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KBS 보도 '5km 표류'의 문제점 -KBS 보도 '5km 표류' 누가 제보한 것일까?-
누가 천안함의 진실을 가리는 연막을 피우고 있었던 것일까. Tweet
지난 22일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천안함 침몰사건 재판은 두 사람의 증인이 법정에 출두했다. 첫 재판에 세사람의 증인인 채택되었지만 한 사람의 증인이 출두하지 못한 것이다. 이날 채택된 증인들은 천안함이 침몰될 당시 승조원 구조와 함체 인양과 관계된 사람들이었다. 그 중 법정에 출두한 사람은 인양 문제와 관련하여 박규창(당시 해군본부 군수참모부 수송과장) 증인이 출두했다. 그리고 또 한사람은 천안함이 침몰한 직후 맨 처음 구조에 나선 <해경 501경비함 부함장> 유종철이었다.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 박규창은 인양문제와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며 글쓴이를 화나게 만들었다. 촌각을 다투는 구조활동 중에 그가(해군) 보여준 모습은 늑장대처 이하의 졸속 정도도 아니었다. 그는 천안함의 인양목적도 모른 채 크레인을 수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군 당국이나 정부가 천안함 침몰사건을 조작질 하고 있었다는 게 드러난 매우 심각한 모습이다. 그리고 늦게 출두한 유종철 증인의 증언을 소개<천안함, 해경 501경비함 '송곳 증언'의 진실>해 드렸다. 그의 증언을 방청후기로 소개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천안함의 침몰좌표였다.
글쓴이는 그 증언을 싣는 포스트에서 유종철의 증언에 대해 '송곳'이라는 표현을 썼다. 의표를 찌르는 중요한 좌표가 그의 증언으로 부터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유종철의 증언에 따라 당시 사고현장을 좌표로 표시한 간략한 상황도 하나를 만들게 됐다. 유종철의 증언에 따라 작성한 상황도는 당시 백령도 주변 해역의 조류 이동과 KBS가 발표한 보도 내용 등에 따라 매우 설득력있게 보였다. 그의 증언대로라면 그동안 일반에 언급되었던 천안함 침몰사건 전말 다수가 새로 작성돼야 마땅했다. 유종철의 증언 한마디로 엄청난 일이 새로 벌어져야 하는 전환점을 맞이하는 증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종철의 증언에 헛점이 발견되고 있었다.
그는 증언을 할 당시 법정에 들고 온 두툼한 수첩을 통해 증언에 임하고 있었는 데, 수첩 속의 다수 자료들은 신문이나 방송 등에 보도된 사실을 스크랩해 둔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꼼꼼히 챙긴 흔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천안함 침몰사건은 증인이 평생의 직무를 통해 가장 긴박한 사고현장이었을 것이므로, 그의 기억 속에 오래토록 자리잡고 있어야 할 트라우마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그는 여전히 수첩의 스크랩 내지 기록에 주로 의존하고 있었다. 그의 주장사실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된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가 제시한 천안함의 침몰좌표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종철의 증언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림> 해경 501함 부함장 유종철이 증언한 천안함 침몰좌표
이 포스트는 유종철의 증언을 통해 해경과 해군, 둘 중 어느 한 곳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거나 연막을 피우며, 천안함의 진실을 가리고 있었던 사실을 고발하는 매우 중요한 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유종철의 송곳 증언이 '쪽집게 증언'이 될 수 없었던 이유가 해경 501함 부함장 유종철 증인의 입으로 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의 증언에 따라 천안함의 침몰좌표는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한다. 위 천안함의 침몰좌표를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1. 천안함의 침몰좌표와 해경 501경비함 부함장의 모순된 증언
유종철의 증언에 따라 표시해 본 천안함의 침몰좌표는 북위 37도 52분 10초, 동경 124도 37분 86초이다. <그림> 속에 '천안함 구조당시 침몰좌표'라고 표시해 두었다. 해경 501경비함은 대청도와 소청도 중간 해력에 피항하고 있었다(좌표 미상)는 유종철의 증언에 따라 대략 표시해 두었다. 유종철은 501함과 천안함 침몰좌표 까지 거리를 '직선거리 12마일'이라고 증언했다. 또 그는 인천해경으로 부터 출동지시를 받을 당시 시간을 증언했는데 그 시각은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34분이었다.
