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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가슴 찡했던 경천대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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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찡했던 낙서 '슬픔 이별' 없기를


슬픈 여행이라면 떠나지 말아야 했을까. 전문 여행가가 아니라면 여행이란 게 울적할 때 기분전환도 할 겸 떠나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을 떠나서 슬플 거라면 차라리 그런 여행은 떠나지 않는 것만 못하지 않는가. 지난 11월 21일 나는 인터넷 메타사이트 '100인 닷컴'이 주관하고 '감고부가가치클러스터 사업단'의 주최로, 상주 곶감 팸투어 일행들과 낙동강 700리 최고 비경 경천대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驚天臺 우리가 발길을 옮기고 있었던 그 길은 '낙동강생태문화탐방로'였다. 경천대 관광안내도를 살펴보니 우리 일행이 걸어야 할 길이 꽤나 멀어 보이기도 했는데 안내도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낙동강 700리 최고 비경 경천대가 한눈에 조망되는 곳이었다. 나지막한 산등성이 꼭대기 위에서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내려다 보면, '경천대 驚天臺'라는 말이 뜻하는 바 정말 하늘도 놀랄만한 비경이 펼쳐지는 것일까.

 
참 궁금했다. 낙동강 제1비경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10여분 정도 걸어서 막상 전망대에 도착하고 보니 하늘이 놀란 그 자리를 목격한 나를 포함하여 일행 전부가 아무말도 하지않은 채 놀라고 있었다. 그곳에는 비경이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가 희희락락 하는 사이 낙동강 제1비경이 굴삭기와 덤프트럭 등에 의해 조그씩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보고 또 보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사이 주변을 둘러보니 일행들이 하나 둘씩 다음 코스로 이동하여 나 혼자만 남게 됐다. 참 묘한 기분이 드는 그 순간 전망대 안에 쌓아둔 돌무더기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우리 가족을 오래오래 살게해 주세요...돌무더기에 적힌 낙서를 살펴보니 사람들의 소원은 대부분 건강을 비는 문구나 사랑의 맹세 또는 자신이 다녀간 흔적 등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경천대를 내려다 보는 전망대에는 이렇듯 여행객들의 소원을 적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한 모습이었다. 울적한 마음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 본 낙서들은 닮은듯 서로다른 소원 등을 끄적여 두었다.


그런데 낙서를 들여다 보고 있는 동안 이들의 소원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충족되어야 할 사항이 있었다. 아마도 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천대는 너무도 아름다워 금수강산으로 불리우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자랑스럽고 뿌듯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이런 절경을 갖춘 곳이 몇군데나 있을까. 그래서 이들은 소원대로 오래토록 이 땅에 살면서 행복을 누리고자 염원했을 것이다. 경천대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런 염원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전망대 속에 시설해 둔 작은 바위 위에 낙서를 한 주인공들이 다녀간 시점 대부분은 최소한 1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이 경천대를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경천대는 우리 한민족의 반만년 유구한 역사동안 굽이쳐 흘렀던 낙동강 제1비경에 흠뻑 젖어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감흥은 가족의 소중함이나 부모님의 존귀함이나 애인을 둔 기쁨 등을 쉽게 떠 올렸을 법 했다.


하지만 이들이 경천대를 다녀간지 1년 후 나나 우리 일행들이 방문한 경천대는 우리로 하여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황폐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낙서의 주인공들이 지금쯤 이 사실을 알기는 할까. 이들의 소원이 대를 이어 자자손손 지켜지기 위해서는 눈 앞에 펼져진 낙동강 제1비경 등 우리 땅을, 금으로 수 놓은 강과 산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잘 보존하고 가꾸어야 마땅했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소원이나 바람등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더욱 울적해 지는 것이었다. 그들 속에는 내가 사랑한 아들 딸들도 포함된 게 아니었나.


그런 사실도 모르고 바위덩어리 곳곳에 끄적여둔 소원이나 바람들은 또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우리가족 슬픔과 이별 없기..."

그때 내 가슴을 찡하게 만든 낙서 하나를 발견했다. "우리가족 슬픔과 이별 없기..."라는 무명의 낙서였다. 아마도 이 낙서를 한 주인공은 이곳 경천대를 방문하며 혼자만 즐기는 여행이 마음에 부담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가족사에 남아있는 슬픔과 이별의 아픔 때문에 이곳을 찾았을까. 나는 이 낙서의 주인공의 가족사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낙서를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건 슬픈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를 포함한 일행들은 황폐해진 경천대를 목격 하면서 슬퍼졌던 것이지만, 낙서의 주인공은 여행을 떠나오기 전 부터 가족들 중에 누구인가를 이별한 아픔을 겪고 있었던 것일까. 그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남긴 낙서가 내 가슴을 마구마구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슬픔을 안고 떠났던 여행에서 이 주인공은 이별의 슬픔을 내려놓고 갔지만, 나는 도리어 슬픔을 하나 껴안고 경천대를 떠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지독한 슬픔이었다. 낙동강 최고 비경 앞에서 슬픔을 안고 떠나다니...


여행이란, 반드시 기쁨을 찾아 떠나는 것도 아닐 것이나 마치 의도한 것 처럼 슬픔을 찾아 떠난 뜻밖의 여행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나나 우리들 가슴에 안고 온 작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망각속으로 사라져 갈 것이지만, 하늘에서 우리에게 내려준 귀하디 귀한 보물이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는 이별의 슬픔은 또 어쩌란 말인가. 우리들 가족에게 이별과 같은 슬픔이 없어야 하는 것 처럼, 우리 민족과 반만년 동안 동고동락 해 온 낙동강 제1 비경 또한 우리 곁을 떠나는 슬픈 이별의 모습을 보지않아도 될 게 아니었나.


우리를 사랑한 낙동강 700리 제1 비경이 저만치 멀어져 가며 손을 흔드는 것 같다.


난...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슬픈 여행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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