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의 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 타계
전설적인 여배우라는 말이 실감났다.
어쩌면 그녀에 대해 까마득히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늦은 밤 인터넷을 뒤적이다 눈에 익은 이름 앞에 멈추어 섰다.
그녀 이름은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
타계 소식이었다.
LOS ANGELES, March 23, 2011 /PRNewswire/ -- Legendary actress, businesswoman, and fearless activist Elizabeth Taylor died peacefully today in Cedars-Sinai Hospital in Los Angeles. She was surrounded by her children- Michael Wilding, Christopher Wilding, Liza Todd, and Maria Burton. She was 79 years old. In addition to her children, she is survived by 10 grandchildren and 4 great-grandchildren...
전설적인 여배우이자 사업가이며 대담하여 겁 없는 활동가 엘리자베스가, 오늘(현지시각 23일) LA 세다스 시나이 병원에서 평온하게 잠들었다는 소식이다. 그녀의 자녀들 마이클 윌딩,크리스토퍼 윌딩, 리짜 토드 그리고 마리아 버튼이 그녀의 임종을 지켜봤다. 그녀는 79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으며 그녀의 자녀들 포함 10명의 손자 손녀 그리고 4명의 증손자 까지 봤다...그녀는 올해 초부터 울혈성 심부전증으로 투병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아마도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기억하는 7080 등 올드팬들은 다 아실 일이지만 그녀의 인생은 정말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외신은 그녀에 대해 관대하게 전설적인 여배우이자 사업가이며 대담하여 겁 없는 활동가 등으로 포장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성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그녀는 최고의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였지만 그녀를 둘러싼 무수한 가십을 참조하면 그녀는 결코 행복한 여성이 아니었다. 그녀의 인생은 영화 보다 더 파란만장 했다.
7명의 남자와 8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동시대를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그녀의 이름이 잊혀질 수 있는 시간 마저 빼앗길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말년에는 병마와 합병증에 시달리다 끝내 숨을 거뒀는데 그녀의 생을 뒤돌아 보면 대략 이런 모습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50년 18살의 나이로 고급호텔 체인의 상속자 콘래드 니키 힐튼 주니어와 세기의 결혼을 올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2년 만에 이혼한 후 1952년 영국배우 마이클 웰딩과 2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이때 까지만 해도 그녀의 인생이 파란을 예고 할 것이란 사실에 대해 세상 사람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마이크 웰딩과 5년간의 결혼 생활이 끝난 후인 1957년, 다시 영화제작자 마이클 토드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린 그녀는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가수 에디 피셔와 1959년 결혼했으나 5년만에 다시 파경을 맞고 말았다. 또 다섯 번째 남편인 리처드 버튼은 그녀의 인생에 진정한 사랑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영화에 함께 출연한 두 사람은 1964년 결혼식을 올렸으나 1974년 끝내 헤어졌고, 이듬해 다시 재혼했으나 이 또한 5개월 밖에 지속하지 못했다. 그녀는 윌리엄 워너, 래리 포텐스키와 결혼식을 올리며 8번의 결혼과 이혼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마지막 결혼 또한 1996년 이혼으로 5년 만에 끝이 났다.
아마도 그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기억하고 있는 올드팬들은 그녀가 8번의 결혼과 이혼의 경력 등 너무도 유명한 그녀의 이름 때문에 실상은 그녀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일찌감치 포기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영화배우 등으로 활동할 당시 우리 정서와 비교해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타계할 당시 나이 79세를 참조하면 7080 세대의 어머니의 나이 정도인데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6.25 전쟁을 맞이하는 등 격동의 시대와 비교해 보면 그녀의 삶은 경이로울 정도 이상이었다.
특히 우리 세대 어머니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삶에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으므로, 당시 어머니나 누나 등 영화팬들이 열광한 이유는 단지 그녀의 미모 때문만이 아니란 걸 너무도 잘 안다. 입만 열면 오드리 헵번이나 엘리자베스 테일러였을 정도니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는 우리나라 대표적 여우 김지미나 엄앵란 문희 남정임 등을 겨우 기억할 정도라고나 할까.
리즈 테일러 Liz Taylor로 더 잘 알려진 그녀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 파트라(1963년 作)에서 열연하며 진정한 여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당시의 모습을 회상하면 그 때가 그녀의 최고 전성기이자 가장 아름다울 때며 결혼생활 조차 가장 안정적이며, 여성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삶을 누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7080을 추억하는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그녀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보니, 마치 어머니 세대 전부가 세월 저 편으로 사라진 느낌이 드는 한편 나의 삶과 우리네 삶을 뒤돌아 보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삶의 편린들을 가슴에 묻고 사는 것일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내가 꿈꾸는 그곳의 Phot 이야기 Boramirang SensitiveMedia 세상에서제일 작고강력하며너무 따뜻~한 Media 내가 꿈꾸는 그곳 www.tsori.net / Boramirang 내가 꿈꾸는 그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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