그리고 501경비함이 출동한 시각은 오후 9시 35분이라고 했다. 501경비함은 출동지시를 받은 직후 1분 만에 출동하여 오후 10시 15분에 천안함의 침몰좌표에 도착했다. 유종철의 증언에 따르면 천안함의 침몰좌표와 501경비함의 거리는 12마일에 해당하는 데, 501경비함은 17노트/h 속도로 긴급출동 이후 약 40여분 만에 긴급구조를 기다리는 천안함의 침몰 위치에 도착한 것이다. 따라서 유종철의 증언을 신뢰하기로 하고 그의 증언을 합리화 할 수 있는 '백령도 주변 해역 조류 이동 모습'을 <그림>에 표시했다.
그렇게 표시해 보니 유종철의 증언이 매우 타당성있게 보였다. KBS가 보도한 표류 내용 등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유종철의 증언에 따르면 천안함은 최초 좌초 위치에서 5km를 표류한 이후 <천안함 침몰좌표>에서 55명의 승조원(생존자)구조 이후 침몰하게 된다. 그리고 수심 45m깊이에 침몰된 천안함은 크레인(삼아개발)에 의해 수중으로 4.5km 이동하여 수심25m의 백령도 연안에 도착하여 인양되게 된다. 천안함은 좌초 이후 잠수함과 충돌하여 침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종철의 매우 단순한 논리에 의해 복잡할 게 전혀 없어 보였다.
글쓴이는 감동했다. 그러면 그렇지 '천안함의 진실이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칠 리가 없지'라고 생각하며 포스팅했던 것이다. 그게 재판이 끝난 후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유종철의 증언을 나름대로 전후를 살펴가며 간략하게 포스팅 한 것이다. 그러나 <그림>과 같이 간략하게 표시된 당시 상황 속에는 여전히 찜찜한 의문이 남아있었다. 유종철의 증언이 200% 정확한 것인지 확인해 보는 절차가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유종철의 증언이 글쓴이를 찜찜하게 만든 건 해경 501경비함의 위치와 천안함 침몰 좌표였다. 지도상에 표시(오차 있음)된 침몰좌표와 501경비함의 위치 좌표는 12마일의 거리가 못 돼 보였다.
따라서 유종철의 증언이 비약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문제점 등을 확인해 보기 위해, 다시금 그의 증언을 나름대로 검증해 보기로 하며 당시 언론 에 보도된 관련 정보를 취합해 봤다. 유종철의 증언에 결정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것은 해경 501경비함의 이동 궤적이었다. 천안함 침몰좌표와 해경 501경비함의 위치(좌표) 사이에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위 유종철이 알려준 천안함 침몰 좌표가 표시된<그림> 위에 드러난 문제점을 <그림2>로 다시 재현해 봤다. 그랬더니 아래와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다. 자세히 살펴봐 주시기 바란다.
<그림2> 해경 501경비함 '부함장 증언' 천안함 침몰 좌표의 문제점
#2. 해경 501경비함 '이동궤적 12마일'을 검증해 보다
위 <그림2>는 유종철의 증언 중에 의문이 남았던 점을 나름대로 검증해 본 그림이다. 좌표의 오차는 존재하겠지만 이 사건을 뒤집어 놓을 만한 오차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해경 501경비함의 위치를 잘 살펴봐 주시기 바란다. 해경 501함은 대청도와 소청도 중간(좌표 미상)에 피항하고 있었다고 했으므로 대략 표시해 본 그림이다. 유종철의 증언에 따라 천안함 침몰좌표 까지 (직선거리) 12마일을 검증해 보기로 했다.(1마일=1,862m 이며, 해도상에는 1분(1')으로 표시된다.)
위 <그림2>에 표시된 한 격자는 약 3분(3') 정도의 거리이며 대략 5km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따라서 501경비함의 위치에서 침몰좌표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격자 4개X3'=12마일'가 필요하다. 글쓴이 내지 대다수 국민들은 항해술에 능한 선수들이 아니므로 이렇게 표현하는 게 좋을 듯 싶다. 따라서 구조에 나선 501경비함의 괘적은 서쪽으로 '두 격자=6마일'로 이동한 후 다시 천안함 침몰좌표가 있는 북쪽으로 '두 격자=6마일'을 이동해 보기로 했다. 유종철의 증언에 따라 거리를 검증해 보니 (대략)딱 들어 맞는다. 그렇다면 유종철의 증언이 사실이라는 말일까. 유종철의 증언대로라면 그가 제시한 침몰 좌표와 501경비함의 이동거리는 정확하게 들어맞는 듯 하다. 그러나 유종철이 제시한 좌표는 심각한 오류가 발견되고 있었다.유종철은 신성한 법정에서 위증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해상크레인의 이동 방향과 백령도 앞 바다에 떠 있는 한미 군함의 위치를 눈여겨 보시기 바란다.
