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궁금했던 진실의 실마리는 의외의 증언으로 부터 시작 됐다. 그 증언은 사흘 전(27일) 천안함 사건 공판이 속개되고 있던 서울중앙지법 서관 524호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선 황보상준이라는 젊은이였다. 그는 얼마전 까지 신길동 해군본부에 복무했고 현재 군 복무를 마치고 예비역이 되었다. 그가 천안함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나서게 된 이유는 천안함이 불행한 사고를 당할 당시 생존한 '당직 근무자'였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재판)과정에서 당시 근무자들의 증언은 매우 중요한 데, 그 중에서도 사고 당시 좌현 견시 임무를 담당했던 황보상준 일병(이하 '황보 일병'이라 칭함)의 증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컷다. 이유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민군합동조사단(단장 윤덕용)의 조사 결과에 따라 천안함의 침몰 원인은 '북한의 어뢰에 의한 폭침'으로 결론지어졌기 때문이며, 어뢰 피격(폭발)의 위치가 천안함의 좌현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합조단 윤덕용 등의 주장사실대로라면 사고 당시 좌현 견시대에서 견시 임무를 수행 중이던 황보 일병이 어뢰 폭발 징후 대부분을 고스란히 알고 있을 수 있거나 황보 일병은 불귀의 객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안함의 피격(?) 위치는 황보 일병이 근무하던 좌현 견시대 바로 뒷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폭발의 피격(?)에도 불구하고 용케도 생존해 있었고, 사흘 전 천안함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두하게 된 것이다. 황보 일병의 생존 사실 자체가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에 의한 폭침'이 아니란 사실을 말하는 것일까. 사흘 전 황보 일병은 글쓴이의 방청 기록 속에서 매우 중요한 증언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천안함의 진실이 왜곡된 최초의 장면이 그의 증언 속에서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증언을 기록하면서 정신이 번쩍들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떠올리며 <천안함의 폭침에 가담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그렇다면 황보상준 일병의 어떤 증언이 글쓴이를 놀라게 한 것일까. 그 현장을 당시 좌현 견시 근무자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해 보면 대략 이러한 모습이다.
천안함 사고 당시 좌현 견시 근무자 '황보상준 일병'의 증언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00분 백령도 앞 바다는 평소 보다 달빛이 흐린 편이었다. 수병 황보 일병은 좌현 견시대에서 방한복장에 핼맷을 쓰고 얼굴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천안함은 북서쪽으로 항진하며 가끔 물보라를 날렸다. 황보 일병은 좌현 견시대에서 전방은 물론 좌우현과 후방을 관측하는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우측으로 백령도 불빛이 보였다. 천안함은 백령도를 우측으로 끼고 왼쪽으로 변침을 시도하며 빙글빙글 선회 항진 작전을 하고 있었다. 황보 일병은 그 장면을 설명할 때 명함을 들고 흔들어 가며 실제 천안함이 항진하는 것 처럼 증인석에 앉아서 설명했다. 3월의 바다는 아직 추운 날씨였다. 안면마스크는 얼굴을 다 덮고 눈과 입만 나오게 돼 있고 귀마개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목에는 망원경이 걸려있었고 견시 임무 중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전송관을 통해 함교로 보고하게 돼 있었다.
그러나 천안함이 피격(?)될 순간 까지 아무런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순간 꽝 하는 소리와 충격으로 그는 좌현 견시대에서 1m 정도 높이로 떠 올라 바닥으로 떨어지며 왼쪽난간에 부딪쳐 좌측인대 손상을 입었다. 천안함은 그 순간 부터 서서히 우현쪽으로기울기 시작했다. 그가 조금전 까지 서 있던 좌현 견시대 한 쪽 구석에 고인 바닷물이 그의 신발과 양말을 적셨다. 그는 꽝하는 소리를 어뢰 폭발로 여겼다. 또 넘어지는 짧은 순간 마스크를 걷어올린 얼굴에 "분무기로 물을 뿌린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울러 떨어지고 나서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을 (사고 직후)첫 진술에도 그렇게 썼다.
그는 사고 직후(4월 초) 작성한 진술서에서 '물방울'이라는 이야기는 안 했다. 기자들이 "물방울이 튀었나"라고 묻는 질문에 "별 의미가 없을 거 같아서 (대답을)안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분무기라는 말(표현)은 물이 튀어서 맞는 것과 다른 느낌"이라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가 좌현 견시대에 넘어져 있는 동안 사람 소리가 나서 반가워서 살펴보니 주변에 대여섯 명(5~6명)이 있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사고 순간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멀리 해안선이 보였다. 사고 순간 섬광을 본 적도 없었고 화약냄새는 물론 기름냄새도 못 맡았다. 그가 기울어진 좌현 견시대에 있는 동안 누구인가 함대에 보고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거리는 (법정을 가리키며)그 다지 멀지않은 지근거리였다.
여기 까지 단숨에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글쓴이 내지 여러분들이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증언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황보 일병의 증언을 통해 어뢰가 폭발하면서 생길 수 있는 징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천안함이 사고 당시 피격 장소 외부로 부터 가장 가까이 있었던 근무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현 견시 근무자의 얼굴에 분무기로 뿌린 듯한 작은 입자의 물방울이 스친 것 외 어뢰 폭발 징후를 전혀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황보 일병은 사고 직후 어뢰 폭발로 여겼다는 증언을 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변호인측의 반대심문에 의해 그 사실은 즉각 밝혀지고 있었다. 이랬다.
