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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

patagonia,여행지 200배 즐기게 한 발품



 www.tsori.net


Puerto Montt,Patagonia CHILE
-여행지 200배 즐기게 한 발품-



"여행지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로스 라고스 주의 수도 뿌에르또 몬뜨는 남부 파타고니아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투어에 앞선 베이스캠프나 다름없었다. 처음부터 아무런 워밍도 없이 찬물속으로 첨벙 뛰어들면 자칫 비명횡사(?)도 할 수 있는 것. 여행지도 그런 곳이었다. 바닷가나 수영장 등지에서 입수 하기 전 발목이나 가슴부터 천천히 적시는 과정이랄까. 뿌에르또 몬뜨에 머무는동안 한국에서 챙겨온 여행 자료와 현지에서 챙긴 여행정보 등을 하나씩 챙기며 장차 만나게 될 여행지를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운 좋게도 우리가 묵은 숙소에서 그런 정보들을 쉽게 챙길 수 있었다. 숙소의 주인 할머니와 그녀의 파트너(중국계 칠레인)로부터 혹은 할머니의 사위로부터, 파타고니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된 것이다. 할머니의 사위는 현지 언론사에 근무하고 있는 방송기자(periodista)였다. 그는 뿌에르또 몬뜨 주변은 물론 이미 다녀온 칠로에 섬(Isla Chiloé) 등에 관한 정보와 파타고니아 사람들의 문화에 대해 일러주곤 했다.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여행기 14편

-여행지 200배 즐기게 한 발품-


우리는 이곳 민박집에 장기 투숙자이지만 싼값으로 얻게된 방값에 비하면 횡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기자도 사라져가는 뿌에르또 몬뜨의 원도심에 대해 적지않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문화가 점차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세계인들의 뉴스를 매일 접하고 있었고, 그들이 매일 아침 혹은 저녁나절에 난로에 불을 지피는 일이 매우 불편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사람들은 기회가 닿으면 호시탐탐 가스렌지와 가스난로가 설치된 신식 주택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했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영화촬영 세트장같은 뿌에르또 몬뜨의 원도심 목재주택들. 뒤로 땡글로 섬 꼭대기에 아르힐라가꽃이 샛노랗게 물들었다.



뿌에르또 몬뜨의 원도심 일부분


그러나 여행자의 눈에 비친 뿌에르또 몬뜨는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 그 사랑이 결실을 맺든 맺지 못하든 그건 상관할 바가 아니다.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아름다운 추억이 첫사랑으로 포장돼 평생을 함께 가는 것. 사람들은 현대에 이르러 너무 쉽게 잊고 너무 빨리 포기하는 일이 점점더 늘어나고 있었다. 사랑할 때는 아무런 이유도 없고 그냥 무조건 좋았던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상대의 작은 흠집이 '이별의 조건'으로 다가서며 무조건 싫게 되는 것. 당신의 장애까지 사랑할 때와 너무 달라진 것이다.



*함석집 앞에 서 있는 한 노인과 검둥개 한 마리. 이곳은 아직도 함석공예 장인들이 남아있다.


뿌에르또 몬뜨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서면 입항하던 선박들이 반대편으로 사라져(참 특이한 항구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것 같은 이치랄까. 뿌에르또 몬뜨 원도심의 색바랜 목재 주택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면서 10년 전의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그게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이곳에 머무는동안 사라지거나 잊혀져 가는 뿌에르또 몬뜨의 옛모습(원형)을 찾아 나선 것. 알뜰여행으로 시작된 '여행지 200배 즐기게 한 발품'은 그렇게 시작됐다. 




뿌에르또 몬뜨 원도심의 한 부분. 저 언덕 너머로 뿌에르또 몬뜨 항구와 앙헬모 어시장이 자리잡고 있고, 좌측으로 이동하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 머물면서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앙헬모 어시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한 주택에 사과꽃이 흐드러진 모습. 담장을 떠받치고 있는 받침목이 이곳 사람들의 삶을 짐작케 한다. 주택 대부분은 목재로 지어졌고 난방이나 취사를 난로에 의지했지만 매우 느린 속도로 현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곳.




