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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6.10 독립만세 '터' 아세요?

6.10 독립만세 '터' 아세요?


지난주 촛불행진을 따라서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동십자각 앞에서 돌아서 종로로 오는 길이었다.
촛불행진의 모습과 달리 평온한 인사동과 종로의 밤거리를 걷다가 단성사 앞에서
보도곁에 서 있는 작은 비석을 보게 되었다.

우연히 눈에 띈 것이지만  평소 같으면 지나치게 될 뻔한 비석이었다.
그 비석에 쓰여있는 '6.10 독립만세 운동 선창터'가 눈길을 끌었다. 

6.10 독립만세 운동은 1926년(丙寅年)에  행해져서 '병인 만세운동'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을 뒤적여 보니 역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조선 황제의 국장일을 맞아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는 과거 3·1운동의 일을 거울삼아
매우 민감하게 경비에 대비하였다. 조선총독부 산하 전경찰과 일본군 5000여명이
경비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8시 30분경 황제의 상여가 종로 단성사 앞을
통과할 때 중앙고보생이 전단을 뿌리며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에 모든 민중이 호응하여 관수교, 황금정 3정목(3가), 훈련원, 동대문 동묘(東廟),
청량리에 이르는 상여통과 예상 연도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만세운동은
그 후 전국으로 전파 확산되어, 순창, 군산(이상 전라북도), 정주(定州 평안북도),
홍성, 공주(이상 충청남도) 등지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고 전해진다.

이 운동으로 "서울에서 이병립, 박하균 등 200여명이 체포되었고,
전국적으로는 1000여 명이 동모자 또는 관련자로 체포, 투옥되었다.
이 만세운동은 3·1 독립운동만큼 전국적이지는 못했으나, 여전히 우리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민족운동이었다."고 하는데

6.10 독립만세 운동은 상당히 조직적으로 진행된 만세운동이어서
 당시 선조들의 일제에 대한 반감이 어떤 정도였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주동자는 연희전문의 이병립(李炳立),
박하균(朴河鈞), 경성대학의 이천진(李天鎭), 천도교의 박내원(朴來源),
권동진(權東鎭), 양재식(楊在植), 손재기(孫在基), 박내홍(朴來弘), 백명천(白明天),
YMCA의 박두종(朴斗鍾), 중앙고보의 이선호(李先鎬), 이광호(李光鎬), 이황희(李晃熙),
사회주의 측의 권오설(權五卨), 김단야(金丹冶), 이지탁(李智鐸), 박민영(朴民英),
인쇄직공으로 민창식(閔昌植), 이용재(李用宰), 김항준(金恒俊) 등이었다.  
권오설은 자금을 조달하였고, 박내원은 전단지 살포와 연락을 담당하였다.
양재식, 이용재, 백명천 등은 안국동 감고당(感古堂) 민창식의 집에서
10만매의 전단지를 인쇄하였고, 태극기도 준비하였다. 전단의 내용은 우리의 교육은
우리들 손에 맡겨라, 일본 제국주의를 타파하라, 토지는 농민에게 돌리라,
8시간 노동제를 채택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3·1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시민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황제 국장일을 거사일로 택하였다."고 한다.

그냥 지나쳐도 될 뻔한  6.10 독립만세 운동 선창터는
요즘 서울 한복판에서 일고 있는 촛불집회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서 몇자 옮겨 보는 것이다.



 독립만세가 외쳐졌을 당시와 현재의 모습은 너무도 다르지만
독립을 염원하는 우리민족의 소원에 대해서 귀를 막고 있는 일제의 모습과,

우리 국민들이 광화문네거리에서 연일 촛불집회로 대정부 시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딴청을 피우며 시민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거나 할테면 해봐라식의 정부대응책이 너무도 닮았다.

내일이 되면 '6.10항쟁' 21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6.10 항쟁의 의미는 독립만세를 부를 때와 성격이 좀 다르다.
군정으로 부터 6.29선언을 이끌어 내고 '민주'를 이끌어 낸 역사적인 날이다.
이 날에 맞추어 촛불집회는 전국적으로 100만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촛불집회는 미국산광우병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되었지만 마침내 '정권퇴진 운동'으로 변하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촛불집회에 대해서 정부가 귀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의 요구는 광우병쇠고기를 벗어나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6.10독립만세 선창터가 눈에 띈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해방후 6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국민주권'에 대한 정체가 불분명하여
권력의 주체인 시민들을 거리로 내 모는 정부와 여당 때문이었다.

지금 이시간 까지도 시민들의 평화로운 집회를 '폭력시위'로 몰아가는 작태는  
6.10독립만세 선창터에서 외친 선조들의 외침을 다시 길거리로 불러 모으는 일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일 전국을 뜨겁게 달굴 촛불집회의 모습이 벌써부터 가슴을 뛰게한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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