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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50년동안 두드리고 또 두드린 '꿈의 공작소'를 만나다.

50년동안 두드리고 또 두드린 '꿈의 공작소'를 만나다.


 그가 내미는 손은 무쇠를 닮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쇠는 부드럽고 힘찬 겉모습과 달리 부드러움이 배어있는 정감있는 손이었습니다.
그가 내민 손에 쥐어준 것은 한장의 명함이었습니다.

충무공작소...!!


대장간에서 망치질을 50년간 해 오신 이평갑'장인'님의 손입니다.


 명함속에 쓰여진 이곳 이름은 '충무공작소'였지만 이곳은 온갖 농기구 등을 만드는 '대장간'입니다.
통영에 하나뿐인 대장간이며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흔치 않은 '대장장이'가 바로 이분이며
50년간 한결같이 쇠를 두들기며 세월을 보내신 이평갑님(67세)입니다.


이분이 이평갑님입니다.


"...이 일을 얼마간 해 오셨어요?..."

이평갑님은 예순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일흔을 눈앞에 둔 노인의 이미지하고는 너무도 멀었습니다.
그가 내민 손에는 힘줄이 솟아 있었고 손바닥은 굳은살이 박힌 손이었지만 너무도 순박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또 그를 얼마나 힘들게 하였는지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습니다.
최고의 대장장이인 이평갑님은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하고 배달되어 온 음식을 먹자말자 제가 드린 질문에 나직히 대답하셨습니다.


충무공작소 모습이구요.


"...50년 됐지!..."

"...제가 어르신 명함 한장 가질 수 있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저는 다짜고짜로 때쓰는 아이들 처럼 이명갑님의 명함을 청하였습니다.
명함을 청하면서도 이런 대장간에서 명함이 필요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고의 대장장이께서 내민 명함속에는 이 가게에 걸어 둔 각종 공작기구들이 말해주는 것 처럼
다양한 기구들이 이곳에서 제작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농기구 뿐만 아니라 해녀기구나 해상기구.잠수기기구 하며 각종신조기구와 더불어 용접과 수리일 까지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평갑님께서 두드리고 계신 쇠망치와 풀무질로 달구어진 쇠는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이죠?..."

"...그거...바닷속에 있는 그물 같은 거 끌어 올리는데 사용하지..."



저는 생전처음 만나는 신기한 물건을 보듯 두어평 남짓한 이 대장간을 뒤지며 귀찮게 굴었습니다.

"...에구...식사하시는데 귀찮게 해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ㅜ"

"...괜찮아...다 먹었어...ㅎ"





이평갑님은 배달되어온 식사를 마치고 숭늉을 드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쇠를 두들기는 자리로 오셨습니다.
제가 불꺼진 화로를 바라보며 작업을 할 때 찾아오지 못해서 서운함을 표시하자
'이렇게 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시연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집게를 들고 뜨겁게 달구어진 쇠를 두드리며 늘리고 원하는 형상을 잡던 쇠망치를 집어 들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 이평갑님의 손에 쥐어진 쇠망치나 집게는 마치 종이장처럼 흐느적이었습니다.
어릴때 동네에서 봤던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둔탁하면서도 맑은 소리가 하루종일 끊이지않았던 시장 한켠에서는 벌겋게 달구어진 쇠들이 망치소리를 따라
엿가락 처럼 늘어지다가도 한순간에 나뭇처럼 말리면 호미가 되고 또 쇠스랑이 되고 괭이가 되었던 것이죠.










이평갑님께서 시연해 보이시는 대장간의 일입니다. 이렇게 50년을 두드리고 펴고 달구며 또 갈며 날을 세웠던 것입니다.


어떤 쇠는 담금질을 통해서 더 단단해지는 과정을 밟게 되는데
어리때는 그 과정이 몹시도 신기해 하면서도 기껏 달군것을 왜 저렇게 식히나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습니다.
치!~~~하며 꺼지면서 벌건 쇠붙이는 금새 까맣게 변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죠.

그런 기억들이 추억 저편에 숨어 있다가 충무공작소를 보자 말자 화들짝 놀라며 기억상실을 되돌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짜고짜로 이평갑님을 귀찮게 하는 무례를 범했음에도
최고의 대장장이는 먼걸음을 한 막내 대하듯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제일 힘들었을 때가...언제쯤?...될까요?(긁적이며)..."

"...음...이 일을 배울때지..."

이평갑님은 잠시 옛날의 힘든 모습을 떠 올리며 상념에 잠기는 듯 했다.

"...지금에야 습관이 되었지만... 그때는 일 배우느라 힘들었고... 밥도 제대로 못먹을때지..."


한결같은 공작품들입니다. 마치 떡주무르듯 한...


