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촬영지 '서연의 집'에서
"니가 나 한테 쌍년이라 그랬지?..."
제주(서귀포)에서 돌아와 케이블티비로 다시 <건축학개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영화를 다 보니 승민이가 그럴만 했다. 승민이의 내성적인 성격을 참조하면 그가 내뱉은 쌍년이란 욕은 욕이라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서연)이 자기의 마음을 못 알아 주니 야속한 마음에 그냥 내 뱉은 말이 '쌍년'...
서연은 건축주가 되어 건축사 승민에게 제주도 서귀포 위미리의 옛집에 집을 지어달라고 했지만, 집이 완성되자 승민과 서연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15년 만의 재회가 이별로 막을 내렸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 남겨준 집. 그 집은 실제로 건축학개론을 촬영하면서 허물고 다시 지어진 집이다.
어쩌면 영화속 서연은 이 집에서 평생토록 첫사랑의 아름다운 추억을 곰되씹으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 집 구석구석 승민의 손길이 안 간 곳이 없기 때문. 그 현장을 잠시 둘러보며 필자의 첫사랑을 떠 올려본다.
첫사랑의 여자는 다 쌍년일까
서연의 집에 맨 처음 발을 디딘 후 카페 정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연인들. 바람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니 조금 전 지나쳐 온 입구가 보인다.
카페 입구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풍경. 건축학개론에 출연한 감독과 건축가 주연배우 등의 손바닥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한 여성이 자기 손바닥을 한가인(서연 역)의 손바닥에 맞대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흉내낼 일일까...ㅜ)
서연의 집 카페 안은 꽤 넓었지만 사람들로 붐벼 좁아 보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가 날 때까지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카페 안에서 바깥으로 바라본 풍경. 그곳에서 한 여성이 바람을 맞고(?) 있었다.
말해봐. 그때 왜 나한테 잘해줬었어?
...널 좋아했으니까.
서연의 집 카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영화속 스틸컷이 벽면 한쪽을 다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면에는 대본이...
대본 맨 마지막을 살펴보면 건축학개론의 불길한 여운이 느껴진다.
난 어떤집에서 살 꺼냐면...2층을 올리는거야. 2층집. 창도 많고.마당도 있고.
여기가 거실이랑 안방(슥슥) 애들방은...애는 둘 정도 낳을 꺼니까.(슥슥)
우리 십 년 뒤에 뭐 하고 있을까?
말해봐. 그때 왜 나한테 잘해줬었어?
...널 좋아했으니까.
승민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서연이 선물해 준 '씨디' 재생기를 택배로 부쳐주는 장면이 영화의 끝장면이다.
난 어떤집에서 살 꺼냐면...2층을 올리는거야. 2층집. 창도 많고.마당도 있고.
여기가 거실이랑 안방(슥슥) 애들방은...애는 둘 정도 낳을 꺼니까.(슥슥)
말해봐. 그때 왜 나한테 잘해줬었어?
...널 좋아했으니까.
주문한 커피가 나올 때쯤 창 밖을 바라보니 두 연인의 모습이 정답다.
풋풋했던 첫사랑을 그린 건축학개론이 아니라도 첫사랑은 우리에게 낮설지 않다.
누구나 아무나 한 때 열병처럼 앓는게 첫사랑...
내게도 첫사랑이 있었다.
승민이 한테 첫사랑 서연이 쌍년 처럼 납뜩이 안가면 어떡하지(대본이 적힌 앙증맞은 떡과 카피가 나왔다)...를 연발하며 열병을 앓던 때
그땐 왜 그랬는지...같은 나이 또래의 첫사랑이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가 주로 그랬던 것. 그래서 승민이가 영화속에서 납뜩이 한테 고백한 것 처럼 후회할 일이 생길 조짐이 생기며 점점 멀어지는 게 첫사랑이었다. 승민이는 납뜩이 한테 이렇게 고백했다.
"근데...나...여기서 그냥 포기하면......평생 후회 할 거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갔다와 외국에 나갔다가 귀국해 보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왠 이쁜 여학생 처자가 널 찾아왔더라.참한 여자가 몇 번...언제 귀국하느냐며..."
그리고 어느날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나누는 자리에서 벼락같은 전율이 흐르는 소리를 전해듣게 됐다.
"나...(니가 좋아하던)그 녀랑 결혼한다."
그 녀는 한때 데이트 중에 '이 다음에 작은 집에 살면서 아이 둘만 낳고 살고 싶다'며 소박한 고백을 털어놓은적 있었다.
그 이후로 그녀와 친구를 여태껏 만난적 없다. 쌍년!...(서귀포 바닷가에는 바람이 왤케 심하게 부는지...ㅜㅜ)
스스로 용기있게 처신 못한 순진한 행동은 승민이가 납뜩이 한테 고백한 것 이상으로 또 얼마나 채찍질을 해야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