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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착한 '골목벽화'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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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착한 '골목벽화' 어떻게 하지?
[수원 지동 벽화골목 답사기] 너무 착한 골목벽화, 이유를 들어봤다



우리에게 벽화
란 어떤 의미일까.


얼마전 수원의 '지동 벽화골목'을 다녀오면서 떠올린 생각이다. 요즘 우리에게 널리 인식되고 있는 게 '벽화(mural, 壁畵)'이다. 그 중 통영의 동피랑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벽화를 시작으로 전국의 골목 곳곳에 벽화가 넘쳐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친숙한 키워드가 벽화였던 것이다. 우리에게 벽화는 낮설지 않다. 우리나라 벽화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솔거의 노송도는 사실적 묘사가 얼마나 뛰어났는 지. 새들이 실제 소나무인 줄 착각하여 날아들다가 벽에 부딪쳐 떨어지곤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생몰연대가 불확실한 솔거 이전 선사시대 때 그려진 벽화(암각화 등)도 수두룩 하다. 고래 종류가 다양하게 표현된 울산의 
반구대암각화는 선사시대 때 그려진 벽화라 할 수 있다. 뾰죽한 연장을 사용해 만든 벽화며 물감으로 그려진 것과 차이는 있다. 이런 벽화들은 국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글쓴이가 파타고니아 투어를 통해서 확인한 동굴벽화(Cueva de las Manos, 아르헨티나의 '빼리또 모레노(Perito Moreno)' 인접)는 무려 7400여 년 전에 그려진 채색 벽화였다.
 




거대한 절벽 아래 위치한 동굴에 그려진 '동굴벽화(손바닥 그림들,
Cueva de las Manos)'은 7400년 전의 벽화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하고 화려했다. 마치 조금 전에 누구인가 스프레이 물감 등으로 '그래피티'를 그려놓은 듯 했다. 그림의 재료들은 동굴 근처의 평원에 나지막하게 솟아있는 언덕(Cerro)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산화철이 섞인 (붉른)흙 등에 동물의 기름을 섞은 안료로 그렸다는 게 현지 해설사가 들려준 사실이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감동은 파타고니아 투어를 끝 마치고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까지 이어졌다.


우리 교민들이 주로 많이 살고있는 칠레 산티아고의 빠뜨로나또의 길거리에 그려진 (그래피티)벽화
 


글쓴이의 관점에서 바라본 최고의 벽화는 산티아고 시내 도처에 그려진 그래피티(벽화)였다. 산티아고의 구도시에 그려진 벽화는 종류도 다양했으며 원색의 강렬한 색깔과 파워 넘치는 터치는 물론 시대를 풍자한 시사적인 회화 등 다양한 벽화들이 존재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단 번에 끌어당기는 벽화여서 산티아고에 머무는 동안 일부러 그래피티만 촬영하러 다녔을 정도이다. 그 느낌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최소한 5개월 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어느 골목에 어떤 벽화가 그려져있는 지 기억해 낼 정도이다. 벽화가 산티아고 구도시의 칙칙하고 어두운 면을 가리고 여행자의 기억에 오래토록 남게 만든 것이라고나 할까.
 




수원의 지동 벽화골목을 돌아보면서 (벽화에 대해)느끼게 된 점을 문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투어에 나선 우리 일행에게 지동 벽화골목을 소개하고 있었던 '일러스터레이터 유순혜님(hands interactive design HANDS 대표)'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지동 벽화골목의 총연출자였다. 따라서 지동 벽화골목을 돌아보면서 자연스럽게 느낀 점을 질문해 지동 벽화골목의 컨셉을 알아보는 것과 함께 글쓴이가 느낀 점 등을 전해드릴 참이었다.
 


"유 선생님, 제가 얼마 전 여행 중에 산티아고에서 본 벽화(그래피티)는 개성이 뚜렷하고 색감 조차 원색적이며 다양한 주제가 넘쳐나며 역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동 벽화골목을 둘러보면서 느낀 점은 벽화가 '너무 착하다'는 점입니다. 지동 벽화골목의 컨셉은 어떠한지요."

"좋은 지적이십니다. 원색으로 그려지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런 벽화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시선을 끄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동 벽화골목의 경우 잠시 다녀가는 (여행자 등)외지인 중심이 아니라 이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매일 접하게 됨으로, 이 분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동 벽화골목에 그려진 벽화가 주로 그런(착한 벽화) 것이고요. 자원봉사자들이 주로 그려내는 벽화입니다."


