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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22공탄이 내게 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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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공탄이 내게 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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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에 구녕이 하나 더 뚫렸다
자세히 세어 보지 않아도
구녕의 숫자가 50개는 넘었다

한 구녕에서 쉰이 넘는 구녕이 뚫리는 동안
나는 또 얼마나 바둥 거렸던가

요리 피하고 저리 피해도 어김없이 뚫린 구녕
구녕이 말했다
나는 곧 너의 모습이다

-내 몸에 하나 더 뚫린 구녕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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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산을 하산 하던 중 산기슭에서 깨진 연탄과 연탄재를 보게 됐습니다. 깨진 새까만 연탄과 함께 다 타버려 하얗게 재로 변해야 했을 연탄이 선명한 붉은 황토색을 띄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두 연탄이 매우 대조적으로 제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죠. 따라서 담박에 22공탄의 운명과 나의 운명이 떠올랐습니다. 22공탄은 생명을 다하고 구룡산 기슭에서 황토로 변해가고 있었고 저는 그의 주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곁에 쪼그리고 앉아 그의 삶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짧지만 화려했던 삶을 마감하고 영원한 쉼을 얻고 있었습니다. 22살의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일까요? 그의 몸에 뜷린 구멍을 하나 둘 세어보니 22개 였고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22공탄'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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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도시에서는 흔적 일부만 남겨두고 모두 사라졌지만 60~7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은 공터가 있는 곳이면 연탄재를 흔히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과 같은 모습이지만 대부분 다 타버린 연탄들은 원형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뭉게져 재로 변했는데 이 연탄들은 오늘날 석유나 가스를 가정용 난방연료로 사용하기 전에는 월동채비로 김장배추의 포기 수 만큼 부를 상징하는 하나의 표시 정도까지 이를 정도였습니다. 연탄은 온돌을 따뜻하게 데우는 화덕과 함께 신식보일러의 연료로 사용될 때 까지 숱한 이야기들을 만들었는데 특히 연탄가스 중독 사고는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특히 가난한 동네의 환기가 잘 안되는 집에서 사고가 잦았는데 그 때문에 연탄가스를 잘 배출시키는 '가스배출기'는 날개 돋힌듯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와 함께 연탄의 불완전 연소로 발생되는 연탄가스 중독 환자를 살리는 '동치미국물'은 빼 놓을 수 없는 상비약(?)과 다름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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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초반까지 난방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했던 게 연탄이었고 1975년 당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년간 소비되는 연탄의 숫자는 무려 60억개에 달했습니다. 따라서 연탄중독 사고도 비례하여 늘어났는데 연탄중독 사망자는 년 3,000명에 달했고 경증환자는 78만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난방을 위한 연탄이 거의 '사람잡는 연탄'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는 자고 일어나면 이웃에서 연탄중독이라며 난리를 치던 모습을 목격한 게 한 두번이 아니었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연탄가스 중독과 해독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는데 연탄가스 중독에 언급한 동치미국물이 효과가 있다는 말은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당시 모 학회가 식초산이 연탄가스를 중화 시킨다는 등의 발표가 그러했는데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동치미국물을 먹이면 일부 정신이 있던 환자가 차가운 김치국물에 잠시 정신은 들 망정 호흡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온 일산화탄소가 분해될 리가 없던 것이었죠. 자칫 동치미 국물이 기도로 들어가 사망의 원인이될 지언정 치료 효과는 없었는데 동치미국물 부터 먼저 찾으며 호들갑을 떨었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호흡기를 통해 우리몸에 들어온 산소는 '헤모글로빈 hemoglobin'이라는 단백질과 결합하여 온 몸으로 운반되는데 근육에는 '마이오글로빈 Myoglobin'이라는 단백질로 운반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산화탄소는 산소대신 헤모글로빈과 훨씬 더 친하여(?) 헤모글로빈과 잘 결합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일산화탄소를 많이 들이 마시게 되면 질식사에 이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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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신속하게 환자를 병원으로 후송하는 한편 현장에 남아있는 일산화탄소를 재빨리 환기 시키는 등 환자가 산소를 더 많이 호흡할 수 있도록 기도를 여는 조치와 함께 병원에서는 심폐소생술이나 고압산소를 흡입시키는 등의 응급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치미국물 정말 아니거던요.ㅜㅜ 얼마전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에 생생한 한 연예인의 연탄을 이용한 자살사건과 모방 사건등은 연탄가스의 일산화탄소를 이용한 자살이므로 연탄만 보면 후진국병과 다름없는 연탄가스 중독 사건이 오버랩 되는 것과 함께 가난한 우리 이웃이 얼른 떠 오르고, 오래전 청춘의 기억들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림속 연탄들의 구멍을 자세히 세어보면 22개로 22공탄으로 불리는데 이보다 앞서 나온 연탄(구멍탄으로 불림)은 구멍이 19개로 19공탄으로 불렸었습니다. 이후 구멍이 22개 내지 25개로 늘렸는데 연탄 구멍이 늘어나면 연소표면적이 늘어남에 따라 화력이 더해감을 알 수 있습니다. 연탄은 우리나라(남한)에서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고 일부에서만 난방용이나 취사용 등으로 사용되지만 아직 북한에서는 연탄을 난방용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적지않아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데 북한 국가과학원 환경공학연구소 김혜림 박사에 따르면 2008년 2일 2일 조선중앙TV에 출연하여  "연탄을 땔 때 일산화탄소가 방출되는 원인은 구멍탄의 치수가 불합리한 데 있다"고 했는데 연탄의 높이가 기존 11㎝와 달리 7~9㎝일 때, 구멍 직경은 1.5㎝일 때, 구멍 개수는 16~19개일 때 일산화탄소가 가장 적게 배출됐다고 북한 TV가 보도한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연탄의 구멍 숫자가 늘어나고 연소표면적이 늘어나면 화력은 더할지 모르지만 일산화탄소에 의한 중독사고를 줄이는데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연구결과 입니다. 아울러 석탄의 질에 따라서 연탄구멍의 갯수나 착화온도가 다른데 우리나라 경상남도 지방과 전라도 화순지역의 무연탄을 사용한 연탄구멍 숫자가 25개인 것을 감안하면 재미있는 데이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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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연탄의 정체를 살피며 정작 22공탄이 제게 전한 말을 빼 먹고 있었는데 연탄에 뚫린 구멍이 마치 나이를 한살 두살 더 먹어가는 삶의 연륜처럼 느껴져 구멍의 갯수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삶을 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죠. 그와 함께 우리가 태어나서 죽는 날 까지 아둥바둥 하며 산 시간들 모두는 육신을 하얗게 연소 시키며 종국에는 땅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인데, 삶을 마감하는 동안 구멍의 숫자만 늘려가는 것은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왜 사느냐는 것이죠. 새삼스럽게도 붉은 황토빛으로 변한 연탄은 제게 어떻게 죽을 것인지 반문하고 있었습니다. 19공탄 처럼 22공탄 처럼 25공탄 처럼 자신의 몸에 불을 지핀 이웃 몇을 일산화탄소 가스중독으로 사고를 일으킨 후에 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몸을 화려하게 태우며 가난한 이웃을 따뜻하게 만들며 한파를 잘 견디게 한 후 산화할 것인지 등에 대해 말입니다. 아마도 이런 원초적인 물음에 대해 공자님은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며 삶에 주어진 시간들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루게릭병( Lou Gehrig's disease라고도 함. 신경계가 퇴화하는 질환. 아직 그 원인은 아직 모르나, 주로 40세 이후 성인에게 생기며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흔하고 병후의 경과가 매우 나빠서 대부분 환자가 발병 뒤 2~5년 내에 죽는다고 알려져 있음)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던 '모리' 교수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 '미치 앨봄, Mitch Albom' 등 그의 제자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기록한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에서 그는 마치 22공탄의 역할을 닮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남기고 있었죠. 적지않은 사람들이 죽음을 부인하며 생명의 끝자락을 붙는 채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하는 모습과 다르게. 그는 죽음 앞에서 삶의 소중함과 함께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워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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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 조차도 반은 자고 있는 것 같다구. 그것은 그들이 엉뚱한 것을 쫓고 있기 때문이지. 자기의 인생을 의미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데 헌신해야 하네."
 

