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서울 한가운데 이런 오솔길이...!
참 반가운 일이다.
도시인들이 너 나 할 것없이 자기 밖에 모르며 살고있는 가운데, 서울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단지 한켠에서는 자기 몸을 통째로 다 내준 풀꽃들이 살고있었다. 녀석들을 좀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면 보다 초롱초롱한 눈매를 볼 수 있었겠지만, 그동안 나는 눈코 뜰새없이 바빳다. 그래서 녀석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 조차 모른채, 거의 매일 같은 코스를 따라 지하철에 몸을 싣곤했다.
지하철 속 표정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사람들은 무뚝뚝했고 콩나물시루같은 전철간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휴대폰을 들여다 보며 지하철 방송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겉으로 보기엔 전철내 방송을 모른척 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별기에 올려둔 과일들처럼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지하철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의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그대신 발걸음은 어찌나 빠른지...귀갓길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출근길의 표정과 사뭇 달랐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 너머로 여유가 묻어났다. 이들은 잠시 후 아침에 나섰던 길을 되돌아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엔 가족 혹은 연인들 그리고 피곤한 도시인들의 삶을 잠시 내려놓는 곳.
지구반대편 발파라이소에서는 그 곳을 '천국으로 가는 길'로 묘사하고 있었다. 부둣가의 노동자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덕길이었다. 가파른 언덕에 '아쉔소르'가 설치되어있었지만 그들은 기꺼이 몇 백원의 돈을 아끼며 언덕길을 택하곤 했다. 어쩌면 돈 몇 백원을 아끼기 위함이라기 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야금야금 맞보려 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금 더 빨리 가족의 품에 안겨 푹 쉬고 싶지만 이내 곯아 떨어져 다시 길을 나서게 될 것. 무거운 눈까풀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어느날 토끼풀꽃들이 시들시들해 질 때까지 나 또한 이같은 삶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비록 부두 노동자는 아니었지만, 매일 매시간이 지하철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과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누가 뭐래도 천국으로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광신도들이 외치는 것처럼 절대적인 신이 거주하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파김치처럼 늘어진 육신을 뉠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기꺼이 광신도(?)가 될 수도 있을 것. 천국으로 가는 길이 그 어떤 곳이라 할지라도 집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그건 행복한 일이다. 또 그 길에 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 강남의 오래된 한 아파트단지 공터에 빼곡하게 핀 풀꽃들은 도시인들을 향해 피어있었건만, 6월 중순이 다 된 다음에야 발견되다니...그나저나 참 고맙다. 바쁘게 사는 가운데 기억 저편으로 쫓겨간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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