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은 대척점에 있는 것일까...?"
태어날 때와 죽을 때,사랑할 때와 헤어질 때,기쁠 때와 슬플 때...그곳에는 늘 하나의 강이 존재했다.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차이가 '백짓장 하나 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천국과 극락을 구분해 둔 것도 강이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 강을 도솔천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요단강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문명이 탄생한 강은 생명의 근원이기도 했지만, 또한 생명을 거두는 곳이었는 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은 늘 둘로 나뉘곤 했다.
내 앞에 흐르는 강도 다르지 않았다. 지구 반대편 북부 파타고니아 칠레의 오르노삐렌 마을 앞을 흐르고 있는 네그로 강(Rio negro)은, 년중 쉼 없이 맑은 물을 앙꾸드 만(Golfo de Ancud)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안데스로부터 발원한 강물은 두 갈래로 흘렀는 데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이 네그로 강이었으며, 마을 저편 오르노삐렌 국립공원 기슭으로 흐르는 강이 블랑꼬 강(Rio Blanco)이었다.
님아,그 강을 어서 건너오시오
머리에 눈을 이고있는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삐렌 화산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네그로 강. 말 한필이 강을 건너고 있는 장면은 희귀한 장면이었다. 이곳에선 흔한 장면이었을 지 모르겠지만, 한 여행자의 눈에 비친 모습은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듯 신기했다. 녀석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잠시 후 녀석이 강을 건넌 이유가 명확해졌다. 그 이유를 쫓아 가본다.
년중 쉼 없이 빙하가 녹은 물이 철철 넘치는 네그로 강의 하류 모습은 꿈만 같다. 옥수같은 물이 원시계곡 사이로 흘러내리는 곳. 이곳이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삐렌 마을의 젖줄이다. 카메라의 위치는 강 하구에 위치해 있고 오르노삐렌 앞 바다와 근접한 곳. 그곳에서 (나홀로)강을 건너는 말 한필을 만나게 됐다.
언뜻 보기엔 강의 수심이 가늠이 안 되지만 녀석은 이 강을 한 두번 건넌 솜씨가 아닌 듯, 네그로 강에 다가서자마자 거침없이 강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저 신기할 뿐, 녀석이 강을 건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빳다.
카메라의 줌을 해제하고 바라보면 이런 풍경.
녀석은 네그로 강 하류를 가로질러 강 반대편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느새 뭍에 다가선 녀석은 첨벙첨벙 강을 건너 맞은편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녀석은 무슨 이유 때문에 강을 건넌 것일까.
이유는 단박에 밝혀졌다.
강 건너에서 일찌감치 그 모습을 기다리고 있었던 또 다른 말 한필이 나지막한 언덕 위에서 마중을 나선다.
님아,어서 오시오...!
반갑게 맞이하는 한 녀석은 그녀의 절친 혹은 남편인 듯 머리를 맞대고 반가워한다.
사람들은 가끔씩 착각을 한다. 인간들만 사랑을 하고 인간들만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인간 이외 동물들의 삶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그들의 삶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세상이 인간의 소유물처럼 여기게 된 것. 그런데 강을 건너 사랑을 찾아 떠난 말 한필을 보면서, 인간이 그토록 아끼고 그리워 한 사랑이 무엇인 지 단박에 알게 된다.
그녀가 강을 넌너기 전까지 강은 그저 이 마을의 젖줄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을 찾아 강을 건너는 순간부터 강은 두 개체를 이어주는 도솔천 혹은 요단강 같은 존재로 변하고 있었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통로처럼 보였던 강이 사랑을 확인하는 아름다운 강으로 변한 것. 그 장면을 눈 앞에서 보고있자니 그저 이 세상이 천국이나 극락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가슴에 늘 강 하나를 품고 사는 지 모르겠다.
때론 그 강이 야속할 때도 있고 고마울 때도 있는 법.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에 따라 강을 이렇게 보기도 하고 저렇게 여기기도 하는 지, 내 앞에서 강을 건너는 말 한필을 보면서, 강 건너편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또 다른 말 한필의 마음을 읽는다.
"사랑하는 내 님아,그 강을 어서 건너시오...!"
강 건너 작은 언덕 위, 말 맨 말뚝에 구속된 말 한필의 속마음은 어떠했을까...?
"(강을 건너 사랑을 찾은)니가 너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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