유 선생의 답변에 따르면 수원 지동의 벽화는 이 동네에 사시는 분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유 선생의 지도와 연출에 따라 그려지는 벽화골목이었으며, 벽화가 착하게 그려지게 된 이유는 동네사람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것 등이었다. 지동 벽화골목의 착한 컨셉에 따라 우리 일행이 둘러본 지동 벽화골목의 골목 풍경은 주로 이랬다.(당시 일행은 일정에 쫒기고 있었으므로 구석구석 다 둘러보지는 못했다.)



수원 지동 벽화골목 풍경
 





지동 벽화골목은 수원시 팔달구에 속해있었다. 수원 화성의 창룡문에서 나와 벽화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맨 먼저 반겨주는 게 '참 잘왔어요'라는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다. 참 잘했어요를 패러디한 평범한 작품이지만 친근하다.
 






지동 벽화골목 바로 곁에는 수원 화성이 쭉 늘어서 있고  
적을 살피는 시설인'동일치'가 이방인의 발길을 붙든다.
 


 

지동 벽화골목에 들어서자 마자 벽화로 변한 듯한 꽃이 이채롭다.
 






마치 동화속을 걷는 듯한 벽화, 주인공은 '삼공주의 울보왕자'다. 딸 셋을 가진 아빠와 가족이 그린 벽화다. 정겨운 모습이다.
 





골목 안의 케이블이 마음대로 뒤엉킨 걸 철사로 미적 감각을 되살렸다.






우리 일행을 지동 벽화골목으로 안내한 이 분은 기노헌 씨(수원시 팔달구 지동주민센터 총괄팀)이다. 지동 발전을 위해 좋은 자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분이시라며, 문화재 답사 전문가인 하주성(블로거 온누리님)님이 귀뜸해 주셨다. 


지동 벽화 골목에서 눈에 띈 벽화

 

 

지동 벽화골목에서 가장 눈에 띈 벽화는 이런 모습이다. 마치 시화전을 보는 듯 하다. 국화 그림을 미당 서정주의 글 '국화 옆에서'가 우리 정서와 함께 미당의 행적과 교차하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벽화는 주로 이런 컨셉이었으면 했다. 서정주 시인을 미화하려는 게 아니라, 다양성과 함께 딴 곳에서 볼 수 없는 작품들이 특정 지역에 그려져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다.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작품도 필요에 따라 그려질 필요가 있다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동 벽화골목에 오신 것을 환영하는 문구와 함께 국화가 만발한 벽화를 보니 만추가 절로 느껴진다.




그리고 막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벽화골목에 일해들이 촬영이 바쁘다.





(ㅋ 그래, 참 잘했어...니 껀 니가 해결해 봐. 고양이 앞에 생선 맡기는 꼴이라는 말 안 나오게...)


지동 벽화골목의 흑과 백
 




지동 벽화골목에서 만난 두 분은 백주에 술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지동의 현주소였다.






기노헌 씨가 소개한 지동 벽화골목의 명물이다. 움직이는 벽인 데 평상을 접어 벽에다 붙이면 그냥 벽으로 다시펴면 평상이 된다. 이곳에 오신 분들이 재밌어 해 두 분의 할머니들이 테레비(TV)에 자주 나갔다며 손사레를 치며 "(사진)만날 찍는 걸 머..."라며 포즈를 취해 주셨다.
 





수원 화성의 지동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
 






지동 벽화골목에는 이곳에서 이어져온 전통 풍물이 있다. 곳곳에 점집과 같은 민속집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다문화를 느낄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고있고 교회와 사찰과 점집이 지동마을을 공유하고 있다. 획일화된 도시재생 프로젝트 보다 이런 풍물을 사람들이 더 매력을 느낄 거 같다.
 




그리고 오래된 담벼락 곁에서 힘겹게 손을 뻗은 포도나무 줄기 위로 누런 맷돌 호박이 갈 햇살에 익어가고 있는 도시에서 보기힘든 풍경이다.






뿐만 아니었다. 안전표시물을 이용해 몇 안 열린 포도송이를 보호하고자 '접근금지' 경고를 해 둔 모습이 재밌다.
 





지동 벽화골목의 연식(?)은 언제쯤일까.
 

 




지동에는 40년 된 자장면 집이 있다. 그림에서 보는 이 가게가 그렇다. 일행 중에 수원에 살고있는 <미디어다음> 관계자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 했던 가게다. 영업을 하는 지 조차 모를 정도인 데 가게 앞에 세워둔 배달용 오토바이를 보니 영업중인 모양이다.






그리고 벽화골목 한쪽에서 자라고 있는 배추...스티로폼 상자를 이용해 김장걱정을 덜고 있는 귀한 풍경이다.


