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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블루베리가 깨운 즘골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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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김원주의 즘골 아리랑
-블루베리가 깨운 즘골 아침-




"그냥 
 (집에 오지말고)
 거기서 
 살아!!..."

즘골의 도예공방 한켠의 골방에서 눈을 떠 보니 봉창에서 바람이 살랑거렸다. 아침이었다. 푸고 또 푼 막걸리 때문에 즘골은 통째로 마취되었는 지 오전 9시가 넘어서도 인기척 하나 없다. 인기척이라곤 건넌방에서는 간간히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 즘골의 아침은 진공상태나 다름없었다. 눈은 떳건만 다리는 허공을 밟는 듯 하고, 속에서는 따끈한 차나 해장국을 갈망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어느덧 4박 5일간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이미 딴세상 사람이랄까. 





공방 전시장의 문을 열고 나서자 간밤에 못 봤던 열매들이 올망졸망 까맣게 익어있었다. 블루베리였다. 최근 아내가 블루베리에 포함된 '안토시아닌'이 눈에 좋다고 하여 한 보따리 싸 놓고 무시로 먹어댓던 열매. 블루베리는 눈에도 좋지만 항산화효과가 뛰어나 노화를 방지해 준다나 뭐라나. 또 변비에도 좋고 암예방에도 좋다며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홍보해대는 마법의 열매였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욕

그러나 정작 내게는 마법의 효과는 커녕 깊은 마취를 깨게 만드는 열매이자 즘골의 아침을 확 깨운 쓰디 쓴 블루베리였다. 아침에 일어나 공방을 나선 후 맨처음 눈에 띈 블루베리 한 알을 입에 넣고 살짝 씹으니 약간은 닝닝한(무슨 맛인지 아시죠?) 단맛이 혀끝을 맴돌았다. 그리고 공방 뒤의 작은 언덕길을 따라 간밤에 퍼 마시던 산수유 고목 아래로 이동하면서 지난 봄의 추억을 기억해 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즘골을 다시 찾은 건 1년이 조금 더 지난 시간이었다. 몇 번이나 별렀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인 데 무슨 귀신(?)들의 조화였던 지 즘골에 가기만 하면 퍼질러 앉게 되는 것이다. 나는 중요한 약속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산수유 나무 아래 앉아 휴대폰을 꺼내들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자마자 전화 건너편에서 불호령이 떨어진 것. 아뿔사!!...




"그냥 

 (집에 오지말고)
 거기서 
 살아!!..."

언제인가 한 번 들어본 소리 같기도 하고, 처음듣는 소리 같기도 한 불호령의 내용을 참고하면, 시쳇말로 '들어오지 마라'는 저주일까. '집에 들어오지 마라'는 소리 보다 더 무서운 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세상을 꽤 오래 살아봐야 득도에 이르는 경지(?)다. 전화기 너머의 표정을 상상하면 이미 집에서 쫒겨난 아이들 같이 후덜덜 걱정반 근심반으로 밥맛이 싹 가시는 것. (해장국은 무슨...ㅜ)블루베리의 효능은 즉각 전화기 너머에서 날아온 것이다.




4박 5일동안 쩔다


아내의 불호령을 자초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물론 귀가 후에 이런 변명 늘어놓으면 불난 집에 기름 끼얹는 일 ㅜㅜ) 즘골에서 2박 3일을 하게 된 건 순전히(?) 김종길(블로거 필명 김천령) 선생의 출판기념회(북콘서트) 때문이었다. ㅋ 지난 6월 27일 진주의 신진주역에서  김종길의 '남도여행법' 북콘서트가 있었는 데 아우님이 쓴 <남도여행법>에 취해 느리게 느리게 남도를 주유했다고나 할까. 진주-지리산-여주 즘골로 이어지는 이른바 '막걸리 투어'가 매우 느리게 북상하고 있었던 것. 





아침에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공방전시장 앞뜰을 둘러보며 지난 봄을 회상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우리는 지난해 봄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도 촛농이 흥건해질 때까지 잔을 주고받았던 것. 그때 즘골의 아우님 내외만 생각하면 산수유 꽃망울처럼 맑고 곱게 다가오는 데 그 아름다운 친구들과 잔을 기울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친구야 적이야?


대략 1년동안 즘골(상교리)은 많이 변해있었다. 공방전시장 앞 뜰에 블루베리가 심겨져 까맣게 익어가는 풍경은 매우 작은 변화였다. 고달사지(高達寺址)로 이어지던 길은 큰 도로가 뚫리면서 옛 모습 대부분이 사라지고 말았다. 즘골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있었던 것인데 아침부터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즘골의 적막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즘골은 골짜기 하나만 두고 불과 1년 전의 풍경 모두를 앗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이날 아침 나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양반이었다.





도예가 김원주 씨 아내(장순복 화백)는 내게 넌지시 겁을 주고 있었다.


"선배님, 

 그렇다고 지금 들어가시면 

 불을 더 지르는 거그던요. 

 이런 거(약속 펑크내는 등 사고친 일) 

 여자들이 더 잘 알잖아요.

 냉각기를 가지셔야 해요. 

 한 며칠 더 계시던지

 아님 한계령에 들렀다가 메기도 먹고

 화진포까지 들렀다 가세요. ㅋ"





알아서 기거나 줄행랑이 필요한 경우의 수


일행들과 산수유 나무 아래서 아침겸 점심을 나누며 장순복 화백은 은근히 놀려대고 있었다. 실제로 걱정됐다. 금년 봄부터 준비해 왔던 행사의 주체가 즘골에 눌러앉아 4박 5일동안 실종(?)되었으니 얼마나 애가 탓겠는가.


"전화 안 받을 거면 

 전화긴 왜 가져다녀?!..."





맞는 말이다. 

전화 통화 내용을 아는 사람은 

나 혼자 뿐. 

단단히 뿔난 아내. 

완전 쫄아든 나...ㅜ 

어떡하나...


만약 이날 장 화백의 권유에 따라 설악산 오색과 화진포가 있는 고성까지 갔더라면 초죽음이 되거나 쫓겨났을 수도 있었을까.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자 조금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귀가하되 무슨 뾰족한 수가 필요했다. 여주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배웅해 준 일행을 뒤로 하고 1시간만에 당도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기막힌 묘수 하나를 생각해 냈다.





"그래
 알아서 기자!..."

귀가 하자마자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행동(수첩에 적어두세요. ㅋ)에 돌입했다. 비록 비굴해 보이긴 해도 죽는 거(또는 죽는 시늉) 보다 더 낫지않을까. 문을 열자 아내는 없었다. (ㅋ이런 행운이...) 그 길로 곧장 배낭을 메고 약수터로 향했다. 날씨는 생각만큼 더웠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물 한 통을 메고 내려와 슬슬 설설 기기 시작했다. 그새 아내가 귀가해 샤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안스!!...)걸레를 집어들고 거실과 안방은 물론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구석구석까지 걸레질을 했다. 땀이 비오듯 했다. 이윽고 아내님께옵서 욕실문을 열고 나타나셨다.

"ㅋ 웬일이야?...
 왜,
 거기서 살지 
 그랬어?...^^ "

궁하면 통한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고 했던가. 일찍(?) 귀가하길 참 잘했다. 궁할 땐 알아서 박박 기시라. 블루베리 한 알이 깨우쳐준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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