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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Natural

산티아고, 작은별 쏟아진 듯 앙증맞은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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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별 쏟아진 듯 앙증맞은 단풍
[南美旅行] 칠레대학교 교정의 단풍과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노래



돌아가고 싶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요즘 적지않은 분들이 이런 소망을 품고 살 것만 같다.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어느 가을날 알록달록 물든 이파리들이 비에 젖어 뒹구는 모습을 보면, 어느덧 자기의 처지를 돌아보며 옛날을 그리워 하며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을 거 같다. 가을이 품고있는 속성이 그렇게 만든 거 같다. 어쩌면 우주 저편에 걸려있는 별 조차 가을이 되면 알록달록 하게 자기를 물들이며 어느별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지.

칠레의 산티아고에 위치한 '칠레대학교(Universidad de Chile) 인문사회과학부' 캠퍼스에서 발견된 앙증맞은 단풍이 그런 모습이었다. 마치 작고 아름다운 별이 우수수 쏟아진 듯한 풍경이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빠져들면 '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들 것 같다. 잠시 시름을 내려놓고 앙증맞은 단풍이 별 처럼 쏟아진 산티아고의 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보시기 바란다.
 



플라타너스가 잎을 떨군 이곳은 칠레대학교 인문사회과학부 캠퍼스 앞의 풍경이다. 칠레대학교는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1842년에 이전 식민지 시대의 대학교 'Real Universidad San Felipe(1738)'를 대체해 설립됐다. 이 대학교는 '벨로의 집'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첫 총장 앙드레 벨로의 이름을 딴 것이다. 칠레대학교의 졸업자로는 유명한 두 명의 노벨상 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Lucila Godoy Alcayaga, Gabriela Mistral)'과 21명의 주지사가 있었다.

실제 이 대학교는 현지에서 우리나라 서울대학교를 앞 설 정도의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입학은 쉽지만 졸업은 결코 쉽지않아서 입학생 대비 졸업생 비율은 10% 정도된다고 산티아고 현지의 지인이 귀뜸해 주었다. 공부를 하지않으면 절대로 졸업을 할 수 없는 대학교인 셈이다. 정말 대단한 학구열이 절로 느껴진다. 또 학점 조차 '무진장 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학비는 우리나라 대학교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않으므로 반값등록금이 실현(?)된 셈이다. 





현지 우리 교민들 중 칠레대학교를 졸업한 자녀들이 적지않은 데 그들 다수는 칠레의 상류사회에 진출해 있었다. 그들은 주로 칠레대학교(카톨릭대학교도 유명하다)를 졸업한 인재들이었다. 글쓴이가 만나본 그들 인재들은 매우 평범해 보였다. 이른바 영재들은 아니었으나 상대적으로 칠레대학교로 모여든 학생들 보다 우수하고 매우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었다. 그 학생들은 주로 우리교민 1.5세대 내지 2세대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 데, 스페인어를 모국어 처럼 잘 구사하는 학생들이었다. 
 

칠레대학교는 그런 학생들에게 10%의 좁은문을 허락하는 지. 칠레대학교를 노크하시려는 분들은 스페인어를 모국어 처럼 잘 구사하는 게 기본인 것이다. 따라서 칠레대학교 입학을 꿈꾸시는 분들이나 자녀를 칠레대학교로 보내고 싶으신 분들은 일찌감치 거처를 산티아고로 옮겨 '맹모삼천지교'를 꿈꾸시면 될 거 같다. 칠레대학교는 우리나라의 대학과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 우리나라 처럼 한 캠퍼스에 여러 학부를 거느리고 있는 게 아니라 각 학부 별로 캠프스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이를 테면 법학부는 마포초 강변(Rio Mapocho) 삐오노노 거리(Calle Pionono)에 위치해 있는가 하면, 인문사회과학부는 그곳으로부터 꽤 떨어진 '산타루시아 언덕(Cerro Santa Lucia)' 근처 남쪽(카톨릭대학교 옆)에 자리잡고 있는 등 학부가 전부 따로 떨어져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와 비교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질 정도이다. 따라서 각 학부의 캠퍼스를 보면 우리나라 대학교 같은 웅장한 건물이나 캠퍼스에 비교가 전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적다.

그래서 처음 칠레대학교 등 산티아고에 위치한 대학교를 방문해 보면 '대학교가 맞나' 싶은 생각이 절로드는 것이다. 그러나 언급한 바 칠레대학교는 졸업 기준이 매우 엄격하여, 입학을 하고 시간만 떼우면(?) 졸업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보통 대학교들과 질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고있는 것이다. 하지만 산티아고에 위치한 칠레의 대학교들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누리고 있는 기후 조건을 누리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보통 우리나라의 오래된 대학교 캠퍼스는 가을이 되면 온통 단풍으로 물이들어 마치 공원같은 기분이 든다. 전국 어디를 가나 이맘때면 단풍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칠레대학교 등 산티아고에 위치한 대학교의 캠퍼스는 그런 풍경을 거의 누릴 수 없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산티아고의 가을은 우리나라의 가을과 달리 화창한 날씨만 이어지던 건기를 마치고 곧 우기가 시작되는 시기로, 가을이 되면 로스안데스로부터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며 비를 뿌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맘때 쯤이면 우리나라에서는 도무지 겪을 수 없는 희한한 날씨를 경험하게 된다. 바람도 불지않고 우중충한 잿빛 하늘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면, 얼음도 얼지않는 날씨가 마치 냉장고 속 처럼 뼈 속 까지 바늘로 쑤시는 듯한 음산한 추위가 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오죽하면 칠레에 거주하는 우리교민들은 이 시기만 넘기면 아무런 걱정이 없을 정도라고 말할 정도이겠는가. 따라서 가을이 오면 목도리부터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희한한 패션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산티아고의 단풍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빛깔고운 단풍을 찾아내기란 쉽지않다. 맨 처음 본 플라타너스만 봐도 고운 빛깔의 나뭇잎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칠레대학교에서 발견한 앙증맞은 단풍은 전혀 예외였다. (세상에!!...이럴 수가...)


