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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fondamento della Cheonan

천안함, 경계근무 실패 보다 더 무서운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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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언 재구성해 보니 의외의 사실 드러나
- 경계근무 실패 보다 더 무서운 거짓말-



법정에 출두한 증인들의 심리상태는 어떤 모습일까.

Daum view


맨 처음 등장하는 그림 한 장을 먼저 설명하고 법정에 출두한 증인들의 심리상태 등 본론에 들어가기로 한다. 잘 닦여 광택이 반들반들 나는 '자이로 콤파스(Gyro Compass)'는 용산의 전쟁기념관에 비치된 참수리호 함교에서 촬영된 장면이다. 이 자료는 국방부와 합조단이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보고서를 통해, 천안함을 폭침 시켰다고 하는 <1번 어뢰>의 실체를 확인해 보기 위해 들렀다가 촬영한 사진이다. 당시 참수리호의 함교에 들러서 사진촬영을 할 때 기분은 참 묘했다.

함교의 조타수나 함장 등 승조원들이 이곳에서 북한의 경비정과 전투 중에 6명이 사망하고 15명의 부상자를 남기고 침몰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이로 콤파스가 위치한 참수리호 함교는 그런 아픈 상처를 간직한 곳이었다. 전쟁기념관에 비치된 참수리호는 비록 실물은 아니었지만 함정 곳곳에 비치된 소품이 실물 이상의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여러컷 카메라에 담아 왔는데 해가 바뀌어도 그 장면만 보면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그 때가 대략 2010년 11월 4일 경 쯤 된 것으로 기억한다.

참수리호에 비치된 자이로 콤파스는 자침(磁針)이 남북을 가리키는 특성을 이용하여 방향을 알 수 있게 만든 (항해)도구이다. 요즘은 위성항법장치(GPS)가 발달하여 자이로 콤파스의 존재가 무색해졌지만, GPS가 고장나는 등 비상시에는 여전히 천문기구인 육분의(
六分儀,sextant)를 이용해 함정의 좌표를 확인하거나 항로를 수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한 치 앞을 모를 전투를 치루어야 할 고속함정에도 자이로 콤파스가 비치되어 있는 걸 보면, 만약의 사태가 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난 7월 9일 오후 2시, 서울 중앙지법 524호실에서 속개된 천안함 사건 11차 공판에서 변호인 측은 두 증인에게 사고 당시 천안함의 속도나 항로나 기상 조건 등에 대해 반대심문을 계속하고 있었다. 천안함이 어떤 작전을 하며 작전구역의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는 지 등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변호인 측의 반대심문 요지는 사고당시 천안함의 작전관의 직책으로 당직 근무중이었던 박연수 대위가 어떤 임무를 수행중에 천안함이 침몰되었는 지 사고당시 정황 등을 케 묻는 것이었다.

박연수 등 천안함의 지휘관들이 최초 해군 당국 내지 정부가 발표한 사실과 전혀 다른 증언을 통해 천안함의 진실을 은폐하고 있는 정황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호인 측은 사고 당시의 일거수 일투족을 세세히 따지듯 심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변호인 측 심문 내용과 증인의 심문내용을 비교해 보기 위해 우선 천안함이 침몰하기 직전 천안함에서 최초 군 당국에 보고한 내용을 먼저 확인해 보도록 한다.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천안함이 최초 사고 당시 상부에 보고한 내용

 
 천안함은 사고 직후인 2010년 3월 27일 합동참모본부(정보작전처장 이기식 해군준장)의 발표에 따라 "함정의 선저(바닥)가 원인 미상으로 파공되어 침몰한 것"이다.(출처: 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newsview?newsid=20100327013004022&srchid=IIM%2Fnews%2F29644910%2Fdf21273535602457669a09dd4ffce1a0#A20100327052104407.jpg) 이러한 사실은 KBS와 조중동 등이 보도한 사실이 있다. 이랬다.  "군당국이 천안함이 26일 백령도 서남방 해상에서 작전 중 침몰한 원인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에 집중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천안함은 이날 오후 9시 45분쯤 임무 수행 중
갑자기 함정의 밑바닥에 구멍이 나면서 침몰하기 시작했다. 천안함 승조원들은 배 빝바닥에 생긴 구멍을 막으려 했지만 수습하지 못했다고 해군 관계자는 전했다."라고 쓰고 있다. 
(출처: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081806&cloc=home|sonagi|click) 천안함은 배 밑바닥에 구멍이 생겨 물이 새 들어오는 긴박한 상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승조원들이 펑크난 구멍을 막으려던 도중 (종류 미상의)물체에 부딪쳐 세 동강이 나면서 침몰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이날 법정에 출두한 두 증인의 증언은 어땠을까. 그 현장 모습을 취재 노트를 뒤적여 가며 재구성 해 보며 위증의 흔적을 찾아내는 게 본 포스트의 핵심이다.


