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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KTX, 너무 빨라도 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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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너무 빨라서 탈이야


참 빨랐다. 서울 용산을 출발한 KTX는 호남선을 타고 목적지인 전북 김제 까지 약 2시간만에 도착했다. KTX는 물론 호남선 열차를 타 볼 이유나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막상 처음 타 본 KTX는 총알처럼 빨랐다. 정확히 약속 시간에 맞추어 김제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겐 너무 빨라서 탈이었다. 속도 등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고 빠른 속도 때문에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변화시킨 이 열차는 빠르고 편리함을 제공해 주고있었지만, 동시에 빠른 속도 때문에 호남선을 타고 느낄 수 있는 열차여행에 대한 느낌은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서울 용산역에서 오후 3시 20분발 KTX를 타고 2시간 동안 내 카메라에 담긴 차창 밖의 풍경이 그랬다. 용산역 플렛폼을 천천히 출발하는가 싶더니 금새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KTX는 이내 바람을 가르며 총알처럼 변했던 것이다. 그래서 차창 밖으로 펼쳐질 늦가을 풍경은 호남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 대부분을 앗아가고 있었다. KTX가 너무 빨라 탈이었던 셈이다. KTX를 타고 가는 동안 카메라에 비친 그 짧은 풍경을 들여다 볼까. ^^ 





KTX 너무 빨라서 탈이야


용산역 KTX 승강장에 들어서자 마자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이 '비 내리는 호남선'이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서 창밖으로 비가 내리면 만추의 이 계절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할 것인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기차여행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KTX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비라도 오시면 그 풍경은 또 어떨지 매우 궁금했다. 총알같이 질주하는 KTX가 빗줄기 속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완행열차 타고 여행하는 느낌과 또다른 느낌을 줄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는 오시지 않았다.


마치 뱅기 속 풍경 처럼 잘 정돈된 KTX(이하 '기차'라 부른다. 한영문을 바꾸는 일이 귀찮네.ㅜ)좌석은 순방향(기차가 나아가는 방향)과 역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인터넷으로 예매된 좌석은 순방향이었다. 만약 역방향 좌석에 앉으면 기차가 너무 빨라 누군가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끌려가는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했다. 느려 터진 완행열차는 좌석을 돌려 놓고 일행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도 하고 낮선 사람과 속을 털어놓을 기회도 있을 것이지만, 총알같이 빠른 기차간에서 그런 풍경을 연출해 놓으면 왠지 누군가 뒷덜미를 잡아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않을까.


그래서 시험을 해 봤다. 승객들의 좌석이 절반 정도 밖에 차지않았기 때문에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 역방향 좌석에 앉아보니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멀미를 심하게 하시는 분들은 역방향으로 질주하는 기차간에서 가끔 구토증세를 보인다고 하니 총알같은 기차는 그런분들에게 여행의 추억은 고사하고 고역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강을 도하(?)하는 시간은 거의 눈 깜빡할 시간 정도였다.


창밖의 풍경들이 이렇게 쏜살같이 아니 총알같이 사라지는데 느긋하게 차창 밖의 풍경을 살피며 기차여행을 한다는 건 무리였다.


기껏 풍경을 잡았다 싶으면 금새 휙 사라지는 풍경들이었다.


차 창에 비친 내 카메라의 모습을 잡는데도 꽤나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후의 햇살이 좌석의 그림자를 창에 적당히 투영되어야 했는데 차창밖 풍경들이 금방금방 바뀌고 있어서 적당한 기회를 노려야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빨리 갈 수 있기도 했지만 내겐 기차가 빨라도 탈이었던 셈이다.


더군다나 호남선을 따라 총알같이 이동하는 기차 속에서 본 호남선 주변은 소음 등을 막기위한 방벽들 때문에 그나마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마치 수도관 처럼 생긴 배관 속을 통과하는 기분이랄까. 그런 느낌이 잠시 사라졌다고 느낄 때 기차는 어느새 서대전 근처를 달리고 있었다. 곧 편평한 평야지대가 펼쳐질 것인데 그땐 호남선만이 지닌 풍경을 보여줄 것인가.


마침내 가을걷이가 끝난 농촌의 풍경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런 풍경 몇몇을 일부러 찾으려면 찾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승객들 대부분이 점잖게 앉아서 책을 보는 등 조신한 모습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기차여행을 하듯 카메라를 들고 요기조기를 살피는 모습은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았고, 쓸만한 풍경은 빠른 속도 등의 이유로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다.


총알같이 빠른 이런 기차속에서 잃어버린 풍경 하나가 더 있었는데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던 기차간에서 만났던 먹거리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작은 가트에 삶은 달걀이나 사이다 등 음료수나 과자를 싣고 무시로 기차간 통로를 다니던 '홍익회' 아저씨들 모습이 필요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 기차에도 여전히 그분들이 있고 레스토랑도 있다. 하지만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계란을 까 먹는 등 게걸스러운 모습이 필요나 할까.
 

기차여행을 통해 먹거리가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에서 부산 또는 서울에서 목포 등지로 느리게 가던 완행열차였던 비둘기호나 무궁화호 등을 타고 긴 여정의 시간이 필요했을 당시에는 일부러라도 승차전에 미리 음식을 먹어두었다. 미처 그럴 여유가 없었다면 홍익회 아저씨 가트를 통해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었으니 그때 풍경은 마치 영화속 회상 장면 처럼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었다. 세월도 빠르고 이 기차는 더욱더 빨랐다.


GO~~~~~~~~~~~~~기차 안은 고요했다. 마치 뱅기 처럼 시공을 가르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서울에서 금새 멀어지며 해 떨어지는 김제평야에 나를 내려 놓았다. 내가 마지막 본 김제평야의 낙조가 드리워질 시간은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찰라 같은 이 짧은시간 동안 호남선을 타면 떠 올릴 '비 내리는 호남선'이나 '목폭의 눈물'이나 '대전발 영시 오십분' 같은 눈물 어린 노래들은, 이미 흘러간 대중가요가 아니라 역사 저 편 아득히 먼곳으로 사라져 버린 추억의 한 장면이었을 뿐이다.

KTX 너무 빨라서 탈이야




















총알 같이 빠른 기차 속에서 순방향에 몸을 실었지만 흐트러진 장면 처럼 얼떨떨하다.


나를 싣고 온 기차 옆에서 마지막 앤딩 장면을 촬영하고 있으니 승무원이 짧은 한마디로 나를 배웅했다.


"...아저씨...이 차 금방 떠나거덩요..."

승무원은 내가 잠시 내려 촬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찰라...


나를 태우고 온 기차는 금방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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