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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Puerto Montt

몬뜨,아득한 그리움 뒤덮은 디지털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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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그리움 뒤덮은 디지털 그림자
-뿌에르또 몬뜨의 과거와 현재-



7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가 보니...


세월 참 무상하더라. 이런 느낌을 한마디로 정의해 준 사람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살고 있는 지인이었다. 그는 산티아고에 거주한지 어느덧 10년이 더 넘었다. 그는 아이들 (교육)때문에 할 수 없이 아내와 아이를 따라 지구반대편으로 갔는 데 지금도 호시탐탐(?) 귀국을 노리고 있다. 그곳이 체질에 맞지않고 한국에는 여전히 노모가 살고있었던 것. 그러나 당신에게 산티아고 거주 10년사(史)는 말과 행동을 살짝 바꾸어 놓았다. 취중진담이 그런 것인지. 그는 필자와 '삐스꼬(Pisco)'를 주고 받는 자리에서 산티아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행님!...산티아고 있잖아예. 첨에는 디게 싫던 데. 인자는 산티아고 공항 근처에만 와도, 집에 온 거 같이 편한 거 있잖심니꺼..."

갱상도가 고향인 그는 여전히 사투리를 쓰고 있었는 데 그가 구사하는 스페인어(억양)도 '갱상도식' 스페니쉬였다. 필자는 그런 아우님이 너무 좋았다. 그는 산티아고에 머무는 동안 필자와 아내를 깍듯이 대했다. 마치 친 형님.형수를 대하듯이 우리를 반갑게 대해준 것이다. 그런데 칠레가 체질에 맞지않다던 그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던 것. 그는 산티아고가 어느덧 고향땅 처럼 변해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귀국해서 살고 싶고 또 한편으로는 산티아고 현지가 좋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일까.




그의 두 자녀 중 맏이인 아들은 칠레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딸래미는 졸업반(띠뚤라 코스-자격증 준비)이었다. 참 열심히 산 이들 가정은 이미 성공한 케이스였고. 그런 그에게 산티아고는 어느덧 제2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 얼마전 사업차 한국을 다녀간 그의 아내를 인천공항에서 배웅한 후 돌아서는 우리는 여전히 산티아고의 체취에 젖어있었던지, 그곳에서 취득한 시민권을 만지작거리며 이제나 저제나 (되돌아 갈)찬스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되돌아 가도 예전의 감동과 느낌은 전혀 없을 게 분명했다. 7년 전 우리가 뿌에르또 몬뜨 앞 바다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을 때만 해도, 다시 돌아가면 너무도 감격적일 것만 같았지만, 7년 후 다시 그 언덕 위에 서 보니 전혀 감동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실망스러웠던 것일까. 아니었다. 산티아고에 사는 지인의 고백 처럼 너무 친근할 뿐 7년 전의 감동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와 다시 마주친 뿌에르또 몬뜨 언덕 위의 오래된 목조건물들로부터 묘한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뿌에르또 몬뜨의 과거와 현재




7년 전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별로 느끼지 못했던 건 뿌에르또 몬뜨 언덕위에 천정처럼 뒤엉킨 각종 케이블이었다. 오래된 목조건물을 가로지르거나 목조건물들을 서로 이은 듯한 전깃줄과 전화선과 인터넷을 연결하는 각종 케이블들이 어지럽게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이 도시가 1853년에 세워진 것을 감안하면 대략 150여 년 만에 큰 변화를 겪고 있었던 셈인데, 그 중에서도 최근의 변화는 눈에 띄게 달라진 것.




집집마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므로, 목조건물 속에서 호롱불을 밝히고 난로에 불을 떼던 시절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에르또 몬뜨 언덕위의 목조건물들은 큰 변화가 없었다. 곧 쓰러질 듯한 집들이지만 수리에 수리를 거듭하며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있었던 것. 필자가 머물던 민박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처럼 보여도 내부는 달랐다.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오르내려도 삐거덕 거리는 법이 없다. 참 야물딱지게도 지어놓은 것.




