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 재판 기록 등 천안함 관련 포스트를 끄적이면서 느끼게 되는 점 몇가지가 있다. 천안함 사건을 끄적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의 참혹한 정치현실이 한순간에 오버랩 되면서 천안함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왜 숨졌는지 조차 모른채 억울하게 숨진 승조원들의 명예를 되찾게 되면, 그 보다 더 뿌듯한 일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일을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적지않다. 그분들은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고 있는 분들이다. 그분들은 법정에서 천안함의 진실을 밝히고 있는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과 변호인단이다.
글쓴이는 인터넷 포털을 통해 천안함의 진실을 매우 제한적으로 알리고 있는 셈인데, 대다수 언론과 방송들이 눈과 귀를 막고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래서 포스트를 끄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뿌듯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슬픈 생각과 함께 분노가 치미는 것이다. 사람들이 진실에 목말라 있을 때 그들은 거짓과 위선의 편에 서서 사회적 약자를 더욱더 힘들게 만드는 한편, 그들 스스로 권력이 되어 사실을 왜곡.호도 하며 국민들의 알권리를 심히 방해하거나 훼손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안함의 진실을 알고 싶으세요?
그들이 행하고 있는 불편부당한 일들 때문에 국민들이 만들어 낸 권력은 어느새 국민들을 짓밟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고는 그런 부조리한 현실이 극에 달했을 때 일어난 비극이라고나 할까. 천안함 사고는 군 당국이나 이명박 정권의 합조단이 발표한 보고서와 달리 대부분의 사실이 거짓으로 은폐되고 있었는데, 그 역할 대부분을 군 당국의 관련자들이 하고 있었다. 군이 특정 정권과 한 통속이 되어 천안함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건이 천안함 침몰사건이 잉태한 비극인 것으로 사료되는 것이다. 글쓴이는 그 비극이 극적으로 반전되어 억울하게 숨져간 46위의 천안함 승조원들이 영면하기를 학수고대하고 하며 포스트를 끄적이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2시 경, 서울 중앙지법 서관 524호 법정에서 속개된 11차 천안함 사건 공판에서는 전혀 뜻하지 않았던 증언이 글쓴이를 놀라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천우신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글쓴이를 놀라게 만든 증언은 이날 증인으로 나선 박연수 작전관(대위)의 입을 통해서였다. 그는 신 전 위원의 조용하고 나직한 반대심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김 병장은 생존자가 맞다. (신 씨의 주장에) 동의 한다. 사고 순간의 영상이라면 맞지않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서 발췌한 그림
신 씨는 법정에서 PPT를 통해 천안함 사고 당시의 후타실 장면이 담겨져 있는 사진(영상켑쳐)을 박연수에게 보여주며, 천안함의 사고 순간과 장병들의 이름을 묻게 된 것이다. 사진 속에서 확인이 안 된 장병 이름은 '김용현 병장'이라고 박연수가 단박에 확인해 주었다. 신 씨가 제시한 사진은 합조단에서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 적시된 장면이었다. 처음 천안함 사건을 접하신 분들은 이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 지 잘 모르실 것 같다. 따라서 '구사일생으로 생존하게 된 김용현 병장의 기막힌 사연'을 통해, 천안함 사건이 군 당국이나 민간의 사이비 과학자 등으로 부터 어떻게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있었는 지 확인해 보는 게 본 포스트의 핵심이다.
구사일생으로 생존한 김용현 병장의 기막힌 사연
박연수가 신 씨의 반대심문에 답변하게 된 건 심문이 거의 끝나갈 때 쯤이었다. 박연수는 변호인측의 계속된 질문에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런 사정은 변호인측이나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나 재판부 모두 같은 사정으로 보였다. 특히 박연수의 입장에서는 지루하기 짝이없는 시간이었을 것 같다. 그는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숙지하고 있었는 지. 천안함 사고 당시에 일어난 내용들에 대해서는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내용과 거의 비숫한 수준의 답변으로 사실을 전면 부정하고 있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천안함은 사고 직전 까지 좌초 등 비상상황과 같은 이상징후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답변하고 있던 중이었다. 따라서 천안함은 침몰 직전 까지 경계근무를 소홀히 한 적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연수 스스로 자신의 증언 때문에 자승자박할 줄 누가 알았겠던가. 박연수가 변호인 측의 심문에 딱 걸려든 것은 그가 확인해 준 김용현 병장의 생존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국방부가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김용현 병장이 사망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마땅했겠지만, 김병장은 버젓이 생존자의 명단에 등극해 있었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합조단이 공개한 '후타실 CCTV'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6월 11일에 속개된 천안함 사건 10차 공판 당시 글쓴이는 해외에 체류 중이었으므로, 합조단이 공개한 후타실 CCTV 내용이 재판에서 거론된 사실은 귀국 후에 알게 됐다. 따라서 당시 재판 기록을 통해 국방부와 합조단이 발간한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자료1>
위 <자료1>를 잘 살펴봐 주시기 바란다. PPT자료에 적시된 것 처럼 천안함의 후타실에서 숨진 승조원들은 모두 4명(중사,하사,병사,상병)이다. 그러나 최종보고서 211페이지에 나오는 동영상(켑쳐자료)에는 하사 2명과 병장 2명 상병 1명 및 근무자 포함하여 모구 6명의 대원이 CCTV에 촬영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종 보고서 129페이지에 적시된 사실과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의 자료는 국방부와 합조단 등이 실수로 잘못 기재한 것일까. <자료2>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자료2>를 펼쳐 다시한번 확인해 봐도 후타실에서 숨진 승조원은 모두 4명이며, 신 씨가 작성한 PPT 자료와 일치한다. 국방부와 과학자들이 <1번 어뢰> 포함하여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천안함 피격사건최종보고서>에서, 이 같은 오류가 발생하게 된 건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천안함 사고 당시 군 당국은 일반의 바람과 달리 구조작전을 피일차일 미루며 엉뚱한 짓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바다속에 수장된 천안함 승조원들은 이미 숨졌을 시간에 엉뚱한 장소에서 구조활동을 펼치는 등 의혹을 부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해군 2함대 사령부가 언론에 공개한 내용이 천안함 실종자들의 위치였다.
