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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lago llanquihue

그곳에선 또다른 행성을 보며 산다


Daum 블로거뉴스
 


곳에선 또다른 행성을 보며 산다
-칠레 국가나무,철갑 두른 듯 신기해-



생물체가 살고있는 다른 별이나 행성에 간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에 위치한 쟝끼우에 호수 주변의 풍경은 마치 다른 행성에 간 듯한 착각이 일 정도다. 낮선 풍경들 때문이다. 사람들만 제외하면 그냥 낮선 정도가 아니다. 이곳은 우리가 살고있는 한국의 지구반대편이자 남반구이다. 계절에 따라 
태양의 고도가 바뀌지만 북반구와 차이가 난다. 그래서인지 같은 속의 식물들이라 할지라도 비슷할지언정 전혀 다른 종처럼 여겨진다.

식물들의 꽃들은 빛깔이 선명하고 향기도 짙다. 또 과일 껍질은 질기나 육질의 당도는 꿀을 섞어 놓은 듯 달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강한 볕이 만들어낸 자연의 산물이다. 아마도 남미대륙을 발견한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물론, 서인도제도를 발견한 콜럼부스 또는 마젤란 탐험대와 비글호 원정대는, 남미대륙에 발을 디딘 직후 매우 큰 혼란을 겪었을 것 같기도 하다. 유럽에서 보지못한 다양한 동식물 때문이다.




그들은 남미대륙의 존재가 확인되기 전까지 세계 4대문명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어느날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대륙에 발을 디딘 후 만나게 된 동식물과 자연환경은 마치 다른 행성 내지 다른 별에 발을 디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 이같은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종의 기원'을 발표해 당시 유럽을 발칵 되집어 놓은 주인공 '찰스 다윈'이다. 진화론 때문이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는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냐 아니냐'를 놓고 영국 사회 각계 인사들이 모여 논쟁을 벌였다.이 토론회에 다윈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찰스 라이엘, 월레스, 토머스 헉슬리 등이 나왔고, 기독교 측으로는 영국 성공회 주교인 윌버포스가 나왔다. 논쟁은 생중계되었고, 논쟁 후반에 윌버포스가 진화론 지지 진영을 향해 그대의 할아버지쪽 선조가 원숭이냐, 할머니쪽 선조가 원숭이냐 라는 질문을 던졌고, 헉슬리는 부도덕한 인간을 할아버지라 하느니 정직한 원숭이를 할아버지라 하겠다고 응수하여 논쟁은 종결되었다. 
 




다윈은 비글호 원정대 탐험에 나서기 전까지 종의 기원에 대해 꿈도 꾸지 못했다. 그 때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한)세상은 히브리 성서의 창조론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며 다윈은 성직자였다. 비록 그는 켐브리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그는 박물학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런 이유 등으로 비글호의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의 선택은 다윈의 운명을 통째로 뒤바꾸어 놓았다. 
비글호 선장은 다윈이 체력적으로 약할 뿐만 아니라 승선 목적(박물학자)에 따라 다윈을 육지에 내려놓고 지질과 동식물을 채집하는 일 등을 맡게 했고, 피츠로이 선장은 해안선과 날씨 등을 측정하는 일을 했다. 




비글호는 영국 플리머스 항에서 출항해 → 브라질 사우바도르 항 → 리우데자네이루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포클랜드 섬 → 남아메리카 남단 비글해협을 돌아서 → 칠레 발파라이소 →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섬→ 태평양 횡단 → 뉴질랜드 →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 대서양의 어센션 섬 → 다시 브라질 살바도르 항구 → 영국 플리머스 항에 도착하여 세계를 일주했다. 