KBS 보도 좌초 이후 '5km 표류'의 문제점
유종철의 증언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반드시 충족돼야 마땅했다. 그게 뭔가. 천안함 침몰사고 당시 KBS를 통해 보도된 '해경상황도'에 표시된 천안함의 좌초 위치는 해군 당국이 알려준 좌표였다. 즉 북위 37도 55분, 동경 124도 38분이며, 그곳에서 (좌초하여)'물이 샌다'고 최초 보도된 위치이다. 그 시각이 대략 오후 9시 15분 내지 16분경이다. 그곳을 사고해점 좌표라고 불렀다. 그곳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백령도 연화리 앞 바다이며, 사고해점 좌표는 바로 그곳에 위치해 있다. 유종철의 증언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천안함이 물이 새기 시작한 곳에서 침몰 좌표 까지 이동한 시각이 구체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사건 '모두진술 프레젠테이션'에 사용되었던 KBS 보도 내용
첫째, 천안함이 물이 새기 시작한 사고해점으로 부터 침몰 좌표 까지 표류가 있었는가 하는 사실 여부이다. 이 부분은 <천안함의 진실>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검증 부분이다. KBS의 보도에 따라 천안함이 침몰좌표 까지 표류해야 하는(?) 이동 거리는 약 5km(3')이다. 우선 천안함이 표류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 최초 긴급구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드러난 사실과 같이 천안함에 '물이 새기 시작' 하면서 천안함의 주엔진이 동력을 상실해야 한다. 즉, 좌초로 인해 함미 기관실 쪽에 물이 새기 시작하면서 순간적으로 급격히 불어난 침수로 인해 엔진 가동이 정지된 상태라야 옳다. 그 시각은 해경에 접보된 최초 상황발생(좌초시각)이 오후 9시 15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천안함은 그 시각 부터 조류에 떠 밀려 해경 501경비함이 구조하러 갈 때 까지 부함장 유종철이 증언한 <천안함 침몰 좌표> 까지 도착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었다.
둘째, 따라서 이런 상황을 설명해 줄 구체적인 근거 내지 증거가 필요했다. 참 답답했다. 관련 자료를 다시 뒤적거려야 했다. 이런 복잡하고 머리에 쥐 나는 짓을 유종철의 증언이 제공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료를 뒤지자니 또 날밤을 지샛다.(이게 뭐람...ㅜㅜ) 집중을 해야 하는 시간은 한밤중이 좋았다. 그리고 정리는 다시 새벽에 하는 짓을 되풀이 했다. 자료를 뒤적이는 동안 유종철의 증언이 서서히 위증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아울러 혼란 가운데 묻혀있었던 천안함의 진실이 수면위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천안함의 진실은 천안함이 침몰하는 과정 일부가 담긴 TOD영상에서 그 단초를 발견했던 것이다. KBS의 보도 내용 처럼 물이 새고 있던 천안함이 약 5km를 표류하기 위해선 백령도의 조류가 약 30여분 동안 천안함을 남쪽으로 떠내려 보내야 했다. 그게 가능할까.
군 당국이 추가로 공개한 21시 22분 이후 <편집된 2분 짜리 TOD 영상> 속 시간표시 21시 24분~25분.
불가능해 보였다. 그 시각 천안함은 (잠수함과 충돌하여)함미가 사라지고 함수만 수면위에 떠 있는 상태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9시 24분 이후 TOD 영상 속에서 천안함은 침몰 중에 있었으므로 표류가 무색해진 것이다. 만약 천안함이 표류중에 있었다면 천안함의 좌표는 KNTDS상에 표시되고 있었을 것이며, 최소한 휴대폰 등으로 긴급상황이나 조난 과정 등이 해경이나 해군 등지로 송신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록은 남아있지 않거나 공개된 적 없다. 다만, 물이 새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오후 9시 15~16분 부터 (친정부 합조단에 의해 폭침으로 조작된 )오후 9시 22분경 이후 침몰 상황이 TOD 영상으로 공개된 25분경 까지, 천안함은 비상상황에 놓여있거나 침몰중에 있었다. 그 기록은 실종자 유가족이 해당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과 9시 16분경 통화를 했더니 '지금은 비상이니 나중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배 안에 있던 실종자 휴대폰과 전화가 끊긴 시각이 9시 16분이었다.