황보 일병은 2009년 8월 10일에 입대하여 기초훈련 4주 과정을 마치고 추가로 1개월을 더 교육 받은 바 있다. 사고 당시 까지 대략 6개월 정도 복무중이었다.그러나 어뢰의 속성 등에 대해 따로 교육 받은 적은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변호인측이 "어뢰 공격을 받으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지 등에 대해 교육 받은 적 있는가"라는 질문에 의해, 황보 일병이 "교육 받은 적 없다"라고 말하여 어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따라서 변호인측은 "교육 받은 적도 없는 데 충격 직후 왜 어뢰라고 생각했는가"라고 되묻게 됐다. 그러자 황보 일병은 식별교육은 없었는 데 "간부가 교육을 많이해서..."로 얼버무리며 "객관적인 근거가 아니라 주관적인 판단으로 어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보 일병의 주관적인 판단은 '객관적 판단 사실(?)'이 개입되었을 개연성이 농후했다. 한 순간 쿵 또는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넘어지는 순간, 갓 입대하여 복무기간이 6개월 밖에 안 되는 신참 수병이 '어뢰 공격'이라고 느낄만한 이유는 매우 희박해 보였다. 그러나 본문의 증언을 잘 살펴보면 황보 일병의 '주관적인 판단'을 도운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나타나 있었다.
그들은 황보 일병이 충격으로 넘어진 직후 지근 거리에 있었던 대여섯 명의 승조원들이었다. 황보 일병은 이들이 어디론가 "무전을 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 무전은 이날 황보 일병과 함께 증인으로 출두한 천안함 통신장 허순행 상사에 의해 전파되고 있었다. 황보 일병은 허순행 통신장이 무전을 하고 있는 거리가 "불과 2~3m 남짓 떨어진 거리"라고 증언했다. 황보 일병 바로 곁에서 무전이 전파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무전은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었던 것일까.
천안함, 폭침에 가담한 사람들
놀랍게도 황보 일병의 지근거리에 있던 대여섯 명의 대원(김덕원 부장, 박연수 작전관, 김광보 포술장, 정다운 전투정보관 등)들 중에는 허순행 통신장 외에도 최원일 함장이 함께 있었다. 함교 근처에 근무하던 당직자 등 대여섯 명이 한 곳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최원일 함장은 허순행 통신장에 의해 구조되었는데 천안함에 충격이 가해진 직후 천안함이 우현으로 기울어진 바람에 함장실 출입문이 바닥에 놓여있었다. 최 함장은 꼼짝없이 갇힌 신세였지만 허 상사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직후, 대여섯 명과 함께 뜬금없는 '브레인 스토밍'에 들어간 것이다.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이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기 위한 학습 도구이자 회의 기법이다.
기업 등지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는 이 기법은 3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서,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논의를 전개한다. 중요한 점은 어떤 사람이 제시한 의견에 대해서 다른 참가자가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 특정 시간 동안 제시한 생각들을 모아서, 1차, 2차 검토를 통해서 그 주제에 가장 적합한 생각을 다듬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아이디어를 생산하기 위한 효율적이고 대중적인 기법이자 매우 민주적인 방법이다. 그렇지만 천안함 침몰 사건과 같은 전시 상태에 준하는 일촉즉발의 사태 중에 지휘관은 칼날 같이 냉철한 판단이 내려져야 마땅했다.
그러나 천안함 함장 최원일은 매우 민주적인(?) 지휘방법으로 천안함의 침몰(충격) 원인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 함장은 천안함이 어느 위치에서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 대원들에게 물어보고 논의를 거친 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그 결과를 허순행 통신장으로 하여금 전파하게 한 것이다. 글쓴이는 이 과정을 전해들으면서 내심 놀라고 있었다. 천안함의 진실이 최초로 변질되며 뒤바뀐 현장이었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변호인측에서 곧 바로 확인사살(?)에 들어갔다. 허순행 통신장은 뭐라고 보고했을까. 이에 앞서 최 함장은 논의를 마친 후 (다급하게) 허순행 통신장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어뢰 피격! 어뢰피격이라고 보고 해!!..."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졸지에 '어뢰 피격'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허순행 통신장은 당시 논의 시간 등에 대해 3~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합조단 보고서에 기록된 실제 통신 시각은 1분) 불과 수 분 만에 천안함의 진실이 왜곡되며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최 함장 등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브레인 스토밍 등 대원들과 민주적 논의(?)를 거친 후 천안함의 충격 원인을 '어뢰피격'으로 판단한 것이다. 천안함이 졸지에 북한의 잠수함(정)의 중어뢰에 맞아 폭침되는 순간이었다.
이같은 사실 등은 곁에 있던 황보 일병의 귀에 들렸을 개연성이 매우 크며, 황보 일병은 사고 후 진술서 작성시 당시를 떠올리며 엉겁결에 '어뢰폭발'로 여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황보 일병은 자신의 증언 등에 따라 어뢰 폭발 징후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증언은 오히려 최 함장 등이 천안함의 진실을 왜곡하는 현장을 고발하는 성과를 나았을 뿐이다. 천안함의 진실은 대략 1분 만에 왜곡되고 있었다. 놀라운 순간이었다. <천안함 사건 방청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