이때 다윈은 남미 최남단 빠따고니아의 비글해협과 칠레의 '칠로에 섬(Isla Chiloé)'을 거쳐 발빠라이소를 거쳐 에콰도르의 갈라빠고스 군도를 거쳐 태평양을 횡단한 것. 다윈은 뿌에르또 몬뜨 앞 바다 앙꾸드만(灣)을 품고 있는 칠로에 섬에서 쟝끼우에 호수 곁에 있는 오소르노 화산이 분출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 발디비아에서 지진을 경험하기도 하는가 하면, 지진으로 완파된 꼰셉시온의 잔해도 목격했다고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글호가 정박한 발파라이소에서는 안데스를 탐험하기도 했으며, 아르헨티나의 멘도사 지역까지 진출하는 강행군을 했다. 그 덕분(?)에 그는 심한 열병을 앓기도 했다. 1
832년 4월부터 1835년 7월까지 남아리카 동해안과 서해안을 샅샅히 뒤지고 다녔던 것. 




오소르노 화산은 우리가 발길을 옮길 때 마다 달 처럼 따라다녔다. 쟝끼우에 호수 곁에서 동쪽으로 고개만 들면 보이는 게 오소르노 화산이었다. 오소르노 화산(2661m)은 1719년이후 총 10회에 걸쳐 용암을 분출했으며, 1869년 이후 화산활동이 중지되었다가, 1960년 칠레 대지진이 발생할 때 마지막으로 용암을 분출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략 50여 년 동안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착한(?) 모습으로 장끼우에 호수 곁에서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것. 우리는 여행자의 신분으로 오소르노 화산을 바라보고 있지만, 대략 178여 년 전 비글호에서 하선하여 로스 라고스 주 주변을 돌아본 다윈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그는 이미 브라질을 거쳐 우루과이와 비글해협을 거치는 동안 그곳에 하선하여 수 많은 동식물을 목격했을 것. 



그 종들은 유럽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들이었을 것이며, 마치 그 동식물들은 다른 행성에서나 볼 수 있을 것 처럼 놀라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비록 다윈은 할 수 없이 신학을 공부했지만 박물학에 관심을 더 둔 게 얼마나 자랑스러웠을지 모를 일이다. 빠따고니아를 돌아 칠로에까지 진출하여 남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갈라파고스까지 북상하는 동안 그의 머리속은 하얗게 바랬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채집한 동식물과 아메리카 대륙의 지질층에서 발견한 암모나이트 화석 등을 참조하면, 그가 공부한 히브리 성서의 내용(창조론)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이라 판단했을지 눈에 선하다. 그가 눈으로 확인한 동식물과 지질층 등을 통해서 바라본 사실에 따르면 인류문화사는 '조족지혈'이었던 것. 따라서 그는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 같은 '종의 기원'을 도출할 때까지 잠 못이루었을 것. 시쳇말로 '매 맞아 죽을 짓' 아닌가. 사람들의 오래된 생각과 가치와 문화 전부를 통째로 부정하니 말이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이 최소한 원숭이와 같은 영장류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의 머리 속에는 수 천 수 억년 전의 생물들이 땅 속에 묻혀있거나, 지구별에서 도무지 살 것 같지않은 생물들을 목격한 사실 등으로 매우 혼란 스러웠을 것 같다. 필자가 빠따고니아 투어를 하는 동안 감동의 도가니 속에 빠진 게 '감성적 여행'이었다면, 비글호의 박물학자의 신분으로 이 땅을 여행한 다윈은 '이성적 여행'을 하고 있었던 정도라고나 할까. 



차이는 있을 망정 다윈이나 필자도 감성과 이성은 존재한다. 다만 다윈이 살던 시대상황은 다윈이 무슨 주장을 해도 사람들은 히브리 성서 만큼 믿어주지 않았을 것. 대략 178여 년 전 다윈과 피츠로이가 비글호를 타고 세계일주 탐험을 하는 동안 남긴 기록들의 과학적 결과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부정하는 사람들이 숱하다. 그들은 다윈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영국일간지 <더 타임스>는 2009년 2월 18일자 기사에서 진화론을 창시한 다윈의 뛰어난 창의력은 자폐증의 영향일 것으로 생각된다는 보도를 했다. 더 타임스는 "다윈은 아마도 자폐증의 한 종류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았던 것 같다. 다윈의 독창성은 이 자폐증 증상과 관련 있을 수 있다"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대학교의 마이클 피츠제럴드 정신의학 교수의 견해를 인용했다. 

