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깜둥아 거기서 뭐해?
-풀꽃과 깜둥이-
ㅋ 깜둥아 거기서 머해?...
ㅋ 깜둥아 거기서 머해?...
뿌에르또 몬뜨 시장과 터미널을 오가면서 늘 걷던 인도를 벗어나 언덕 위에 핀 풀꽃들에 한 눈 팔렸다. 그곳에는 노란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었는 데 색깔이 너무도 선명한 모습. 이같은 풍경은 산티아고에서 뿌에르또 몬뜨까지, 다시 빠따고니아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지구반대편 칠레의 봄은 전부 노랑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줌의 흙이라도 있는 곳에는 틀림없이 풀꽃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풀꽃들이 살고있는 동네에는 여지없이 '떠돌이 개(사실은 영역내에 머물며 안 떠돌아 다님)'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기견'이라고 부르는 바둑이들이 대략 남미 전체에 퍼져 자유롭게 살고있는 것.
우리는 이들을 유기견 내지 반려동물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남미에서는 하나의 '인격체'나 다름없다. 버려진 듯 인간들과 함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 하나 이들을 간섭하는 법이 없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풀꽃들이 마음대로 피고지는 것 처럼 이들에게도 도시는 물론 시골에서 조차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 그런데 뿌에르또 몬뜨의 작은 언덕길 옆에서 마주친 녀석의 표정은 달랐다. 파릇한 풀숲에 퍼질러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듯. 그 장면을 보자마자 셔터음 하나를 날렸다. 그리고 한마디.
"ㅋ 깜둥아 거기서 머해?...^^"
"...(흠...아저씨, 봄날이 저만치 가고있구먼유...!)"
풀꽃이 가득 핀 그 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풀꽃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들풀들도 인간들을 하찮게 여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있는가. 빠따고니아 투어를 통해 이런 물음들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식물들의 생각을 말하는 건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금기시 된 사회적합의다. 오로지 인간들만 '사고'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동물이라는 것.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서 인간 만큼 어리석은 생물 내지 동물들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지구별에서 지능적으로 제일 똑똑하다는 인간이 종교를 통해 내세를 믿는다는 것. 또는 믿어라고 강요 하는 따위.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과정에서 내세의 삶에 집착하는 모습을, 풀꽃이나 들풀의 입장 내지 바둑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둑이도 웃을 일 아닌가. 이만한 심각한 일도 드물 것. 그래서 다시금 인간의 사고 속으로 들어가 보면 윤회를 통한 '라이프 싸이클'에 스스로를 얽맨 형국이다. 예컨데 지구별의 생물들이 재화질량의 법칙에 따라 융합과정을 되풀이 한다면 인간이 또 다른 생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말.
그 때, 당신은 다시금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믿는가. 어쩌면 '윤회의 싸이클'은 생각 보다 너무 빠른 시공 속을 맴돌지도 모른다. 수 십년 전에 돌아가신 당신의 부모님이 풀꽃의 요정으로 환생할 수 있는가 하면, 안타깝게도 바둑이나 냐옹이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 그 때, 그 바둑이나 냐옹이를 발로 걷어차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 말 못 하는 바둑이나 동물들이 얼마나 가슴 아파하겠는가. (한 때, 내가 니 애미 또는 애비였다...ㅜ)
또 풀꽃을 함부로 꺽어 장식을 해 놓고 아름다움을 말하는 사람들. 그 풀꽃의 요정들이 당신을 잉태하고 낳았던 부모님이라고 한다면 그게 아름다운 행위일까. 세상 모든 일을 인간들 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 또한 없다는 것.
필자는 '150일간의 빠따고니아 투어'를 통해 과학적 사고로 잃어버린 대자연의 위대함을 발견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머리 속에 든 얄팍한 지식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거추장 스러운 장식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지식의 노예가 되면 바둑이와 교감은 커녕 풀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며, 그냥 하찮은 동물이나 들풀 정도로 여기게 될 것 아닌가.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는 일은 대자연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혜안을 찾는 일이며,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신성을 되찾는 일이자, 장차 돌아갈 대자연을 소중히 지키는 일. 천국은 하늘 저 편 우주 너머에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란 걸 다시금 재인식 하게 된 것이다. 발 아래 또는 인간의 발길이 덜 닿은 빠따고니아 땅에서 천국의 모습을 본 것. 그게 남미 인디언의 피 속에 녹아든 대자연의 노래였다. 중남미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시인이자 작가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필명,Gabriela Mistral)'은 그 모습을 <예술가의 십계명>에서 맨 먼저 이렇게 설파했다.
"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그녀의 연보에는 뿌에르또 몬뜨에서 가까운 지역 '떼무꼬(Temuco)' 여자중학교 교장의 이력이 기록돼 있다. 그곳은 스페인 군대의 식민 침탈에 350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한 '마푸체 인디언'들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떼무꼬를 중심으로 그녀의 행동반경이었던 뿌에르또 몬뜨는 물론 빠따고니아는, 오늘날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인데 최소한 100년 전에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이들의 문화와 피가 뒤섞인 한 시인의 오감을 통해 그려진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곧 '신의 그림자'였다. 남미여행을 행복하게 해 줄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가 신의 그림자를 이해하는 게 아닐까.
** 150일간의 빠따고니아 여행기는 계속 이어진다. 채널 고정!!...Feliz Año Nuevo, Feliz Navi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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