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두 얼굴 발파라이소
-제1부,천국의 골짜기에 봄이 오시면-
천국의 골짜기는 어떤 모습일까.
사진 한 장을 앞에 두고 사흘 밤 낮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이 풍경을 처음 봤을 때 필자의 느낌과 발빠라이소를 사랑했던 한 시인의 느낌을 비교해 보고 있었던 것. 이곳은 시인이자 정치인이며 외교관이었던 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빠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가 사랑한 도시 발빠라이소의 한 골짜기 풍경이다. 한국에서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설 때 산티아고에 들러 맨 먼저 가 보고 싶었는 곳이 발빠라이소(Valparaiso)였다.
여행노트 행운이었다. 우리가 발빠라이소에 발을 들여놓을 때 쯤 천국의 골짜기(vally+paradise=Valparaiso) 혹은 천국의 계단으로 불리우는 이곳 발파라이소에는 온통 꽃천지였다. 발을 디디는 곳이면 어김없이 풀꽃들이 피어있었고, 먼지 한 톨이라도 있으면 그곳엔 노랗고 빨간 풀꽃들이 어김없이 꽃잎을 드러내 놓고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2박 3일동안, 이른 아침부터 밤 늦도록 이 골목 저 언덕을 배회했던 시간들. 그 땐 두 번 다시 발빠라이소에 들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빠따고니아 투어를 마치고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왔을 때 두 번씩이나 더 찾았던 곳. 무엇이 그토록 이 도시를 그리워 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내가 본 발파라이소는 그래피티의 도시이자 천국의 골짜기를 품은 환상의 도시였다. 그 현장을 여러편에 나누어 소개해 드린다.
천국의 두 얼굴 발파라이소로 향하여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발파라이소까지 거리는 대략 120km에 이른다. 산티아고에서 68번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면 1시간 30분 남짓이면 당도하는 거리인데, 연말연시의 성수기(휴가철) 때는 우리나라처럼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 곳이기도 하다. 아울러 지구반대편 남반구의 여름(건기)은 12월부터 2월까지여서, 이 기간 중에 남미여행은 비싼 대가를 치뤄야 하기도 한다. 숙소나 교통편을 사전에 예약해 두지 못하면 웃돈을 얹어 주고도 잠자리나 티켓을 구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전쟁이다. 참고 하시기 바란다.
산티아고에서 68번 고속도로를 타고 발빠라이소 혹은 비냐 델 마르(Viña del Mar)로 가는 길 옆으로 보이는 풍경은 주로 포도밭이다. 질 좋은 포도주를 맛 볼 수 있는 와이너리(winery,와인이 만들어지는 포도원 또는 양조장. 불어로는 샤토(Chateau) 혹은 도멘느(Domaine)라고 함.)가 유혹하고 있다. 2000년대 초, 칠레 와인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저렴한 가격의 품질 좋은 와인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돼 오늘날 프랑스 와인을 제치고 국내 판매 1위에 올라설 정도.
그러나 산티아고에 꽤 오래 머무는동안, 값 싸고 질 좋은 포도주를 자주 접하면서 이곳에 대한 매력은 점차 사그라 들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를 위해 이곳 여행사에서는 '와이너리 투어'를 권장하고 있기도 하다. 양질의 포도주를 직접 시음해 볼 수 있고 쇼핑할 수 있는 이색 투어임에 틀림없는 곳이다. 68번 국도를 버스 차창 밖으로 내다보면 끝도없이 펼쳐진 포도밭이 눈에 띌 것. 산티아고의 알라메다 버스터미널(주소:TIKAL S.A. Alameda 3850, Piso 2, Estación Central )을 떠난 지 대략 1시간 40분 정도만에 마침내 발빠라이소에 도착했다.
