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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MERICA

이런 '기차' 타 보면 후회한다!




이런 '기차'
타 보면 후회한다!

나는 늘 기차를 타 보는 게 소원인 적이 있었다. 그 기차를 타면 좁디 좁은 부산바닥을 떠나 휘황찬란하게 보이던 서울로 갈 수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어른들 대화속에서 느낄 수 있는 기차속 풍경을 따라 하고 싶었다.

그 속에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지만 삶은 계란과 톡! 쏘는 사이다가 있었고 우리네 사는 모습들이 고스람히 담겨져 있었다. 어른들로 부터 전해들은 기차속 풍경들은 어린 나를 무한한 상상속으로 이끌고 있었고  마침내 나는 '참고서' 살 돈을 꼬불쳐 서울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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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임이 제일 싼 완행열차인 '비둘기호'가 역 마다 정차하는 것인 줄 그때 처음 알았지만 1박을 기차에서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를 회상하면 차라리 그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깝쭉 거릴 수 있는 돈이 내 호주머니에 있었더라면 필시 나는 비둘기호 보다 더 빠른 기차를 타고 휫파람을 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서울역에 도착한 나와 친구 둘은 서울역에 도착하자 마자 낮선 풍경에 압도된 촌놈이 되어 역전의 삐끼를 따라서 간 곳이 서울역 맞은편 달동네 였고 분홍색 전등이 어스럼하게 조명되고 있는 한 골목길에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날 저녁 우동 한그릇을 먹은둥 마는둥 하며 부산으로 내려 왔다. 나의 첫 상경기다. 자세한 이야기는 기회가 닿으면 계속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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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철도노사간의 임단협은 두 당사자 간 합의로 인하여 국민적 원성을 들을 수 있었던 '파업'은 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식을 통해서 알 수 잇는 것 처럼 두 당사자 간 요구사항들은 당장이라도 불협화음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두 당사자는 그러한 요구사항들이 결국 어떠한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국민들을 '볼모'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엔 철도노조나 사용자의 입장에 있는 코레일이 서로 주장하는 바가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지만 코레일이 내 놓은 현실적 '경제론'이  우리 국민들에게 더 다가왔다는 느낌이 든다. 코레일이 이런점을 보도자료를 통헤서 일반에 널리 알린점도 있지만 철도노조가 이런 점을 간과하고 파업에 돌입했어도 코레일 입장에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공기업이 '철도 민영화'와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할 때는 국민적 동의와 합의에 이르는 것이 수순인데 그렇지 못했고 철도노조가 해고자복직과 같은 당연한(?) 요구를 할지라도 우리사회에서는 해고자 복직 보다 더한 불합리가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당사자에게 취할 것만 취하되 속히 합의를 하라고 종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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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춘기 적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는데 그 종착역이 결국 서울역이었고 나와 동행한 친구와 투숙할 곳은 서울역전의 이상한 숙소였다. 결코 나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끔씩 우리들이 꿈꾸는 곳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그곳이 어떠한지는 가 봐야 했다. 그러나 그곳에 가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었다. 나 보다 먼저 체험한 역사를 뒤져보는 일이다.

나는 30년전에 동경과 오사카가 가까운 '구리야마'현에서 3개월을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당시 그곳에 살던 우리교민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약 30년은 더 뒤쳐져 있을 거라는 말을 했다. 당시 부산항을 애워싸고 있는 풍경들은 절영도나 황령산이나 천마산이나 초량뒷산의 모습들은 누렇게 변해 있었는데 일본도의 모습은 녹색 일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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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 기차는 세계 최대 소금사막인 우유니로 가는 길,  볼리비아 '포토시'에 주저앉은 기차로 한 때 볼리비아 전역에서 생산되던 광물 등 1차산업의 산물을 동태평양 연안의 칠레로 나르던 모습인데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때 만든 각종 항구의 철도와 닮았다.


그리고 20년 전, 우리나라에 민주화 바람이 한창일 때 오늘날 '좌빨'로 불리며 스스로 '빨갱이(?)'를 자처한 노동자(?)들의 사회적 계급이 급상승했다. 그들은 화이트컬러로 부터 '레드컬러'로 분류되며 사회적으로 한 층을 차지하고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철도노조의 파업이나 촛불집회에서 만난 그들은 그들 스스로 이 사회의 주체인 양 반대파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도 그들을 옹호하는 집단들이 생기면서 마치 그들이 촛불을 켜고 끌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촛불이 꺼진 이유를 특정 정치세력이나 특정인에게 돌리는 사람 대개가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반론을 제기하면 답하겠다.) 나도 어느덧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를 반전 시키고자 하는 반대편 집단들과 충돌하면서 일대 혼란이 빚어졌고 아직도 우리 정치현실은 이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게모니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철도노조나 코레일의 노사간 다툼을 보면서 아직도 이런 구태적인 모습을 따라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다행히도 '국민의 발'을 볼로로 행하려 했던 파업이 철회된 것 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어서 몇자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코레일 노사가 선택(?)한 일이 '파업'이었드라면 그림속 기차와 같이 타 본들 후회하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낙인 찍힐 게 분명했다. 코레일 노사가 파업을 철회해서 떠오른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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