사람의 예감이란,...참 이상도 하지. 실종자는 천안함이 침몰 직전 이런 문자를 애인에게 보내고 있었다.
따라서 천안함은 그때 까지 표류를 보류(?)하고 있었던 셈이자, 더 이상 기동을 할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좌표가 군 당국(해군)이 최초로 해경에 통보했던 '사고해점'이었으며, 물이 샌다고 구조요청을 한 '좌초 위치'였던 것이다. 따라서 천안함은 표류를 할 겨를도 없이 좌초 이후 급격한 침수 이후 잠수함과 충돌하여 침몰에 이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좌초 이후 침몰과 구조에 이르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해경 501호 부함장 유종철의 증언은 글쓴이의 검증에 따라 맨 먼저 천안함 침몰사건의 진검승부 재판에서 위증의 대가를 치르며 목이 달아나게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유종철의 증언을 위증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시간대별 천안함의 위급상황은 어떠했는지 살펴볼까.
#3.천안함, 좌초 이후 '표류시간' 제한적이다
천안함이 오후 9시 15분 물이 샌다며 긴급구조를 보냈던 위치는, 백령도에서 촬영된 TOD에서 불과 2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고 군당국이 밝히고 있는 데 그 이후 TOD 영상에 남아있는 시간을 찾아 유튜브 영상에서 켑쳐해 보니 주로 이러했다. TOD영상 우측 상단에 기록된 시간 표시를 눈여겨 봐 주시기 바란다.
<상황1> 국민들의 의혹이 거세지자 국방부가 TOD영상을 추가로 공개하면서 남긴 흔적 속에 21:29:49라는 시각이 뚜렷이 남아있다. 정부가 폭발장면을 배제(편집)한 채 천안함의 함수가 침몰하고 있는 장면을 추가로 공개한 것인데 그 곳에서 천안함은 표류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침몰 중이었으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종철의 증언에 따르면 해경 501경비함이 구조요청을 받기 직전이다.
<상황2> 천안함이 사고 직후 백령도 모처(초소)에서 촬영된 TOD 영상 속 시간 표시는 21:33:28를 가리키고 있다. 매우 주목되는 시간 아닌가. 천안함 침몰사건의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해경 501함 부함장 유종철의 증언에 따르면, 위 시각은 인천해경상황실에서 천안함의 긴급구조를 위해 501경비함에 임무를 부여하기 직전의 시간이다. 유종철은 이 상황에 대해 "772함(천안함)이 백령도 남서방에서 사고가 났으니 빨리 인명구조에 임하라.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증언과 함께 통보를 받은 시각을 오후 9시 34분이라고 말했다. 그 시각 천안함은 침몰중에 있었다. 그렇다면 침몰 중에 표류하고 있었을까.
<상황3> 천안함의 표류 궤적을 찾다가 '[하니티비] 국방부,천안함 침몰 영상 추가 공개'라는 귀한 정보와 마주치게 되는 행운을 안게 됐다. 혹시라도 증발(?)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데, 국방부가 내놓은 TOD 영상 속에는 오후 9시 25분 이후 곧바로 56분으로 점프하는 편집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위 영상은 국방부가 공개할 필요가 없는(?) 장면이었다. 70% 이상에 달하는 국민적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서둘러 내 놓은 TOD 영상 속 시간 표시가 천안함의 좌표를 노출시킬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상황4> 쾌재를 불렀다. 관련 영상을 끝까지 열어본 결과 천안함은 여전히 침몰과정에 있었다. 그 시각은 다시한번 확인 됐다. 천안함은 오후 9시 40분경 까지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서서히 침몰하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아래 TOD영상 한 장면 더 볼까.
<상황5> 위 국방부가 공개한 TOD영상은 두개의 관련 유튜브 동영상에서 켑쳐한 화면들인데 한 동영상에는 시간이 점프하여 오후 9시 33분경에서 곧바로 9시 56분경으로 이어진다. 그 화면을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위의 화면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오후 9시 56분경에 고속정이 도착하고 있는 장면이다. 천안함의 전장(88.3m)을 감안하면 약 3~400m 까지 접근하고 있는 모습이다.