발빠라이소의 명물 '무궤도 전차 시스템' 트롤리 버스
스모그가 자욱한 산티아고를 떠나 발빠라이소에 도착하면 맨 먼저 시원한 바다 풍경이다.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 눈 앞에 나타난다. 남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무괘도 전차시스템 트롤리 버스(Trolleybuses)가 여행자의 발길을 붙드는 것. 마치 오래전 필자의 고향 부산에서 타 봤던 전차가 단박에 오버랩 됐다.
발빠라이소가 200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도 무괘도 전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863년에 노면전차로 도입된 이래 1946년에서 1952년에 제작된 폴뉴먼사의 트롤리 버스는 건재하게 잘 운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나중에 안 일이었다. 우리를 행운으로 이끌어준 건 따로 있었다. 우리가 발빠라이소에 들러 맨 먼저 한 일은 바닷가로 나가보는 일이었다.
발빠라이소가 200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도 무괘도 전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863년에 노면전차로 도입된 이래 1946년에서 1952년에 제작된 폴뉴먼사의 트롤리 버스는 건재하게 잘 운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나중에 안 일이었다. 우리를 행운으로 이끌어준 건 따로 있었다. 우리가 발빠라이소에 들러 맨 먼저 한 일은 바닷가로 나가보는 일이었다.
봄의 발빠라이소 바닷가는 한적했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꽃들이 활짝 피아나고 있었다. 멀리 상선들이 정박해 있는 곳은 비냐 델 마르 앞 바다.
좌측으로 돌아보면 우리의 목적지 발빠라이소가 천국의 골짜기를 품고 동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곧 도시의 빌딩 너머로 보이는 골짜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한 골짜기로 이동하게 될 텐데, 바닷가에서 미리 그 골짜기를 보게 됐다. 물론 나중의 일이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큰 빌딩 사이의 골짜기 속에 파묻혀 우리를 기다린 것.
그동안 발빠라이소의 쁘랏 항구를 멀리서 바라보며 동선을 예측한다. 쁘랏 항구의 이름은 아르뚜로 쁘랏(arturo prat Chacon)이라는 칠레 해군 제독의 이름따 온 것으로, 쁘랏 제독은 남미판 태평양 전쟁에서 칠레 해군을 지휘하여 페루와 볼리비아의 연합군을 칠레 북부 '이끼께 해전(Battle of Iquique)'에서 승리한 칠레의 영웅이다. 이 해전으로 볼리비아는 바다를 다 빼앗기고 띠띠까까 호수만 바라보게 됐고, 오늘날까지 두 나라간의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발빠라이소만(灣)의 해안선 끄트머리에 칠레 해군의 본거지인 해군본부가 있고 군항의 모기지가 도사리고 있는 곳.
그곳에서 작은 선착장으로 걸어가 보니 장차 마주치게 될 알록달록한 천국의 골짜기를 미리 보는 듯, 도시 어디를 가나 낙서와 그래피티로 도배된 곳이 발빠라이소의 현재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뒤를 돌아다 보니 산복도로가 이어지고 있는 고향 땅 부산의 모습을 쏙 빼 닮았다.
두 세뇨리따가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선착장에서 좀 더 나아가, 멀리 북쪽의 비냐 델 마르 쪽을 보니 동태평양은 의외로 숨을 죽이고 있다.
우리가 한국을 떠나 칠레에 도착한 때는 우기가 막 끝나가고 있을 무렵.
아직은 찬기운이 도는 바다에 관광객 한 무리를 태운 유람선이 비냐 델 마르 쪽으로 향한다.
