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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얼떨결에 들어가 본 보물 제2호 '보신각'



얼떨결에 들어가 본 보물 제2호 '보신각'
-부시 방한 찬.반집회 소식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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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10시경,
 촛불시위대의 강제해산을 위하여 경찰들이 종각네거리와 보도를 막고 선 바람에
얼떨결에 '보신각' 울타리를 넘게 되었습니다.

이미 보신각에는 먼저 울타리를 넘은 시민들이 보신각에 걸터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도 종로3가 쪽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경찰들이 막아 선 울타리를 넘어서
난생처음 보신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보신각을 관리하시는 분이 보신각에 들어 온 시민들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저는 보신각에 들어서자 마자 소실된 숭례문을 떠 올리며 이곳에 출입한 사실을 두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서 함부로 출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재미없는 고백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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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소실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일어난 불상사이고 보면
일신의 편리를 위해서 함부로 드나드는 일은 삼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물론이구요.
다행히도 시민들 몇이 보신각을 점유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보신각에서 부시 방한반대와 이명막퇴진이라는 손피켓을 들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구요.

그런 한편,
보신각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곳이고 제야의 타종 행사 등 특별한 경우에만 개방되는데
평범한 제가 마음놓고 보신각에 들어간 사실만 두고도 영광이었습니다. ^^

보물 제1호는 '흥인지문'이고 국보 제1호는 서울숭례문이었는데
보물 2호가 보신각이라는 사실은 일반인들이 배워서 잘 알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보물 제2호는 보신각이 아니라 '보신각 종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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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종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85년까지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다.

조선 세조 14년(1468) 만들어 신덕왕후정릉 안에 있는 정릉사에 있었으나,
그 절이 없어지면서 원각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이후 종루에 보관했다.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게 되면서 보신각종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서 보관 중이다.

총 높이 3.18m, 입 지름 2.28m, 무게 19.66톤의 큰 종이며,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다.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어깨부분에서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지점부터 입구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 있다.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를, 종 입구 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2줄의 띠를 두르고 있고,
종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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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은 2번의 화재를 겪으면서 원형에 손상을 입고,
음향도 다소 변했으나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문화재청의 보물 제2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일반인들이 쉽게 범접해서는 안 될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서울지하철을 탈 때 마다 늘 각인되고 종각 근처를 지나칠 때 마다 떠오르는 '보신각'으로
얼떨결에 올라가게 만든 장본인은 '부시의 방한'이었습니다.

그가 뜻밖의 선물(?)을 안긴 것이죠. ^^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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