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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

단돈 천원으로 즐긴 안데스, 물감 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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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천원으로 즐긴 안데스, 물감 푼 듯  


산 크리스토발 언덕 위에서 바라본 로스 안데스의 실루엣


로스 안데스는 어떤 마력을 지닌 것일까.

스페인의 페드로 데 발디비아가 건설한 도시 산티아고의 산 끄리스토발 언덕에 올라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첩첩산중의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다. 그곳은 이 땅의 원주민 인디오들이 침탈자들에 의해 모두 쓰러져간 영혼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그곳을 언제부터인가 '로스 안데스'로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산티아고에 머무는 동안 산끄리스토발 언덕에 올라 늘 안데스 방문을 꿈꾸고 있었다.아니 어쩌면 안데스가 늘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데스는 왜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단돈 1000원으로 즐긴 로스 안데스, 들어가면서


이틀전 오전 9시경, 칠레의 산티아고는 부활절 연휴로 인해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이 도시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주로 카톨릭 신자들이어서 이날 만큼은 고기를 먹지않는다. 그 대신 생선은 먹는다. 그래서 한 사흘 동안은 생선가게 앞이 장사진을 이룬다. 카톨릭의 교리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현지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 신자들은 년 중 사흘 정도 성당에 나간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심히 교회에 들락 거리는 것과 많은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이틀전 아침 나절의 풍경만을 보면 독실하기 그지없는 카톨릭 신자들이다. 교회가 그들에게 주문한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 날 안데스로 발길을 돌려 보기로 마음 먹은 날이다. 



산티아고에 두 달 가까이 머물면서 산 끄리스토발 언덕이나 산타루시아 언덕은 방문해 봤지만 안데스는 가 보지 못했다. 특히나 안데스 자락 까지 이어지는 버스 노선에 익숙하지 않아서 피일차일 출발 날짜를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날은 버스를 타고 가보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숙소를 떠나 목적지 까지 노선을 미리 챙겨두었다. 레꼴레따 앞 메르까도 센트랄 주변이 출발지였는데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는 409번 버스였다. 그 노선은 약 두 주 전에 만났던 모 씨(전 외대 스페인어과 교수)가 친절하게 가르쳐 준 곳이기도 했다. 


그 분은 우리에게 409번 버스를 타고 '깐타가요(Cantagallo)' 까지 이동한 다음, 그곳에서 지선으로 이어지는 버스(C-8)를 타라고 일러주었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깐따가요란 '닭 노래(울음) 소리가 들리는 곳' 정도로 해석해 보니 안데스의 원주민들 향취가 물씬 풍겼다. 우리는 맨 먼저 그곳에 도착하여 버스를 갈아타야 안데스 산기슭 등지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휴가 끝나는 날 아침 409번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렸는데,...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직후 작은 문제가 생긴 걸 알았다. 이동 코스를 알았지만 (아뿔사!~) 버스 카드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버스는 도착했고 줄지어선 사람들이 차례로 버스로 오르는 동안 호주머니 속에 든 2000빼소 짜리 돈을 만지작 거렸다. 차비를 현금으로 낼 요량이었다. 그리고 우리 차례가 되어 아내가 먼저 승차한 다음 사정을 말했다. 휴일이어서 버스 카드(따르헤따,Targeta)를 준비하지 못했으니 현금을 지불하겠다는 취지로 버스 기사에게 말했다. 


생전 처음 공짜로 타 본 버스


버스 기사가 슬쩍 올려다 보더니 '그냥 타라'고 했다. 그럴 수 없다며 다시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냥 타시라니까요라는 시늉으로 손짓을 했다.(흐흐...공짜? ^^) 속으로 좋아했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않고 그냥 '고맙다'고 했다. 아내가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으므로 그곳으로 이동하여 나직히 말했다.


 "ㅋ...그냥 타라고 하네..." 


아내는 옆구리를 치며 나직히 한마디 거들었다.


"쉿...조용히 해..."


점잖지 못하다며 한 말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이들 처럼 마냥 기분이 좋았다. 생전 버스를 공짜로 타 본 경험이 없는데 이렇게 낮선 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아닌가.(공짜가 이런 거구나.ㅋ) 그렇다고 문제가 끝난게 아니었다. 모 씨가 일러준 가장 좋은 코스로 이동하려면 집으로 귀가할 때 까지 최소한 세번을 같은 짓(?)을 반복해야 할 게 아닌가. ("아저씨...오늘 휴일이어서 버스 카드 못 샀는데요. 현금으로 지불하면 안 되겠습니까?...) 