저의 몸에 쉰이 넘는 구멍이 뚫리는 동안 세상의 모습은 온통 제게 가르침만 주었습니다. 그 가르침들은 때로는 고통으로 다가왔고 때로는 슬픔으로 다가왔고 분노로 다가왔는가 하면 기쁨에 겨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천의 얼굴을 하며 저의 삶을 지탱시키고 왔던 것이죠.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의 삶이 이웃에 대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물음 앞에 서면 갑자기 벙어리가 되고 마는데 구룡산 자락에 버려진 다 타버린 연탄재가 그런 물음을 다시금 던지고 있다니, 아직도 저는 세상에 대해 빚만 지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어쩌면 내 몸에 쉰개 이상의 구멍이 뚫리는 동안 여전히 세상이 내게 갚아야 할 게 더 있다고 여기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며칠만 있으면 입춘이 다가오는군요. 세상은 다시 환희로 들떠 부활을 노래할 텐데, 그때 내 몸에 하나 더 뚫린 구멍으로 단 한번 만이라도 이웃을 위해 활활 타오르는 연탄이고 싶기도 하고, 22공탄의 생애을 통해 다시금 삶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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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는다는 것은 쇠락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며
적어도 내 몸에 뚫린 구멍 숫자 만큼 삶을 이해한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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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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