지동 벽화골목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  





신사임당의 작품 초충도(수박과 들쥐)에 나타난 작품처럼 벽화골목에 수박이 그려지고 있다. 여고생들이 그 주인공.
 





이 작품에 이름을 짓게되면 '수박과 여고생'이라고 작명해야 할 듯. 촬영한 사진은 보내 주기로 했는 데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이뿐 여고생들아, 이 포스트 보걸랑 속히 연락 바란데이... ^^)
 





어떤 자원봉사자들은 바탕색을 칠해 놓고 하루를 마무리 하고 있었다. 간식으로 과자 한 봉지와 음료 한 캔...어떤 작품이 나올런지...






자원봉사자들이 남기고 간 물감자국이 선명한 앞치마를 보니 이 골목은 조만간에 유명세를 탈 듯 하다. 






지동 벽화골목은 수원성과 인접해 있다. 뒤로 수원성의 동포루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지동 벽화골목 바로 곁에 있는 수원 화성 성곽이 일몰을 마주하고 있다.




지동 골목길에 그려지고 있는 밑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동행한 유 선생께 물어봤더니 당신의 작품이라며 웃었다.




지동 벽화골목을 총지휘하고 있는 유 선생의 벽화 밑그림 속에 지동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수원 화성의 '봉돈'이 그려진 모습이다. 어떤 작품으로 완성될 지 기대된다.





지동의 한 통장 댁 옥상에서 바라 본 봉돈의 모습이 이채롭다. 수원의 지동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풍경이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벽화골목은 수원 성곽을 중심으로 500m 이내에 위치해 있었는 데 그 이유는 벽화골목을 둘러본 뒤 일행들을 반겨 맞이해 준 
염태영수원 시장님으로부터 듣게 됐다. 일행은 지동 골목길 투어를 끝마치고 수원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가진 지동 제일교회(담임목사 이규왕)의 99m 높이의 종탑으로 올라갔는 데 그곳에서 염태영 시장은 지동 벽화골목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기 저곳에서부터(손으로 가리키며)...500m 이내는 개발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건물 높이는 물론 증개축에 일정한 규제가 따라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딴 곳으로 이주해 가면서 도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원 시장으로부터 직접 듣게 된 지동의 현주소에는 도시 공동화에 따른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곳에 살고있던 외국인 노동자에 의한 범죄를 참조하면 지동이 사람들로부터 잊혀져 가는 마을이었으며 외진 곳이었다. 공동화를 부추긴 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이었던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지동 벽화골목 연출자 유 선생이 말한) 
지동 벽화골목의 착한 컨셉이 오버랩 됐다. 이랬다.


 
"좋은 지적이십니다. 원색으로 그려지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런 벽화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시선을 끄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동 벽화골목의 경우 잠시 다녀가는 (여행자 등)외지인 중심이 아니라 이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매일 접하게 됨으로, 이 분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동 벽화골목에 그려진 벽화가 주로 그런(착한 벽화) 것이고요. 자원봉사자들이 주로 그려내는 벽화입니다."
  





그러나 글쓴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우리나라 곳곳에 그려지고 있는 벽화들이 동네 특성과 달리 그려지고 있는 점은 문제로 보였다. 예컨데 수원 화성을 끼고 있는 지동의 골목길은 수원성이나 수원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벽화들이 주를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드는 것이다. 울산의 암각화나 선사시대 때 그려진 벽화는 물론 산티아고에서 만난 벽화 등은 각각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가 가득했던 것이다. 따라서 벽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수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창적인 컨셉의 벽화가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이다. 




지동 벽화골목 연출자 '일러스터레이터 유순혜님(hands interactive design HANDS 대표)이 포즈를 잡아주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벽화골목을 연출하고 있는 특정인에게 돌릴 수 만은 없는 것이다. 이유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그려지고 있는 벽화 다수는 지방자치단체 등 관이 주도하고 있는 게 문제라 할 수 있다. 골목벽화를 관에서 주관하되 그림의 소재와 (그리기) 방법 등은 자유롭게 하는 게 바람직해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대적 상황 등과 함께 작품의 희귀성과 창조적인 작품이 다양하게 연출될 것이므로, 수원 또는 특정 지역만의 개성있는 작품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토록 남게될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지동 벽화골목을 다녀오면서 벽화를 솔거처럼 사실적으로 잘 그려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정
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작품의소재와 기법 등 그 지역 특성에 맞는 개성적인 작품이 정착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했다. 지동은 물론 우리나라의 골목벽화가 주로 착하게 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창조성을 가로막는 컨셉이 있다면 과감하게 고쳐나가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유명한 벽화들은 대개 탄생의 의미가 평범한 듯 독특했으며 그 지역을 대표하고 있었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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