위 <자료3>은 천안함이 침몰한 지 사흘째 되던 날 해군 2함대 사령부가 언론에 공개한 자료를 연합뉴스가 그래픽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천안함 침몰 당일인 3월 26일 현재 실종된 승조원별 근무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희생자유가족 내지 실종자 유가족들은 이 내용을 접하고 실신하거나 거의 실신 지경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생존자를 제외하면 이 명단은 이미 숨진 승조원들의 명단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 때 후타실에는 언급한 김용현 병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후타실에 위치한 5명의 승조원들은 <자료3>과 같다. 해군2함대사령부는 이날 자료를 발표하면서 "평소 해당 시각 승조원들의 근무위치,생존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 추정했다"며 "천안함 사고시점인 9시 30분 당시 실종자 46명의 근무위치를 밝혔다."고 연합뉴스가 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합조단의 최종보고서에는 김용현 병장이 왜 후타실에서 발견된 것일까.
주지하다시피 천안함 사건 재판은 당시 국민적 관심사였던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불거진 여러 원인 들 중에 이 분야의 전문가 위치에 있던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이 '최초좌초' 등을 언급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당시 글쓴이는 피로파괴를 주장하고 있을 정도로 이 사건을 둘러싼 원인 추적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또 초유의 사건이었으므로 언론들이 거의 매일 특종을 만들어 내며 앞 다투어 보도에 참여한 보기드문 사건이었다.
<자료4>
특히 천안함 사건이 일반의 관심을 부추긴 건 우리 해군 승조원들이 숨지거나 초계함이 침몰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군 당국이나 정부가 이 사건의 원인 등을 숨기기 위해 정보를 조작하는 의혹이 쉽게 들 정도로, 일반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조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천안함의 후타실이 관심을 끈 이유는 천안함이 최초 좌초되었다는 언론의 보도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 보도는 군 당국으로 부터 일반에 전해졌으므로 천안함이 조타장치 등 기동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또 당시 일반의 관심이 후타실에 집중된 건 당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천안함 가족들의 통화 및 문자내용을 공개<자료4>하면서 국방부 발표시간 이전에 비상상황이 있었다는 사실을 언론에 공표한 시점이었다. 사고 당시 후타실에 5명이 있었다는 해군(발표)의 추정이 후타실의 존재를 부각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후타실은 배의 엔진과 스크루가 연결돼 방향을 잡는 조타장치가 있는 배의 가장 후미 부분에 있는 것으로, 한 해군 전역 장교는 언론을 통해 " 후타실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평소 승조원들이 들어가는 경우가 흔치않다"고 말한 곳이었다.
<자료5>
이 기사를 취재한 노컷뉴스의 한 기자는 "실제로 지난해(2009년) 해경 경비함 취역 행사때 해경 함장과 기관장으로 부터 후타실에 직접 들어가 그곳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 있다"라고 말하며 당시 해경 기관장도 "후타실에는 배의 엔진과 연결된 스크루 등에 이물질 등이 끼이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만 들어가는 곳으로 시끄러운 엔진 소리 때문에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승조원들오 웬만해서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출처 http://www.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004010118 > 후타실은 그런 곳이었다. 배의 조타장치가 고장 나면 수동으로 배의 방향을 조종할 수도 있지만 그 때는 '비상상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의 관심이 후타실에 집중되자 국방부는 무엇을 감추고 싶었는 지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면서 당시 "후타실에 있는 대원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고 발표를 하게 된다. 찌라시로 불리우는 조선일보<자료5> 등이 해명 보도에 나섰다. 김용현 병장이 후타실에 등장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후타실이 거론되면서부터 였다. <천안함 피격사건최종보고서>에 적시된 켑쳐영상의 화면 속에는 천안함 승조원들이 편안한 운동복 차림으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담고 있으므로, 국방부의 주장 처럼 운동 중이었거니 비상상황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방부가 영상에서 발표한 내용의 인원수는 4월 15일 함미를 인양하고 희생자를 수습할 당시 발표내용과 다르고 계급조차 다르게 나타난다.<자료6 참조>
<자료 6>
해군 당국이나 국방부가 전혀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함미 인양은 천안함이 침몰한 지 거의 20일이 경과하고 있었다. 그동안 국민들의 관심은 줄곧 실종된 승조원들을 향하고 있었지만 국방부 등은 사실을 감추기 바빴던 지 언론 보도를 계속 뒤집거나 수정하는 일이 잦았다. 따라서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의문이 증폭되고 있었다. 천안함 함미가 인양되어 승조원등의 시신이 수습될 당시 국방부는 시신이 발견된 위치를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간혹 오보도 있었지만 곧바로 정정하는 등의 조치가 따랐고 천안함의 후타실에서 최종 발견된 승조원들은 모두 4명(김종헌 중사,이용상 병장,김선호 상병,정범구 상병)이었다.
