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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Puerto Montt

[남미여행] 신의 얼굴과 마법의 공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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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Puerto Montt,신의 얼굴과 마법의 공책-



잠 못 이루는 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상처는 더 깊어진다.


여행자가 조언하는 한마디 말이다. 빨리 잊어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더라. 세상은 그렇더라. 내 맘대로 되는 게 있는가 하면 목숨을 걸어도 안 되는 게 있더라. 그럴 때 목숨을 걸고 세상에 대항하면 목숨은 바람에 날리는 티끌처럼 사라지더라. 그 때 온 몸으로 맞섰던 풀꽃들의 모습을 보라. 그들은 결코 한 순간 불어닥친 바람에 대항하지 않더라. 영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찰라의 몸짓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아는 자연이더라. 바람이 불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바람이 불면 옷깃을 여미고 비가 오시면 우산을 받쳐드는 게 인지상정. 그런 본능을 누가 가르쳤던가.

지난 주, 사흘동안 컴 앞에 앉아 숨 죽여 어깨를 들먹거렸다. 왜 그랬는 지, 나도 모른다. 다만, 그 눈물이 없었드라면 두 번 다시 세상은 나와 인연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 눈물은 만병의 통치약이자 '안전밸브'같은 것이었다. 어느날 멀쩡한 코에서 코피가 쏟아지는 현상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코피는 혈압의 도피처인지 모르겠다만, 눈물은 삶을 지탱해 주는 크나큰 보물이었다. 기쁨의 눈물이나 슬픔의 눈물 모두 처한 상황에 따라 하늘이 내려다 주신 선물일 것.





돌이켜 보면 그건 전부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선물. 태(胎) 중에서 어머니의 희노애락을 먹고 자란 아이에게 부여한 '코드' 같은 게 눈물이나 코피 같았다. 지난 한 주간 우리는 그런 느낌으로 살아온 것 같다. 어머니께서 태 중에서 느낀 세상사 전부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 아마도 그런 것들 때문에 어머니께선 태 중에 나를 잉태하고 계셨을 적에, 너무도 답답하여 어디론가 뛰쳐 나가고 싶었을 것. 그게 필자('나'라고 한다)에게 어머니의 숨결처럼 다가왔다.


이런 거 때문에 태 중의 아이에게도 '태교'를 했던 지. 150일간의 빠따고니아 투어(현지 발음은 '뚜르'라 한다.) 여행기를 끼적이면서 기회의 땅 남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작은 참고서 하나를 마련했다. 무작정 남미로 떠나는 것도 좋겠지만, 기왕이면 장차 자기가 머무르게 될 미지의 땅에 대해 얼마간 이해를 하고 떠나면, 여행의 묘미가 짜릿함 이상의 오르가즘을 선사하게 될 것.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너무도 평범하게 지나치게 될 풍경들이 어머니의 품 처럼 정겨워 질 것이며, 애인의 품 처럼 뜨겁게 불 타 오를 것. 중남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시(詩) 한 편을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집'이라는 시이다.







상이 차려졌다 아들아
크림의 고요한 흰색과 함께 

그리고 네 벽에는
질그릇들이 푸른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다.

 

여기 소금이 있고
기름은 여기, 
가운데는

거의 
말을 하고 있는 빵

 


빵의 금빛보다 더 아름다운 금빛은 
대나무나 과일엔 없으니 
그 밀 냄새와 오븐은 끝없는 기쁨을 준다. 

굳은 손가락과 부드러운 손바닥으로 

우리는 더불어 빵을 쪼갠다 
귀여운 애야 

 

검은땅이 흰꽃을 피워내는 걸
네가 놀라운 눈으로 보고있는동안 

빵을 가지러 가는 네 손을 낮추어라  
네 엄마가 자기의 손을 낮추듯이

 

아들아! 

밀은 공기로 된 것이고 
햇빛과 괭이로 된 것이란다.

