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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

고대 장인 多利는 고급 패션 디자이너?


Daum 블로거뉴스
 


백제 천년혼 깃든 무령왕릉 들여다 보니
-고대 장인 多利는 고급 패션 디자이너?-


지금으로 부터 약 1,500여 년 전 백제국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틀전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송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거울 '방격규수신수문경 方格規矩神獸紋鯨'을 놓고
 여성이 무덤 까지 챙겨가는 물건이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한 적 있다.
무령왕릉에는 왕비가 생전에 사용하던 청동거울 세 개가 동시에 출토된 바 있다.

청동거울은 왕비나 여성들이 애지중지하던 물건이었음을 짐작하게 만드는 것이며,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들이 아끼는 물건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성들이나 사람들은 무덤까지 챙겨갈 귀중품은 무엇이란 말일까. 사람들의 상상력이 발휘되면서 댓글에 남긴 글들을 보면 세월이 참 많이도 흐른 것을 알 수 있고, 시대에 따라 가치도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먼저 여성이 무덤 까지 챙겨가는 물건이라는 포스트를 읽고 쓴 댓글을 살펴볼까.


댓글들...요즘은 휴대폰 가져가도 돼요 ^^ 거기 거울기능도 있거든요 ^^ 가기전까지 전화하고 픈사람한테 연락은 하고 죽고 거울보고 죽어야지요 ^^ ㅎㅎ/ㅎㅎ 답글들이 무슨 퀴즈 같습니다. ㅎㅎ 여자는 거울을 챙겨 가면~ 남자는? 아! 저는 노트북! ㅎㅎ/저게 거울인가요? 우린 컴퓨터 가지고 가야겠어요. 그래야 이웃 방문도 하고 블로그도 하지요? ㅎㅎㅎㅎㅎㅎ/국보를 손수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영광을... ㅎㅎ 거울이라.. 저라면 뭘 무덤에 가지고 갈까 생각해 보게 하네요 ㅎㅎ 저는.. 빈손으로.. ㅎㅎ/거울보고 물어 보니 제가 제일 예쁘다고 하네요.ㅎ 올리신 댓글들 넘 재미있네요.ㅎㅎ/예나 지금이나 여성의 본능이라는건 변함이 없나 보네요. 거울을 무덤까지......ㅎㅎ; 사실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고 봐야 하는데 말이조../제 아내에게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뭘가져 가야 할까요. 평생 좋았던 추억들일 것 같아요./여자에게 있어 거울은 아마 평생을 따라다니는 물건 같아요./그래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ㅋ

거울을 가지고 들고 가는게 아마도 거울을 통해 생전의 자신의 모습을 담아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글을 읽으면서 저두 한번 생각해 보내요~~ 내가 죽으면 뭘기자고 갈까~~~라고 생각해 보니~~ 전 배개를 들고 갈랍니다~~편안하게 배고 죽는게 최고~~ㅋㅋㅋㅋ/그렇군요. 아내에게 멋진 손거울 하나 사줘야겠단 생각이 퍼뜩 스치네요....ㅎㅎ/요즘엔 거울을 좋아하고, 입도 가볍고, 수다도 잘 떠는 남자들도 참 많은 것 같아요. 여자와 남자가 많이 다르지만 여자들도 예전과 많이 달라지긴 했고요. 개성시대~라고나 할까요? 제가 일하는 곳은, 남자들의 수다가 여자들의 수다보다 더 굉장하답니다. 특히 '뒷담화'와 가벼운 입은.....hahaha~

거울이군요 요즘으로 따지면 명품핸드백구두가 아닐까요 ㅎㅎ/ 제가 아는 분은... 정말 5분마다 거울 한번 씩 보더라구요.. 여성에게 거울은 핸드폰 같은 존재인가 봅니다./아.. 죽어도 예뻐야돼...여자의 비애인가요? ㅎㅎ/울 와이프는 가방은 꼭 챙겨갈듯합니다..ㅎㅎ/저는 여자인데 거울이 없고요..ㅎㅎ 핸드폰은 괘않을것 같네요~~ㅎㅎ/거울이라..^^ 전 카메라를 가지고갈거같아요..ㅎㅎㅎ/정말 고분출토품들을 보면 거울이 많이 나왔네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여자는 죽어서도 가꾸고 싶은 여자인가 봅니다./저도 제목만 보고 무덤까지 가져갈꺼.. 음.... 보석??? 하고 생각했는데 거울이라니... ㅎㅎㅎㅎ 저는 라디오 하나 들고 가고 싶습니다. ^^


(별명은 생략한) 댓글들을 챙겨보니 대략 위와 같은 모습들이다.
그런데 댓글 속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뭘까...
그래서 비교해 보기 쉽게 꽤 긴 댓글들을 나열해 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무덤이라는 무거운 배경이 포함되어 있는 포스트 임에도 불구하고
거울이라는 주제 앞에서 깔깔 거리며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한편 거울 대신 거울이 달린 휴대폰 내지 노트북 명품핸드백 구두 가방 카메라 라디오 심지어 베개를 들고 가시겠다는 블로거분도 계셨다. 무령왕릉에서는 베개도 출토되었다. 또 평생 좋았던 추억을 가지고 가시겠다는 분이나 거울을 통해서 아내와 사랑을 다시한번 확인해 보는  매우 낭만적인 분도 계셨다.그러나 각양각색의 개성 넘치는 사람들의 모습 속의 공통점은, 죽음을 떠 올리게 만들며 주검을 안치 할 무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죽음은 전혀 남의 일 처럼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생명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막상 무덤 앞에서는 죽음이 자신과 무관한 듯 태연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사실 하나 때문에 1500년 전 백제국의 왕족 등, 오늘날 우리는 시공만 달리할 뿐 여전히 같은 생각들을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백제국의 왕비 또한 여성이 무덤까지 챙겨가는 물건이 (청동)거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지난 1971년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발굴된 무령왕릉 속에는
 백제국의 왕족 내지 군주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동방의 투탕카멘왕 무덤이라 부를 수 있는 대단한 유적이었다.

