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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겨울바다에서 만난...너무도 다른 '두 女人'

겨울바다에서 만난...너무도 다른 '두 女人'


영랑호에서 지척에 있는 겨울바다는 시리도록 푸른빛을 발산하며 동장군의 남침을 도우고 있었다.
그는 파닥이는 물고기를 시퍼렇게 날선 검으로 회 뜨듯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살을 애이고 있었고
마침내 가슴 속 깊은 곳 까지 동통을 느끼게 하며 각막 상하를 뒤적여 알 수 도 없는 맑은 액체를 짜 내고 있었다.



나는 가로등 불빛이 노오랗게 흐느적 거리는 민박집 2층의 창 커튼을 한뼘만 열어 두고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가로등 불빛 너머로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바다가 쉽없이 포말을 나르고 있었고
온 몸을 던지며 방파제 곁에서 부서지는 그들의 비명은 작은 기억을 떠 올리게 만들었다.


온누리거사와 함께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한 늦은밤의 대작은
한동안 잊고 살던 삶에 대한 작은 생각들을 일깨우고 있었는데
그 곁에는 검고 윤이나며 긴 머리카락을 가진 30대 후반의 한여인의 이야기가 안주처럼 곁들어 있었다.



맑은눈동자의 젊디젊은 그녀의 얼굴은 화장을 하지 않은 '생얼'이었고
 아이 하나를 둔 그녀의 입술은 도톰하고 하얀 얼굴은 그녀가 바닷가에서 살고 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투명하여
이 선술집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는 마스코트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덩치가 크고 말수가 적었지만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음식들은  
그의 덩치와 걸맞지 않게 맛나며 그가 정성스럽게 구운 고등어며 꽁치며 서대는
갈탄의 노오랗고 파란 불빛보다 더 고운 빛으로 작은 테이블을 빛나게 했는데,


온누리거사는 그런 무뚝뚝해 보이는 그를
"...저 자식은...조폭 같아!..." 하고 놀려 댓지만 그는 그저 물끄러미 쳐다 볼 뿐이었다.



그런 그와 생얼의 그녀는 거사의 생일까지 기억해 두었다가 미역국을 끊여두고
친아버지처럼 모시는 넉넉함으로 거사는 이 집의 단골이 되고 말았던 것이며
생얼의 그녀는 거사의 친딸과 같이 싹싹 거리며 거사의 벗이 되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를 계속 바라보면 우울증을 앓는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렇지요...이곳에 근무하던 공무원들은 다시 이곳을 찾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관조의 차이겠지요..."



그러니까 이 생얼의 여인은 세발짝만 내디디면 닿을 수 있는 해변곁에서 남편과 함께 선술집을 하고 있지만
검푸른 바다는 있는 둥 없는 둥 했고 쉼없이 들락거리며 굉음을 쏟아내는 파도소리 따위는
그녀를 우울증으로 가두어 놓을만한 아무런 이유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그녀를 가두려 들 때면 가슴을 열어 칭얼거리는 바다를 품었고
바다는 그녀의 품에서 고이 잠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랬던지 그녀의 투명한 얼굴색과 수정처럼 맑은 눈과 도톰한 입술과 검고 긴 머리카락은
용궁에서 외출나온 인어 같기도 했다. 테이블위에 술병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었다.


민박집의 발코니에 있는 에어콘실외기를 덮어 둔 비닐이 바람에 날리며 파다닥 거리고 있었다.
허연 포말을 일으키며 왔다가 사라지는 바다의 움직임은 겹창호 사이로 냉기가 스물스물 배어 나오게 했는데
 조금전 다녀 간 이 민박집 여주인의 하소연도 동시에 떠 올랐다.


그 여인이 우리가 잠을 청하는 이곳을 다녀간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6년동안 아이들을 키워 낸 민박집을 내놓은 것이었고 다른 주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이 집을 내 놓은 이유중 하나는 바다가 너무 싫다는 것이었다.


단 한시라도 바다곁을 떠나 있으면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았고
저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면 살아 갈 희망이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녀는 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집안내력에도 없는 '당뇨병'까지 그녀를 힘들게 하여
그녀의 두눈은 쑥 들어갔고 얼굴은 야위어 가며 건강했던 몸은 야위어 가고 있었던 것인데,
제발...이 민박집을 처분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소원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운 사찰의 와불을 향하여 백배 천배를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갈증 때문인지 혀로 입술을 축여가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전...바다가 너무 무서워요...저 바다가 언제인가 나를 삼킬 것 같아요...
저는 충청도 산골에 살아서 그런지 웬지 물이 싫었어요..."


그녀의 남편 고향이 속초여서 그녀는 남편의 사업이 있는 이곳을 6년전에 찾아와서 민박집을 하게되었고
남편의 사업부진과 실패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었는데
그녀는 남편을 떠 말려서라도 이곳에 오지 말자고 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바다는 그녀에게 원수와 같이 싫은 존재였고 그녀의 가위를 누르는 魔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바다는 그저 들락날락 거리며 방파제에 허연 침을 뱉으며 달아나고
조롱하듯 다시금 다가와서 침을 뱉고 달아나곤 했다.



영랑호에서 걸어오면...아니 이 바닷가에서 영랑호 까지 걸어가면 5분이면 닿는 곳에 이 두여인이 살아가고 있었다.
한 여인은 검푸른 바다가 곁에 있어도 있는 둥 마는 둥 했을 뿐 아니라 바다는 그녀의 놀이게 감에 불과 했지만
한 여인에게 바다는 두렵고도 무서운 존재로 남아서 그녀를 바다로 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민박집을 하고 있는 여인보다 외형적으로 더 가난한 생얼의 그녀 모습은 너무도 건강한 모습이었지만  
그녀보다 더 나아 보이는 이 민박집의 여인은 날로 수척해 가고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녀가 날마다 와불을 향하여 치성을 드리는 안스러운 모습을 너무도 잘 아실 거사는
 한마디로 이 현상을 갈파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요...부처님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슬퍼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요...웃기도 하시더라구요..."



그랬다.
저 바다는 너무도 무심한 바다였다.
오장육부를 다 핥키어도 저 할 도리만 하는 무심한 존재일 뿐이며 허상이었다.

세상의 바다는 노도와 같이 풍파를 일으키며 우리네 삶들을 금방이라도 삼킬 듯 하지만
막상 그 풍파를 잘 들여다 보면 아무런 존재도 아닌 허상일 뿐인 것이다.


이틀동안 영랑호가 있는 속초의 한 바닷가에는 매서운 한파가 불어 닥치고 있었고
그 바닷가에 두 여인이 살고 있었다.

생얼의 인어와 같은 거사의 딸에게 저 바다는 없었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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