피츠제럴드 교수는 "아스퍼거 증후군의 증상으로 다윈은 놀라운 집중력, 보통 사람 이상의 집요함,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미세한 부분을 보는 엄청난 능력, 한 과제에 평생 매달리는 끝없는 열정, 독창적 연구를 하는 독립적인 정신 등을 보유했다."고 설명했다. 만약 다윈이 죽지않고 살아있다면 이 기사를 당장 반박했을 것. 눈 앞에 드러난 사실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다윈은 비글호 탐험을 마치고 건강하게 귀국한 후 성직자의 길을 버리고 박물학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젊은 박물학자에게 무엇보다 먼 나라 여행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여행 중에 겪은 성과는 세심하게 관찰하고 여러가지 생물종을 수집하면서 종의 변이성과 적자생존을 이해하게 됐다는 것. 그는 항해 중에 몰랐으나 그 성과를 바탕으로 진화론을 정립하게 됐다.

다윈은 임종에 가까워 한 친구의 방문을 받았다. 그 친구는 다윈이 (죽기 전)
히브리 성서의 창조론을 진리로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회복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나 거짓이었다. 다윈은 유언을 통해 "나는 죽음 앞에서 일말의 두려움도 갖고 있지 않다"라는 말을 남겼다. 다윈은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것이나, 비글호 탐험을 통해서 부활의 확신을 가졌을 것. 

다만, 그가 죽을 때까지 입을 다물고 싶었던 건 '
지구별의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생명의 윤회)'는 점이었을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죽음 앞에서 신앙적 양심 등으로 무척이나 두려웠을 것. 인간이 지구별에 태어난 시기와 종의 기원을 참조하면 그는 절대로 부활에 이를 수 없으며, 세월이 지나면 그의 육신은 암모나이트 화석 처럼 지질층 속 또는 먼지로 사라지게 될 것. 그런데 그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2010년 후반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IBM>이 후원하는 계통학 추적 프로젝트 따라 다윈의 고손자인 크리스 다윈의 DNA 추출하여 Y염색체를 조사한 결과, 다윈의 조상은 4만5천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으로 이주한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일원으로 스페인 남부에 살다가, 1만2천년 무렵에 영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다윈의 유전자는 'R1b'라는 집단으로 분류됐는데, 크로마뇽인의 직계 후손이라고 한다. 

다윈의 예만 참조하면 그는 4만 5천년의 시간 만큼 진화했다. 두뇌는 조금 더 스마트해진 지 모르겠다만, 그의 겨드랑이나 등에는 날개가 없다. 하지만 억만 겁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그 어떤 종의 형태로 다시 환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인류는 지구별의 역사 끄트머리에 어느날 나타난 종일 뿐, 다윈 조차 히브리 성서의 기록에 나타난 BC 3000년 경 보다 훨씬 이전부터 지구별에 살았다. 그는 4만 5천년 동안 이어진 호모사피엔스와 크로마뇽인 등의 교배종일 뿐이었다.



Araucaria araucana
  -칠레 국가나무
, 철갑 두른 듯 신기해-
 




우리는 뿌에르또 옥따이에서 뿌에르또 바라스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대략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아 뿌에르또 옥따이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55번 국도 언덕 위를 다녀오기로 했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는 동안 새하얀 눈을 머리에 인 오소르노 화산은 늘 우리 곁을 따라 다녔다. 덩치가 워낙 큰 산이어서 어디로 가나 눈에 띄었던 것.