 충남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의 발굴 당시를 재현해 둔 무령왕릉 모형관 속에는
백제국 왕족 내지 군주(백제국의 정사와 야사 때문에 이렇게 표현 함)가 사용한 부장품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또 실물들은 국립 공주박물관에 그 모습 그대로 잘 보관되어 있었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1500년 전 무덤 속 주인공이 몸에 걸치거나 입고 다니는 등 사용했을 부장품들이
오늘날 패션을 무색케 하는 고급 예술품이라는 것이었다.
익히 아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 모습들이 얼마나 생생했으면
무덤 속 곳곳에 널린 부장품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그 주인공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며 
백제의 천년혼이 깃든 게 그대로 드러나 보일 듯 했다.

그들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들 다수를 그대로 무덤까지 가져간(?) 것이며
마치 타임켑슐을 열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백제국의 무령왕과 왕비는 패셔니스트들이었을까.


왕족들의 복식은 일반인과 달리 권위를 상징하는 것 등으로 서로 구별된다는 것 쯤은 알고있었지만
출토된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장인들의 손길이 어느새 가슴 가득 느껴지는 것이다.
다수 장인들과 함께 살았을 그들 고대 백제왕국 사람들의 패션감각은
일반의 상상 보다 더욱더 뛰어났을 거라는 생각은 어쩌면 당연해 보일 정도였다.

그 중 한 두개만 살펴보자...


포스트를 읽고 내려오는 동안 펼쳐진 무령왕릉 속 모습에 눈을 휘둥그래 뜬 분들은, 명품을 아시는 분들일 것이며 패션감각이 뛰어난 분들이 아닌가 싶다. 요즘 백화점 등 명품시장에 내 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거나  뛰어난 예술품이 틀림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은 국보 제 157호로 지정된 금빛 찬란한 '왕비 금제 귀걸이'와 국보 제160호로 지정된 '다리작명 은제 팔찌' 등을 보고 있다. 이런 장면은 초딩 때 부터 역사나 국사를 공부하면서 수도 없이 마주쳤을 거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런 부장품들의 가치 등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선생님이 설명을 통해 아무리 강조한다고 해도 시험에 나오지 않는 역사에 귀를 기울였겠나. ㅋ ^^ 또 귀걸이나 팔찌 등은 여자들의 전유물 정도로만 생각했지 패션용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사내 자식이 어떻게 알아차렸겠나. 그러나 세상을 꽤 오래 살다보니 이런 물건들이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한편, 인간의 초라한 모습을 기막히게 감출 수 있는 마법의 물건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리작명 은제 팔찌는 그 중 매우 특별한 디자이너(장인 多利에 붙인 현대적 호칭 )에 의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500년 전 고대왕국에서도 특정 디자이너가 만든 물건이 왕족 등이 지닐 수 있는 고급 패션 팔찌였던 것일까. 지름 8.0㎝ 팔찌에는 음각명문으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州主耳

"
경자년(庚子年, 520년) 2월에 다리 라는 장인이 대부인(大夫人), 즉 왕비를 위하여 이 팔찌를 만들었다"

경자년庚子年은 서기 520년으로 왕비 서거 6년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作多利'는 일본 법륭사 삼존불을 영조한 지리止利와도 통한다고 말하고 있다. 백제가 오늘날 공주나 부여 등 특정지역 등 좁은 영토를 중심으로 흥망성쇠를 거듭한 사실이 아니란 말이다. 아울러 세련된 부장품 하나만으로도 서해바다를 사이에 두고 백제국을 이루고 있던 광활한 지역(고구려땅 요하 지역에서 오늘날 동남아 까지)에서, 오늘날 디자이너로 불리우는 옛 장인들의 이름이나 활동이 널리 전파되고 보급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정교하게 만들어진 금제 귀걸이를 보는 순간 당시의 주조기술 내지 세공기술이나 예술품을 만드는 미적 감각은 오늘날 보다 자유롭고 신선해 보이는 동시에, 귀족들의 패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들은 다양한 모티브로 넘쳐나고 있었다. 물론 오늘날 현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귀걸이 등 유품들은 치렁치렁하여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소품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부장품들이 오늘날 이름만 떠들썩 한 채 실용적이지 못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제한된 패션작품과 달리 귀족들이 즐겨 사용했던 패션용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귀족들이 일상에서 자주 사용한 매우 실용적인 패션용품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승에서 못다 누린 부귀영화 등을 하늘 저편 까지 이어보고 싶은 욕망이 무덤 속 까지 이어지는 등 , 부지불식간에 친숙하게 즐기게 된 부장품은 고인과 함께 자연스럽게 무덤 속으로 따라가게 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동시에 드는 것이다. 마치 오늘날 인터넷을 즐기시는 블로거들이 죽음과 주검 내지 무덤이라는 무거운 키워드에 대해 별로 대수롭지않게 생각하며 깔깔 거리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그게 모두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로 불러야 마땅한 백제국 장인의 예술적 감각과 이들 예술작품을 즐기는 고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문화이므로, 백제인 내지 우리 선조님들의 패션감각은 가히 코스모폴리탄틱할 정도로 뛰어난 민족같다는 생각이 든다. 백제의 천년혼이 깃든 무령왕릉이 내게 전해준 메세지며 고대왕국 백제의 최고 디자이너 다리 등 장인들이 보여준 예술혼이 남긴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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