 

그러나 이 빵 
신의 얼굴이라고 불리는 이 빵은 

모든 식탁에 놓여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그걸 갖지 못했다면  

아들아 
그걸 건드리지 않는게 좋고 

부끄러운 손으로 
너는 그걸 가져가지 않는 게 좋다.

 

아들아 ! 
굶주림은 그 찌푸린 얼굴로 
타작하지 않은 밀을 휩싸며 회오리친다. 

그들은 찾지만 서로 발견하지 못한다.
 

빵과 곱사등이 굶주림은

 
그러니 
그가 지금 들어오기만 하면 발견하는 것이니 
우리는 이 빵을 내일까지 먹지말고 놔둘 일이다.
 

캐추어 인디언은 닫는 법이 없는 문을
타오르는 불로 표시하고

그리고 굶주림이,
몸과 영혼이 잠 들때까지

-가브리엘라 미스뜨랄-




요즘 내 책상 앞에는 전에 볼 수 없던 잡다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위 사진에서 처럼 '150일간의 빠따고니아 여행, 집필 스튜디오'라고 거창한 이름 때문에 생겨난 작은 몸짓 하나. 사진을 잠깐 설명해 볼까. 돋보기 안경 밑 두툼한 잡기장은 티스토리(Tistory-Daum)에서 선물해 준 다목적 노트다. 참 잘 만든 공책.
 
나는 이 공책을 보조가방 속에 넣어두고 빠따고니아 투어 끝까지 지참하며, 날이면 날마다 일어나는 투어 중의 메세지를 빼곡하게 기록했다. 공책 한 장을 넘기면 그곳에서 마법이 일어난다. 이 공책 한 권과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듯한 400GB에 달하는 사진이 '150일간의 빠따고니아 투어'를 여러분들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자, 앞서 언급한 어머니의 숨결같은 숙명적 기운이 뿌에르또 몬뜨의 오래된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것. 뿌에르또 몬뜨는 그런 곳이었다. 마법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神의 얼굴'이라 불리는 빵 한 조각

뿌에르또 몬뜨에서 두 주간을 머무는 동안 우리는 거의 매일 아침 빵과 커피를 먹게 됐다. 민박집과 (구두)계약을 할 때 조식이 포함되었으므로 아내는 반드시 챙겼다. 아침을 먹기 싫을 때도 아내는 우리 몫의 빵과 치즈 등을 챙겼다. 그렇게 챙겨두거나 챙겨 먹은 아침 때문에 불필요한 주전부리는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챙겨둔 빵 속에는 치즈 조각과 함께 민박집 안주인이 특별히 챙겨준 고급 수제햄이 잼과 함께 들어있었다.

민박집 안주인 '마리아 후레시아('마리아'라 칭함)'는 우리에게 매우 각별했다. 우리는 비수기 때 당신의 집에 찾아 온 손님이었기 때문. 그러나 마리아는 우리가 머문 두 주 동안 손님 이상 가족처럼 여기며 단 한번도 아침을 제 때 차려주지 않을 때가 없었다. 설령 우리가 늦잠을 자는 때라도 우리 몫의 빵과 치즈 등은 늘 준비해 두고 외출했다. 10월 중순의 뿌에르또 몬뜨는 봄이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음습하고 쌀쌀했으며 가끔씩 비를 흩뿌렸다. 그 때 마다 양철지붕에서 다다닥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침만 되면 대부분의 집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집집마다 (꺼진)난로에 불을 붙여 집안의 난방을 하는 건 물론 물을 끓이는 등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장작 한 두개만 넣어두어도 주방은 물론 금새 그 열기가 목조건물 2층까지 훈훈하게 전달되었다. 우리는 잘 달궈진 난로 위에 해물이나 쇠고기 등을 넣은 수프를 끓이는 일을 매일 반복했다. 그리고 우리 몫의 빵을 적당히 구워 치즈와 잼 등을 넣어 먹거나 남은 빵으로 도시락을 만들었다. 베이스캠프를 떠날 때 요긴하게 쓰일 치즈버거 내지 햄버거는 그렇게 완성됐다. 만약 우리 몫의 빵을 먹지않으면 어떻게 될까.