오소르노 화산은 깔부꼬 화산과 함께 쟝끼우에 호수 곁에 서 있는데 그 모습은 뿌에르또 몬뜨는 물론 칠로에 등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오래전 오소르노 화산이 분출될 당시 때 마침 이곳을 지나던 다윈이 그 장면을 목격한 것. 그는 화산 분출 외에도 이 지역의 동식물 등에도 관심을 가졌을 텐데, 어쩌면 그는 낮설고 물 선 땅에서 '아라우까리아 아라우까나(Araucaria araucana)'를 만났을 지도 모르겠다.  




1780년 칠레의 식물학자 '몰리나(Juan Ignacio Molina)'에 의해 칠레에서 발견 된 이 나무는 고생대에서 살아남은 '화석식물'로 불리운다. 다 자라면 키가 30~35m 정도 자라고 수명이 1000년 이상이며, 영하 20도에도 견디는 추위에 강한 식물. 이름은 '멍키 퍼즐 나무(Monkey Puzzle Tree)'로도 불리우고 '칠레 소나무(Chile Pine)'로 불리우며, 칠레의 '국가나무'이기도 하다. 학명은 아라우까리아 아라우까나.




나무 이름은 이 지역에 살고있던 원주민 아라우깐인(마푸체 인디언과 대동소이)의 이름을 땃다. 이 나무는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의 남위 40도부터 37도까지 안데스산맥 쪽에서 서식하는 데 칠레의 국가나무여서 곳곳에서 눈에 띄는 수종이다. 이 나무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니 거의 쇳조각으로 만든 나무 처럼 딱딱했으며, 줄기는 뾰죽한 침으로 철갑을 두른 듯 신기했다.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하여 이 나무의 특징을 부분적으로 카메라에 담게 된 것. 아마도 이 나무가 공룡시대 때 살았다면 공룡들 조차 근접이 어려웠을 게다. 쇳조각으로 만든 조각품 같으므로.




이런 나무 뿐만 아니라 로스 라고스 주를 시작으로 빠따고니아 끝까지 이어지는 원시림 속에는 3천년 이상된 수령의 거목이 자라는가 하면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태고적 식물들이 빼곡했다. 그런 장면을 비글호 탐험대의 찰스 다윈이 샅샅히(?) 훑어 봤으므로, 그가 종의 기원 등에 대해 이야기 하면 아무도 안 믿어주었을 것. 어쩌면 필자라도 그 시대에 살았다면 다윈을 불신했을지 모른다.(다 뻥이야!...^^)

 
 
eucalyptus
-코알라 먹이 유칼립투스 숲- 
 




그러나 빠따고니아 투어를 통해 직접 목격한 대자연의 모습을 통해 다윈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 등 매체를 통해 즉시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엔 범선을 타고 수 개월 이상을 항해해야 겨우 특정 지역에 닿을 수 있었으므로 다윈은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까. 사람들이 그의 창의력을 향해 자폐증 운운한 게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한 시간 남짓 뿌에르또 옥따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55번 국도를 따라 걷는 동안, 늘 우리곁을 따라다니며 눈에 아른 거린 오소르노 화산은 마치 딴 행성을 보는 듯 했다. 특히 칠레의 국가나무로 지정된 <멍키퍼즐 나무>를 보는 순간 지구별에서 볼 수 없는 수종같은 생각이 드는 것. 아마도 다윈은 이런 모습 등에 매료되어 미친듯이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능력 이상으로 누비고 다녔을 것 같다.




필자의 카메라 셔터가 작렬한 것 이상으로 그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식물이 신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그때까지 원시 자연의 처녀림으로 남아있었던 것. 쟝끼우에 호수 곁에는 '유칼립투스(eucalyptus)' 숲이 빼곡했다.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이곳을 좀 더 둘러봤을 테지만 아내의 일성이 들려왔다.

"이제 돌아가...버스시간 다 됐는 데..."