이곳의 한 소방서에서 만난 소방차 앞의 심벌이 눈에 띈다. 이 소방서는 1951년에 창립된 유서깊은 소방서인데 심벌속에 그려진 구형 소방차의 모습이 아득하다.




뿌에르또 몬뜨 원도심이 급격히 변화를 겪고 있는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곳 원도심에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한국에 비하면 매우 느린 변화이자 인터넷은 형편없는 속도지만, 10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앙헬모 어시장에 들러 해물을 조금 구입한 후 다시 땡글로 섬으로 가는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돌아오는 길에 과일 몇 개를 삿다. 비록 겉모양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 과일은 꽤 맛있는 배다. 생김새와 육질은 우리나라 배와 다르지만, 한 입 배어불면 단물이 입안 가득하며 갈증이 단박에 사라진다.





땡글로 섬으로 가는 선착장에서


뿌에르또 몬뜨 항구와 앙헬모 어시장으로 가는 입구의 작은 공원에 설치된 큼직한 앵커(닻)가 인상적인 곳. 이곳 또한 10년 전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이어서, 이곳에서 머무는동안 어시장에서 장을 보면 거의 지나다니다시피 한 낮익은 곳. 이곳에서 맞은편으로 눈을 돌리면 땡글로 섬으로 가는 정겨운 선착장이 나타난다.




이곳은 작은 협수로를 가운데 두고 땡글로 섬으로 가는 선착장의 풍경이다. 조금 전 뿌에르또 몬뜨 항으로 카훼리호가 입항한 다음 땡글로 섬에서 뿌에르또 몬뜨로 보트를 타고 이동한 사람들과 관광객들. 구글어스를 펴 놓고 이곳을 살펴보면 뿌에르또 몬뜨 항의 입지가 (전략적으로)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지금은 썰물 때여서 거의 바닥을 다 들어낸 것 같은 협수로 한 쪽에 설치된 등주(燈柱)를 참조하면 대형 선박이 입항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바닷가를 산책하는동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만치서 입항을 준비중이던 카훼리 한 대가 고속으로 질주해 오는 게 아닌가. 뿌에르또 몬뜨에 머물면서 자주 봐 왔던 풍경에 따르면 대형 선박들은 밀물 때를 맞춰 입항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한 카훼리는 바닥을 보일 것 같은 협수로를 향해 질주(?)해 오고 있는 것. 그 장면을 동영상(슬라이드쇼)에 담았다. 또 몇 장면은 이런 모습이다.




멀리서 다가오는 카페리호는 선착장 앞 두 등주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대형 카페리호가 통과할 수 있는 수심이 될까...?




저만치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다가오는 카훼리 한 척...! 등주를 보면 바닥을 드러낸 것 같은 저수심이 느껴진다.




그런데 거침없이 달려온 카페리는 물살을 가르며 뿌에르또 몬뜨 항으로 돌진하며 속도를 멈춘다. 여객선의 무게 중심과 흘수선을 참조하면 놀라운 모습이다. 카페리호 뒷꽁무니 쪽 땡글로 섬 선착장에 있는 작은 보트가 조금 전 뿌에르또 몬뜨 선착장에 도착한 미니 여객선이다.




땡글로 섬으로 가는 선착장...!




조금 전 카훼리호가 입항한 후 미니여객선이 도착한 풍경. 뿌에르또 몬뜨와 코 앞에 보이는 땡글로 섬을 이어주는 작은 보트의 편도 요금은 우리돈으로 400원에서 800원 정도로 학생들과 성인의 요금이 다르다. 선착장을 출항하면 대각선 너머로 보이는 땡글로 섬 마을 앞까지 데려다 준다. 대략 10분이 채 안 걸리는 짧은 거리.




소수의 여객이 오가는 선착장에서 우리는 땡글로 섬을 다녀오기로 마음 먹었다. 10년 전에는 그저 저 섬의 한쪽만 둘러보았을 뿐, 땡글로 섬 꼭대기가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그곳에 서면 앙꾸드 만(灣) 너머로 장차 우리가 떠날 여행지가 아스라히 펼쳐지는 곳이기도 했다.




