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 선박일까...?"
사진은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수도 뿌에르또 몬뜨 항(港)에 정박해 있는 카페리호의 모습이다. 화물과 차량과 여객을 동시에 실어나르는 다목적 카페리호로 지난해 참사를 일으킨 세월호를 연상하면 쉽다. 규모는 서로 다를지라도 용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뿌에르또 몬뜨 항을 거점으로 하는 나비막(NAVIMAC)은 이곳으로부터 칠레의 서해안을 따라 남부 파타고니아까지 화물과 여객을 운송한다. 나비막은 육로를 통해 갈 수 없는 곳에 여행객을 실어나르며, 정해진 항로를 따라 협만(fjord)과 빙하 등 비경을 볼 수 있는 기막힌 여행을 제공하는 곳.
10년 전 뿌에르또 몬뜨 앙헬모 어시장으로 가는 길에 처음 만나게 된 나비막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여행을 꿈꾸게 만든 기막힌 선박이었다. 앙헬모 어시장 가는 길 항구 옆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러 코스와 비용 등을 물어봤는데 성수기 때와 비수기 때 차이 및 운항 횟수가 서로 달랐다. 그러나 남미의 서해안 파타고니아 지역의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엄청난 유혹을 받게 된다. 그곳은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이자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이동한 항로였다.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여행기 13편
-단돈 4천원의 기적같은 숙박비-
하지만 마음을 다잡아 놓은 기적같은 일이 뿌에르또 몬뜨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앞에 일어났다. 그곳의 민박집(Hospadaje) 하루 숙박비(15일 묵을 예정)가 우리돈 8천원(1인/4000원x2인=8천원)으로 계약을 한 것이다. 그것도 아침식사(desayuno)를 포함한 가격이었다. 비싼 비용으로 나비막을 타보고 싶었던 이유가 단박에 사라진 것. 그 과정은 이랬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부터 시작되는 5번국도는 우리나라의 경부선처럼 국토를 가로질러 길게 이어진다. 산티아고에서 칠로에 섬까지 이어지는 5번국도의 직선거리는 대략 1200km 정도되며, 뿌에르또 몬뜨까지는 1000km 정도이다. 산티아고에서 도착지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정은 대략 12시간 남짓 소요된다.
산티아고에서 오후 7시 30분경에 출발한 우리는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하는 심야버스를 이용했다. 여행지에서 이동 중에 심야버스를 이용하면 경비가 크게 절약된다. 첫차를 타고 여행지에 도착하면 아무런 할 일도 없이 하루 숙박비가 날아(?)가는 것. 우리는 사전 계획에 따라 여행지로 향했다. 그곳은 이름만 들어도 설렘 가득한 파타고니아 땅이었다.
칠레의 5번국도는 우리나라의 경부선과 달리 시야가 뻥 뚫린다. 남하하는 버스 좌측으로 안데스가 길게 이어지고 있고, 안데스 아래로 칠레의 농촌 풍경이 길게 이어진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때문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곳.
칠레는 복 받은 국가가 틀림없다. 안데스를 중심으로 전 국토의 길이가 4200km에 달하는 칠레는 년중 안데스에서 발원한 강물이 철철 넘친다.
그 강물들은 칠레 곳곳을 촉촉하게 적시며 농업국가의 튼튼한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 5번국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 풍경들은 주로 이런 모습들이다.
우리는 재빠르게 남하하는 봄을 쫓아 동시에 부지런히 이동하고 있는 것. 창밖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면서 창밖의 경치도 사라졌다. 눈을 붙여야 할 시간. 침대좌석을 펴고 긴 단꿈에 빠져든다. 이번에는 (심야버스)사정상 침대좌석을 구했다. 낮 시간이라면 꿈도 못 꿀 일. 침대좌석은 두 다리를 길게 뻗을 수 있지만 단점도 없지않았다. 고속도로와 맞닿은 버스 아래로 소음이 들리는 것. 그러나 여행지에서 비용을 아끼는 건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을 덤으로 줄 것이기 때문에 참을만 하다.
