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걸으면 더 맛있는 산행
빨라도 너무 빠른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이 느림의 미학이라니...
그런데 똑같이 산행이나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 중에 유독 힘들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산행 장면 등 다큐를 기록하는 카메라맨들이다. 그들은 남들 다 가는 코스를 함께 이동하는가 하면, 남들이 안 가는 코스 등으로 벗어나 목적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곤 한다. 언제인가 히말라야 등정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모습을 보고 정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히말라야의 다큐는 물론 세계 오지의 비경을 안방에서 편안히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카메라는 최첨단 디지털 기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정작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매우 느렸던 것이다. 그들은 느림의 미학을 카메라에 담아 안방에 보내며 빨라도 너무 빠른 디지털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황량한 가슴을 촉촉한 감성으로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카메라맨들은 사람들이 건성건성 지나칠 만한 피사체를 잘도 찾아내는 한편 그 피사체가 가진 특성이나 매력을 기막히게 조명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설악산을 등반할 때 마다 느끼는 게 '산행의 고통'을 잊을 만 할 때라야 다시 오를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특히 그 고통은 내설악의 공룡능선의 황홀함을 맛 본 뒤에는 더 강하게 다가왔다. 시쳇말로 육신은 '죽을 맛'이었지만 감동은 살아서 펄펄 뛰었던 것이다. 그런데 설악산은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산장에서 숙박을 하지않을 경우)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한 시간에 반드시 통과를 해야 한다. 산에 발을 디디는 순간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으며 심지어 자기가 마실 물 조차 타인에게 구걸(?)해서는 안 되는 거 다 아는 사실이다. 얼마나 힘이들었으면 이런 금기사항(?)이 생겼을까.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혼자 살아남는 법을 산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한 번 가 보면 두 번 다시 잊을 수 없는 설악의 마력
본 포스트에 담은 설악산 풍경들은 끝청-중청-소청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바라본 장면인 데 글쓴이의 능력껏 느리게 느리게 이동하면서 카메라에 담은 모습들이다. 본의 아니게 설악산을 바람처럼 날아다니는 정 선생께는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가뜩에나 느린 걸음에 설악의 마력에 빠져 걸음을 지체하고 있었으므로, 정 선생이나 안사람이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누...ㅜㅜ) 정 선생 처럼 설악산에 2000번 이상의 발도장(?)을 찍을 형편도 안 되니 모처럼 설악산 단풍놀이에 나섰으면 본전(?)이라도 뽑아야 될 게 아닌가. ^^
끝청봉 능선에서 내려다 본 내설악은 아직 단풍이 보이지 않는다. 단풍은 발아래서 오롯이 펼쳐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우측으로 바라보니 중청봉과 대청봉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이동해야 할 곳이다.
중청봉 능선아래로 펼쳐진 기막힌 광경. 설악산의 진정한 마력이 이런 단풍 때문이었을까.
쩝...입맛만 다신다.
여기 까지 두 발로 기듯이 느리게 느리게 온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ㅜㅜ
어느덧 중청봉에 다다랐다. 2012년 10월 1일 경 설악산의 단풍은 대청봉에서 소청으로 서서히 몸을 낮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추석 연휴를 맞아 설악산 단풍놀이에 나선 사람들은 대청봉 까지 줄을 잇고 있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설악산의 무슨 마력이 조상님들을 내팽개치고(?) 이곳 까지 오게 만들었는 지...
그 이유를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 있다.
우리 산하의 풀꽃 한 포기 조차 모두 저 혼자의 힘으로 된 게 없는 것이다. 정말 위대한 자연이 언제나 우리를 보듬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꽃잎을 떨군 한 야생화와 함께 대청봉을 바라보는 사이, 정 선생이 길을 재촉하고 있다.(배낭을 보시면 질리지 않나요.ㅜㅜ)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휴식을 취하며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번 산행코스에서 대청봉은 빠졌다. 그 대신 희운각에서 공룡능선의 신선암을 돌아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갈 길이 바쁜 것이다.
중청봉에서 바라본 설악의 매력
우리는 중청산장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짐을 내려놓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멀리 발 아래로 천불동계곡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늘 그리워지던 풍경이었다. 저 계곡으로 발길을 옮기면 세상 시름 전부를 털어낼 것만 같은 옥수가 바위 사이를 흐르고 있는 곳이다. 자나깨나 그리워하던 풍경이 발 아래에서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설악산 중청봉에 오르게 되면 굳이 단풍이 필요없어도 된다. 이곳에서 만난게 되는 풍경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정도다.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랄까. 사람들이 한가위 (연휴)날을 택해 산에 오르는 이유도 어쩌면 갑갑한 일상에서 얻게된 스트레스 전부를 산행을 통해서 얻고 싶은 지 모를 일이다. 산은 어버이처럼 아무 값 없이 언제 어느 때나 누구든 싫다하지 않고 온 몸으로 품어주기 때문 아닌가.
아 그러나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중청봉에서 잠시 짐을 내려놓고 퍼질러 앉아 쉬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그들이 바람이자 구름이었다.
그 속에 우리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도 잠시 구름과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질 인생들 아닌가.
그 인생이 아둥바둥 세상에 살아오면서 느낀 건 행복이 전부만은 아니었다.
중청에서 소청으로 이동하면서 본 용아장성...골짜기 너머로 봉정암이 숨어들었다.
중청에서 소청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이채롭다. 한 때 이 곳도 자연산(?) 등산로였건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자연이 많이도 훼손됐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설악산의 매력이 널리 알려진 점 때문에)세상에서 위로 받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명산이 가진 최고의 '힐링효과'가 사람들을 불러들인 게 아니겠나.
소청봉으로 가는 길
비 바람 눈보라를 견디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바위 하나가 내설악을 응시하고 서 있다.
온통 알록달록한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한 풍경 아래로 희운각(하얀점)과 천불동계곡이 펼쳐져 있다.
희운각과 천불동계곡
천불동계곡 만물상 너머로 동해와 속초시가 시원스럽게 탁트여 있다.
설악산을 온통 알록달록하게 수 놓은 만산홍엽 위로 까만 점 하나...구름과 바람대신 이름모를 새 한마리가 날아올랐다.
운 좋게도 날씨 조차 기막히게 좋았다. 양력 10월 초하룻날이었다.
줌을 최대로 당겨 울산바위를 당겨봤다. 아직 1500m 아래 고도는 새파란 초록빛. 단풍은 멀었다.
(흠...잘 보셨나요. ^^)
설악산(단풍) 관련 포스트
파타고니아에서 느끼지 못한 설악산 단풍 어떻길래 / 명품의 진가를 보여준 설악산의 비경 / 아침햇살에 눈뜬 우리 영혼의 본 모습
설악산 중청봉에서 바라본 천불동계곡
포스트 서두에 잠시 느림의 미학을 언급했다. 본 포스트를 후다닥 긁어내리신 분들은 느림의 미학에 대해 별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55개의 파일 전부를 하나 하나씩 살펴보신 분들이라면 '낫지오' 못지않은 기록으로 봐 주실 거 같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느리게 걷다가 잠시 호흡을 멈추고 발로(?) 찍은 사진들이다. 다음편은 보다 더 짜릿한 비경을 준비했다. 내설악의 진가가 무엇인지 절로 감탄하게 될 장면들이 아닌가 여겨진다. 길게 이어진 '작은 다큐' 봐 주셔서 감사드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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