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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Puerto Montt

270일간의 '알뜰투어' 즐긴 노하우


Daum 블로거뉴스
 


270일간의 '알뜰투어' 이랬다
-알아두면 유용하게 써 먹을 남미여행 노하우-



270일간의 남미여행...

정확히 9개월이 조금 넘는 날 수다. 우리가 지구반대편 남미대륙에 발을 디딘 이후 귀국할 때까지 걸린 날 수를 따져보니 270일. 여행이라기 보다 거의 이민 수준이다. 장거리 여행이자 참 멀고도 아득한 여정이었다. 이 여정은 평생을 통털어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힘든 결정. 빠따고니아 투어를 나서기로 마음 먹은 건 2011년 여름 어느날이었다. 계획은 세웠지만 무작정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은 미지의 세상이었다.

우리는 왕복 비행기표와 함께 1년간의 여정을 예정하고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섰던 것이다. 같은 해 10월 초에 인천공항을 통해 호주까지 직행한 다음, 그 다음부터 오클랜드를 경유하여 칠레의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북반구를 돌아간 게 아니라 남반구를 돌아 산티아고에 도착한 후 봄을 따라 (여행기 속의)뿌에르또 몬뜨까지 이동해 있는 것.

이미 필자의 여행기를 쭉 지켜보신 분들이라면 이런 여정을 익히 알고 있겠지만, 빠따고니아 투어를 계획하고 있거나 꿈꾸고 계신 분들을 위해 다시금 여정을 되돌아 보고 있는 것. 그리고 그동안 언급하지 못한 부분을 하나 둘씩 관련 포스트를 통해 언급하고 있는데, 본 포스트에서는 270일간 이어진 남미여행을 주로 어떻게 했는지 일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장담컨데 270일간의 장거리 투어는 서민투어였으며 <알뜰투어>였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것. 보다 구체적인 보고서(?)는 본격적인 <150일간의 빠따고니아 투어>가 시작되면 언급해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알뜰투어의 일면만 보도록 한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서기 전 뿌에르또 몬뜨에서는 14일간 머물렀으며 요즘 블로그에 게재하고 있는 북부 빠따고니아의 로스 라고스 주는 그 중 한 모습.



 
알뜰투어-우리는 이랬다.
 




우리가 뿌에르또 몬뜨 항구에서 가까운 중심가의 한 민박집에 머무는 동안 칠레 남부 지역의 우기는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우기의 끝은 양철지붕에서 시작됐다. 소나기 처럼 가끔씩 쏟아지던 빗줄기가 양철지붕을 다다닥 때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것.  

그러다가 점점 더 그 횟수와 소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묵직한 창을 들어 올려 창 밖을 내다보는둥 마는 둥, 우리는 몽유병 환자처럼 길을 나서는 것. 뿌에르또 몬뜨의 봄 속에는 사과꽃이 발그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우리가 이렇듯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민박집의 아침은 오전 7시부터 대략 오전 9시면 끝나기 때문이었다. 숙소를 베이스켐프로 삼고 가까운 곳을 다녀오면 녹초가 되어 곯아 떨어지는데, 서너겹의 묵직한 양모 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지다 보면, 아침을 먹기 싫은 때가 많은 것. 빵 몇 조각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 일 수도 있다. 



아침을 꼭 챙겨 먹었다

그러나 우리는 빵 몇조각에 목숨(?)을 걸었던 것.아침을 꼭 챙겨 먹었다. 우리가 머문 민박집의 아침은 치즈 몇 조각과 햄 몇 조각을 커피 또는 우유 한 잔에 버터나 잼을 발라먹는 게 전부. 빵을 별로 안 좋아하는 필자에겐 고역이었다. 맨날 밥만 먹던 꼬레아노가 어느날부터 매일 아침 빵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여간 괴로운 게 아닐 것. 

솔직히 말하면 빵 '맛짜가리'는 내가 먹어 본 빵 중에서 최악일 정도. 뿌에르또 몬뜨의 민박집 주인 마리아는 그 빵을 매일 사다놓고 구워먹는 것. 수제가 아니었다. 그런 빵을 매일 아침 먹기 시작한 게 빠따고니아 투어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고 보면 거의 맞는 말이다. 생전 처음이었다. 그같은 불상사(?)는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계속됐다.




현지식을 줄이고 자취를 즐겼다
 

그 몫을 아내가 철저히 지켜냈다. 여행지에서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둘. 하나는 숙박비를 줄이는 것과 또 하나는 식탐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 대신 우리는 싱싱한 식재료를 구입해 민박집에서 취사를 했다. 민박집은 잠자리와 샤워시설과 아침만 제공한 것. 나머지두 끼니는 주로 자취로 해결한 것이다.