천안함의 진실이 궁금하세요?

 

박연수와 공창표의 서로 다른 증언 재구성

그동안 관현 포스트를 읽어오신 분들은 박연수 작전관이 작심하고 위증의 늪 속으로 돌진하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천안함이 사고 당시 긴급한 상황에 노출되어 긴급구조 요청을 한 사실이 있고, 상급부대 내지 합참에서는 이 사실을 언론을 통해 전 국민들에게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른다. 기억이 잘 안난다"며 변호인이나 방청객들을 실망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박연수는 
"선저 바닥에 원인 미상의 파공을 합참에 보고한 사실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잘 모른다"고 짧게 대답했다.

방척석에서 박연수의 답변을 듣게 되자 갑자기 더워지는 한편, 이 사건이 '누구인가로 부터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기도 했다. 사고 당시 당직 근무자(사관)였던 박연수가 국방부와 합조단이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보고서를 숙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박연수의 증언에 기대할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지루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천안함이 사건 발생 직전 까지 아무런 비상상황 없이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갑작스런 폭발로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하였다는 주장 사실을, 변호인 측에 확인해 주기 위해 증인으로 출두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그의 증언은 완벽해 보였다. 최소한 천안함에서 '사고 당시 상부에 보고한 내용'이 변호인 측으로 부터 제시되기 전 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박연수는 최초 사고 당시 보고 내용 등이 담긴 자료가 PPT로 재연되자 귓볼이 붉은 색 이상으로 검어지고 있었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그 이전 까지 박연수는 그가 감당할 수도 없는 내용 등에 대해 증언을 하고 있었는데, 최초좌초 유무를 묻는 변호인 측의 질문에 대해서는 당돌하게도 "천안함이 북한의 잠수함에 의해 피격되기 전 까지 좌초된 적이 없다"고 대답할 정도였다. 사실이 그러했다면 피격한 잠수함 내지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되는 이상의 엄청난 대가를 감수했을 것이지만, 주지하다시피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그 어떤 확인도 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천안함의 일반적인 항적 등에 대해 변호인 측의 심문에 무덤덤 하게 대답했는데 증언들을 한데 모아 <그림 1>에 담아보니 대략 이런 모습이었다. 


<그림 1 >

박연수의 증언을 토대로 <그림 1>을 대략 설명하면 이러하다. 천안함은 사고 당시 백령도 남서쪽으로 부터 2.5마일 정도 이격된 거리(합참의 공식 발표는 1.8km)에서 반경 2.5~3마일 정도(대략 6km)의 작전구역을 속도 2~7노트로 왔다 갔다 왕복을 하며 경계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 때 바다의 파고는 대략 2.5m 내외 정도 되었고 평균적으로 좋지않은 상태였다. 사고 직전 천안함은 북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며, 출동 전에는 장애물 상태를 확인한 후 해도를 참조하여 기동했다. 이렇게 작전반경을 이동한 회수는 1시간에 2회정도였다.

천안함의 주임무는 특이동향 파악과 지존의 경계근무였다. 사고 당일 시정은 약 3마일 정도였다. 또 사고 당일 달빛은 없었지만 백령도의 불빛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했다. 기억이 잘 나지않지만 사고 당시 천안함이 백령도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작전구역(반경)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박연수는 )사고 당시 쾅 하는 소리(1번)와 함께 몸이 떠 오르면서 넘어졌다. 그는 사고 직전 까지 함수 전방으로 응시(견시)하고 있었다. 함수 전방이라함은 북서쪽을 가리킨다.

