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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lago llanquihue

성자의 환생은 이런 모습일 것


Daum 블로거뉴스
 


성자의 환생은 이런 모습일 것
-석축에 뿌리내린 기적같은 쑥부쟁이의 삶-



기적은 이런 것일까.

참 놀라운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흙 한 점 없을 것 같은 성당의 석축에 쑥부쟁이들이 무리를 지어 피고 있었다. 이들 무리는 오후의 땡볕에 반짝이며 눈부시게 피어있었던 것. 그 모습을 보자마자 꽤 오래전에 읽었던 '聖프란체스코'가 단박에 오버랩 됐다. 필자가 감명깊게 읽은 책 중에 몇 안되는 책이 한 성자의 삶을 기록해 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d'Assisi)'였다. 그로부터 받은 감명은 필자의 블로그를 통해 이렇게 서술되었다.




"...그날 이후 프란체스코는 아시시 사람들은 물론 길가의 작은 풀꽃과, 하늘을 나는 새들과 숲 속의 동물 등 세상 모든 생명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가 발길을 옮기는 곳 마다 세상에서 맡아본 적 없는 그윽한 향기가 진동을 했고, 천상의 음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늘 그와함께 동행했다. 

뿐만 아니라 숲길을 걸으면 그의 곁으로 꽃비가 내려 그의 발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사람들은 프란체스코를 향해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미 위대한 왕의 사자가 되었고 성자가 되어있었다. 이틀전 해질녘 무렵 가늘게 떠는 바람에 아카시 꽃이 꽃비가 되어 나지막한 산 속 작은 오솔길에 소복하게 내렸다. 향기가 진동하며 천상의 음악이 작은 동산에 울려퍼졌다.<꽃비 오시던 날 中>"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 대한 감명은 늘 따라다녔다.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서기 전 유월 초 하룻날, 바람에 날리는 아카시 꽃잎과 꽃잎에 실려온 아카시향에 대한 단상을 
<꽃비 오시던 날>을 통해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를 떠 올린 것. 세상의 현상들은 생각하기 나름인지, 가난과 결혼한 프란체스코의 삶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이겨낸 그는 나로 하여금 펑펑 울게 만든 당사자였다. 


석축에 뿌리내린 기적같은 쑥부쟁이의 삶
 




그는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는 부잣집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그는 어느 한센병 환자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는데, 비록 그는 그 한센병 환자를 보고 놀랬지만 말에서 내려와 그 사람에게로 가서 돈을 쥐어 주고는 평화의 입맞춤을 했다고 전한다. 그는 삶 전체를 통해 이 만남을 가장 소중히 여겨 마음에 간직하였는데, 유언에서 "주님께서 나 프란치스코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하도록 해 주셨습니다"하고 회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그에 대한 일화 중에는 기적같은 일이 전해진다. 프란체스코가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사가 된 뒤에도 성적인 욕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 때문에 괴로워했는데 하느님과 예수님께 자신의 음욕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면서 장미 가시덤불 위에서 맨몸으로 굴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 피어난 장미들에는 가시가 없다고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몸에는 성흔(聖痕,스티그마따,stigmata)이 나타났는데, 성흔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당할 때에 몸에 생겼다고 전해지는 상처. 또는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에 의해서 그리스도인들의 몸에 저절로 나타난다고 전해지는 예수가 받았던 상처와 유사한 상처를 말한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흔을 기적의 하나로 보고 있다.<자료 위키백과> 




아마도 카톨릭신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기록들은 그저 특정인을 신성화 시킨 정도로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런 현상에 대해 팩트가 아닌 소설을 끼적거리고 있으면 프란체스코가 놀림받은 것 이상의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될 건 뻔한 이치. 한 성당의 석축에 무리지어 핀 쑥부쟁이를 보고 '성자의 환생' 운운하며 기적을 말하면 얼마나 한심하겠는가. 




그러나 당신의 전부를 바쳐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했다면, 그의 영혼은 사후에도 여전히 그가 섬기던 신의 가까이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하지 않겠는가. 황량하기 그지없는 석축 내지 굄돌에 의지하여 꽃을 피워낸 쑥부쟁이를 보는 순간 프란체스코를 떠올린 건 우연찮은 일.

내 가슴 속 깊이 숙명처럼 박혀있던 기억의 편린은 쑥부쟁이를 보자마자 탈출구를 찾은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책상 머리에서 책 한 권 펼쳐놓고 부모상을 당한 듯 펑펑 울게 만든 그가 프란체스코였던 것. 물론 필자는 카톨릭신자가 아니다. 흙 한 점 없어 보이는 석축에 의지하여 꽃을 피워낸 쑥부쟁이가 기적 처럼 여겨진 것. 흔치않은 일 아닌가. 뿌에르또 옥따이 성당에서 서성거린 이유가 그러했던 것.























역사에 만약은 없다. 그러나 비글호(HMS Beagle)에 박물학자 지위로 승선한 '챨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Charles Darwin)'이 없었다면, 괜히 진화론과 창조론이 충돌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풀꽃 무리를 두고 성자의 환생 운운 하는 게 심드렁해 진 것도 다윈 때문이며, 비글호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Robert Fitzroy)'가 자살한 것도 다윈 때문이었다. 그는 진화론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글호의 두번째 항해에 다윈을 승선시킨 일을 '사악한 짓'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다윈의 '종의 기원'은 그렇게 세상에 전해지면서 사람들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직 뿌에르또 바라스로 가는 버스가 도착할 시간은 멀었다. 우리는 버스터미널에서 우두커니 앉아 버스를 기다라는 것 보다 남은 시간 동안 뿌에르또 옥따이 읍내가 보이는 언덕 위를 돌아보기고 했다. 그곳 또한 7년 전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그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면 이 작은 마을이 얼마나 축복받은 땅인지 단박에 알 수 있는 곳이자, 오래 전 이곳에 살던 원주민(인디오)들과 침탈자의 갈등이 저절로 느껴지기도 한다. 




언덕 위로 가는 길에 만난 덕구 한 마리와 머리에 하얀 눈을 인 오소르노 화산과 쟝끼우에 호수의 푸른물...(덕구야. 넌 좋겠다. 이런 데 살아서...^^)
 



언덕 위로 올라가며 돌아보니 조금 전 서성거린 성당과 뿌에르또 옥따이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지붕에 주황색이 칠해진 건물은 주로 뿌에르또 옥따이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 대부분이다. 동사무소, 경찰서, 성당과 학교 등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뿌에르또 옥따이와 쟝끼우에 호수




소나무 한 그루가 전망을...ㅜ 




쨩끼우에 호수(Lago LLanquihue)를 새겨둔 안내판이 이채롭다. 현재 위치는 호수 최상단...




뿌에르또 바라스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남았다. 우리는 언덕 위에 펼쳐진 그림같은 풍경을 좀 더 만난 다음 터미널로 이동하기로 했다. 쟝끼우에 호수와 주변 풍광은 언덕 위에서 봐야 제 맛. 그곳은 또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구반대편의 봄이 연출한 색다른 풍경. 그 풍경 속으로 걸어가 본다. <계속>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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