안데스 인디오들의 영혼이 서려있는 마포초 강 상류로 가다



이런 짓을 한 두번도 아니고 세 번 씩이나 해야할 걸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않았다. 그래서 깐따가요에 도착한 직후 원래 계획했던 목적지를 바꿔야만 했다. 공짜로 타고 온 버스 때문에 목적지가 바뀐 것이다. 그렇다고 안데스가 바뀔 리가 있나. 우리는 그렇게 해서 산티아고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는 마포초 강 상류의 한 골짜기에 도착했다. 그곳은 가을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골짜기였다. 안데스 자락에 도착한 것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걸어서 골짜기를 돌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골짜기 입구 까지 걸어오는 시간이 30분 정도로 꽤나 소요됐는데, 우리는 계곡 사이에 흐르고 있는 작은 강을 건너 건너편 언덕으로 이동해 보려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골짜기로 이동하면 할수록 저택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맞은편 언덕으로 이동할만한 다리나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이동한 길로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면 막다른 길이 나올 뿐만 아니라 맞은편 계곡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다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인디오들의 영혼이 서린 것 같은 푸른빛의 빙하물이 쉼 없이 흐르고 있는 마포초 강 상류의 장관을 만나게 됐다.



우리가 걸어서 온 길을 뒤돌아 보니 이런 모습이다. 산티아고 도심은 그림의 좌측에 있으므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다만, 이 골짜기에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의 규모 등을 미루어 볼 때 이곳은 부유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별천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한 때 이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 인디오들은 모두 사라진 땅에 건설되고 있는 집이자 새로운 도시였다. 그게 어느덧 450년의 세월이 흘렀던가.


안데스의 영혼이 슬피우는 통한의 땅



1532년 11월 잉카제국의 정복자 피사로가 이 땅을 침탈한 이후, 그의 부관 페드로 데 발디비아가 산티아고를 건설하는 등 스페인에 의한 남미 침탈이 이어지는 동안 안데스는 피빛으로 물들었다. 이 땅에 살고있던 원주민 인디오들 대부분이 살륙 당하는 희대의 사건이 이 땅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역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스페인이 이 땅에 상륙한 이후 10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땅에서 살륙된 인디오들의 수는 대략 7000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수는 인류사가 시작된 이래 최악의 참사가 이 땅에서 벌어졌던 것이며, 그 짓을 스페인 통치자들이 앞장서서 저질러 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살륙행위는 홀로코스트로 죽어간 유대인 600만 명이나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죽어간 14만 명의 일본인은 도무지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다. 사실이 이러한데 십자가를 믿어라고 강요한 스페인 군이 퍼뜨린 카톨릭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겠나.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잔인한 행위로 이 땅을 지배한 정복자들은 한 손에는 칼을 쥐고 또 한 손에는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고 하므로, 그 행위는 결코 신을 위한 신앙의 행위가 아니라 정복자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 게 이 땅의 십자가가 아니었던가.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정복자들은 인간이 상상 할 수도 없는 논리를 통해 이 땅에 살던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았는데, 원주민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켜준다는 명분 아래 노동력을 마음껏 착취한 '엥꼬미엔다 제도(encomienda)'를 만들어 무려 최근 까지 지배를 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태양신을 믿지않고 카톨릭을 믿으면 노예로 삼아준다는 기상천외한 노동착취 논리와 땅을 빼앗는 제도가 이들 정복자들의 논리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에서는 물론 오늘날 까지 이런 사실들은 공공연한 비밀 처럼 여겨지며 사람들로 부터 잊혀지고 있는 것인데,...



남미여행을 통해 안데스 자락에 서기만 하면 이상하게도 이들의 슬픈 역사와 함께 인간들이 저지른 가장 야만적인 행위가 동시에 오버랩 되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오르내리다시피한 산 끄리스토발 언덕 위에 서면, 저 멀리서 금방 이라도 손에 잡힐듯한 로스 안데스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는 이방인을 청하고 있었던 것일까. 안데스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고산준봉은 더 멀어지며 우리 앞에 보다 작은 안데스와 골짜기를 통해 그들의 속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도하지...?!)



우리는 전혀 기대도 하지않았는데, 안데스는 우리 앞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푸른빛 빙하물을 쉼 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안데스 인디오 영혼의 피빛은 푸른색?


산티아고 중심을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는 마포초 강의 상류 골짜기로 이동하면서, 오른편으로 쉼 없이 흐르는 푸른빛의 빙하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 물 빛깔은 이방인의 시선을 빼앗는 동시에 가을이 되어 더욱 쓸쓸해진 안데스를 슬프게 만들고 있었다. 2시간 넘게 이어진 트래킹으로 이방인의 기분은 좋아졌지만, 안데스는 슬픈 눈물을 쉼 없이 흘리고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 빛이 푸른색을 띄는 것은 물 속에 녹아 든 불순물(미네랄-산티아고로 흘러드는 로스 안데스의 빙하물은 석회질이 다수 포함된 것이라고 한다-) 때문이라는데, 이상하게도 이 골짜기에 흐르는 푸른빛의 강물을 보자마자 안데스 인디오들의 영혼이 흘리고 있는 눈물 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육신이 흘리는 피빛은 붉은 빛이며 영혼이 흘리는 피는 푸른빛이라는 말인가.



