)는 건물 최하부 계단의 후미진 곳과 주차장 사이 문 위에 기묘한 테이프(tape)가 묶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 그는 문의 열쇠가 잠겨 있지 않았기 때문에 청소부가 작업 도중 테이프를 묶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곧이어 누군가 다른 사람이 테이프를 묶어 놓았다는 의심이 들자 워싱턴 시경에 불법 침입이 일어난 사실을 통보했다.  

경찰은 도착 후 같은 호텔에 있던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본부 사무소에 불법 침입한 5명의 남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5명은 비질리오 곤잘레스(Virgilio González), 버나드 버커(Bernard Barker), 제임스 W. 맥커드(James W. McCord), 유지니오 마르티네스 주니어(Jr. Eugenio Martínez), 프랭크 스터지스(Frank Sturgis)이다. 이후 증거 사진에서 그들은 3주 전 같은 사무소에 침입한 적이 있고, 이번 침입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던 도청기를 재설치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판명되었다.  

두 번이나 같은 사무소에 침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또한 범인 측의 실수였지만, 더 치명적인 사실은 경찰이 체포했던 맥커드의 수첩에서 에드워드 하워드 헌트(E. Howard Hunt, Jr.)의 백악관 연락처 전화번호를 발견한 것이다. 헌트는 예전에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Committee to Re-elect the President, CREEP 혹은 CRP)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침입범이 닉슨 대통령과 가까운 누군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닉슨 대통령의 로널드 루이스 지글러(Ronald Louis Ziegler) 보도담당관은 "3류 도둑(third rate burglary)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며 백악관과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심문 과정에서 맥커드는 CIA의 옛 직원으로 대통령 재선위원회 경비주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워싱턴 연방지방 검사국(알 J. 실버드 주임검사후보)은 맥커드와 CIA 간의 관계를 조사하기 시작하고, 그가 대통령 재선위원회에서 자금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때 워싱턴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는 동료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과 함께 독자적으로 조사를 시작해, 사건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신문에 발표했다.

FBI 및 다른 정부조사관들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그 기사로 인해 워터게이트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되면서 닉슨 대통령과 그 측근을 궁지에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우드워드에게 비밀정보를 제공했던 딥 스로트(Deep Throat,내부고발자)로만 알려진 정체불명의 고위층 인물은 이 사건과는 별도로 또 하나의 미스터리였다. 훗날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마크펠트가 2005년 5월 31일 사망 직전에 자신이 '딥 스로트'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 

위 워터게이트사건의 전말을 통해서 정치판의 음모와 술수가 어떤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우방 내지 맹방이라는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한국과 함께 베트남전쟁에서 피를 나눈 혈맹이라 불리운다. 독재자 박정희가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8년 동안 32만명에 달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파병시켜 목숨을 잃게 만든 전쟁이 베트남 전쟁이었다. 또 베트남전쟁은 조작된 것이며 미국의 침략전쟁이었다는 게 뉴욕타임즈 등으로부터 고발됐다. 

이른바 <통킹만 결의안>이 일찌감치 만들어져 침략전쟁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1971년 뉴욕타임즈가 국방부의 비밀보고서인 <펜타곤페이퍼>를 입수해 전말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다. 워터게이트의 당사자 닉슨도 죽고 베트남 전쟁도 미국의 치욕적인 패배로 끝났다. 또 우리의 젊은이들을 베트남에 파병한 독재자 박정희도 궁정동에서 김재규에 의해 총살되면서 과거로 사라졌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국민들의 바람과 관계없이 권력에 미친 위정자들로부터 일어난 참혹하거나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거나 비슷한 사건이 2012년부터 2013에 걸쳐 대한민국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국가의 기관이 특정 정치세력에 빌붙어 부정선거를 한 뚜렷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긴가민가 하던 부정선거 시비는 국정원으로부터 시작됐고 지난 대선 기간 중에 일어났다. 따라서 독재자의 딸을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시킨 장본인 내지 기관은 국정원과 경찰(수뇌부)란 게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이다. 이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3.15부정선거' 후 조직적으로 자행된 최대규모의 부정선거가 국정원 등으로부터 저질러진 것이다. 놀라운 일 아닌가.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혀지기 전까지 닉슨은 할 수 있는 역량을 총동원해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 닉슨은 국가안보가 위험하다CIA에게 FBI의 조사를 방해할 것을 지시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수사를 방해하려는 닉슨 측의 정치공작은 조지 고든 배틀 리디(George Gordon Battle Liddy) 및 에드워드 하워드 헌트(E. Howard Hunt)를 중심으로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 직원들이 주도하였다. 그들은 이전 닉슨정권에서 선관공(plumber unit)이란 애칭인 특별조사팀에서 움직였다. 이들은 정보누설을 조사해 민주당원 및 반전운동활동가에게 각종 공작을 실행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베트남전의 실체를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유출한 다니엘 엘스버그(Daniel Ellsberg)가 다니던 정신과의 루이스 J. 필디그의 사무소 침입공작이었다. 이 공작에서 헌트와 리디는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후에 침입은 닉슨 대통령과 그 측근에 관계가 있음이 드러나, 엘스버그 기소는 정부의 부정행위 때문에 기각되었다.