마리아가 맨날 눈을 흘깃거리는 이유가 눈에 선할 것이다. (이곳에선)그 비싼 LPG렌지를 날마다 가동하면서 방값은 쥐꼬리 만큼만 책정해 놓았으니 눈엣가시.ㅋ 그러나 이같은 일은 편법이 아니었다. 민박집을 계약할 때 미리 대못을 박아 놓은 것.

하나.우리는 1일 숙박 비용을 얼마에 책정한다.
하나.매일 아침 식사를 제공받기로 한다.
하나.도미토리(공동침대를 쓰는 방) 혹은 더블베드(단독침대를 쓰는 방)를 제공한다.
하나.우리의 자취(취사)를 허락하라.




 값 싼 민박집 이용
 

무슨 거창한 선서라도 하는 것 같지만 현지에서는 방을 계약할 때 반드시 물어보는 게 있다. 도미토리 또는 더블베드를 원하느냐는 것. 그러나 남미(칠레)에서는 대부분 그런데 연연할 필요가 없다. 성수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숙소는 텅 비어있게 마련이다. 이거 매우 중요한 여행팁이다.

성수기(연말연시)때는 웃돈을 준다고 해도 방을 찾을 수 없고 비용도 평소 보다 몇 배 이상으로 엄청나게 비싸다. 우리가 뿌에르또 몬뜨에 머물고 있는 동안은 비수기. 그래서 '꼬레아노 두 사람 떠나면 어떡하지...' 하며 오히려 민박집 주인 마리아가 우리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우리는 이런 이점을 200% 활용하여 
매일 아침 식사를 제공받기로 하면서도 방값은 최저로 계약했다. 두 사람이 하루에 대략 15000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아침까지 챙긴 것. 거기에 옵션으로 자취까지 배당받았으므로 마리아는 크게 남는 장사는 아니었던 셈이다. 전부 다 남아도 15,000원이 고작. 우리는 매일 아침 마음에도 없는 아침을 먹으면서 식탁에는 빵가루 몇 조각만 남겼을 뿐 싹 다 해치웠다. 그리고 나중에 마리아가 돌아오면 '맛있게 잘 먹었다'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주로 걸었다
 

비수기 때 마리아는 아침 일찍 우리 몫의 아침을 차려놓고 버스터미널로 여행자 호객(삐끼)에 나섰던 것. 우리가 엄청 맛있게 잘 먹은 건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는 먹다 남은 빵에 잼을 듬뿍바른 다음 치즈와 햄을 넣어 버거를 만들었던 것. 이렇게 만든 치즈버거와 햄버거는 숙소를 떠나 가까운 곳을 소풍 다닐 때 음료수만 있으면 기막힌 간식이자 점심이었다.

아침에 일어날 땐 모르지만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하루종일 걷다보면 어느새 빵 맛이 꿀맛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참 별 경험을 다 한 것. 그게 비록 눈물 젖은 빵은 아닐지라도, 270일간의 여행을 알뜰하게 만들어 준 것 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가까운 거리는 주로 걸었기 때문에 시장기가 금방 느껴졌다. 






그동안 필자의 여행기를 관전하신 분들이라면 아내가 든 노란색 가방이 뭔가 싶을 것. 그 속에 버거(도시락)와 음료수와 짖궂은 날씨에 대비한 양산이나 가벼운 옷이 든 것이다. 주로 무거운 짐은 필자의 서브배낭에 매고 다녔는데, 다소 유치하게 보이는 노란색 가방은 한국에서 일부러 가져간 매우 실용적인 소풍백이었다.(쇼핑백 아님.ㅋ) 알뜰투어를 대략 정리해 보면 이렇다. 





여행지에서 줄어든 체중  

값싼 민박집을 찾아 아침을 반드시 챙겨먹고, 두 끼니는 주로 식재료를 구입하여 자취를 하는 것. 그리고 여행지에서 뭉기적 거리지 않고 하루종일 투어에 나섰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마치고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순서. 아내는 여행지에서 조차 가계부를 작성하며 출납명세서(?)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필자는 외장하드와 노트에 하루 또는 몇일간의 기록을 저장하거나 끼적이는 게 전부이자 일상이 됐다. 

이렇게 빠따고니아 투어를 마치는 동안 
체중이 10kg 이상 쑥 줄어들게 됐다. 한국에서 입고 간 바지가 커다란 자루처럼 느껴지며 핫바지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여행자의 몸둥아리가 알뜰투어에 적응한 탓도 있겠지만, 잠자는 시간 외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걷다보니 날씬한 모습으로 변해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을 정도였다. 270일간의 투어는 주로 이런 모습이었다.죽어도 잊지못할 여행은 그렇게 완성된 것.


그리고 이틀 전...