<상황6> 이때 백령도의 모 초소에 근무하던 TOD병은 고속정의 출현으로 천안함을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를 고속정 쪽으로 순간적으로 이동시킨다. 영상은 그 장면을 화면 한 가운데로 잡아내고 있었다. 여기 까지 상황만으로도 천안함은 물이 새기 시작한 이후 표류사실이 없었다는 게 증명되고도 남는다. 오후 9시 56분경 상황이다.
<상황7> 재미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TOD병은 갑자기 나타난 고속정(참수리호)을 조준하여 촬영하고 있었다. TOD병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을 것이며, 천안함이 좌초될 당시 부터 잠수함과 충돌하는 순간 까지 모조리 TOD영상에 기록해 두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장면이다. 우리 해병의 백령도 해안초소 근무가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장면이다.
<상황8> TOD병은 이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9시 56분경에 나타난 고속정의 출현과 이후 전개되는 상황을 정확히 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속정은 천안함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약 200m 정도되는 거리로 추정된다. 그리고 멈추어 섰는 데 이때 또 한대의 고속정이 천안함이 침몰하고 있는 현장에 도착했다.
**고속정 두대가 도착한 이후 해경 501경비함이 도착할 때 시간 간격은 19분(21시 56분 부터 22시 15분 까지) 차이가 난다. 이들은 왜 구조를 서두르지 않고 천안함 주위를 빙빙 돌고만 있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고속정이다.
<상황9> TOD 영상에 표시된 시각에 따르면 또 다른 고속정이 도착한 시각은 약 8초 이후였다. 두대의 고속정들은 같은 시각에 출발을 했던 모양이다. 이 장면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 해경 501경비함이 인천해경상황실로 부터 천안함 인명구조 연락을 받았을 때 시각은 오후 9시 34분이라고 했다. 인천해경이 2함대 사령부로 부터 천안함이 '물이 샌다'는 긴급구조 연락을 받았고, 좌표 까지 전해받은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 사실 등을 KBS가 보도하고 있었다. 천안함이 침몰하고 있던 위치는 '해군 당국이 알려준 좌표, 북위 37도 55분, 동경 124도 38분'이었다. 그렇다면 천안함이 물이 새거나 침몰하고 있었던 상황은 누가 상부(2함대)로 보고한 것일까.
이런 상황을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다. 천안함이 좌초되어 기관실 쪽에 물이 새고있었다면 함장이 2함대로 보고했을 것이다. 그 시각이 오후 9시 15분이었다. 긴급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로 부터 약 11분 후 천안함의 포술장은 총 5번에 걸쳐 2함대사령부 지통실과의 통화기록을 남겼다. 그때 시각은 21:26:07~48" 부터 21:29:41~28" 까지(4/7 발표된 통화기록) 약 4분 간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상황을 종합해 보면 천안함이 침몰 직후 인명구조에 나섰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천안함의 긴급구조는 포술장이 휴대폰으로 2함대사로 부터 연락한 직후 약 5분만에 경로를 따라 상황이 전파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TOD 화면상 시각을 참조하면 고속정이 사고현장 까지 도착할 때 소요된 시간은 약 20여분 정도(21시 30분~35분 출동)가 된다.
또 오후 21시 35분에 출동했다고 하는 해경501경비함은 22시 15분경에 사고현장에 도착했다고 했으므로, 약 40여분의 시간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속정(참수리호)의 최고 속도가 약 37~40노트 정도라고 알려져 있으므로, 선령 30년 이상된 노후한 해경 501경비함의 속도가 17노트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속도는 약 두배의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해경501함과 해군 고속정이 같은 시각에 긴급출동 지시를 받았다면, 해경 501함과 고속정은 거의 같은 장소(좌표)에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니까 해경501경비함 부함장이 증언한 천안함의 침몰 좌표는 스스로 심각한 모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가 증언한 천안함 침몰 좌표는 분명 북위 37도 52분 10초, 동경124도 37분 86초였다. 천안함은 최초 물이 샌다고 보고한 이후 엔진이 정지했을 경우 얼마간 표류사실(미미함)이 있긴 하겠지만, KBS의 보도 내용처럼 5km 나 되는 거리를 이동하긴 어렵지 않는가.