 이 땅에 살던 인디오들의 수가 7천만 명이 더 넘었지만, 그들은 스페인의 정복자들에 의해 땅을 강탈 당하는 건 물론 목숨 까지 씨를 말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복자들도 조차 어쩔 수 없었던 건 이들 인디오들의 영혼이 아닌가. 그 영혼이 가을이 되어 슬피울며 흘린 눈물이 푸른빛 빙하가 되어 마포초 강을 적신다니, 이방인이 우여곡절 끝에 방문한 이 골짜기가 기막힌 장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푸른 빛 빙하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따라서



우리는 우기 때가 가까워져 먼지가 폴폴 날리는 언덕길을 따라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다행히도 뙤약볕이 내려쬐는 하늘에는 산티아고에 머문지 처음으로 하늘에 온통 구름이 덮혔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검은 먹구름이 몰려들었지만 그 구름이 비를 내리게 하지 못한다는 건 이 도시에 살고있는 시민들이라면 다 안다. 이곳은 반드시 우기가 되어야 비를 뿌리는데 그나마 구름이 이렇게 잔뜩 낀 것도 처음이어서 이방인에게는 천우신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골짜기를 따라 쉬지않고 걸었는데, 도중에 겨우 말 몇 필과 말 위에 올라 탄 사람들 몇을 봤을 뿐이다. 그리고 골짜기의 길이 끝나는 지점 까지 이동한 이후 다시 돌아올 때 까지, 우리와 늘 함께 동행한 건 푸른빛 강물과 황량해 보이는 산들 뿐이었다. 그게 원래 이 땅의 원주민들이었던 몽골로이드들의 고향이었다는 말인가. 그 장면 일부를 카메라에 담아 봤다. 여러분들이 안데스의 영혼과 친구가 되어 이 골짜기를 둘러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흠...여기까지...잘 보셨나요?...이곳에서 시선을 골짜기 왼쪽 아래로 옮기면 다음과 같은 풍경이 나타납니다.



이런 풍경인데요. 이미 포스트 속에 첨부한 방대한 분량의 안데스 골짜기 이미지를 통해 확인해 보셨을 겁니다. 이런 풍경은 안데스가 이어진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비슷한 풍경이 이어질 텐데요. 어떤 때는 만년설로 또 어떤 곳에는 빙하로 또 어떤 곳에서는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으로 나타날 겁니다. 지금 보신 풍경은 그 중 안데스의 매우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런 빛깔의 강을 리오 블랑꼬(흰 빛이 도는 강, Rio Blanco)라 부르는데요. 반대로 남미에는 리오 네그로(검은 빛이 도는 강, Rio Negro)와 같은 이름을 가진 강들도 숱하게 만나게 될 겁니다. 이들 이름은 주로 물의 성분과 무관하지 않고 환경과 무관치않습니다. 하지만 이들 푸른 빛깔이 도는 강 내지 리오 블랑꼬를 만나게 될 때, 안데스 인디오들의 영혼이 서린 강물 쯤으로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빛은 이 땅의 원주민들이 흘린 피와 통한이 서린 빛깔이라고나 할까요. 


남미여행의 참 맛은 최소한 이 땅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면 할수록 배가 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사라진 안데스에서 사라진 인디오들의 문화와 이 땅을 침탈한 스페인 군 등이 만든 인공도시와 함께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비교해 보면, 오늘날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어렴풋이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



글을 맺겠습니다. 서두에 언급했지만 결론을 맺지못한 게 있었지요. 단돈 1000원으로 즐긴 안데스라는 말 입니다. 우리는 그림의 이미지로 부터 다시 30분 정도 걸어서 하산한 다음 버스를 타게 됐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타려면 여전히 버스 카드가 필요했지만 우리에겐 카드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처음 경험을 바탕으로(?) 공짜를 노리는 노림수도 가능했겠지만, 그게 인간이 할 짓인가요. 옛날 스페인 왕실의 하수인들인 피사로나 발디비아 내지 그들의 후손은 더더욱 아니니 말이죠. ^^ 


그래서 아예 이번에는 버스에 올라 기사님이 원하든 원치않던 간에 비용을 지불하기로 마음 먹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버스기사님은 우리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냥 타라는 것이지요. (흐흐...또 꽁짜?!!...)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랬더니 1000빼소/2인을 받더군요. 그게 대략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1000원 정도의 금액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산티아고의 로스 안데스를 맛 보는 투어는 비용이 천원 정도 밖에 들지않았다는 거 아닙니까. 물론 이 투어에 발품 5시간 여를 팔았다는 거. 안데스 골짜기의 푸른 물만 알까요. 단돈 천원으로 로스 안데스의 마력에 빠져든 날입니다. ^^


* 흥미로우셨나요?  채널고정! 추천 꾸욱~즐겨찾기 꾸욱~ 보다 알찬 포스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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