우리는 남부 빠따고니아로 이어지는 까르레떼라 오스뜨랄의 챠이까스 어촌마을 다녀왔다. 그곳은 오르노삐렌 답사를 마친 후 꼭 가 보고 싶었던 곳. 본격적인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서면 볼 수 없는 곳이어서 미리 다녀온 것이었다. 그리고 뿌에르또 몬뜨에 머무는 동안 땡글로 섬이 늘 궁금했다.




앙헬모 어시장에서 보면 그곳은 아르힐라가 숲이 우거진 곳이자, 그곳에서 뿌에르또 몬뜨 항구 등을 바라보면 특별한 감흥이 생길 것 같았다. 웹에서 땡글로 섬의 풍경은 찾기 어려웠다. 아직 덜 알려진 뿌에르또 몬뜨의 일부분이었다. 우리가 그곳을 지목하여 공략하게 된 건 앙꾸드만을 향해 늘 한 곳만 바라보고 있는 뿌에르또 몬뜨의 풍경 보다 마주 바라 본 풍경은 참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지막한 산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색다를 것. 한국에서 뿌에르또 몬뜨로 오기 전까지 구글어스를 통해 심도있게 사전답사를 마친 후였다. 우리는 챠이까스 마을을 다녀온 후 오랜만에 숙소에서 뭉기적 거리다가 점심 때 쯤 앙헬모 어시장으로 나섰다. 숙소에서 우리 손으로 해 먹는 음식은 주로 앙헬모 어시장을 이용하거나 중심가의 시장에서 식재료를 구입한 것이다. 이렇게 쇼핑된 음식들은 숙소에서 조리된 후 냉장고에 보관해 놓고 데워 먹곤 했다.




앙헬모 어시장으로 가는 길이 한가롭다.





이곳도 주말이 되거나 성수기 때라야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참 재밌는 현상은 우리가 뿌에르또 몬뜨 중심지에서 잠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면 마치 집으로 온 듯 편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다시 뿌에르또 몬뜨에 가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현지 교민에 따르면 한국에서 볼 일을 마치고 다시 칠레로 돌아가면 '고향으로 가는 기분이 들며 편안하다'고 했다. 빠다고니아 투어를 마치고 다시금 뿌에르또 몬뜨로 돌아와 보니 그 말이 실감났다. 간조 때의 뿌에르또 항구는 속을 다 드러냈고 뒤로 깔부꼬 화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건기가 시작되는 듯. 볕은 쨍쨍했다.




그리고 항구의 작은 선착장 너머로 땡글로 섬이 보인다. 좌측의 지그재그로 난 길을 통해 땡글로 섬을 둘러볼 예정.




그곳에서 뿌에르또 몬뜨를 굽어보면 장관이 연출될 게 틀림없어 보였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간조 때의 앙헬모 어시장의 휑한 모습




그동안 현지에서 사용되는 언어(스페인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행 한 번 가자고 공부까지 해야 하나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프랑스 여성들은  빠따고니아 등 남미여행을 위해 바르셀로나에서 2년동안 스페인어를 배운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장기여행에 큰 도움이 되며 여행지의 언어 습득을 통해 그 곳의 문화를 만끽하는 동시에 알뜰투어를 하기 위함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며 대가를 보상 받을 수 있을 것.




남미 대부분의 지역에서 영어는 쓸모없게(?) 변한다. 물론 호스텔이나 호텔이나 공항 등지에서는 유용하게 쓰일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바디랭귀지'가 더 빠를 정도. 따라서 필자의 블로그에 표현되는 현지 지명등은 가능하면 스페인어 발음에 가깝게 써 두고 있다. 당장 비싼 비용들여 단기간의 패키지 여행을 떠날 게 아니라면, 최소한 몇가지 옵션에 대해 말 할 수 있는 표현 정도는 미리 공부해 두는 게 낫다는 주장. 
 




재벌도 아닌데 피땀흘려 번 돈 그냥 날려버릴 것인가. 영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스페인어 습득이 별로 어렵지 않다.특히 돈 계산 등에 필요한 기수와 서수, 또는 길을 묻고 차(버스) 시간을 묻는 등의 짧은 문장이나 숙어 등을 달달 외워 상대방의 발음까지 귀에 들어오게 되면, 빠따고니아 투어는 환상적으로 다가오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사람들은 무진장 착하고, 자연은 더 없이 순결하며, 안데스의 가감없는 따가운 햇살과, 무엇이든 당장이라도 날려버릴 것 같은 바람의 땅이 만든 풍광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선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 깊숙히 발을 담그기 위해 북부 빠따고니아 로스 라고스 주에서 워밍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두달 만에 끝날 여행이 아니라 장장 270일 동안 이어질 여정이기 때문. 
<계속>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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