함교에서 견시업무는 전방과 죄우를 수시로 번갈아 가면서 한다. 사고 당시 불빛이나 섬광 내지 믈기둥은 본 적 없고 화약 냄새를 느끼지 못했다. 또 쾅 소리가 직전 선저 하부가 긁히거나 충격을 받은 일이 없고 후진 사실도 없다. 사고 직후 공창규 하사가 함교로 물이 차오른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함교에서 좌현으로 수밀문을 열고 탈출했다. 그 때 대원들이 계속 탈출 중이었다. 사고 당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함체가 우현으로 90도로 기울어졌다. 박연수의 증언을 일단 여기 까지만 대략 정리하겠다. 위 내용 속에서 위증의 향기가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위 내용 중에서 굵게 밑줄을 그어놓은 곳을 주목하면서 또 다른 증인의 증언을 들어보기로 한다.

박연수 대위의 증언과 엇갈린 공창규 하사의 증언



이날 공판에는 두 명의 증인이 채택됐다. 사고 당시 당직 근무자였던 박연수 대위와 공창규 하사가 증인 선서를 한 것이다. 증인석에서 증인심문은 한 사람만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박연수가 증언을 하는 동안 공창규는 법정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법정 경위가 호출하면 그 때 증인석에 앉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증언을 마친 박연수는 방청석에서 공창규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이미 그는 기회 전부를 써 먹은 상태이므로 법정 바깥에 있거나 법정내에 있거나 문제가 되지않았다. 박연수는 법정에서 공창규의 증언을 듣게 됐다.

아마도 그는 공창규가 증언을 마칠 때 까지 거의 숨이 멎을 듯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정은 증언에 임하는 공창규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제아무리 입을 맞춰도 변호인들의 심문이 늘 같지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공창규는 씩씩했다. 
박연수가 변호인측의 심문에 뜸을 들이며 대답하는 것과 달리 공창규 하사의 답변은 시원했다. 하지만 답변 내용은 너무 세련되어 마치 국방부가 발간한 합동조사보고서를 읽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증인석에 앉아 반대심문에 직면하면 머리에 쥐가나는 지 공창규의 내공이 변호인 측의 필살기에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공창규는 사고 당시 천안함 우현 견시 근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의 근무 시간은 오후 8시 부터 12시(자정) 까지였지만 사고로 업무가 중단된 것이다. 공창규의 증언에 따르면 견시 업무는 '함정의 눈'과 같은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는 오후 9시 5분 쯤 시계를 확인한 이후 20여 분이 지난 시간에 쾅 하는 소리를 들게 됐다. 그는 우현 견시 근무 중에 일어난 폭발로 우측 인대에 손상을 입게 됐다. 따라서 활동이 부자연스럽게 되어 "살려달라"로 소리쳤다. 이때 이강희 중사가 좌현 견시 위치 쪽으로 인도해 주었다.

우현 견시근무 망각한 공창규 하사의 증언 

그는 2009년 9월  22일 발령을 받은 이후 사고 직전 까지 
(6개월 정도) 줄곧 함교 우현 쪽 견시 근무를 담당해 왔다. 견시를 할 때 복장은 <그림>의 복장에 방한복을 착용한다고 했다. 3월의 백령도 앞 바다 날씨는 여전히 추웠을 것이며 바깥이라 더했을 것이다. 또  CO2 쟈켓은 착용하지 않고 핼맷을 쓰고 휴대용 망원경을 착용한다고 했다. 증언을 듣는 순간 참 고생스러운 근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공창규는 언제부터인가 씩씩한 답변 대신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사고 당시 천안함의 기동 속도에 대해서 "초임 하사라서 잘 모른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천안함이 사고 당시 진행방향을 묻는 질문에 "기억이 잘 안난다"라고 대답하며 "벌써 2년 전인데..."라고 중얼 거렸다. 이대로 가다간 증인심문이 힘들 것 같을 정도였다. 기억이 잘 안난다는 데 무슨 도리가 있겠나. 그 때였다. 변호인 측의 질문 하나가 공창규의 머리속을 비수 처럼 스쳐 지나갔다.

"증인의 우측에 백령도가 있었나요?" 

