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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혹한에 꽁꽁 얼어붙은 황산도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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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에 접어든 황산도?
-혹한에 꽁꽁 얼어붙은 황산도 갯벌-


빙하기가 찾아 온 것일까...

얼마전 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 꼭대기의 눈이 녹고 있다는 등
기후변화로 지구온난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했는데
 2011년 1월 15일 정오 경 겨울의 모습을 보면, 참 알 수 없는 게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나는 조금전 까지 강화로 접어드는 초지대교 위에서 한파에 꽁꽁 언 갯벌과 유빙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몇 컷 담고 있었다. 그림과 같은 모습이다. 비록 유빙들이 둥둥 떠다니는 겨울의 갯벌 모습이지만 참 낭만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너 댓 컷의 이 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동안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 촬영을 포기하고 말았다. 초지대교 입구 갓길에 자동차를 잠시 정차해 두고 약 20~30m 정도 초지대교 위로 걸어가는 동안 다리 위로 부는 바람 때문에 눈도 뜨지 못할 정도였다.


온 몸을 방한 마스크와 파카에 바람막이 등으로 중무장 하고 있었지만, 눈 주변에 노출된 작은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은 마치 송곳을 단 칼날 같았다. 카메라가 바람에 날릴 정도였고 하필이면 내가 바라보는 곳이 북쪽이었다. 북쪽에서 매우 강하고 찬바람이 초지대교 위로 불어 제끼고 있었던 것인데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이하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그 보다 더한 영하 45도 이상의 급냉실 환풍기 정도의 바람이었다고나 할까. 한기는 고글 밑 작은 틈새와 마스크 틈 사이를 헤집고 뒤통수를 돌아 등줄기 속으로 이동하며 나의 머리채를 끌어당기는듯 했다. 생전 한파 때문에 이런 고통을 느끼긴 처음이었다.


혹한에 꽁꽁 얼어붙은 황산도 갯벌

나와 안사람은 계획에 의해 헌팅을 나서기로 했는데 하필이면 그 날이 금년겨울 들어 제일 춥다는 날이었다. 그것도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한 강화도 갯벌을 선택해 놓고 있었다. 우리는 오전 11시경 서울을 출발 했는데 서울에서 일부러 늦게 출발한 이유는 정오 이후에 도착하면 날씨가 조금은 풀릴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순진한 생각들은 자동차가 올림픽대로에 접어들자 마자 슬슬 우려로 바뀌고 있는 동시에 묘한 호기심을 발동 시키고 있었다.

 
가양대교를 지나 서울을 점차 벗어날 즈음 우측으로 보이는 난지도 하늘공원 아래 한강은 하얗게 보였다. 한파에 결빙이 이어지고 있는 흔하지 않는 풍경이었다. 한강 잠실 주변의 모습과 너무 달라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자동차를 정차할만한 공간이 없거나 있어도 부적절 했다. 주말을 맞이하여 자동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올림픽대로가 끝나는 지점으로 가면 갈수록 결빙의 흔적이 더욱더 강하게 나타나 있고 한강 하류 쪽으로 이동하자 마치 남북극 바다에 떠다니는 유빙들의 모습을 보는듯 신기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을 벗어나 김포로 이어지는 한강 둑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부터는 마치 또다른 세상으로 접으드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차창 밖으로는 유빙들이 쭈욱 이어지고 있었다. 한강하류의 유빙들은 강물을 따라 서해안으로 이어지며 강화대교나 초지대교 사이로 빠져나갈 게 분명해 보였다. 초지대교 입구에서 자동차를 정차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초지대교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면 멀리 덕포진이나 초지진 근처로 유빙들이 떠내려 왔음직 했다. 예상은 적중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생전 한파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느낀 게 처음이었니 말이다. 겨우 네 컷을 촬영한 게 전부였고 그나마 이 장면들 조차 뷰파인더를 제대로 들여다 봤는지 기억이 나지않을 정도로 한파가 고통스러워 자동차로 돌아오니 살 것 같았다. 나는 투덜 거리고 있었다. "흐이구...무슨 넘의 날씨가 이래..." 히터를 가동해 둔 자동차 안에 들어서자 마자 카메라도 추웠는지 렌즈가 뽀얀 안개(?)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그래...세상 물건들은 주인을 잘 만나야 해...)


우리는 어느새 초지대교를 지나 갯벌이 아름다운 강화 황산도에 도착하고 있었다. 한강이나 임진강에서 결빙된 유빙들은 필시 하류로 이동하며 바다로 떠내려 왔을 텐데 유빙들이 머물 곳은 황산도 갯벌이 유력했다. 헌팅 장소와 딱 맞아 떨어진 게 황산도였을까. 황산도 갯벌은 혹한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우리는 마치 극지방에 발을 들여놓은 듯 흥분하고 있었다. 언제인가 캄챠카의 가을이나 겨울에 발을 들여놓거나 러시아의 어느 바닷가나 호수 곁에 발을 들여 놓으면 이런 풍경이 연출될 게 아닌가 싶었다. 또 파타고니아의 겨울이 이런 모습과 비슷한 혹한과 끔찍한 바람을 동반할 것이어서 우린 먼 우주로 여행하는 우주인들 같은 설렘과 흥분을 동시에 가진 셈이었다.