천안함 침몰 추정 위치 근처에 있는 미군 살보함
해경 501경비함의 역할은 천안함 승조원을 맨 먼저 구조한 이래 사실과 다른 천안함의 침몰 좌표를 언급하므로 말미암아, 다수 언론들이나 국민들이 천안함의 진실을 잘 알 수 없게 만들거나 햇갈리게 만들며 의혹을 증폭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해경이 군당국과 함께 천안함의 진실을 가리며 조작질에 동참한 역적같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유종철의 증언으로 인해 천안함이 좌초됐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과 함께 '천안함의 침몰 좌표는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는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종철이 증언한 천안함의 침몰 좌표와 승조원 구조를 위해 12마일을 이동했다는 거리를 검증해 본 결과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는 순간이었다.
천안함 침몰 추정 위치로 이동하고 있는 삼아개발(주) 해상크레인
그리고 천안함이 장거리로 표류한 사실이 없다는 게 밝혀지면서 천안함 침몰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천안함의 항적 정보(좌표 등)가 알려지지 않아 천안함의 침몰원인 등 천안함 침몰사고 전말에 대해 의혹이 분분했다. 하지만 TOD 영상속 시간을 참조하면 천안함은 최초 좌초를 당한 사고해점이 곧 침몰지점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천안함은 좌초 이후 (이초를 행하는 과정에서)급격한 침수 과정을 겪고 있었는 데, 미국은 천안함 침몰사고를 한미 간 '규칙적인 훈련 중에 일어난 사고'라고 언급하는 게 매우 의심스러워지고 있다.
긴급상황이 발생한 오후 9시 15분 부터 (군당국과 정부가)TOD 영상을 공개하지 않은 9시 22분 까지 약 7분 사이에 기동을 멈춘 천안함을 잠수함이 충격을 가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한미 간 대잠훈련중이었다면 천안함의 긴급상황을 아군의 잠수함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 때문에 <이명박 오바마 자작극>이라는 시나리오가 탄력을 받고 있었던 것일까.
해경 501경비함 유종철의 모순된 증언으로 인해 천안함의 침몰 좌표가 확실하게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불필요하게 겪은 침몰원인 찾기 게임(?)은 막을 내릴 전망이다. 그동안 글쓴이 포함 누리꾼들과 이 사건을 심층 분석하며 오늘에 이른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 등은 KBS가 헛발질한 '5km 표류' 보도 때문에, 천안함의 함미와 함수를 함부로 이동시키는 오류와 함께 TOD촬영 각도 등의 오류 등 무수한 오류로, 군 당국과 정부를 즐겁게 해 준 것 같은 매우 기분나쁜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림3> KBS의 오보 때문에 천안함의 침몰위치가 급격히 5km 이동한 모습. 유종철은 정확히 'KBS 보도'자료에 좌표를 맞추고 있었다.
그건 전적으로 짝퉁 침몰 좌표 때문이었고 해경과 해군 그리고 정부가 짜고친 대국민 사기극이었는 데, 그 일을 앞장 서 실천한 사람이 해경 501경비함 부함장 유종철이라니 참 허탈하다. 글쓴이의 자체 검증이 차라리 심각한 오류에 휘말렸으면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허탈한 데, 유종철은 법정에서 수첩을 뒤적거려 가며 쌩쇼를 부리고 있었던 것일까. 유종철은 법정에서 언론에 보도된 "천안함 침몰사건 대부분을 스크랩 해 두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아마도 그의 이같은 증언에 따르면, 국민들이 당시 KBS의 보도 내용을 신뢰하고 있었다는 판단에 따라 또는 신 위원의 모두진술 프리젠테이션 속에 등장하는 관련자료 등 천안함의 침몰좌표는 최초 군 당국이 알려준 좌표로 부터 5km 떨어진 곳에 임의로 설정한 게 유종철이 증언한 <짝퉁 좌표>로 사료된다. 위 <그림3>에 표시된 천안함의 최초 사고해점 좌표를 참조하면 유종철은 소설을 쓰고 있었던 셈이며, 자신의 기억력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언론 보도에 천안함 침몰 좌표를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또 위키백과 속에서도 (이동된 좌표지만)백령도 남방 2.5km 지점이 천안함의 침몰지점이라는 걸 명시하고 있는 데, 그는 무슨 배짱으로 천안함의 침몰좌표를 조작질하고 있었는지 참 궁금하다. 천안함 침몰사건 첫 공판에서 이같은 허위사실이 발각됨에 따라 <천안함의 진실> 찾기는 급물살을 타지않겠나 싶다. 천안함은 좌초로 물이 샌 적은 있었다. 그러나 5km나 되는 먼 거리를 표류한 사실은 찾기 어렵다.KBS가 보도 '5km 표류' 내용은 누가 제보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