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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나와 우리덜

노동당 박은지,외눈박이 세상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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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세상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의 죽음에 부쳐-



그녀는 왜 세상을 등진 것일까...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인터넷에 로그인 하기 무서운 나라가 대한민국인가. 오늘(8) 오전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의 죽음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다. 사인은 자살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녀의 꽃다운 나이 35세를 감안하면 마음이 편치않아 블로그 앞에 앉았다. 은지 씨(이렇게 불러보고 싶다)의 주검을 발견한 건 9살난 아들내미였다.

은지씨의 죽음이 보도된 기사를 보는 순간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엄마를 흔들어 깨우는 장면이 단박에 연상됐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늘어뜨린 엄마의 모습은 아들의 가슴에 평생토록 트라우마로 남을 것만 같았다. 아직은 큰 충격을 느낄만한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자라면 자랄수록 아들의 마음 속은 엄마를 앗아간 세상이 똑바로 안 보일 게 틀림없다. 두 눈을 가진 아들내미는 외눈박이들만 설쳐대는 세상이 온전해 보일 리 없을 것.

필자가 정리한 진보주의자 내지 진보세력은 순수(
純粹) 그 자체다. 그래서 세상과 타협하기 보다 자기의 거울 앞에서 늘 한 점의 티끌 조차 덜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도와 살인과 도둑질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순수를 말하면 바보 아니면 무능력자 정도로 비칠 정도랄까.

은지 씨의 죽음을 접한 직후 그녀의 이름 조차 생소했던 걸 먼저 반성해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땅의 진보주의자 몇몇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만 노동당 부대표의 직함을 가진 은지 씨는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참 미안했다. 그래서 그녀의 모습을 블로그에 담아 한참동안 눈을 맞추며 새삼스럽게 진보주의자 내지 진보세력의 현주소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어릴 적 누님이 시집가던 결혼잔치는 물론 이웃의 잔치집에 가 보면 가난한 사람들과 거지들이 득실거렸다. 그 때가 대략 60년대로부터 70년대 초까지정도나 될까. 동족상잔을 부른 6.25전쟁 이후 먹을 게 넉넉치 못했던 당시, 사방을 둘러봐도 가난한 사람들과 거지들이었다. 표현이 가난한 사람들이라지만 거지행색이었다. 이같은 사정은 부산은 물론 서울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온통 거지천지로 변한 것.

그런 가운데 맏이이신 누님이 시집을 가신 것인 데 아부지께선 잔칫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따로 멍석을 깔아두셨다. 재래식 혼례가 치루어지는 혼례장 주변 천막은 온통 가난한 이웃들과 거지들이 득실 거렸다. 우리도 넉넉치 않았지만 아부지께선 정성을 다해 가난한 이웃과 거지들을 일일이 챙겼는 데 이같은 사정은 이웃들의 모습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가난한 이웃과 거지들까지 함께 즐기는 게 보편적인(?) 잔치였던 셈이다. 그래서 잔치 소식만 들리면 거리 불문하고 찾아나서 잔치 음식을 맛보던 때였다.




그러나 콩 한 알도 조각조각 나누어 먹던
(?) 정겨운 사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신독재자 박정희 정권이 기승을 부리며 우리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내 보내고 독일까지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해 외화벌이를 하는동안 우리네 인심은 점차 매말라 갔다. 이웃이 넘 볼 수 없도록 대문을 걸어 잠근 잔치는 야박함을 당연함으로 바꾼 한편, 거지들은 더 이상 동네 근처를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됐다. 이런 모습이 조국 근대화 모습이자 한강의 기적이 남긴 외눈박이 세상의 한 단면이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 등으로 나뉜 양극화의 모습이자 올림픽과 패럴림픽 같은 모습이랄까.

멀쩡하고 잘 생기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벌이는 잔치인 올림픽은 그런 의미에서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으며, 패럴림픽은 그 반대편의 형편에 놓인 사람들이 치루는 올림픽이다. 그래서 올림픽은 보다 사치스러운 반면 패럴림픽은 TV에서 중계조차 꺼릴 정도로 형식적인 올림픽인 것. 최근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사태의 한 예만 봐도 올림픽이 얼마나 정치적이며 상업적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초강대국 러시아가 힘을 앞세워 약소국을 함부로 위협하는 건 물론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날강도질을 일삼아도 누구 하나 함부로 나설 수 없는 세상이 됐다.

그런 사정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1년 전쯤 대한민국에서는 나라를 통째로 덜어먹은 정치세력들이 유신망령으로 부활해 대한민국을 좀비세상으로 만들고 있었다. 대통령의 정체성이 댓글로부터 비롯되고 멀쩡한 사람이 간첩으로 둔갑되는 한편, 이 과정에서 서류를 위조한 게 들통나자 이번에는 제3자를 등장시켜 최초의 부조리(댓글사건)를 덮어버리고자 하는 매우 위험한 시도가 발생하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국가를 빙자한 조찬기도회 장에서는 대놓고 특정인을 찬양하는 정치쇼가 벌어지기도 한 것. 마치 방귀 뀐 년이 더 성질을 부리는 세상이 작금의 대한민국 모습이랄까.

은지 씨의 죽음 직전까지 대한민국의 모습은 가난한 자들과 힘 없는 자들이 전혀 기댈 곳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권력을 훔친 자들은 권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욱더 광분하는 한편, 그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이웃들을 향해 거침없이 간첩이나 내란음모 등으로 몰아세우는, 외눈박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과 노동당 등 진보정당과 진보세력이 모난 돌처럼 맨 먼저 정을 맞게 된 모습이다. 

한 때 우리사회는 가난해도 정이 넘치고 빵 한 조각만으로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잔치집 근처에 얼씬거리기만 해도 짱돌을 맞는 세상이 됐다. 
가난하고 힘 없는 것도 서러운 데 거기에 핍박과 착취까지 일삼아 배불린 양극화 현상이 극도로 치닫고 있는 모습. 사람사는 세상 이래서야 되겠는가. 은지 씨의 주검은 서둘러 발인식을 향해 가고있다. 그러나 그녀를 통해 세상에 남겨진 가난하고 힘 없는 이웃들과의 처절한 투쟁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녀는 우리사회를 비추는 잘 닦여진 거울이었다. 그녀의 거울에 비친 외눈박이 세상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본다. 은지 씨의 영전에 꽃 한 송이 바칩니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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