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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a Cuarenta/San Carlos de Bariloche

[파타고니아]여행자들이 기피하는 풍경


Daum 블로거뉴스
 

대한민국은 그나마 착해요
-바릴로체,여행자들이 기피하는 풍경-

 


여행자들이 제일 기피하는 게 무엇일까...


이번에는 좀 탁월한(?) 포스팅이란 느낌이 든다. 어쩌면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포스팅이기도 하고...왜냐하면 예술에 정치가 곁들여진 '퓨전 요리'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뜩에나 골머리 아파 떠난 여행에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 정치와 종교의 이야기는 끄집어 들자마자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

그렇다고 사람사는 세상에 이 두가지 화두가 없었다면 이른바 '문화'라는 게 존재가치를 잃고 비틀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파타고니아 포스트에서는 여행의 묘미를 갑절 이상으로 더해주는 짧은 역사 한토막을 먼저 개관하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초콜릿의 도시 바릴로체와 아르헨티나와 남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맨 먼저 등장한 사진은 유럽의 여행자들이 '남미의 스위스'라고 이름 붙인 아르헨티나의 산 까를로스 데 바릴로체(
san carlos de bariloche)의 꿈에도 잊지못할 아름다운 풍경이다. 필자가 머문 숙소에서 내려다 본 이 풍경의 맨 앞 쪽 시계탑 아래 광장이 센뜨로 씨비꼬(centro civic)로 불리우는 중앙광장이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 내지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찾게될 수 밖에 없는 유서깊은 광장이다. 센뜨로 씨비꼬 광장에 들어서면 (위)그림과 같은 동상을 만나게 된다. 

센뜨로 씨비꼬는 해가 뜨기 전부터 해질 때까지 또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이 광장 곁으로는 '미뜨레 거리로 연결하는 아치형 아케이드와 도서관은 물론 관공서와 경찰서 등이 모여있다'고 관련 포스트에서 소개해 드렸다. 그런데 동서고금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동상으로 세워놓고 추모할 정도라면, 특정인이 그 나라(의 독립)에 끼친 공로가 지대하다. 마치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말이다.

그런데...어째 이 동상은 푸대접 이상의 지탄 대상으로 여겨졌는 지 동상이 멀쩡한 곳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온통 낙서 투성이...그래서 바릴로체에 머무는동안 오며가며 이 동상을 주시하며 여러차례 카메라에 담았다. 사람들의 불만 전부(?)를 낙서로 되돌려 받은 한 영웅. 그는 현재 아르헨티나의 영웅이 아니라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일까.

아르헨티나에서는 1976년 3월 24일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로 이사벨 페론 대통령 정부(1974∼1976년)가 무너졌다. 군사정권은 마지막 집권자인 레이날도 비뇨네(85)가 1983년 라울 알폰신 전 대통령(1983∼1989년 집권)에게 정권을 이양하면서 막을 내렸다. 비델라는 인권탄압 등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지난 5월 8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인권단체들은 '더러운 전쟁(guerra susia)'으로 불리는 군사정권 기간에 3만여 명이 납치.고문.살해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은 600여 곳의 비밀수용소에서 처형된 채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알폰신 전 대통령 정부 출범으로 군사정권 인사들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는 듯했으나 군부의 반발을 우려한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1989∼1999년 집권)이 1989년 사면법을 제정하면서 처벌이 중단됐다. 70년대의 아르헨티나와 칠레 및 한국은 비슷한 정치적 상황을 겪고 있었다.





남미여행을 통해 이곳의 문화를 가슴 깊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건 아메라카 대륙의 척추 안데스와 무관하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남미의 역사는 침탈의 역사이며 인디오들의 수난을 빼고나면 더 기록할 게 없는(?) 역사이다. 남미대륙이 서구에 알려진 이후 최소한 500년 이상의 세월을 서구인에 의한 '침탈의 역사'로 써야하는 이유이다. 불과 200여년 전부터 서구인들이 이주하면서 다시 불거진 땅싸움에서 현재의 남미 또는 아메리카 대륙의 모습이 완성됐다. 


따라서 현대의 아메리카 역사는 불과 200여년 밖에 안 된 미천한 역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남미인들의 혈통을 잇고 있는 메스티조 내지 이 땅의 기운은 여전히 16세기 이전에 머물러 있는 듯 매우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원초적이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다혈질'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게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누군가 나를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꿈틀' 거리지도 못한다면 그건 '생명의 현상'이라고 볼 수 없는 것. 따라서 낙천적 성격의  현대의 남미인들의 탈출구가 '그래피티'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낙천적으로 살지만 가슴 한 구석에는 불만이 배암처럼 또아리를 틀고 도사린 것. 그런 현상은 공무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는 지, 이들은 문화유산에 가득한 그래피티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초콜릿의 도시 바릴로체에서 만난 낙서






























ㅋ...


MEMORIA!...잊지 말아야 해! (그 아픔들을...)



...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이런 사실이 인터넷이나 SNS 등을 타고 즉시 전파되어 비판을 면치 못할 것. 남미는 다르다. 아니 아르헨티나는 달랐다. 그러나 우리는 더더욱 착했다. 비판은 커녕 문화유산에 대한 낙서에 대해 이들 보다 너무도 착했던 것. 그게 선조들의 음덕이라 생각하니 우리 보다 더 나아 보이는(?) 자연환경을 가진 이들 보다 조금은 낫다는 위안거리를 챙긴 것이다. 우리나라 어딜 가나 이 정도의 낙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그대신 우리는 사이버 세상에서 대놓고 불통의 '댓글 통치자'를 날려버린다.

"이런 닭대가리!!..."

그래피티의 디지털화를 실현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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