그러나 침대가 여럿 놓인 침실은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던 침실은 아래층이 주방이고 식당이어서 우리의 동선이나 행동이 아래층으로 그대로 전달되는 것. 만약 젊은 부부 내지 신혼부부들이 우리 방에 묵게 되면 아래층은 묘한 분위기에 젖게 될 것.(삐거덕 삐거덕...^^;;)




우리는 이런 목조건물에서 두 주간을 지내며 7년 전의 그리움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동네가 달라진 점을 자세히 살펴보니 당시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동네에 살고있었는 데, 디지털시대의 뿌에르또 몬뜨 사람들은 어디로 떠났는지. 전 보다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현지의 우리 교민에게 물어봤더니 정부가 마련한 새 주택으로 대거 이동한 것. 뿌에르또 몬뜨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보다 편리한 구조의 집에서 장작 대신 LPG를 사용하고 현대식 샤워시설을 갖추는 등, 바람소리는 물론 양철지붕을 때리던 빗방울 소리까지 들을 수 없게(?) 됐다. 그곳은 뿌에르또 몬뜨 시내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시내 외곽 언덕위에 위치한 곳이었다. 주로 조립식 판넬로 지어진 똑같은 건물 속에서 사람들이 현대문명의 이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 그 체험을 우리 교민  K사장 댁에서 해 보니 마치 서울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편리했다. 장기임대주택이었다. 




하룻밤 묵는 동안 그곳이 뿌에르또 몬뜨인지 서울인지 모를 정도. 더군다나 K사장 댁은 방바닥에 전기장판을 깔아두어 뜨끈뜨끈한 온돌방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지구반대편의 음습한 기운이 넘치는 뿌에르또 몬뜨의 봄에 이런 대접을 받게 되면 기분이 좋아야 당연할 게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별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행지에서 이런 호사스러운(?) 대접을 받는 건 별로라는 생각.




우린 그저 마리아네 2층 침실에서 몸을 뒤틀 때 마다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침대 위에서, 두툼한 양모 이불 여러장을 덮고 잠드는 게 더 편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체온을 유지하며 추억을 쌓았을 이불을 덮고 있으면, 후두둑 소리와 함께 양철지붕을 다다닥 때리는 봄비 소리가 너무 좋았던 것. 가끔 아래층 주방에서 마리아와 손자가 티격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마리아의 남친과 다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뿌에르또 몬뜨의 목조 건물이 선물한 오래된 추억이자 선물이었다.

 



그런 추억들이 세월에 밀려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었던 곳이,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7년 전의 뿌에르또 몬뜨였는 데 그 추억들을 밀어낸 게 하필이면 인터넷을 연결하는 디지털의 산물이었다니. 우리는 뿌에르또 몬뜨에 머무는 동안 웬만하면 7년 전 우리가 걷던 골목길을 따라 걷는 한편, 뿌에르또 몬뜨 앞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 위에서 괜히 서성거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차 발을 디딜 미지의 땅을 그려보곤 했다.


7년 전 우리가 묵었던 집





산티아고에서 쫒기듯 부리나케 달려온 뿌에르또 몬뜨 언덕 위의 낮익은 동네의 울타리는 여전했다. 화초들은 봄을 맞아 난리가 아니었건만,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마치 꿈을 꾸는 듯 했다. 집을 올려다 보니 이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있었던 것.



"매매(VENDE)..."

집을 내 놓은지 꽤 오래됐다. 오른쪽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7년 전 우리가 묵었던 '메기네' 집이 나오고, 그곳에 서면 뿌에르또 몬뜨 앞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메기네 집 앞에 포터 한 대가 서 있다.





바로 이곳이 7년 전 우리가 묵었던 민박집 메기네...오른쪽(2층) 커튼이 드리워진 왼쪽 방이 우리가 묵었던 곳. 메기네도 목조건물 외벽을 장식했던 비늘같이 생긴 나무를 걷어내고 프라스틱 구조물과 알루미늄 샷시로 만든 창틀로 교체했다. 빈 터에 새로 짓는 집은 7년 동안 공사한 흔적이다. 7년 전 이곳에선 기초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공사기간이 길어도 한참 길다. 이유가 있었다. 메기는 노모와 함께 혼자 사는 독신녀. 메기 혼자 벌이로 과거의 모습을 털어내고 현대식 집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초인종을 누르고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전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지독한 이기심의 발로였을까. 7년 전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그랬을 것 같은...




괜히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이 든 건 되돌릴 수 없는 '7년의 세월' 때문이었을까...그 언덕에 서면 바람과 물이 노래가 된다.

바람과 물의 노래

누가

바람이 울부짖는다 했나

누가
물이 흐느낀다 했나

바람도
물도

지 혼자
우지 못하는 데

-Boramirang-





그 바닷가에 서면 괜한 그리움들이 물밀듯이 다가온다.


** 150일간의 빠따고니아 여행기는 계속 이어진다. 채널 고정!!...Feliz Año Nuevo, Feliz Navi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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