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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박용하 빈소 日여성팬 '너무 많이 울었어요'

 
Daum 블로거뉴스


박용하 빈소 日여성팬 '너무 많이 울었어요'



누구인가 당신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한류스타 박용하가 팬들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려주고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지 이틀째, 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서울 강남의 카톨릭대학교 성모병원 장례식장에는 평소 그를 너무 아끼고 사랑했던 일본의 여성팬들이 대거 박용하를 조문하러 찾아왔습니다. 어떤 여성분은 나고야에서 또 어떤 여성은 오사카에서 그리고 가나가와 등 일본 곳곳에서 살고있던 박용하의 팬들이었습니다. 박용하는 한류스타가 틀림없었습니다. 그녀들의 나이는 20대 초반에서 부터 50대에 이르기 까지 다양했는데 장례식장 대기실이나 로비 등지에서 삼삼오오 모여 박용하의 죽음에 대해 매우 슬퍼하며 박용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런 풍경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운명을 달리한 박용하의 영혼이 아직도 장례식장에 머물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죽음을 놓고 슬퍼하는 팬들 때문에 행복해 하는 한편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한탄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들 일본여성들은 박용하가 일본에서 활동할 때 박용하를 열렬히 지지하고 응원해 주었던 팬들이었던 것입니다. 박용하의 빈소에 우리나라 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것과 매우 대조적이었습니다. 박용하를 잃은 그분들의 속마음이 어떤지 인터뷰를 시도해 봤습니다. 그녀들은 흐느끼며 "(오지사마-박용하 애칭-때문에)너무 많이 울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오열할듯 하면서 오지사마에 대한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조문객 대기실에서 처음만난 박용하의 일본 여성팬들의 모습은 침통해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어제 오후 현해탄을 건너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후 박용하의 빈소에 조문을 끝내고 막 대기실에서 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서로 말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약 30분간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인터뷰해 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동안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상가에서 울먹이는 조문객을 상대로 인터뷰를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마음먹고 그녀들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마치 박용하의 영혼이 나를 떠밀며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재촉하는듯 했습니다. 연예부 기자도 아닌 제가 일본의 여성팬들에게 선뜻 질문하고 싶은 내용보다 나를 주저하게 만든것은, 혹시라도 그녀들이 나의 제안을 들어줄 것인지에 대한 쓸데없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저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금방 느끼며 침통한 분위기는 금새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지사마(왕자님)로 불리우는 박용하에 대한 일본내 반응 등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질문은 극히 제한적이어서 이렇게 슬그머니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혹시...오지사마팬 데스까?..."



저의 접근에 침묵하고 있던 박용하의 팬들의 시선이 금방 제게 쏠렸습니다. 마치 누구세효?라고 하는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카메라 가까운데 있는 여성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이! 오지사마팬 데스요"
 
일단 인사를 건네니 그 다음 부터는 일사천리로 분위기가 반전되었습니다.

"그런데...누구?..."


그래서 짧은 일본어로 "와다구시와 간고꾸노 인터넷 블로거 데스"라고 하니
 
"아!...인터넷 블로거?!..."라며
 
아는듯 궁금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저녁나절 박용하를 조문하고 나서 침통해 하고 있던 그녀들의 분위기는 금방 낮선 한국 아저씨 쪽으로 급 쏠렸습니다. 아...그런데 박용하의 일본팬들의 마음을 열고 인터뷰를 시도해 볼려고 하니 쉽지않았습니다. 방금전 까지 카메라를 들이대자 마자 손사래를 치며 오지사마외에는 쳐다보지도 않을듯 한 그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박용하의 일본팬들에 대한 질문등을 미쳐 준비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설령준비를 했다고 해도 더듬거리는 일본어 실력으로 괜찮은 인터뷰를 따기도 쉽지않았습니다. 차라리 영어나 스페인어나 중국어를 할줄 아는 그녀들이었으면 한결쉬었을 텐데 그녀들은 모두 일본어 밖에 모르는듯 했습니다.그때 제 눈에 띄는 게 있었습니다.


장례식장 대기실에 조문객전용 컴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제가 누군지 자세히도 알지 못하는 그녀들이 낮선 카메라 앞에서 조문오면서 지워버린 자신들의 얼굴을 노출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가리키며 이쪽으로 함 와 보실래요?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녀들과 저를 이어주는 끈은 '인터넷' 뿐이었습니다....ㅜㅜ... 그리고 로그인한 직후 이틀전 박용하 사망 등에 대해 포스팅한 제 블로그를 열어 그녀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를 따라나선 너뎃명의 여성들이 "아...사이꼬 데스네?!...욘사마!...최지우..."를 나직히 연발했습니다. 포스트 속에 등장하는 겨울연가의 스틸과 함께 조화에 적힌 한글 이름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저의 정체를 확인한 그녀들은 그때 부터 마음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서로 미루더니 중년여성 한분이 마음을 가다듬고 박용하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분위기가 다시 숙연해 졌습니다. 저의 어수룩한 인터뷰 시도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자 마자 곁에 있던 열렬 박용하팬이 울먹이기 시작하더니 웃고 울기를 반복했습니다. 딸아이가 자신에게 써 준 위로의 편지를 보며 모두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방 머쓱해진 쪽은 저였습니다. 영상을 보시면서 눈치채신지 모르겠는데요. 카메라를 향하여 "너무 울었어요.많이"라고 우리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동료들과 오지사마에 대한 그리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한국말로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나...이럴줄 알았어...ㅜㅜ) 그래서 "한국말 잘 하시네요"라며 했더니 옆에 있는 한 언니(?)를 가리키며 제일동포라고 말했습니다. (아니!...그러면 처음 부터 그러시지...ㅜㅜ) 이런줄도 모르고 '와다구시와 어쩌구 저쩌구' 했으니 말이죠. ㅜㅜ...서두에 잠시 언급했지만 제가 연예부 관련 기사를 쓰기에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류스타 박용하의 일본여성팬들은 박용하나 배용준 최지우 등 겨울연가에 나온 케릭터는 물론 한글 등에 대해서도 열심히 연구하며 관심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죠. 인터뷰 직전 박용하의 영혼이 나를 떠밀며 인터뷰를 시도해 보라고한 듯한 느낌도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요? 

이틀째 잠시 방문해 본 한류스타 박용하가 선택한 운명 속에, 그를 기억해 주는 자신의 모국팬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는 광경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각 언론사에서 파견된 기자들과 VJ들과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조화만 잔뜩 있었을 뿐입니다. 그가 겨울연가 이후 모국을 떠나 한류스타로 거듭나며 일본의 여성팬들로 부터 왕자님(오지사마)이라는 애칭으로 사랑을 받아 왔지만, 정작 그를 낳아준 한국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의 죽음을 가슴아파하며 한걸음에 달려와 슬퍼하는 팬들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박용하가 충동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앗아간 이유는 그 혼자만이 알고 있을 테지만, 그를 위해 '너무 많이 울어준' 일본여성들을 보니 다시금 그의 선택은 옳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아침(오전 8시) 그는 겨울연가 속 그의 얼굴을 지워버리며 한줌의 재로 변하여 영면에 들어갈 텐데요. 당신을 사랑한 팬들의 슬픔을 보며 다시는 우리 연예계가 당신이 잘못 택한 길을 잇지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관련 포스트 박용하 빈소 현장인터뷰, 화난 분위기? / 박용하,빈소 취재 '일본언론' 보니 더 안타까워  
 
 

겨울연가 속 박용하여...오지사마여...부디 극락왕생 하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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