이제 숙소를 잡고 짐을 여장을 풀 차례. 우리는 교민들이 주로 살고 있는 베쟈비스따 근처의 호스텔에 큰 짐을 맡겨두고 서브 배낭만 챙겨 발빠라이소에 도착했다. 발빠라이소만 둘러보고 곧장 빠따고니아로 떠날 생각. 여행지에 도착해 놓고 보니 봄이 의외로 빨리 다가와 있었다. 우리는 빠따고니아의 봄을 만나고 싶었던 것. 그러나 만에 하나 봄의 발빠라이소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착장에 전시된 구명정을 지나면 조금 전 우리가 이동했던 트롤리 버스가 있던 버스 정류장
바닷가에서 시내를 잇는 육교를 건너자마자 저 멀리서 지하철이 다가온다. 아담한 지하철이 다가오는 풍경 가운데 이무렇게나 퍼질러 앉은 젊은 여성이 눈에 띈다. 이 도시를 어디를 가나 눈에 듸는 그래피티들. 이들은 무엇에 목마른 것일까.
육교를 다시 건너 길거리에서 마주친 한 노점상. 아직은 도시에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않는다. 그런데 이곳에서 가까운 버스터미널에서 행운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행운이라 해 봤자 로또 같은 대박은 아니지만, 발빠라이소의 속살 전부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 해 준 것은 의외였다.
발빠라이소 버스터미널 근처에 시에서 운영하는 작은 관광 안내소가 시설돼 있었는 데 그곳에는 이 도시의 지도와 전화번호가 적힌 작은 팜프렛이 여럿 꼿혀있었다. 그곳에는 한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며 일을 하고 계셨는 데 곁으로 다가가 반은 농담 반은 진담으로 이렇게 물었다.
"올라 세뇨라. 발빠라이소에서 가장 전망이 좋고, 가장 값이 싼 호텔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 "
"올라 세뇨라. 발빠라이소에서 가장 전망이 좋고, 가장 값이 싼 호텔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 "
이런 질문은 내가 생각해 봐도 참 염치없는 질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질문을 하면 질문자를 한 번 더 쳐다볼 것이다. 물정을 잘 모르거나 농담이거나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거나...그런데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나와 아내를 번갈아 봤다.
"넵! 세뇰, 있다마다요. 방은 얼마짜리면 되겠어요?..."
"넵! 세뇰, 있다마다요. 방은 얼마짜리면 되겠어요?..."
천국의 골짜기에 봄이 오시면
어차피 선택은 우리의 몫이므로 다짜고짜로 흥정을 해 2인 1실의 호텔을 1일 13000원 뻬소로 정했다. 우리돈으로 대략 2만 6천원정도의 싼 요금이었다. 2만 5천 뻬소의 요금을 절반 정도의 가격으로 흥정한 것이다. 여기에 덤으로 호텔까지 이동하는 택시요금은 호텔에서 물기로 한 옵션을 채택해 주었다. (빙고!~)속으로 염치없는 짓에 대해 기분좋아 하며 우리가 자리잡은 곳은 맨 처음 봤던 그 골짜기였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수도 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 한 발빠라이소의 풍경 속에서 '천국의 계곡'이 무한 회상되고 있었다. 왜 천국의 계곡 혹은 골짜기로 불럿을까. 발빠라이소로 가는 버스 속에서 천국의 계곡은 이미 정리되고 있었다. 1536년 침탈자 디에고 데 알마그로(diego de almagro )는 이곳의 풍광이 빼어나 발빠라이소라고 불렀는 지 모르겠지만, 그로부터 수 백년이 지난 후 발빠라이소의 위상은 많이도 달라졌다.
칠레의 현대사를 힘들게 만들었던 두 대통령 아옌데와 피노체트의 고향이 발빠라이소며, 아옌데의 정치적 동지였던 빠블로 네루다가 사랑한 도시가 발빠라이소였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전까지 동태평양의 무역항구로 풍요를 누렸던 발빠라이소라면, 흥청망청 영화를 누렸던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
빠랏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서면 무역항에서 주야장천 일을 하던 노동자들이 절로 생각난다. 도시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부자들에게 발빠라이소 항구는 천국이었을 테지만, 부두 노동자들의 삶을 생각하면 그곳은 지옥같은 곳이었을 것. 하루 종일 피땀흘려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곳은, 말 그대로 가난한 노동자들이 사는 천국의 골짜기가 아닌가.