이평갑님의 나이에서 50년을 지우면 그가 얼마나 힘든 세월을 이 대장간에서 보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금년에 예순일곱이시니까 여기서 50년을 빼면 열일곱살...
그러니까 1950년대 말기쯤에 이 대장간일을 배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인자는(이제는)...더 바랄것도 없어...내가 하고 싶었던 거 다 이루었지..."

그가 내밀었던 명함에 새겨진 직함이 그가 꿈꾸었던 전부였고
그가 만들어 낸 각종 공작기구들이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면 밥을 먹을 수 있는 마술지팡이와 같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룬 꿈이자 그가 그토록 보람을 느끼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직함은 '충무공작소 대표'였습니다.


멋진 작품들입니다. 기구라 부르기엔 너무도 아까운 작품들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평생을 바쳐서 이런 공작소의 대표가 될 꿈은 아예 꾸지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꾸는 꿈 중에는 대통령이나 의사나 교수와 같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을 잘 볼 수 있는 직업을 꿈꾸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꿈도 그와 같아서 천하게 여겼던 이런 대장장이와 같은 직업은 꿈도 꿀 수 없는 직업인데
그가 살아오는 동안 한번쯤을 때려 치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법 한데 50년동안이나 이 직업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인만 알 수 있는 설계도 입니다. ^^ 세월의 흔적이 절로 느껴집니다.


"...혹시... 이 일...그만두고 싶었던 적 없으세요?..."

"...왜 없었겠어...그렇지만 힘들게 배운일이어서 그런지...다른 거는 할줄도 모르고 재미도 못느껴..."

 "....혼자 이 많은 일을 다 하세요?...?

"...요즘 누가 이런 일을 할라고 하나...바쁠때 잠시 거들어 주는 사람은 있지..."


갈고 또 갈았던 흔적이 보이는 숫돌이 경이롭습니다.


그러니까 이평갑님은 이 대장간에서 망치를 두들기며 일하는 노동자이자 사장인 셈입니다.
저는 그의 '대장장이 운명'을 만든 사연을 알고 싶었으나 그냥 짐작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 사연을 들어본들 당시의 시대상황하며 개인적인 일들을 돌이켜 보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듣는다 한들 우리시대가 그의 올곧은 직업관을 조금이라도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망치와 모루와 정들...어지간히 두들긴 모양이죠?...^^


"...선생님...이런 질문을 여쭈어도..."

저는 이평갑님의 수입에 대해서 물어 봤습니다.

"...응...한달에 한 2백만원은 벌어...과분하지...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돈이야..."


충무공작소를 밝혀주는 전등입니다.


곁에서 조용히 앉아 계시던 분이 말을 거들었습니다.

"저사람...테레비에도 많이 나왔어...신기한가보지?..."

"...네 요즘 보기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나면 존경심이 절로 나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항구가 바로 보입니다. 드럼통에 차 있는 물은 담금질 때 사용한 물입니다.


이평갑님은 곁에서 겸연쩍은 몸짓으로 씨익 웃어 주셨습니다.
대장장이인 그를 이토록 좋게 보아준 세월이 없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잠시 대화를 나누며 충무공작소를 돌아보고 있는 동안 공작소 주변은 시끌벅적 했습니다.
이곳의 소재지는 통영시 중앙동1-1번지며 중앙시장을 곁에 끼고 있는 곳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항구가 바로 코앞에 보이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바다 바로 곁이었죠.



지금은 발풀무질이나 손풀무질을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일일이 풀무질을 해야 했고
대장장이는 이외에도 모루, 정, 메(앞메와 옆메), 집게, 대갈마치, 숫돌 등을 기본적으로 사용하여 쇠를 다루었다고 합니다.


이평갑님의 꿈을 이루어 놓은 충무공작소 모습입니다.


 대장간이 없는 마을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연장을 벼리는 떠돌이 대장장이가 있었다고 하구요. 
이평갑님이 세월을 좋게 여긴 것은 그나마 현대적인 시설이 몇 있어서 나아졌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통영중앙시장에 묻혀있는 정감있는 이 공작소가 언제까지 문을 열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지금은 농경사회가 아니라서 농기구를 만들거나 고쳐쓰는 일이 적고
예전에 경칩이 지나고 밭을 갈고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지금과 같은 철에는 떠돌이 대장장이가 필요했을 겁니다만
 지금은 이평갑님 혼자 바닷일을 하는 기구들을 만들어 그나마 명맥을 유지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해가 뉘엿거리는 오후시간 잠시 통영 중앙시장에서 만나 뵌 이평갑님께 인사를 드리며 돌아서는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그런 한편 제 마음 속에는 쇠의 성질을 잘 알아서 새로운 모습으로 두들기고 또 담금질 해내는
 저 대장장이의 손길을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을 향해서 50년동안 한결같이 두드린 대장장이의 망치질은 세상의 변화에 초연한 조물주였고
그의 이름은 이평갑님이었습니다. 만나뵈어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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