버스는 경유지 몇 곳을 돌아 마침내 뿌에르또 몬뜨로 가까워졌다. 뿌에르또 몬뜨는 안개로 자욱한 가운데 도로 옆으로 아르힐라가 꽃이 만발을 했다.
감개무량한 아침이 시작됐다. 10년 전의 여행지를 다시 찾게 되다니...!
단돈 4천원의 기적같은 숙박비
뿌에르또 몬뜨는 아직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버스가 시내로 진입해 천천히 터미널로 이동중인데 우리는 그곳에서 운 좋게도 민박집 할머니 한 분을 만나게 됐다. 그녀는 산티아고에서 출발한 심야버스가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호객을 하고 있었던 것. 터미널에 내려 여행정보를 찾고 있는데 말을 걸어왔다.
"세뇰,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민박집을 구하고 싶습니다.세뇨라...!"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의 수도 뿌에르또 몬뜨의 버스터미널 내부 모습. 고속버스와 시내버스 및 시외버스를 이곳에서 탈 수 있다.
거래(?)는 우리돈으로 1인당 1만 5천원 정도로부터 시작됐다. 싼 가격에 묵으려면 도미토리(dormitory-공동침실)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 세뇨라는 침대 세 개짜리 도미토리를 통째로 주겠다며 흥정을 시작했다.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가난한 여행자라서 큰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못된다고 대못을 박았다. 그러자 흥정이 시작됐다. 1인당 1만원만 주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해 왔다.
* 10년 전 추억을 묻었던 장소에서 내려다 본 뿌에르또 몬뜨 버스터미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방 하나에 2만원이면 거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가난한 여행자'가 아닌가. 그래서 역제안을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 이틀 묵을 게 아니라 보름 정도는 체류할 예정이라며 빅딜을 시작한 것. 세뇨라는 고개를 갸우뚱이며 속셈을 하고난 후 "좋다"며 그렇게 하자고 했다.(빙고~^^*)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10년 전 추억의 현장을 둘러보다
미리 일러두지만 여행을 끝마치고 다시 이곳에 돌아왔을 땐 사정이 급변했다. 방값이 급등해 흥정 따위는 생각할 수 없었다. 방 하나에 8천원짜리(?) 하던 게 7만원 달라는 것. 나중엔 가격을 낮게 책정한 미안함과 달리 방법도 없어서 결국 5만원(2인 1실)까지 흥정해 묵을 수 밖에 없었다. 비수기 때와 성수기 때 차이가 이런 정도이자, 성수기 땐 차편마저 쉽게 구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하게 된다는 점 참조하시기 바란다.
우리는 숙소에 여장을 풀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길을 나섰다. 그곳은 버스터미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이었다. 10년 전 우리가 묵었던 숙소를 나서면 코 앞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곳을 따라 뿌에르또 몬뜨 시내를 둘러보는 것.
뿌에르또 몬뜨가 달라진 점은 버스터미널을 증축해 현대화한 것 뿐 사람들 사는 모습은 예전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사진 뒤로 버스가 있는 곳이 숙소로 이어지는 곳이다. 참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곳.
잠시 시장을 둘러보고 이번에는 앙헬모 어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흐드러진 꽃 너머로 바둑이 한 마리가 잡생각(?)을 하는 풍경과 마주쳤다. 녀석은 운 좋게도 거리의 개 신분을 면한 듯 하다.
앙헬모 어시장으로 가는 입구에서도 바둑이 한 마리가 도로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녀석은 칠레에 흔한 거리의 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앙헬모 어시장 가는 길 왼편으로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면서 맨 먼저 보고 싶었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여기가 '뿌에르또 몬뜨의 전부'라고 말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변 풍광이 너무 아름다운 곳.
뿌에르또 몬뜨 항구 주변도 달라진 게 없었다. 사람들은 땡글로 섬으로 소풍을 가거나 보트놀이를 즐기는 곳.
시간이 참 느리게 가는 곳이 뿌에르또 몬뜨의 풍경들 같다.