이 내용은 해군2함대사령부가 3월 29일에 추정 발표한 명단(5명, 손수민 하사,조진영 하사,문영욱 하사,이용상 병장,김선호 상병)과 인원수에서 차이가 나며, 명단과 일치하는 승조원은 2명(이용상 병장,김선호 상병)뿐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예측결과이므로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함미 인양 당시(4월 15일) 후타실에서 4명의 희생자 시신이 수습되고 일반에 공개되었는데, 국방부에서는 CCTV 동영상을 복원했다며 최종<천안함 피격사건최종보고서>에 인원수와 계급도 다른 영상 켑쳐장면을 무슨 배짱으로 수록하게 됐을까. (단순한 실수?...NO!!...) 박연수는 변호인 측의 반대심문에 초지일관 천안함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증언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신 씨의 질문에 동의한 것이다. (어떻게?!!...이렇게...!!)
"김 병장은 생존자가 맞다. (신 씨의 주장에) 동의 한다. 사고 순간의 영상이라면 맞지않다."
<자료7 천안함 피격사건을 담은 합동조사결과보고서의 치명적인 결함>
박연수는 최원일 함장이 극구 부인한 사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토하고 말았던 것이다. 박연수는 증언에 앞서 천안함 피격사건최종보고서를 숙독했는 지 모르겠지만, 앞서 증언한 최원일 함장의 공판 속기록 등은 전혀 참조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최 함장이 가장 괴로워 한 장면이 변호인 측이 내민 후타실 CCTV에 찍힌 희생장병들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최 함장의 모습을 보도한 조선일보에 따르면 "희생장병의 얼굴을 최 함장 앞에 내밀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고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라는 취지의 내용이 쓰여져 있었다.
<자료7: 천안함 피격사건 조사결과보고서 211페이지 분석결과 참조 그림 > 당시 공판 정황을 참조하면, 최 함장의 증언이 이 사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컷던 것으로 사료되는 바, 국방부와 합조단 등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생존(?)한 김용현 병장의 기막힌 사연은, 결국 증인으로 나선 박연수 작전관이 마침표를 찍어주는 아이러니를 연출한 것이다. 그는 재판 내내 천안함은 사건 발생 직전 까지 좌초 등 아무런 비상상황 없이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고 항변했는 데 하필이면 그 내용이 <자료8: 합동조사결과보고서 211페이지,분석결과 참조 그림>에 고스란히 적시되어 있었다. 박연수는 '분석결과'에 따른 내용은 숙지할 수 있었지만, 한겨울과 다름없는 3월의 날씨에 '런닝셔츠'를 입고 영상 속에 나타난 김용현 병장이, 왜 존재하게 됐는 지 등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고 자충수를 둔 것일까. 천안함의 진실이 단박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합동조사결과보고서 211페이지 분석결과 내용을 끝으로 글을 맺는다.
<211페이지 '분석결과' 내용>
"천안함 CCTV를 복원한 결과 가스터빈실과 디젤기관실의 모습,안전당직자 순찰모습,후타실에서 체력단련모습이 확인되었으며, 관찰된 격실의 정상적인 모습과 승조원들의 복장과 표정,함정의 안정적 운항상태 등을 볼 때 천안함은 사건 발생 직전 까지 비상상황 없이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갑작스런 폭발로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다시한번 더 언급한다. 천안함 피격사건 조사결과보고서 211페이지에 적시된 분석결과를 참조하면, 후타실에 있었던 김용현 병장은 4월 15일 함미가 인양되어 승조원들의 시신이 수습될 당시 사망자의 명단에 포함돼야 마땅했다.(벌건 대낮,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이명박 정권의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배포한 천안함 피격사건의 합동조사결과보고서의 치명적인 결함으로 인해, 천안함의 진실이 가속도를 더할 전망이다. 천안함 사건 방청기는 계속 이어진다.
** 본문 중에는 글쓴이가 해외에 체류중에 일어난 사실이 포함돼 있으므로,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의 글과 자료 일부를 인용(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dok2004&uid=557)해 썼습니다.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