그러나 품삯을 받아 쥔채 해가 뉘엿거리고 어둠이 깔린 언덕으로 터덜터덜 오를 때면, 맨 먼저 생각나는 게 토끼새끼같은 아이들과 환한 웃음으로 가슴에 안기던 아내. 그들이 이 골짜기에 살고 있었으므로 발빠라이소 항구는 주야장천 불빛을 잃지 않았을 것. 항구 곁에서 흥청망청 하는 사람들은 그곳이 천국이며, 부두 노동자의 천국은 천국의 골짜기로 불리우던 바로 그곳...
우리는 숙소에 여장을 풀자마자 곧장 천국의 골짜기가 잘 조망되는 곳이라 일러준 옥상 카페로 향했다. 카페라 해 봤자 식탁 몇 개와 전자렌지와 취사도구가 전부. 주변 풍광을 감안하면 규모가 어떤지 대략 짐작이 될 것. 그곳에서 둘러본 천국의 골짜기는 곳곳에 미로같은 골목길과 계단이 수도 없이 보였다.
또 그곳에는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집들과 함께 풀꽃들이 수도 없이 피어있었다. 침탈자들이 바라봤던 천국의 골짜기에는 지금 도시의 빈민들이 살고 있었지만, 정녕 그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세상에!...흙 한 점이라도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풀꽃들이 꽃을 피워댓다. 일찌기 빠블로 네루다는 사랑의 소네뜨를 통해 이런 풍경을 노래했을까.
사랑이여, 우리는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격자 위로 포도넝쿨이 기어오르는 곳:
당신보다도 앞서 여름이 그
인동넝쿨을 타고 당신 침실에 도착할 것이다.
우리 방랑생활의 키스들은 온 세상을 떠돌았다:
아르메니아, 파낸 꿀 덩어리—:
실론, 초록 비둘기—: 그리고 오랜 참을성으로
낮과 밤을 분리해온 양자강.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돌아간다, 내 사랑, 찰싹이는 바다를 건너
담벽을 향해 가는 두 마리 눈먼 새,
머나먼 봄의 둥지로 가는 그 새들처럼:
사랑은 쉼없이 항상 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삶은 담벽으로,
바다의 바위로 돌아간다:
우리의 키스들도 그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빠블로 네루다의 '100편의 사랑 소네트 033' (정현종 역)
격자 위로 포도넝쿨이 기어오르는 곳:
당신보다도 앞서 여름이 그
인동넝쿨을 타고 당신 침실에 도착할 것이다.
우리 방랑생활의 키스들은 온 세상을 떠돌았다:
아르메니아, 파낸 꿀 덩어리—:
실론, 초록 비둘기—: 그리고 오랜 참을성으로
낮과 밤을 분리해온 양자강.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돌아간다, 내 사랑, 찰싹이는 바다를 건너
담벽을 향해 가는 두 마리 눈먼 새,
머나먼 봄의 둥지로 가는 그 새들처럼:
사랑은 쉼없이 항상 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삶은 담벽으로,
바다의 바위로 돌아간다:
우리의 키스들도 그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빠블로 네루다의 '100편의 사랑 소네트 033' (정현종 역)
사랑이여, 우리는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격자 위로 포도넝쿨이 기어오르는 곳:
당신보다도 앞서 여름이 그
인동넝쿨을 타고 당신 침실에 도착할 것이다.
격자 위로 포도넝쿨이 기어오르는 곳:
당신보다도 앞서 여름이 그
인동넝쿨을 타고 당신 침실에 도착할 것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 하고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공간, 발빠라이소의 천국의 골짜기는 그렇게 내 가슴 속으로 다가왔다. 천국의 두 얼굴을 가진 도시 발빠라이소의 진정한 매력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내가 꿈꾸는 그곳의 Photo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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