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2023년 새해, 보다 화끈하고 시원한 일은 없을까..?!!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서기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아직 음력설(계묘년, 癸卯年)은 멀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양력 1월 1일이 오시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푼다. 하필이면 1월 1일이 일요일이어서 오늘 아침 도사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뭔가 화끈하고 시원한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남미일주 여행 사진첩을 떠올렸다. 사진첩 속에는 남미일주 대장정 끄트머리에 찾아간 이과수폭포(Cascate dell'Iguazú)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첩은 어느덧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9년 전의 기록.. 하니와 함께 이 세상 끝까지 가 보기 위해 '죽어도 좋아'라며 의기투합하여 떠난 여행이다. 우리의 여정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밴쿠버 공항을 경유하고 다시 남미대륙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멕시코에 들어 마야문명을 둘러보고 페루의 리마 공항을 경유하여 고도 꾸스꼬(Cusco) 공항에 발을 디딘 다음 숨 막힐 듯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 안내판 너머로 하니가 분홍색 양산을 펼쳐들기 직전의 모습이 담겼다. 햋볕은 쨍쨍..
이런 여정을 소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음블로그>가 종료되어 자료를 백업하는 가운데 남미일주 기록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은 물론 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우리가 남미일주를 떠날 당시만 해도 여행정보는 매우 빈약했다.
S방송의 한 피디를 통해 남미일주의 정보를 접하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페루의 수도를 거쳐 꾸스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그분들은 꾸스꼬 공항에서 만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남자 조카 한 사람으로 페루 여행의 길라잡이였다. 행운이었다.
그다음 그들의 안내에 따라 꾸스꼬 중심에 위치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름은 호텔이었지만 겉과 속(?)의 차림은 너무도 허름했다. 추억 속에 박재된 오래된 여인숙 정도랄까.. 남미일주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배낭의 짐을 풀자마자 나타난 증상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떠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생전 처음 고산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꾸스꼬 주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아마존강 투어는 물론, 그 유명한 잉카트레일을 끝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 우유니 사막을 횡단하는 등 대장정을 끝마치고 칠레로 이동하고, 다시 뿌에르또 몬뜨까지 여행을 감행했다. 그다음 안데스를 넘어 바릴로체로 이동한 다음 나우엘 우아피 호수에 우리의 추억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미대륙을 횡단하여 아르헨티니의 평원을 가로질러 띠에르라 델 푸에고를 거쳐 땅끝 도시 우수아이아를 여행했다. 그다음 깔라파테와 엘찰텐의 피츠로이를 여행한 다음 북상하여 귀국길에 이과수폭포에 들렀던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한 순간에 기나긴 남미일주 여정이 단박에 떠오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긴 여정.. 지금생각해 보니 스스로 '위대한 여정'이라는 수식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누군가 먼 나라 여행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면서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을 걸었다면 얼마나 웃픈 일일까.. 여행에 목숨을 걸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 가집이 없었다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안 청춘의 배낭여행이 온전했을 리 없다. 당시 우리가 믿는 구석은 나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 때문이었다. 남미여행은 언제 어디를 가도 브라질을 제외하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낭여행을 풍족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스페인어였다. 따라서 동선은 매우 수월하게 이어졌으며 현지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은 형제처럼 대해주곤 했다.
새해 벽두에 떠올린 남미일주의 대장정이 마음에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둘씩.. 5년 만에 이탈리아서 귀국한 한국 생활이 어느덧 5개월을 넘어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언제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면 여러분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은 남미일주의 긴 여정 끝에 만난 시원한 풍경을 앞에 두고 체기를 달래고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 앞에서 감동했던 시간들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타나 주기를 희망하며 1600번째(자축) 포스트를 이어간다.
이과수폭포, 우리의 위대한 여정
-계묘년에 꿈꾸는 새롭고 행복한 꿈의 나라
포스트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일몰 사진은 남미일주 여행의 후반전을 장식하는 이과수폭포로 이동하면서 만난 진풍경이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일몰.. 그리고 우리는 이과수폭포의 또 다른 장소인 아르헨티나 지역에 여장을 풀었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사진의 두 번째 풍경은 첫날밤이 지난 후 이과수폭포로 이동하여 맨 먼저 만난 풍경으로 이과수폭포를 만나려면 작은 전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여서 수량이 적었지만 여전히 여행자를 압도하는 웅장한 물줄기가 압권이었다. 그 현장으로 천천히 이동해 본다.
이과수폭포 본류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건기가 되어 지류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다 바로 곁에는 폭포가 떨어지는 절벽이며 장차 만나게 될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el Diablo / Garganta do Diabo)'까지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참 특이한 풍경들..
폭포의 본류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처음 만난 이과수폭포의 잔경.. 폭포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이과수폭포 전경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내가 지참했던 카메라는 화질이 뛰어나지 못하여 아쉬음이 남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은 실로 위대하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하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인 이과수폭포는 이과수 강이 지류이며 반원형 모양으로 2,700m에 달한다. 총 275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언급한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폭포가 80m로 가장 높고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 들러 꼭 만나고 싶었던 유명한 폭포..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을 내는데 곁에 서 있으면 저절로 빨려 들어갈 듯 묘한 충동을 주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이과수폭포 전경이 실로 웅장하다.
이과수폭포의 본류가 흐르는 계곡 끄트머리 우측(가려져 있음)에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폭포 좌측이 브라질 쪽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깨알처럼 작게 보인다.
햇볕은 쨍쨍 폭포수는 수아악.. 굉음을 내며 추락하고 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우리 행성 최고의 경치를 만끽하고 있다.
벼랑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의 미시오네스 주와 브라질의 파라나 주 사이에 있으며 두 나라가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지정 면적은 아르헨티나가 550㎡, 브라질은 약 1,700㎡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3배 이상 넓다.
롤랑 조페(Roland Joffé)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영화 <미션, Mission>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풍경.. 미션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도록 한다.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참 흥미로운 일이 2023년 벽두에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과수폭포 같은 행운의 날벼락(?)이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전혀 원치 않았던 불행한 일들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대략 19년 전의 남미일주 끄트머리서 만난 감동적인 풍경 하나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인생후반전 혹은 연장전에서 만날 대반전도 폭포수처럼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은 꾸고 실천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이겠지.. 여행자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하편에서 계속>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con mia moglie_Cascate dell'Iguazú
il 02 Gennaio 2023, Biblioteca Municipale di Chuncheon
'SUDAMERICA' 카테고리의 다른 글
IL MIO VIAGGIO SUD AMERICA DEL SALAR DE UYUNI (0) | 2018.07.09 |
---|---|
IL MIO VIAGGIO SUD AMERICA DEL SALAR DE UYUNI (0) | 2018.07.06 |
SUD AMERICA RIO DELLE AMAZZONI (0) | 2017.11.28 |
RIO DELLE AMAZZONI PERIODI ANTICHI (0) | 2017.11.20 |
EL CAMINO DEL INCA A MACHUPICCHU (0) | 2017.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