신의 얼굴이 도란거리는 뿌에르또 몬뜨의 아침

그 빵은 다음날 그대로 아침 식탁에 오른다. 절대로 버리는 일이 없는 것. 따라서 고소한 냄새가 폴폴 풍기는 잘 구워진 빵을 맛보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몫의 빵을 해치우는 게 바람직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내가 빵을 챙겨 도시락을 만들었을 줄 꿈에도 몰랐을 것. 우리가 아침을 먹는 동안 마리아는 단 한차례도 우리 식탁 주변을 서성거리지 않았다. 손님에 대한 배려였으며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을 주방에서 챙겨다 먹었다.

마리아는 60세가 조금 넘은 나이의 할머니였지만 매우 부지런했다. 그녀는 아침 일찍 빵과 우유 등을 준비해 놓고 뿌에르또 몬뜨 터미널로 나가 여행자를 찾아 나섰는 데, 텅빈 민박집의 아침은 빵 냄새와 함께 오래된 목조건물에서 풍기는 나무 냄새와, 난로에서 삐져나온 연기 냄새가 이리저리 어우러져 웬지모를 아늑함을 연출하기도 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나면 약속이나 한 듯 민박집을 빠져나와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그곳은 뿌에르또 몬뜨의 아침이 펼쳐진 곳이자,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이 노래한 '집' 속에 살고있는 '신의 얼굴'이 곳곳에서 도란 거리는 곳이었다. 우리는 민박집에서 아침을 맞이했을 것이지만, 오래전부터 이곳에 터를 일구고 살았던 사람들은 아이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빵의 소중함과 존귀함을 가르쳤을 것. 빵은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공기와 볕과 농부의 손길을 거쳐 만든 '신의 얼굴' 그 자체였던 것. 우리는 그 신의 얼굴을 작은 가방에 담아 들고 뿌에르또 몬뜨 곳곳을 살피고 있었다. 









 





























...

여행을 행복하게 해 주는 건 발품이더라. 하루 종일 걷고 또 걷기를 반복하다 보면 지구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대부분을 내 것으로 만들며 어느덧 현지에 동화되고 있었다. 우리는 뿌에르또 몬뜨의 아침이 시작되자 마자 민박집을 나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우리가 잊고 살거나 잃어버린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오래된 작은 도시. 그곳에서 장차 다가올 빠따고니아의 향기를 맡고 있었다고나 할까.

뿌에르또 몬뜨 앞 바다가 잘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올라 내려다 본 저 멀리...그곳이 우리가 떠나기로 작정한 여행지였다. 7년 전...우리가 뿌에르또 몬뜨 바닷가 언덕 위에서 벼르고 별렀던 곳이다. 어쩌면 두 번 다시 다가오지 못할 기회일 지도 몰랐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는 법. 당신이 작정하고 하늘이 허락해야 비로소 빵 한 조각이 완성 되듯 여행 또한 그랬다.

우리는 빵 한 조각과 물병 하나에 의지하여 두 번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를 '찬스' 앞에서 매 시각 발품을 팔고 또 팔았다. 그 때 마다 카메라의 메모리칩 속에는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이 노래한 '신의 형상'이 빼곡하게 자리잡게 됐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는 건 '신의 모습'이며, 신의 모습을 느끼거나 보게 해 주는 원동력은 '빵'이었다. 참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세상에서 이 보다 더 위대한 것도 없는 풍경 앞에 서면, 스스로 작아지면서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드는 곳. 그곳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두 주간의 뿌에르또 몬뜨 여행이자, 빠따고니아 투어를 위한 베이스캠프의 여정이었다.

** 150일간의 빠따고니아 여행기는 계속 이어진다. 채널 고정!!...
성탄을 축하하며 행복한 새해 되시기 바랍니다~...Feliz Año Nuevo, Feliz Navi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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