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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하 장례,한국인인 나 너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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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하 장례,한국인인 나 너무 부끄러웠다




박용하를 한류스타로 발돋움 하게 만든 겨울연가는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일까?...박용하가 팬들의 곁을 영원히 떠나는 날 아침,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더니 마침내 장대같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며 하늘이 통곡을 하는 모습이다. 오늘(2일) 아침 7시에 한류스타 박용하가 마지막으로 떠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놓고 싶어서 그가 잠시 자리를 빌렸던 서울 강남 카톨릭대학교 성모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 보다 일찍 왔던지 박용하의 일본 여성팬으로 보이는 너댓명이 지하철 입구쪽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왠지 수선스러운 모습이었다. 어제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난 이후 박용하의 죽음이 더욱더 안타까웠다. 그의 죽음을 애닲아 하며 현해탄을 건너 한걸음에 도착하여 조문을 하던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국적은 달리해도 박용하가 한류스타로 자리매김 하기 까지 이들의 열성적인 응원이 없었던들 박용하가 오늘날 한류스타로 불리우며 입지를 굳힐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강남고속터미널 지하철역에서 빈소로 향하던 중에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육교를 건너면 바로 그 자리에 장례식장이 있는데 오전 7시경의 장례식장은 너무도 조용했다. 발인이 8시로 예정되어 있어서 나는 1시간 전에 도착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마자 장례식장 관계자가 "분당 메모리얼 파크로 가시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했다. 그리고 이틀전 장소를 옮긴 빈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의 예감은 적중하고 있었다.  



왁자지껄해야 할 장례식장은 너무도 조용했다. 식장의 조화도 모두 치워져 있었고 로비 입구 포토라인에 정렬해 있어야 했던 기자들이나 카메라가 보이지 않았다. 로비를 둘러보니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된 사정인가 하고 물었더니 황당한 대답이 이어졌다. 박용하의 발인이 오전 6시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1시간 전에 박용하의 시신을 태운 장례행렬은 이미 떠나고 난 다음이었다. 참 황당했다. 그래서 발인이 왜 이렇게 앞당겨졌느냐고 물어봤다. 모 기자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건 유족 마음대로라고 답해주었다. 맞는 말인듯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틀렸다는생각이 들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발인 시각은 오전 8시였고, 간밤에 이곳에 있는 동안(8오후 시30분경)에도 별다른 변동사항도 없었다. 따라서 발인시간은 언제 변경되었느냐고 물어봤다. 간밤에 내가 떠난 이후에 결정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럴수도 있었다. 기자의 말대로 발인은 유족 마음대로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용하는 이미 한류스타로 공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었고 박용하의 장례를 담당하고 있는 소속사 내지 유족측의 의전 처리는 공인에 준하는 예를 갖추어야 마땅했다. 당초 발인 시간이 오전 8시라면 그렇게 진행되었어야 마땅했다. 기분이 황당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딴 곳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장례식장에 도착하기 전에 지하철역 입구에서 서성이던 박용하의 일본여성 조문객들의 사정은 어쩔지 궁금했다. 그래서 맨 처음 장례식장에 도착할 때 내게 말을 붙이며 메모리얼파크로 가지않았느냐고 물었던 장례식장 관계자를 다시 만나 박용하의 발인시간 등에 대한 사정과 함께 일본인 조문객들의 행방에 대해 물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했던 문제가 관계자의 증언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박용하의 장례를 담당했던 소속사 등의 화끈거릴 정도의 무례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을 한류문화를 담당했던 소속사 등이 저지르고 있었다. 그 먼길을 한걸음에 달려온 일본의 조문객들을 내팽개친 사연과 함께 조문객을 형편없이 대한 사실이 드러났다. 관계자는 나라망신을 다 시키고 있다고 했다. 위 영상을 통해 사실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박용하의 장례를 둘러싼 씁쓸하고 부끄러운 소식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박용하의 극단적인 선택에 따른 죽음이 서서히 의문을 더하고 있었다. 혹시 한류스타 박용하의 모습은 언론이나 연예인 소속사 등이 만든 허상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 한편,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동기 속에 '한류 韓流 스타'의 애환이 숨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를 테면 겉만 뻔지르했지 흑자를 내지 못하고 전전긍긍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이었다. 사정이 그러하지 않았다면 국내팬들은 그러하다고 하지만 현해탄을 건너온 일본의 조문객을 그렇게 문전박대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 것이다. 그녀들은 포스트에 등장하는 대형 조화로 조문을 하는 한편 몸소 박용하의 영정사진 앞에서 무릎을 조아리며 눈물을 지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박용하의 빈소로 보내온 조화는 대략 80개 정도에 이르렀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조화 대부분이 박용하의 일본 여성들 팬이 보내온 것이라는게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국내에서 조차 대형 조화를 통해 조문을 할 경우 비록 상가에서 큰 대접을 받을 형편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이 하루 저녁 묵을 수 있는 숙식제공은 고사하고 끼니라도 제대로 챙겨주었어야 마땅했고, 발인시간이 앞 당겨질 경우 조문단의 명단 등을 확보한 이후 버스를 빌려서라도 발인 이후 장지까지, 또는 그들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상가의 불문율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참 부끄러운 일이자 한국인으로서 무한 책임을 느끼는 한편 한류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진 장명이었다.

 사정이 이러한데 박용하의 소속사 등 유족측은 무엇이 그리 바빳는지 당초 예정된 발인 시간을 앞당겼고 해외 조문객들의 행방에 대해서는 나몰라라는 입장으로 내팽개친것과 다름없었으므로 장례식장 관계자는 나의 물음에 답하며 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분 들은 장례식장 일은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이어서 의전 절차 등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아시는 분이므로 그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박용하의 죽음이 새삼스럽게도 말 못할 동기가 있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 일본 등지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당장 빼 먹는 곶감이 달다는 식의 기회주의가 판을 치면 종국에 설 자리가 없다는 점 깊이 명심해야 한다. 박용하의 장례를 담당했던 사람들은 해외 조문객들에게 사과조치 등을 통해 최소한 나라망신 만큼은 막아야 한다. 박용하의 죽음과 장례를 보니 겨울연가가 너무 슬퍼보이며 막을 내리는듯 보인다.   


** 관련 포스트 박용하 빈소 현장인터뷰, 화난 분위기? / 박용하,빈소 취재 '일본언론' 보니 더 안타까워 / 박용하 빈소 日여성팬 '너무 많이 울었어요' / 박용하 빈소 왜 조문객이 없었나?
 

박용하의 일본 팬들이 보내온 장례식장 입구에 늘어선, 곧 폐기처분될 조화 모습이다.
조문객 대접은 고사하고 내쫒듯 팽개치는 연예계 모습이 한류인가?...

 박용하의 죽음을 이해할 듯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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