그곳에서 나비막을 만나고 보니 다시금 가슴이 설레는 것. 저곳에 몸을 담으면 평생토록 잊지못할 파타고니아를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것. 육로와 바닷길과 하늘길 중에 우리가 택한 건 배낭을 짊어진 육로였다.
우리가 뿌에르도 몬뜨에 머무는동안 자주 들렀던 앙헬모 어시장은 어패류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흔치않은 크기의 조개와 각종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상인 한 분이 어깨에 짊어진 백합조개 속살 3개만 있어도 훌륭한 해산물 버거 내지 마리스꼬(Marisco)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우리는 주로 해산물을 이곳에서 구입했고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마늘 등은 뿌에르또 몬뜨의 시장을 이용했다. 숙소에서 제공되는 아침은 치즈 혹은 슬라이스햄과 잼을 빵에 싸 먹거나 발라먹고 커피 한 잔이며 끝이다. 한국에서 먹던 토종식단이 아니라서 아침을 먹은둥 마는둥 했지만, 숙소를 계약할 때마다 미리 옵션으로 챙긴 게 우리가 직접 취사를 할 수 있는 지 여부였다. 150일간의 투어 때 식사를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바둑이 한 마리. 녀석은 풀꽃 사이에 코를 박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파타고니아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한데 깜둥이 너머로 한 노숙자가 나무 밑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거리의 개 한 마리와 노숙자 한 사람...장주(莊周)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이 단박에 오버랩된다.
녀석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 지 헥헥거리며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북부 파타고니아의 한 모습 가운데 거리의 개가 있다.
숙소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졌을까. 산티아고의 베가 중앙시장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과일과 채소는 엉망이었다. 이 가게를 둘러보는동안 과일과 채소에 곰팡이가 피고 곪아 터진게 쉽게 눈에 띄었다. 어쩌면 지금쯤 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사를 잘 못하는 곳. 그 물건 더 썩기 전에 이웃에 좀 나눠줄 생각은 없나 보다.
뿌에르또 몬뜨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있었다. 광각렌즈로 담은 이 집은 뿌에르또 몬뜨 원도심의 한 풍경인데 사람들은 점점더 신도시 지역으로 이주해 가고 있었다. 오른쪽 골목 위 어느 포터가 주차한 곳이 10년 전에 묵었던 숙소이며, 언덕 너머로 뿌에르또 앞 바다가 펼쳐지는 곳. 다 낡은 2층짜리 목재 가옥은 팔려고(Vende) 내 놓은 집이다. 이곳에 머무는동안 쉽게 눈에 띄는 광고가 뿌에르또 몬뜨의 변화를 실감나게 하고있었다.
앙헬모 어시장을 들러 장을 본 후 숙소에 들렀다가 저녁 무렵 다시 뿌에르또 앞 바다로 산책을 나섰다. 그곳에서 한 연인의 모습을 만났다. 이곳에선 흔한 광경이다.
바닷가를 따라 뿌에르또 몬뜨 중심가 앞까지 가면 거대한 조형물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별을 앞둔)두 남녀의 표정을 보면 매우 우울하거나 슬퍼보인다. 이곳에서 머무는동안 여러번 마주친 이들의 표정은 지금까지 선뜻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런데 뿌에르또 몬뜨를 떠나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게 또한 이 작품이었다.
산티아고에서 5번국도를 타고 질주하듯 남하한 뿌에르또 몬뜨의 하루는 참으로 길고 긴 여정이었다. 여행자는 한시라도 발을 땅에서 떼면 가시가 돋히는 듯 피곤한 줄도 모르고 싸돌아 다닌 하루였다.
배가 고파온다. 숙소로 돌아가면 해물스튜와 흰쌀밥으로 저녁을 떼울 것. 샤워를 끝내면 금방 곯아 떨어진다. 숙소로 돌아가면 말을 걸며 반기는 세뇨라...그런데 하루 숙박비 8천원을 지불하고 환대를 받으니 괜히 미안해진다. <계속>
*이틀간 촬영된 나머지 여행사진은 동영상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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