박근혜정부와 워터게이트 같거나 다른 점
 

2013년 7월 현재 대한민국의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은 국정원 등에 의해 저질러진 부정선거 시비에 대해 매우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있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지난 7월 13일, 서울시청 앞에서 이루어진 집회에서 시민들의 손에 든 피켓의 내용이 박근혜정부의 정통성 시비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닉슨은 자기가 궁지에 몰리자 '국가안보론'을 내세웠다. 특정 정권의 안위 문제를 국가안보로 연결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는 어땟을까.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은 취임초기부터 부정선거 시비가 불거지자 북핵문제 등으로 여론을 잠재웠고, 최근에는 국가안보론을 이슈로 삼아 전작권연기를 내세우고 있다. NLL시비,4대강 담합비리,전두환 압수수색 등 굵직한 이슈도 부정선거 시비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거짓사실이 밝혀질까 맞불을 놓으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으로 판단된다. 닮아도 너무 닮은 한국과 미국, 국민을 기망하는 두 거짓 정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워터게이트 사건에 견주어 보면 머지않아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독재자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총살된 것 처럼, 음모와 술수로 점철된 사건은 끝까지 은폐되지 못하고 내부고발자 등에 의해 진실이 밝혀질 것이란 기대감. 역사는 늘 그랬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패한 가장 큰 이유는 워터게이트에 이은 미국사회의 반전운동 결과였다. 국민의 지지를 상실한 정권 내지 정부가 설자리를 잃은 나머지 무리수를 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서울 시청 앞의  '국정원의 국정조사 실시 요구' 촛불집회를  살펴보면, 꽤 오래 전 미국사회와 오늘날 우리의 정치판이 달라도 너무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됐다. 부정선거 시비로 불거진 이슈를 조사해야 할 국가기관 전부가 손을 놓고 있고 언론들이 딴청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밝혀지고 닉슨이 사임하며, 미국이 월남전에 패배할 당시와 같은 반전.반정부 활동이 크게 눈에 띄지않고 찻잔 속의 태풍처럼 조용한 것이다. 이 땅에서 언론 모두가 사라지고 저널리즘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선 당시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물론 어정쩡한 스탠스로 일관하며 사퇴를 한 안철수 후보 조차 부정선거 시비에서 매우 소극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장 즉각 해임' 피켓을 든 이정희 후보는 왜 시청 앞에 나왔단 말인가.

"당신을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했다" 

대선 때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향해 날린 일성이다. 그녀가 당선될 수 없다는 건 여론조사를 통해서 널리 알려졌었다. 그렇지만 이정희 후보는 자기가 대선에 출마한 이유를 분명히 한 것이다. 왜 박근혜를 떨어뜨려야 하는가 하는 이유가 그로부터 7개월 만에 시청 앞에 나타났다. 대선기간 동안 여론이 호도되고 조작되고 있지 않았다면, 국정원 등에 의해 부정선거가 자행된 확신이 없었다면, 이정희 후보는 결코 시청 앞에서 피켓을 들지않았을 것이다. 
당신을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한 이정희 후보는 여전히 자기를 지지해 준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반면 작금의 사태가 워터게이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슈 한 가운데 있어야 할 민주당이 보이지 않거나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이념이나 사고방식이 서로 달라도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면 국회의사당 밖으로 나와야 한다. 국회는 이미 정쟁의 장소이지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제도를 실천할 수 없는 곳이란게 드러난지 꽤 오래됐다.

닉슨이 여론에 몰려 사임하기 직전까지 매달린 곳이 국회였지만 미국의 언론은 거짓으로 일관한 그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 미국의 언론이 위대했던 이유이자 그나마 미국이 여태껏 세계경찰을 자임하는 실낱같은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지닌 이유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시민을 좌절케 한 스모킹건은 이미 드러난 상태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곧 언론을 빙자한 짝퉁 언론을 향한 돌팔매질이 시작될지 모른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거짓은 오래가지 못하고 제 발로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본문 인용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C%9B%8C%ED%84%B0%EA%B2%8C%EC%9D%B4%ED%8A%B8_%EC%82%AC%EA%B1%B4>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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