1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별천지를 보고 있는 듯 곳곳을 살피고 다녔다. 그리고 한 농가의 울타리에서 우리를 맞이한 철쭉을 보며 다윈의 주장을 어렴풋이 이해하는 것. 그는 이런 모습을 닮은 듯 환경의 지배에 따라 서로 다르게 진화한 결과라고 말했을 것이다. 오늘날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이 거의 매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진화(?)를 시키고 있는데 말이다. 버스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에도 셔터는 작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봄에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발길을 끈적하게 붙들며 놓아주지 않는 것.
 
칠레산 사과나무 이렇게 생겼다




사과는 알아도 사과나무를 모르시는 분들이 적지않다. 그러나 사과농사를 짓는 분들이라도 칠레산 사과나무는 낮설 것. 일단 푸짐하게 피워낸 사과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연분홍빛 봉오리와 꽃잎은 복사꽃을 닮았지만 사과꽃이다. 그 곁에서서 오소르노 화산을 바라보면 둥근 행성 하나가 지구별에 근접한 것 같은 느낌이 절로든다.




어쩌면 오소르노 화산이 지구별이고 우리가 거닐고 있는 55번 국도가 다른 행성 같기도 한 희한한 느낌. 찰스 다윈이 오래전 남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을 때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발길을 돌리자 마자 눈에 띄는 화려한 꽃...이름은 모르지만 산티아고의 산 끄리스또발 언덕 위에서 마주쳤던 아름다운 꽃이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다. 이곳이 터닝포인트. 우리는 곧 뿌에르또 바라스로 가는 버스편으로 다시 뿌에르또 몬뜨로 가야한다. 다윈이 조사를 마치고 비글호에 다시 승선 하면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 것 처럼(너무 거창한가. ^^) 우리도 발길을 돌렸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꽃이 그저 울타리를 지키는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는 곳.
 









참 아름다운 곳이다. 다윈은 이 땅의 동식물 등을 보며 '종의 기원'을 끼적 거리며 사람들을 놀래켰지만, 필자의 몫은 '빠따고니아 여행기' 정도. 본 포스트에 인용된 글의 출처는 <위키백과>와 <비글호 항해기>, <빠따고니아의 식물> 등을 참조했다. 그리고 필자의 견해를 담았다. 보시는 분들은 지루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인가 이 포스트를 참조하여 알찬 여행길에 나섰으면 싶은 생각 간절했다. 




남미는 우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교통수단이 발달한 오늘날 조차 1박 2일 이상의 비행을 해야 도착할 수 있는 땅이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탐험에 나섰던 것을 생각하면 마치 다른 행성으로 로켓을 타고 날아가는 듯 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여행자들은 비글호 탐험대가 준비한 것 처럼 많은 준비를 하지않는다. 바쁘게 사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윈이 아닐지라도 빠따고니아에는 우리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대상이 빼곡하다. 우리가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스쳐지나갔을 뿐, 잘만 살피면 새로운 세상이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곳.




여행이란 '다른 행성으로 떠나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 행성에서 설렘 가득한 가슴을 한 순간에 열어 놓으면 또다른 별이 가슴 속에 자리잡는다. 가슴을 여시라. 어떻게 아는가...그 행성이 영원토록 당신을 행복하게 할지 말이다. 다윈이 죽음을 두려워 하지않은 것도 그의 가슴에 자리잡은 또다른 별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성직자를 접고 박물학자를 택했다. 판단은 각자의 몫.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도 많은 곳이다. 지구별의 역사 끝자락에 붙어 살고있는 인류에게 진화론이면 어떻고 창조론이면 또 어떠한가. 또 둘 다 아니면 어떠하리. 행복하면 그만.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떠나라. 그리고 그곳에서 가슴을 열고 바라보면 밤 하늘의 은하수 보다 더 많은 별들이 땅 위에 충만하다. 그들을 만나보라. <계속>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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