우리의 계획 속에는 늘 파타고니아의 원초적 본능과 모습을 그려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그런 모습을 카메라에 꼭 담아두고 싶었는데 혹한 속에 꽁꽁 얼어붙은 황산도가 그런 풍경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우린 이런 모습을 보면 괜히 흥분하며 먹이를 찾아 나선 순록 같이 된다. ^^)


그런데 이곳에서도 혹한이 선물한 고통이 뒤따랐다. 정말 지독한 고통이었는데 그 고통은 포스트 하단에 삽입해 둔 영상을 촬영하면서 느낀 고통이었다. 초지대교 위에서 겪을 고통과 비슷한 경험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별에 빙하기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필시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이며 시간이 멈춘듯한 지독하게 고독하고 외로운 이런 풍경 속에서 까마득한 수면 속으로 빠져들게 될지도 몰랐다.


나는 갈 곳을 찾지 못해 혹한에 떠밀리다시피 떠내려온 유빙들을 보는 순간 참 묘한 기분에 빠져들고 있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빙하기가 다시 찾아온다면 유빙들 처럼 한순간에 걸음을 멈추고 쉼을 청해야 할 것이었다.


황산도의 갯벌은 유빙들의 쉼터이자 빙하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경계지점이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일까.


평소 같았으면 맨발로 걸어야 했을 갯벌 전체는 혹한에 꽁꽁 얼어 있었고, 눈 까지 소복히 덮여있어서 절로 극지방을 떠 올리게 만들었다.


황산도 갯벌에 머문 유빙들은 그렇게 쉼을 청하며 얼었다 녹았다는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까마득히 먼 시간과 공간 저편에서 오늘날 나나 우리의 존재를 만든 선조들이 수도 없이 겪으며 봤을 장면들 앞에서, 때로는 휘몰아 치는 바람처럼 시선을 옮기다가 다시 잠든 아이 처럼 황산도 갯벌 위를 이리저리 다니며 멈추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어느새 뼈 속 까지 찔러대던 혹한의 바람과 한통속이 된 것일까.


이렇게 귀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동안 영상기록을 남기는 것 조차 깜빡 잊고 있었다. 아니 카메라 두 대를 가동시킬 엄두 조차 못느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체 일부만 드러내 놓아도 추위를 느끼는 게 아니라 고통스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정지된 장면과 함께 언제인가 다시 먼 여행을 떠나야 할 유빙들 처럼 움직이는 장면도 필요했다.


나는 약 3분간의 테잎을 촬영하는 동안 다시 초지대교 위에서 맛 본 것과 전혀 다른 혹한을 경험하고 있었다. 초지대교 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아픈 혹한의 고통이었다면 황산도 갯벌 위에서 맛 본 고통은 산고를 닮은 고통이라고나 할까. 테잎을 돌리는 동안 나 혼자서 욱~욱 하는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빙하기에 접어든 듯한 혹한 속 차림은 영상카메라를 작동하기에 매우 불편하고 부적절 했다. 두툼한 장갑을 끼고 녹화 버튼이나 정지 버튼 등을 조작할 수 없었으므로 콘티가 바뀔 때 마다 장갑을 벗어야 했다. 더군다나 줌인 또는 줌 아웃 등 장노출이 이어질 때는 죽을 맛이었다. 화면이 고르게 이동해야 했기 때문인데 그 장면이 끝날 때 마다 다시 장갑을 끼며 욱욱하며 소리를 질러댓다.


물론 엄살도 포함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엄살은 불필요 했다. 동토로 변한 갯벌 위에 나 말고 또 한사람 뿐이었는데 그나마 안사람은 나중에 갯벌로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장갑을 꼈다 벗었다 하는 행위가 이어지자 나중에는 장갑을 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맨 손으로 한 장면을 녹화하는 동안 피부가 혹한에 오그라들며 체온을 빼앗아 가는 느낌이 전해질 정도였다. 어쩌면 빙하기를 연상케 하는 이런 혹한은 체온 뿐만 아니라 영혼의 일부 까지도 조금씩 조금씩 얼려가고 있었던 것일까. 마치 꿈을 꾸는듯 몽롱한 의식 속에서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손톱 끝으로 파고든 송곳 같은 통증은 손가락을 거쳐 팔과 어깨를 지나 순식간에 뒤통수를 잡아 당기며 소리를 지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독한 혹한이었다.


영상 카메라를 가지러 가는 동안 돌려세운 안사람 모습이다. 우리 인간들은 언제인가 빙하기를 다시 만나면 동토로 변한 황산도 갯벌 위에서 처럼 잠시 머물다가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 게 아닐까. 어쩌면 이 포스트의 그림이나 영상 속에서 만난 장면들이 우리 인간들이 마지막으로 본 간빙기 속 모습일지도 모를 일이다. 냉동고에서 꽁꽁 언 모습 처럼 고통과 함께 내 기억 속에 단단히 저장 되어 있는 동토의 황산도 갯벌 모습을 열어보시기 바란다.



빙하기를 연상케 하고 우리들의 DNA 속에서 공명하고 있는 '혹한의 추억'은 선조들이 물려준 또 하나의 신음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얼어붙은 동토의 땅이나 추위를 통해 '빙하기 또는 혹한'이라는 키워드를 입에 달고 살고 있는데 모처럼 계획한 헌팅은 강화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우리 계획 전부를 취소하며 혹한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생전 경험하지 못한 혹한 속 강화도 갯벌의 모습 등을 카메라에 꽤 많이 담아왔다.
그 장면 모두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냉치냉以冷治冷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이한치한以寒治寒이라고나 할까.
 정말 기대해도 좋은 장면들이며 혹독한 겨울여행 풍경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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