"음...기억이 잘 안납니다."

공창규도 박연수와 마찬가지로 작심한 듯 증언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방청석을 쓰윽 돌아보니 박연수가 긴장한 듯 증인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공창규가 기억이 잘 안난다거나 모르쇠로 일관 하는 게 두려웠는 지도 모르겠다. 초계함의 당직 근무자가 경계근무를 태만히 하거나 아예 눈을 감고 졸지않는 한 아니 존다고 할지라도, 공창규의 임무인 우현 견시 쪽에서 백령도를 볼 수 없다는 건 어불성설 이하의 (말도 안 되는)경계근무에 실패하고 있었던 장면 아닌가. 정말 큰 일 이었다. 공창규의 증언에 따르면 천안함은 작전구역내에서 항로를 이탈 하여 서서히 백령도 쪽으로 접근하며, 해군작전상황도 상의 최초좌초 위치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과 다름없었다. 천안함의 항적과 관련하여  
잠시 모르쇠로 일관하던 공창규의 입을 통해 의외의 증언이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명언이 있다. '전투에서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근무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가 안 된다'라는 말이다. 피해 정도나 군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 등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군의 초계함 근무는 물론 우리 군은 24시간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국토를 방위하기 위해 경계근무를 게을리 하지않고 있는 것이다. 공창표 하사는 자신의 증언이 가져다 줄 파장 등에 대해 아는 지 모르는 지, 사고 이후 탈출 과정을 세세하게 기억해 내며 증언에 임하고 있었다.

조금 전 까지 천안함의 항로를 모른다며 발뺌하던 것과 전혀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사
고 직전 까지 줄곧 백령도 근해 작전구역내에서 함교 우현 쪽 견시 근무를 담당해 왔지만, 백령도가 어디에 붙어있는 지 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이게 말이나 될 법 한가.) 박연수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 당시 천안함은 북서쪽으로 천천히 느린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고, 백령도의 불빛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서 초계근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박연수 대위는 물론 공창규 하사는 무엇을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경계근무 실패 보다 더 무서운 거짓말 


법원으로 부터 소환을 받은 형사사건의 증인은 형사소송법(제156조)에 따라 증언을 하기 전에 우선 선서를 하게 된다. 선서의 방식은 증인의 대표가 선서서에 따라 "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합니다."라고 낭독하고 서명.날인을 한다. 그 다음에 형법 제152조에 따라 선서를 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하게되면 위증죄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허위의 진술 중 주관설(객관설도 있다.)에 따르면, 진술 내용이 객관적 진실과 일치하는 지는 불문하고, 다만 증인이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하는 경우에 '허위의 진술'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판례는 주관설에 따라 '허위의 진술이란 증인이 자기의 기억에 반하는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라고 판시
(대법원 1989.1.17,88도580)한 바 있다. 

글쓴이는 법률에 무식하여 두 증인들이 어떤 위증의 벌을 받게 될 지 잘 모른다. 또 그 벌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영해를 수호하고 있는 초계함 등에 비치된 자이로 콤파스 내지 GPS 등 항해 도구들과 함께, 군함의 견시 근무는 매우 중요하다. 비록 영화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견시 근무에 태만한 결과 타이타닉호는 대서양의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천안함의 사고는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침몰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천안함의 당직자들이 해군2함대 내지 함참 등지로 전파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군과 정부는 이러한 내용을 왜곡.호도하는 한편, 그 사실을 국민들께 사실대로 전파한 시민을 오히려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천안함 사건 재판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게 다 특정 집단의 이해 때문이라고 한다면, 특정 세력 때문에 대한민국이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당장은 처벌이 두렵고 기득권을 내 주는 게 죽는 것 보다 힘든 선택일 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선조님들과 형제자매들이 대대손손 살아오고 살아가야 할 이 땅을 알량한 매국 집단들의 먹이거리로 전락시켜야 하겠나. 우리 영해를 수호하던 46위의 구국 영령들은 배 밑바닥에 뚫린 구멍을 막으려다 몰살을 당했는 데 말이다. 천안함의 진실을 이실직고 하고 국민들께 
널리 용서를 구하라. 그게 당신들이나 나라와 민족이 영원히 사는 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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