수평선 너머 길게 이어진 산군(山群)들 사이로 기나긴 여정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선착장에서 돌아서는 길에 바닷가를 내려다 보니 바닷바람에 사랑의 향기가 실려온다. ^^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우리는 다시 버스터미널에 들러 여행정보를 챙긴다. 뿌에르또 몬뜨 버스터미널도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지만, 시내 버스나 도시 근교로 가는 버스는 터미널 구석에 배치돼 뚜렷한 양극화를 보인다. 장거리로 가는 손님일수록 대접(?)을 받는다.





바둑아 거기서 머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거리의 개 한 마리. 녀석은 이방인이 다가서도 꿈쩍도 하지않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녀석을 보자마자 "바둑아 거기서 머(뭐)해?"하며 말을 걸었다. 물론 대답을 할 리 없는 녀석. 샛노란 풀꽃이 돋아난 작은 언덕 위에서 녀석은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녀석의 거처는 길가 풀밭이었고, 길을 나선 여행자 또한 귀가하기 전까지 임시 거처만 있을 뿐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이 길은 수도 없이 뻔질나게 다닌 곳. 오래된 도시 한쪽으로 미니버스들이 쉼 없이 다니는 곳이며 낮익은 길이다.




언덕 위에서 돌아보면 조금 전 우리가 다녀왔던 뿌에르또 몬뜨 시내 한모퉁이가 보인다.




도시는 허름해 보여도 도시 한켠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풀꽃들은 여전히 싱그롭다. 사람들이 변화를 추구하면서 도태를 자처하고 있지만, 풀꽃들의 삶은 수 억년 전부터 지금까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 언덕 위에 서면 식물의 세상이 인간계를 내려다 보는 곳.




인간이 남긴 문화의 흔적은 퇴색하지만 자연은 여전한 곳. 뿌에르또 몬뜨 원도심은 사람들의 향기가 점점 더 매말라 가고 있었다. 편리함을 가장한 디지털 문화의 그림자가 지배하기 시작한 땅.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神의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신은 정말 죽어버린 것일까...!





다시 찾아간 10년 전의 흔적 


우리는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대충 차려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곳은 10년 전의 추억이 고스란히 박재된 언덕. 산티아고에서 뿌에르또 몬뜨에 도착했을 때 맨 먼저 찾고 싶었던 그 언덕이다. 가로등 불빛이 발그레 비춘 곳이 오래 전에 묵었던 곳. 달라진 것이라곤 먼저 묵었던 집 앞뜰에 공사중이던 집이 겨우 외형을 갖춘 것 외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말한다. 청춘들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모든 것을 걸겠지만 그건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현재가 쌓여 과거가 되고 미래의 외형을 갖추게 된다는 건 다 아는 사실. 그 언덕 위에 서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 지 넌지시 알게 된다.  여행기를 끼적거리면서 [여행지 200배 즐기게 한 발품]이라고 써 둔 건 세상엔 공짜란 없는 법이나 다름없는 말. 여행에 맡긴 긴 시간만으로도 얼마나 귀한 시간적 투자인지 모른다. 뿌에르또 몬뜨에 머물면서 한시도 쉬지않고 발품을 파는 이유가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형편은 10년 전 보다 편리하고 넉넉한 지 모르겠지만, 10년 전 보다 더 행복하다고 차마 말 할 수 없다. 10년 전 옛날이 더 그립고 소중한 데는 미래의 세상이 더 나을 것이란 막연한 환상만 있었을 뿐이었던 것. 그때 더 사랑하고 더 아껴주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삶이었다면, 미래 보다 현재의 삶이 더 소중하고 값어치 있었다는 걸 뿌에르또 몬뜨 언덕 위에서 다시 깨닫게 된다. 여행지에서 하루는 먼 미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소중한 시간들이다. 아침이 밝으면 우리는 다시 길 위로 떠난다. <계속>



내가 꿈꾸는 그곳의Photo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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