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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철조망에 갇힌 '진달래' 언론의 자유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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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에 갇힌 '진달래' 언론의 자유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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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남한산성에 취재차 들른길에 동문 뒷쪽 성곽 한쪽에서 철조망에 갇힌채 꽃을 피우고 있는 진달래를 목격했다. 일부러 진달래가 싫어서 철조망을 쳐 둔 것 같지는 않았으나 분홍빛 꽃들은 철조망에 갇혀 자유를 구속하고 있는 철조망에 대해서 아우성을 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진달래는 봄철 들이나 산이나 어디를 가나 어느때나 늘 우리들 눈에 띈 친숙한 꽃이었지만 요즘은 도시를 떠나야 볼 수 있는 꽃이 됐다. 나는 진달래를 볼 때 마다 우리나라 국화는 의미만 부여한 '무궁화꽃'이 아니라 우리네 정서속에 깊숙히 자리한 진달래가 국화였으면 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함부로 입밖에 낼 수조차 없었다. 서술이 퍼렇던 군사독재시절 지금과 같은 말은 곧 '국가보안법'에 곧잘 저촉되어 옥살이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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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평양 여성들이 지난 10월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남측 관계자들을 태운 버스를 향해 꽃술을 흔들며 환영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자료사진

당시만 해도 북한에서는 집회장소 등지에서 위 그림과 같이 진달래꽃 뭉치를 손에 들고 환호를 하는 것이어서 북한을 찬양하는 친북좌파로 비치는 것이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꼴이었다. 나는 당시 북한의 국화가 진달래로 알고 있었고, 그들은 우리 정서에 잘 어울리는 꽃을 국화로 선정함으로써 해방이후 미군에 의해 일제강점기 때 사용하던 우리 행정조직이 그대로 이어져 소위 친일파를 그대로 이용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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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1년 4월 10일에 북한은 목란(학명 Magnolia Siebolidii)을 국화로 정했는데, 이 꽃은 김일성 주석이 평양 창덕학교 재학시절인 1924년 봄 수학여행을 갔던 황해도 정방산에서 처음 발견했고, 1964년 5월과 8월 다시 정방산을 찾았다가 옛 기억을 되살리면서 김주석 사후 국화로까지 부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목란은 1972년 3월 제정된 북한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에 새겨져 있으며, 1982년 건립된 주체사상탑의 기단벽과 탑신받침대 등에도 부각돼 있다고 전한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 하다. 남한을 미제앞잡이로 부르던 북한은 지구촌에서 가장 고립된 오지와도 같이 인민들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언론을 통제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반공논리를 앞세운 군사정권에서도 여전히 언론을 통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최근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는 순간 다시금 미네르바 구속을 통하여 인터넷을 통제해 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어제 무죄 선고로 미네르바는 구곳에서 풀려나긴 했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그들의 이익을 흠집내는 듯한 언론에 대해서 재갈을 물리는가 하면 조중동의 시사를 끄적이는 기자들과 같이 정권에 편승하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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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한이나 북한 모두 '언론의 자유'는 정권으로 부터 도전을 받고 있고, 정권 배후의 힘에 의해서 국화마저도 우리정서에 걸맞지 않는 꽃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남한산성 성곽 옆에서 홀로 피고지는 진달래꽃에 걸쳐둔 철조망은 그래서 봄꽃과 같이 아름다운 우리네 정서를 구속하는 장치처럼 보였던 것이다. 자유란 반드시 신체적인 구속만 말하는게 아니란 건 세상사람 다 아는데, 유독 정권들만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다. 미네르바를 구속 기소했던 철조망 같은 검찰과 정권들은 이 글과 그림을 꼭 봐야 한다.

베스트 블로거기자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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