간밤에 흩뿌리고 간 가을비 때문에 학부의 동과 동 사이에 있던 단풍잎 거의 전부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마치 먼 하늘 은하 저편에 살던 알록달록한 별이 지구별로 여행을 나선 것 같은 그런 모습이랄까. 어떤 이파리들은 비에 젖고 또 어떤 이파리들은 마른채로 캠퍼스 한쪽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이 이방인의 향수를 단박에 불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단풍이 아니라 우리 기억 전부를 간직하고 있는 작고 앙증맞은 별이었다. 우주 먼 데서 지구별로 여행을 떠나온 알록달록한 별이자, 사람들의 기억을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신비한 마법의 단풍이었다.


별을 닮아 알록달록한 마법의 단풍 

































...


 산티아고의 칠레대학교 교정을 거닐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에서 겪고 있는 치열한 삶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대학교에서 머리를 쥐어짜는 모습이 별로 눈에 띄지않았다. 물론 이곳의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한다는 게 아니라 교정의 분위기가 그랬다. 또 칠레라는 나라가 주로 그런 분위기였다. 
칠레가 낳은 노벨문학상의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도 그러했는 지.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은 1889년 칠레 북부의 '엘키 계곡'에 위치한 조그만 도시 '비꾸냐'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45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처음으로 노벨상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평생을 교육에 헌신했다. 칠레 남부 '테무코(
Temuco)' 지역에서 교사생활을 할 당시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에게 러시아 고전 문학을 지도해 준 게 네루다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네루다가 가장 존경했던 시인이었다. 그녀가 쓴 시의 주제는 신을 향한 인간애와 어린이와 모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녀가 태어난 안데스자락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았다. 인디오의 정서가 그녀의 작품 속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의 정서를 이상주의라 불렀다. 젊었을 때 겪은 사랑의 상처가 그녀로 하여금 종교적 경지에 이르게 한 것인 지.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시 <죽음의 소네트-Soneto de la Muerte>에서 스웨덴의 노벨위원회는 문학상 수상 이유에 대해 "라틴아메리카 이상주의적 소망을 작가의 이름으로 대치할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하게 만든 그녀의 강한 서정시를 높게 평가함"이라고 말했다.

안데스의 골짜기 깊이 흐르는 인디오의 역사와 함께, 그녀가 한 때 사랑한 한 남자의 자살로 사랑에는 실패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체득한 게 그녀의 이상주의적 운명을 만든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음미하면 마치 위대한 성자처럼 여겨지는 것도 그 때문일까. 그녀의 작품집 속에서 <예술가의 십계명>을 잠시 들여다 보면 칠레대학교 캠퍼스를 수 놓고 있었던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어디서 왔는 지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녀는 예술가의 십계명 중 첫째로 "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아름다움이란 '신의 그림자'였던 것이며, 산티아고의 한 대학교 교정을 알록달록 수 놓고 있는 단풍은 신의 또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신들은 멀고 먼 우주 저 편에서 여행을 떠나 어느날 칠레대학교 교정에 머물게 되었는 지.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은 예술가의 십계명 중 둘째로 "무신론적 존재의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 순간 우리는 이들의 존재를 섬기지는 못했을 망정, 앙증맞고 고운 자태의 단풍 때문에 가을 속으로 흠뻑 빠져들곤 했던 것이다. 그게 어느덧 5개월 여의 시간이 흘렀다. 지구반대편의 가을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우리는 신의 그림자로 이 땅에 태어났는 지 모르겠다. 그러나 알록달록한 한 그림자를 바라보면 신 조차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에 몸서리치며 싸우는 듯 하다. 그리하여 땅거미가 지면 신은 다시금 당신의 알록달록한 외로움과 고독을 거두어 들이는 지. 사람들은 자꾸만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한다. 어디론가 자꾸만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것들은 슬픔을 동시에 잉태한 것인 지.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을 라틴아메리카의 별로 만들어 준 <죽음의 소네트>에서 그녀는 이렇게 노래했다.


인간들이 집어넣은 얼어붙은 틈새로부터
태양이 비치는 겸손한 대지에
나, 그대를 내려놓으리
인간들이 알지못하는 대지 위에 나는 잠들지니
그대와 나는 같은 베개를 베고
누워야만 하리 

잠든 아기를 위한 자상한 어머니와도 같이
태양이 비치는 대지에, 나 그대를 잠재우리
고통스런 아기와도 같은 그대 육체를 안음에 있어
대지는 부드러운 요람의 구실을 하리

그 뒤 나는 떠나리
푸르스럼한 연한 달빛에
가벼운 폐물들이 차근차근 쌓여갈 때

나는 이곳을 떠나리
아름다운 복수를 찬미하면서
이제는 두 번 다시 여하한 손길도
그대의 한 줌의 뼈를 탐내어
이 남 모르는 깊숙한 곳에 내려오지 못하리

 


 
내가 꿈꾸는 그곳의 Photo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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